Empire of the Warm Sea RAW novel - Chapter 863
* 863화 *
이민호가 쌍안경을 들고 장갑차에서 나왔다. 후금 기병이 수도 없이 몰려왔다. 그러나 부차의 넓은 들판 북쪽을 가득 메우는 식이 아니라, 강변 둑 아래 또는 작은 언덕 뒤에 빽빽이 몰려 있었다.
“우리가 어떤 무기를 사용하는지 잘 아는 것 같아.”
“예. 야포를 가장 두려워하는 것 같습니다. 곧바로 공격해올 것 같지는 않습니다.”
감불이 동의하면서 전군에 식사를 할 것을 지시했다. 동로군 병사들은 후금 기병과 보병 수만 명이 몰려오는 것을 보면서 늦은 아침을 먹었다. 식욕이 떨어져서 밥을 못 먹거나 간신히 먹더라도 체한 병사들이 조선군과 명군에서 다수 발생했다.
“전령이오! 대금국의 칸이 곧 오십니다. 고산국 국왕전하와 대담을 하길 원합니다. 시간을 내주실 수 있는지요?”
후금 전령이 말을 타고 동로군 지휘부로 곧바로 달려왔다. 전령이 말에서 뛰어내려 이민호에게 인사한 다음 칸의 말을 전하는 것이 한 동작으로 매끄럽게 이어졌다. 급히 말을 타고 와서 뛰어내렸는데도 호흡이 고르고 목소리에 변화도 없었다.
야전 무장을 갖춘 호위대가 전령의 움직임에 촉각을 곤두세웠다. 화약을 품에 가득 안고 자폭 테러할 가능성이 열려 있었지만 아직은 적이 보낸 전령과 거리만 둘 뿐 무장해제를 시키거나 몸수색을 하지는 않았다.
“이미 전쟁이 시작됐는데 굳이 말을 나눌 필요가 있나? 그냥 지금 바로 전투를 시작하면 좋겠는데. 중요한 말이 있으면 전령이 직접 해.”
“칸과 대화를 나눠주신다면 남조의 포로 2천 명을 넘겨드리겠습니다.”
“명군 포로는 허투알라에 있지 않나? 오는데 시간이 걸릴 테니 의미가 없어.”
“아닙니다! 남조의 포로들이 군량과 건초를 운반하는 일에 동원됐습니다. 가까운 곳에서 일하고 있으니 오늘 안으로 다 넘겨드릴 수 있습니다.”
어차피 누르하치를 만날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으나 괜히 한 번 튕겨 봤다가 꽤 쏠쏠한 소득을 얻게 됐다. 실제 역사에서 조선군 포로들 중에 다수가 탈출에 성공해 집에 돌아간 반면, 명군 포로들은 후금군에 흡수된 비율이 높았다. 포로 송환은 적군을 줄이고 그 숫자만큼 아군을 늘려 두 배나 이익이었다.
그런데 후금 사람들이 명나라를 남조(南朝)라고 부르는 것이 우스웠다. 남조라는 말만으로 후금이 이미 북중국을 차지한 것처럼 착각을 불러 일으켰다. 그런데 후금에서는 산해관을 넘기는커녕 요동의 전진기지인 영원성을 점령하기 훨씬 전부터 명나라를 남조라고 칭한 기록이 실록에 나온다.
“좋다. 칸이 대담을 원한다면 중간 지점에서 하기로 하지. 칸이 지금 와 있나?”
“그건 아닙니다. 길이 막혀서 한두 시진 정도 늦어지고 있습니다.”
“알았다. 오시에 중간에서 만나기로 하지. 그 전에 명군 포로를 석방하도록.”
“시간이 걸리겠지만 회담 전에 석방하라는 말씀을 버일러 다이샨 에게 전하겠습니다.”
후금 전령이 말을 타고 돌아갔다. 감불이 시간을 끌기 위한 수작이라고 평했지만, 후금군 본대가 언덕 뒤에 숨어 있어서 지금 포격을 시작하더라도 효과가 없을 것 같았다. 후금의 기병 전력이 너무 강해서 현재 동로군은 방어에 치중하고 있었기에 이쪽에서 선공을 걸기도 어려웠다.
“그런데 도련님. 좌측면을 조선군에 의존하는 것이 불안합니다. 후금 기병이 대규모로 몰려들면 바로 무너질 수도 있습니다. 우측면에 배치돼 강변을 방어하는 명군도 병력이 적고 사기가 떨어져 불안하기는 마찬가집니다.”
“그럼 조선군과 명군을 후방에 배치시킬까?”
“병참선은 후금 기병이 날뛰고 있는 곳이라 더 불안합니다.”
“그럼 어쩔 수 없잖아. 저들을 어디에 배치해야 할까? 우리 본진 옆에 배치시킨 것만으로도 어느 정도 보호를 해줄 수 있어. 그리고 연합작전일 때는 다른 나라 군대를 적당히 활용할 줄 알아야 해.”
“그렇군요. 명심하겠습니다.”
원래 작전 계획에서는 장창보병이 주력인 스위스 용병과 큐슈 기리시탄군을 측면에 배치하려 했다. 그러나 후방 병참선이 후금 기병에게 자꾸 위협을 당하는 바람에 장창부대를 후방에 분산 배치하고 구르카 용병을 외곽 산악지대에 배치했다. 조선군과 명군도 활용해야 했으므로 이들을 본진의 양 측면에 배치할 수밖에 없었다.
후금이 산악지대를 본거지로 삼은 것에서 진작 알아봤어야 했다. 이민호는 후금이 산악기병을 운용한다는 보고를 듣긴 했지만 이렇게 대량으로 운용해 병참선을 위협할 줄은 몰랐다. 덕택에 꽤 많은 병력을 뒤로 돌려서 병참선을 지켜야 했다.
명군 포로들은 정오가 되기 전에 석방됐다. 갑옷과 무기를 압수당하고 어깨를 축 늘어뜨린 채 행군해오는 포로들은 굶주림에 지친 채 담벼락에 늘어져 있는 명나라 빈민촌 실업자들 같은 인상이었다. 대부분 전사하거나 자살한 명군 장수들과 운명을 함께 했는지 눈빛이 형형한 가정들은 별로 많이 보이지 않았다.
“조선인 출신 가정들은 조선국 도원수에게 가서 확인을 받아라!”
명나라 장수 밑에 조선 출신 가정(家丁)들이 꽤 많이 있었다. 가정은 장수 개인에게 고용된 사병(私兵) 신분에 불과하지만 명나라 조정으로부터 거의 공인을 받았고 명나라 말기에 무인으로서 아주 빠른 출셋길을 보장해주기도 했다. 가정들 중에는 한인(漢人)보다는 전쟁에 익숙한 외국인이 더 많았고, 용기는 떨어지지만 적당히 싸우고 적당히 물러설 줄 알아서 생존율이 높은 조선인이 가정으로서 우대받았다.
명군 포로를 인수하면서 조선인 가정들을 도원수에게 보낸 것은 우측면에 배치된 명군이 불안했기 때문이었다. 포로들은 고산국 원정군에서 준비한 물과 음식을 허겁지겁 먹다가 각자 명군과 조선군 방향으로 흩어졌다. 이때 포로들의 행동을 유심히 살펴본 동해여진 출신 호위들이 간세로 침투한 후금인 몇 명을 붙잡았다.
병사들에게 점심식사를 하도록 지시하고 이민호는 호위 몇 명만 대동한 채 말을 타고 앞으로 나갔다. 후금 쪽에서도 이쪽 숫자에 맞춰 호위 네 명이 칸을 따라왔다. 양쪽에서 나온 다섯 명씩 열 명이 말머리를 마주보고 나란히 섰다.
“오랜만이오, 칸! 나라를 세웠다니 축하드리오. 전에 동해국에서 보고 나서 20년이 넘은 것 같소.”
“감사합니다. 국왕전하께서는 여전히 신수가 훤하십니다.”
이민호는 이미 구면인 누르하치와 화기애애한 분위기에서 인사를 나눴다. 수십 년이라는 상대적으로 짧은 시간에 강한 나라를 세웠다는 점에서 두 사람은 묘한 공감대를 형성하고 있었다
만약 누르하치가 살아생전에 명나라를 정복한다면 그의 업적이 이민호에 처지지 않겠지만 실제 역사에서는 그 전에 죽었다. 그리고 이제는 이민호와 고산국 때문에 명나라를 정복할 수 있을지조차 장담할 수 없었다.
이민호를 따라온 여진 호위들의 권총 사격 실력을 감안하면 후금 호위들을 해치우고 누르하치를 충분히 생포할 수도 있었다. 그러나 이번 전쟁을 통해 후금을 무너뜨리고 그 백성과 영토를 차지할 흑심을 품고 있는 이민호는 가급적 당당하게 이길 생각이었다. 누르하치를 생포해서 이번 전투에서 승리한다 해도 여진족과 몽골족 전체로부터 비겁하다는 비난을 받으며 끝까지 저항하도록 만들 수는 없었다.
“전에 곡식을 지원해주셨는데 감사 인사를 못 드렸습니다. 늦었지만 지금이라도 감사 인사를 올립니다.”
“사신을 통해서 인사는 충분히 받았소. 그 사이에 태어난 망아지도 받았고 말이오. 하하하!”
곡식에 대한 담보로 송화강 유역에 방목한 후금의 말 2만 마리를 두고 후금과 고산국 사이에 치열한 생물학 전쟁이 벌어졌었다. 말의 교배는 후금의 목부들이 맡아 순전히 비루먹은 망아지만 낳게 해서 동해여진에 소유권을 넘겼다.
말먹이는 제주도 출신 마의의 지도 아래 동해여진 목부들이 맡아 말 2만 마리가 후금으로 돌아갈 때는 비만과 운동부족에 시달리게 했다. 그러나 전마가 아닌 짐말이라서 후금의 전력을 크게 깍지는 못했다.
“국왕전하 같은 영웅과 한 편이면 좋았을 텐데, 무척 아쉽습니다.”
“동감이오. 헌데 내 사정은 칸도 잘 알고 계시지 않소?”
갑자기 주변에 긴장감이 팽배했다. 후금 호위들과 여진 호위들이 기 싸움을 하는 건지, 상대방의 암살 시도에 대비하려고 하는 건지 확실치 않았지만 이민호와 누르하치가 신경을 써야 할 정도였다.
누르하치가 갑자기 말고삐를 쥔 왼손을 번쩍 들었다. 바짝 긴장하고 있다가 이를 공격신호로 오인한 호위들이 분분히 권총이나 소총을 빼들었으나 후금 호위들은 두 손을 배꼽춤에 가지런히 모았다. 이로써 후금 호위가 도발했다는 핑계를 대고 누르하치를 포로로 잡을 가능성은 아예 사라졌다.
“전투는 언제 시작하면 좋겠습니까?”
“칸이 정하도록 하시오. 새벽부터 먼 길을 급히 오셨으니 오늘은 전투가 없는 것으로 합시다. 후방 병참선 공격도 잠시 멈추는 게 어떻겠소?”
“저런! 제 아들놈들이 시키지도 않은 짓을 저질렀군요. 전공에 눈이 멀어서 무모한 짓을 곧잘 벌이는 것 같습니다. 제가 대신 사과드립니다.”
“적의 병참선은 당연히 공격해야 하거늘, 칸이 사과할 게 뭐가 있겠소?”
“하하! 국왕전하께서는 역시 사나이이십니다.”
고산국에서도 항공기를 띄워 허투알라를 폭격하고 병력이 이동하는 길에 폭탄을 떨어뜨렸으니 피장파장이었다. 그러나 봄인데도 일기가 불순해 항공기를 띄우기가 몹시 어려웠다. 이차대전 때 벌지전투에서도 미군은 날씨 탓에 항공지원을 거의 받지 못했다.
화기애애한 분위기에서 누르하치와 헤어졌다. 돌아서면서 본진에 도착할 때까지 뒤통수가 근질근질했지만 대동한 호위들과 본진에 남아있는 저격수들이 끝까지 이민호를 지켜줬다.
그날 밤은 오랜만에 조용히 지나갔다. 며칠 계속 야습을 하던 후금군도 휴식이 필요할 테니 후금군에게도 손해가 없었다.
그리고 음력으로 3월 4일, 양력 4월 17일, 드디어 결전의 날이 왔다. 실제 역사에서 전투가 벌어진 날과 공교롭게 같았다.
동로군에 속한 조선군과 명군은 북쪽에서 천천히 말을 타고 달려오는 기마대군을 보며 바짝 긴장했다. 후금군은 고산국 원정군의 포격으로 인한 대량의 인명 손실을 감수하고 부차 벌판을 가득 메웠다.
“오늘도 날씨가 이 모양이라서 비행기가 못 뜬다더군.”
“정말 안타까워요.”
“뭐, 결과는 그게 그거일 거야.”
호위대장 선영이 불안해하기에 이민호가 희망사항을 말했다. 지표면에서는 바람이 강하지 않은데 상공에서는 비행기를 조종하지 못할 정도로 강풍이 분다고 했다.
그래도 억지로 정찰기를 이륙시켰다가 뜨고 나서 5분도 안 돼서 추락하고 말았다. 조종사들이 낙하산으로 탈출했다가 나무에 걸려 큰 부상을 입었다는 보고를 아침에 받았다.
“자! 온다.”
추정 병력 5만, 깃발로 판별할 때 팔기 중 5기가 벌판을 가득 메우며 몰려오고 있었다. 그 북쪽 계곡과 후방 병참선 인근에도 기병과 보병이 몇 만씩 남아있으니 후금의 가용자원 거의 전체를 한 전투에 쏟아 붓는 셈이었다.
– 뻐벙! 뻥!
후금 기마대군이 움직인 순간 장갑차에 탑재된 야포가 불을 뿜었다. 구경은 아직 경포 수준에 불과하지만 예전에 비해 사거리나 위력이 꽤나 증대했다. 그리고 포탄 종류도 다양해져서, 벌집탄 같으면 근거리에서 직사 무기로도 활용 가능했다.
– 콰쾅! 쾅!
포탄이 작렬할 때마다 기병들과 말이 한꺼번에 몇 기씩 쓰러졌다. 후금군 선두에서 방어선까지 거리는 아직 3km가 넘게 남아 후금 기병들은 말의 속도를 올리지도 못하고 고스란히 포화를 뒤집어썼다. 포병 2개 연대의 위력은 실로 가공해서 후금군 진영은 이동하는 아비규환으로 변했다.
불안해진 몇몇 후금 기병이 속도를 올려 앞서 나갔다가 독전대가 쏜 화살촉이 빈 화살에 맞았다. 갑옷 등판에 빨간 자국이 남은 자들은 전투가 끝나고 나서 참수를 당한다고 이민호도 들었다.
“저렇게 많은데 설마 포격만으로 전멸하지는 않겠지. 하지만 방어선에 도착할 때쯤이면 기마병의 충격력이 남아나지 않겠어.”
“그래도 혹시 모르니 장갑차로 가요. 지휘는 감불님께 맡기셨잖아요?”
“그래. 난 구경꾼이다.”
“아! 북동쪽에서도 2만 정도가 몰려와요.”
이곳에서 허투알라까지 가는 길은 두 갈래였다. 대충 북서쪽과 북동쪽인데 북서쪽에서는 후금 팔기 본진이 몰려오고 있었고, 북동쪽에서는 새로 나타난 후금 기병 집단이 강을 향해 달려왔다. 명군이 바짝 긴장해서 전투 준비에 돌입했다.
이민호는 원정군 총사령관 감불이 명군을 위해 포병 일부를 지원해줄지 말지 궁금했다. 그런데 이민호 손을 잡고 장갑차로 서둘러 걷던 선영이 갑자기 입을 벌리고 놀란 눈을 크게 떴다. 선영이 다급한 목소리를 내면서 북쪽 하늘을 가리켰다.
“주인님! 북쪽에서 시커먼 구름이 빠르게 몰려와요.”
“그래? 비가 오려나.”
“모래바람이에요!”
“뭐?”
장갑차에 타기 직전 북쪽을 살핀 이민호는 처음에 산 너머에서 해일이 몰려오는 줄 알았다. 높이가 수십 미터, 폭이 수 킬로미터나 되는 시커먼 구름이 뭉실뭉실한 외면과 달리 빠르게 남쪽으로 몰려왔다. 산을 타고 작은 내를 건넌 모래바람이 포격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묵묵히 달려오는 후금 기병들을 집어삼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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늦어서 죄송합니다.
모래바람은 핑계가 아니라 조선왕조실록이나 청나라 기록에 다 나온 자연현상입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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