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mpire of the Warm Sea RAW novel - Chapter 9
* 9화 *
내수사 관원을 배웅한 다음 사랑채로 돌아온 이민호가 털썩 주저앉았다. 이마에서 줄줄 흘러내린 땀을 다소곳이 옆에 앉은 혜영이 손수건으로 닦았다.
“허억! 예상보다 너무 빨리 드러났어. 왕실의 눈과 귀가 온 천지에 깔려 있다는 말을 너무 가볍게 들은 탓이야.”
“도련님은 낭중지추이옵니다. 도련님의 높은 뜻과 재주는 언제고 드러날 수밖에 없었으니 시기가 조금 일렀을 뿐이라고 마음 편히 여기시옵소서.”
“혜영이 자네 주려고 명나라 비단을 샀는데 환관에게 뇌물로 바쳤어. 미안. 다음에 다시 사줄게.”
“잘 쓰셨습니다. 도련님의 앞길을 닦을 수 있다면 저로서는 기쁘기 한량없습니다.”
이민호가 뺨을 슬쩍 쓰다듬자 혜영이 부끄러워 고개를 숙였다. 올해 들어 열세 살이 된 혜영의 발육은 나이에 비해 아주 좋았고 지난 5년 간 긴밀한 관계로 인해 서로 강하게 이끌리고 있었다.
하지만 이민호는 아직 혜영을 건드릴 생각이 없었다. 최소한 이민호의 성장판이 적당히 닫힐 때까지는 계속 체구를 키울 계획이었기 때문이다. 이순신 장군처럼 키가 너무 커도 문제겠지만 키가 작아 무인으로서 무시당하고픈 생각은 없었다.
“명나라 비단하고 조선 비단하고 차이가 있지?”
“예. 광택만 봐도 명나라 게 훨씬 좋아요. 명나라 비단을 수입하느라 조선에서 빠져 나가는 은이 매해 수만 냥이라 해요. 명나라에서 비단을 제대로 만드는 기술을 빼오면 좋겠어요.”
이민호가 중국제와 조선제 비단을 비교해보니 같은 재료를 쓰는데도 품질에 차이가 있다면 생사의 가공 과정에서 뭔가 빠뜨린 게 있음을 알아챘다. 비단 실의 겉을 코팅한 어떤 물질을 없애거나 광택을 강조하는 어떤 화학약품이라고 일단 잠정 결론을 내렸다.
그게 뭔지 당장 떠오르지 않았지만 몇 가지 화학약품을 시험해보면 금방 알아낼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리고 방적기와 방직기를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했다.
추수철에 면포와 쌀의 교환이 끝나고 이민호는 매년 동짓달 혹은 아예 설을 지낸 다음 혜영이나 혜진 둘 중에 하나를 데리고 전라좌수영으로 내려갔다. 16세기 말이 소빙기 중에 그나마 따뜻한 간빙기라고 하나 한성은 워낙 추워서 겨울에는 그나마 따뜻한 전라좌수영으로 가는 것을 좋아했다.
이제는 말 타기도 익숙해져서 종에게 경마 잡히지 않고도 빠르게 달릴 정도는 됐다. 여섯 살 이면의 충격적인 승마술에 비하면 걸음마 수준이지만 이민호는 이면을 아주 특별한 경우로 치워놓고 일반인과 비교하지 않기로 결정했다.
아직 겨우 열 살에 불과한데도 가죽옷을 입고 활을 차면 이민호를 16세 넘은 사냥꾼 청년으로 알아볼 정도였다. 이민호가 데리고 다니며 잘 먹이고 훈련시킨 노비의 자식들도 무럭무럭 자랐다. 이들이 말을 타고 호위한 덕택에 수레 두 채를 끌고 먼 길을 가는데도 시비를 거는 사람이 없었다.
이민호가 일행을 이끌고 순천부를 지나 전라좌수영에 도착하자 어느덧 정월 말이었다. 올 초에 전라좌수영 성하 마을과 그 주변이 내례면에서 여수면으로 개칭됐다. 원래 역사보다 훨씬 빨랐는데 이는 이민호가 전라감영에 끼치는 자신의 영향력을 시험한 탓이었다.
전라좌수영성은 다른 수영이나 감영에 비해 그리 넓은 편은 아니었지만 기와집 건물 수십 채가 빼곡히 들어차 있어 한양의 궁궐을 방불케 했다. 관아 본관 건물인 동헌뿐만 아니라 후에 진남관이라 불리는 남문 쪽 객사도 어마어마하게 컸다. 실 병력 수 천 명을 상시 운용하는 수영성에 비해 품계가 더 높은 병마절도사의 상징적 주둔지에 불과한 병영성은 아주 작고 초라한 편이었다.
이민호는 여수 집에서 며칠 머물며 서류 확인을 마친 다음 소포에서 배를 타고 방답으로 향했다. 부친은 추수철 이후 겨우 내내 일꾼들을 동원해 황무지를 개간하느라 바빴다. 어차피 임진년에 둔전으로 개발될 텐데 부친은 그저 심심하다는 이유로 땅을 일궜다. 처음부터 농경지를 바둑판 모양으로 만들고 그 전에 저수지와 수로, 농로부터 만든 것은 이민호의 조언 덕택이었다.
부친과 함께 며칠 지낸 다음 이민호는 주변 지역을 돌아다니며 기반을 다졌다. 미평과 흥양의 농장과 목장, 순천의 농장을 시찰하고 순천부 관아 근처 어느 양반 댁에 갔다가 동래 왜관에서 흘러나온 일본 밀감 몇 개를 얻어 2월 초에 여수 집으로 돌아왔다.
“제주 밀감보다 훨씬 크네요?”
노란 과실을 받아든 혜영이 환하게 웃었다. 그러나 당시 몇 가지 품종의 제주 밀감은 재래종이라 작은 편이었다. 그렇다 해도 이 일본 밀감은 밀감이라 하기엔 너무 컸다.
“응. 껍질을 까서 먹어봐.”
“껍질이 잘 안 까져요. 껍질 색은 아주 노란데 속은 투명해요. 아이 시어! 시어서 못 먹겠어요. 무슨 밀감이 이래요?”
“이거 먹으면 여자들 피부가 좋아져.”
“정말요?”
혜영은 눈살을 찌푸리면서도 억지로 다 먹었다. 같이 먹으며 슬쩍 웃던 이민호가 과육에 든 굵은 씨앗을 뱉어냈다.
“사실 이건 밀감이 아니라 중국의 귤 종류 중에 하나야. 회수를 넘으면 탱자가 된다는 귤 말이야. 왜에서 귤을 식재했는데 상품 가치가 별로 없는 것 같아. 이게 남만 색목인들의 나라에 가서 오렌지라고 불리는 과실이 돼.”
“도련님은 왜국에서 밀감 묘목을 구해 제주도에 심으려고 하셨죠?”
“응. 당분간은 아마 어려울 것 같아. 나중에 중국이나 왜 땅에 직접 가서 구해야겠어. 이건 시어서 도저히 못 먹겠다.”
“천장에 매달아두면 익을까요?”
“다른 과일과 달라서 이건 별 차이 없을 거야.”
오렌지가 중국이 원산지라는 사실은 대부분 잘 모르는 이야기였다. 중국의 귤 종류 중에 하나가 15세기 중반에 포르투갈 무역선에 의해 유럽에 전해져 오렌지가 되었다. 지중해 지역처럼 건조하고 일조량이 많은 곳에서 생산된 오렌지가 당도가 높으니 한반도와 일본 땅에는 적합하지 않은 과실이었다.
“윤선이 오늘 완성됐다고 해요.”
“그래? 다들 고생했겠네. 그럼 내일 아침에 소포에 같이 가 보자.”
윤선은 명종 5년, 1550년 이전에 경상도관찰사 안현이 8세기 중국에서 발간된 의 윤선제(輪船制)를 연구해 경상병사 김순고에게 시켜서 만든 외륜선이었다. 배 선미 또는 양현에 물레방아 같은 바퀴를 돌려 운행하는 방식인 현대의 페달식 오리 보트와 같은 원리였다.
1553년 명종 임금이 망원정에 행차해 윤선의 시험 운항을 지켜본 적이 있으니 조선 사람들에게 전혀 새로운 형태의 배 모양은 아니었다. 유럽에서는 1543년에 패들 휠 보트(paddle wheel boat)를 실용화해 나중에 증기기관과 합해져 강을 오르내리는 수운에 많이 쓰였다. 그러나 조선에서는 배가 빠르긴 하나 조운선으로 쓰기에는 너무 작다는 이유로 폐기됐었다.
이민호는 사람이 페달을 밟거나 축에 달린 쇠막대를 돌리는 식이 아니라, 연자방아처럼 황소 여러 마리를 매달아 동력을 공급했다. 소가 움직일 공간이 필요해 배의 밑판도 커져서 선폭은 판옥선과 비교해 비슷한 정도였으나 군선으로 오인되지 않도록 일부러 높이를 낮춰 제작했다.
축력을 이용한 윤선은 범선이나 노선과 달리 적은 인원으로 운행이 가능했고 파도가 낮은 연안 항해에 쓸 정도는 됐다. 이민호는 증기기관을 개발한 이후 기선으로 활용하려고 미리 만들어두었다.
“그만 자자. 불 꺼.”
“네.”
관솔불을 끈 혜영이 겉옷을 벗고 후다닥 이불 속으로 들어왔다. 예전에는 혜영이 누나 같았는데 이민호의 체구가 커지자 신분 차이도 있어 혜영은 어느새 여동생처럼 행동했다. 이민호의 품에 안겨 누운 혜영이 한참을 머뭇거리다가 간신히 입을 열었다.
“첨사 나리께서 얼른 손주를 보고 싶어 하세요.”
“그래? 혜영이는 너무 어려서 아기를 가지면 위험하니 다 큰 여자를 구해볼까?”
“안 돼요! 히잉~”
이민호가 낄낄 웃다가 혜영의 목에 팔을 둘렀다. 그리고 길게 입맞춤을 했다. 이민호가 혀를 들이밀자 잠시 깜짝 놀라 움츠려들었던 혜영의 혀가 조심스레 마중 나왔고, 눈을 꼭 감고 침을 삼키느라 혜영의 목울대가 위아래로 움직였다.
서로의 몸에 익숙한 탓에 첫 키스치고는 매우 매끄러운 편이었다. 잠시 넋이 나간 혜영이 색색거리며 숨을 몰아쉬는 사이에 이민호가 혜영을 끌어안았다.
“우리가 좀 더 자란 다음에. 누가 뭐래도 내 처음은 혜영이가 될 거야. 그때 혜영이도 내가 처음이겠지?”
이민호 입장에서는 혜영이 아직 어린애로 보였지만 평생을 함께 할 둘에게는 이것이 최선이었다. 부끄러운지 혜영이 이민호의 품에 파고들었다.
“예. 제 삶의 마지막까지 도련님이 저의 유일한 남자가 될 거여요.”
“그래? 정말 기뻐.”
5년 동안 같이 살다 보니 이민호는 이런 닭살 돋는 멘트도 쉽게 할 수 있게 됐다. 대학 다닐 때 두 달 동안 연애한 것보다 훨씬 긴 교제를 한 셈이라 여자를 다루는 기술도 많이 늘었다.
“혜진이도 거두어주셔야 해요, 도련님.”
“큭큭! 성격 나쁜 혜진이까지?”
“혜진이가 도련님을 얼마나 좋아하는데요. 그리고 만약 일반 양인 남자에게 시집가면 도저히 못 살 거여요.”
“그 성질머리에 그렇겠지.”
이민호는 아직 숫총각인데도 여자가 벌써 둘이나 생겼다. 게다가 둘은 훌륭한 덮밥 재료인 자매였다. 예전에 연구원으로 일할 때 인터넷에서 조선의 춘화도를 본 적이 있었는데, 그 중에 여 2, 남 1의 쓰리섬을 하는 장면도 있었다. 그래서 혜영 혜진 자매를 지켜보는 이민호는 항상 즐거웠다.
그러나 사실을 말하자면 이민호가 키는 멀대 같이 컸으나 겨우 열 살, 첫 파정도 아직 못 해봤다. 그는 몽정을 할 나이가 되면 혜영과 잠자리를 가질까 생각하고 있었다. 어릴 때부터 성행위를 하면 성장에 불리하다고는 하지만 혜영이 나이가 들수록 불안에 떠는 것을 지켜보기도 어려운 탓이다.
아직 조혼의 풍습이 확산될 시기가 아니더라도 이 시대에 열세 살 소녀가 시집간다 해서 사람들이 신부가 너무 어리다고 수군거릴 정도는 아니었다. 그리고 아청법이야 소설 쓰는 사람이나 고민할 문제지 주인공에게는 전혀 상관이 없었다.
이민호는 집안사람들과 함께 아침 일찍 소포에 도착했으나 아직 썰물이라 좀 더 기다려야 했다. 조선 기술자들과 시험운항을 맡은 뱃사람들은 물때에 맞춰 느지막이 나와서 아직도 음력과 물때에 익숙하지 못한 이민호의 속을 긁었다.
밀물이 되고 포구에 물이 차자 바퀴가 돌며 외륜선이 천천히 포구에서 빠져 나왔다. 돛은 아직 펼치지도 않았고 노는 아예 없고 사공이 상앗대로 물 밑바닥을 밀지 않았는데도 배가 움직이자 구경꾼들이 탄성을 질렀다. 며칠 전부터 황소들을 배에 태우는 훈련을 시켜서 물살에 따라 배가 흔들리는데도 소들이 놀라 날뛰지 않았다.
“와! 움직인다. 우와! 듣던 것처럼 빠르다.”
좌수영에서 구경 나온 군관들이 소리를 질렀다. 30여 년 전에 경상관찰사가 만든 윤선과 달리 이민호가 만든 외륜선은 물레방아 모양의 바퀴를 좌우현이 아닌 선미에 달고 훨씬 빠르게 움직였다. 중간에 잠시 멈추더니 제자리에서 반대 방향으로 움직이기도 했다. 쇠로 만든 톱니를 추가로 끼우면 바퀴가 거꾸로 돌아가서 조작도 쉬운 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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