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nding Maker RAW novel - Chapter (14)
엔딩메이커-14화(14/473)
< 제3장 – 체이스 백작가 #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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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엘 백작가의 아침은 본디 고요한 편이었다.
하지만 오늘만은 달랐다.
오랜 세월 바이엘 백작가를 모셔온 집사장 바론을 필두로 하여 바이엘 백작가의 사용인들 모두가 아침부터 분주하기 짝이 없었다.
원정으로 두 달 넘게 자리를 비웠던 바이엘 백작이 예정보다 사흘이나 일찍 도착할 거란 소식이 전해졌기 때문이다.
겨울에 앞서 바일룬 일대의 몬스터들의 숫자를 줄여두는 원정이 아무리 연례행사라고는 하나 가주의 귀환이었다.
환영회 준비를 소홀히 할 수는 없었다.
양지바른 곳에 앉아 분주히 오가는 사용인들을 바라보던 유더는 옆을 돌아보며 물었다.
“그런데 너는 여기 왜 있냐.”
“그러게.”
잔뜩 차려입은 채로 유더 옆에 앉아있던 코델리아가 약간은 멍한 목소리로 답했다.
사실 두 사람 모두 코델리아가 지금 이 자리에 있는 이유를 알고 있었다.
“아버님은 오늘도 크시구나.”
“크시지.”
체이스 백작.
바이엘 백작과 몇 번이나 생사고락을 함께한 전우인 그가 코델리아를 데리고 나타났기 때문이다.
‘시아버지와의 인사인가.’
입 밖으로 내었다가는 코델리아가 지랄하고, 유더 자신도 두드러기가 날 것 같은 단어인 터라 일단 마음속으로만 생각한 유더는 바이엘 백작의 귀환을 환영하듯 활짝 열린 정문을 바라보았다.
“그런데 있잖아.”
“어.”
“우리 너무 평화로운 거 아냐?”
‘전생’의 기억을 각성하고 약 한 달.
코델리아의 말에 유더는 고개를 돌렸고, 이내 다시 코웃음을 쳤다.
“아해야, 지금을 즐기려무나. 아직 메인 시나리오 시작도 안 한 거 알지? 집 떠나면 고생이다, 고생이야.”
“흥, 나도 알거든?”
“그걸 아는 사람이 그래?”
유더가 끌끌끌 혀를 차자 무어라 반박하고 싶어진 코델리아였지만 딱히 할 말이 없었기에 입술만 삐쭉였다.
유더의 말마따나 일단 메인 시나리오가 시작되면 고생문이 활짝 열렸기 때문이다.
‘악마의 손의 습격부터가 엄청 하드하니까.’
북방 12가문의 자제들 가운데 몇이나 죽고 납치되는 살벌한 이벤트였다.
게임에서도 코델리아는 악마의 손에 납치되어 제물이 되거나, 그 자리에서 살해당하거나, 간신히 도망쳐서 살기 위해 몸부림치는 세 가지 루트만이 준비되어 있었다.
애당초 유더의 메인 시나리오부터가 바일룬에서 행방불명된 코델리아의 행방을 알아보기 위해 여행을 나서는 것에서 시작되니, 정말 원작처럼 진행이 된다면 코델리아의 미래는 그야말로 가시밭길을 넘은 불꽃길 그 자체였다.
‘그렇게 내버려두지 않을 거지만.’
원작의 내용을 바꿔 새로운 엔딩을 만들어낸다.
코델리아의 메인 시나리오에 변경을 가하는 것은 그 시작이라 할 수 있었다.
‘뭐, 그거 때문은 아니지만.’
유더가 문득 작은 미소를 짓자 코델리아가 흠칫하며 말했다.
“뭐냐? 그 야리꾸리한 눈빛은?”
“사모하는 코델리아 양을 걱정하는 유더의 눈빛?”
“야, 소름 돋거든? 그, 그리고 너무 익숙해진 거 아냐?”
“뭐가?”
“그거.”
“그거라니?”
“그거 있잖아, 그거.”
“사모하는? 사랑하는?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귀엽고 사랑스러운 코델리아 양?”
유더가 능글맞게 말하자 코델리아는 몸서리를 치며 얼굴을 붉혔다.
“미, 미친놈이 뭐라는 거야.”
“아버님이 오고 계시거든.”
“응?”
“아버님이.”
코델리아도 이해했다. 퍼뜩 돌아보니 저만치서 체이스 백작이 이쪽을 향해 걸어오고 있었다.
“코델리아 양, 오늘도 아름다우십니다.”
“어, 어머나 부끄러워라. 감사해요, 공자님.”
코델리아가 어설픈 미소와 함께 응답할 즈음, 두 사람 앞에 당도한 체이스 백작은 유더를 슥 하고 돌아보더니 이내 못마땅한 표정이 되어 말했다.
“쯧, 여전히 비쩍 말랐구나.”
못마땅한 표정과 마뜩잖은 눈빛과 끌끌끌 혓소리까지.
하지만 유더는 조금도 두려워하지 않았다. 다음으로 이어질 말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별 건 아니지만 챙겨 먹어라.”
“감사합니다, 아버님.”
체이스 백작이 작은 함을 내밀자 유더가 얼른 받아들며 감사를 표했다.
참으로 보배로운 아버님이셨다.
한편 코델리아는 멍한 얼굴로 눈을 깜박였다. 일전에 듣기는 들었지만, 실제로 보니 참으로 묘한 기분이었기 때문이다.
“흠.”
그런 유더와 코델리아의 속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잠시 두 사람을 지긋이 바라본 체이스 백작은 이내 시선을 돌리며 말했다.
“온다.”
뜬금없는 말이었지만 유더와 코델리아는 바로 이해했다.
저만치 정문 너머.
바이엘 백작이 돌아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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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소라면 기사단을 이끌고 개선했을 바이엘 백작이었지만 오늘은 수하 몇과 장남인 게일 바이엘 한 사람만을 대동한 채였다.
유더의 소식을 듣고 귀환을 서둘렀기 때문이다.
바이엘 백작가의 사용인들이 정문 앞에 도열했고, 유더는 코델리아와 나란히 정문 앞에 자리했다.
그리고 시간이 얼마나 지났을까.
“유더!”
우렁찬 부름과 함께 붉은 말을 타고 있던 기사 하나가 속도를 높여 정문 앞에 당도했다.
유더의 형이자 차기 바이엘 백작으로 내정되어 있는 게일 바이엘이었다.
푸른 머리칼과 푸른 눈을 가진 그는 말에서 단번에 뛰어내린 뒤 금방이라도 유더를 끌어안을 기세였지만, 그래도 경우를 잊지는 않았다.
“체이스 백작님을 뵙습니다.”
“오랜만이군.”
딱딱하고 냉엄한 어조였지만 유더 이상으로 체이스 백작에게 익숙한 게일이었다.
넉살 좋은 미소로 받아넘긴 뒤 다시 유더를 돌아보았다.
“정말 건강해졌구나. 얼굴만 봐도 알 수 있겠어.”
유더와 닮은 게일의 얼굴에는 조금의 사심도 느껴지지 않았다.
게일 바이엘.
유더 바이엘과 열 살 차이가 나는 형.
아웃복서009로서 영웅전기2에서의 게일 바이엘을 떠올린 유더였지만 잠깐 뿐이었다.
아웃복서009인 동시에 유더 바이엘이었으니까.
유더의 얼굴에도 미소가 번졌다.
게일 바이엘은 정말로 좋은 형이었으니까.
영웅전기2에서는 표현되지 못 한 수많은 일화들을 ‘유더 바이엘’은 기억하고 있었다.
진짜 형.
유더로 살아온 십칠 년의 세월동안 마주해온 사람.
“운이 좋았어, 정말 운이 좋았어. 아니, 생각해보니 이건 다 코델리아 양 덕분인가? 함께 꽃놀이를 나갔다가 태양의 목걸이를 발견했다고 하니.”
기분 좋게 말한 게일은 새삼 코델리아를 돌아보았고, 유더를 닮은- 하지만 좀 더 남자다운 얼굴로 그림 같은 미소를 지었다.
“정말 감사합니다, 코델리아 양. 당신을 만난 것은 유더에게 있어 최고의 행운이겠지요. 바이엘 백작가에 있어 당신은 행운의 여신입니다.”
“과찬이십니다. 아, 아주버님.”
코델리아가 간신히 답하자 게일은 다시 미소지었다. 수줍게 답하는 그녀의 모습이 무척이나 귀여웠기 때문이다.
“정말 행운 그 자체구나. 부러운 녀석.”
유더에게 찡긋 윙크까지 보낸 게일은 그대로 껄껄 웃으며 옆으로 비켜섰다.
오늘의 진정한 주인공이 도착했기 때문이다.
“유더.”
바이엘 백작.
흑마를 타고 당도한 바이엘 백작이 말 위에서 훌쩍 뛰어내렸다.
체이스 백작에 뒤지지 않는 큰 키와 넓은 어깨를 가진 그는 검은 머리칼과 푸른 눈을 가진 미장부였다.
게일처럼 호들갑을 떨지는 않았지만 바이엘 백작의 두 눈에도 기쁨이 가득했다.
“나누고 싶은 이야기가 많구나. 어서 들어가도록 하자.”
“예, 아버지.”
반사적으로 답한 유더였지만, 답하는 순간 가슴 언저리가 자르르 떨리는 기분이었다.
유더 자신을 걱정하고 아끼는 바이엘 백작의- 아버지의 마음이 여실히 느껴진 탓이었다.
“나는 보이지도 않는 모양이군.”
“자네처럼 커다란 자를 어찌 못 알아보겠나. 와줘서 고맙네.”
껄껄껄 웃으며 체이스 백작의 어깨를 두드린 바이엘 백작은 코델리아 역시 잊지 않았다.
“이미 게일 녀석이 말했지만, 정말 고맙구나. 정말 고마워.”
주간도주가 아니었다면 태양의 목걸이를 발견하지도 못 했을 터이니까.
게일이 동의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아버지, 유더와 코델리아 양 두 사람의 사랑이 기적을 일으킨 겁니다.”
“허허, 녀석도 참. 그만하거라. 코델리아가 부끄러워하지 않느냐.”
부자가 주거니 받거니 하는데, 정말로 부끄러워 죽을 것 같은 코델리아였다.
얼굴을 새빨갛게 붉힌 채 어쩔 줄 몰라 하던 그녀는 결국 유더의 옷자락을 잡아당겼다.
‘야! 어떻게든 해줘!’
‘허허, 이것도 다 지나가리라.’
코델리아의 필사적인 눈빛에 유더는 득도한 눈빛으로 답했고, 그런 두 사람의 작은 교감을 지켜본 이들은 모두가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이쯤하고 일단 들어가도록 하지. 바론?”
“예, 가주님. 연회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귀환을 진심으로 환영합니다.”
한 발 물러서 있던 집사장 바론이 앞으로 나서자 일이 일사천리로 진행되었다.
바이엘 백작가의 연회장 안.
다른 곳들과 마찬가지로 딱딱한 요새 느낌이 나는 장소였지만, 그래도 커다란 식탁 위에 각종 진미들이 올라가 있으니 모양새가 좋았다.
상석에는 바이엘 백작이 자리했고, 그 양 옆으로 체이스 백작과 게일이 각기 자리했다.
유더와 코델리아는 게일 옆에 자리를 잡았는데, 온통 우락부락한 남자들로 가득 찬 식탁에 예쁘장한 소년과 소녀가 나란히 앉아 있으니 상석에 앉은 바이엘 백작보다도 더 눈에 띄었다.
“정말 기쁜 날이구나, 기쁜 날이야.”
체이스 백작과 술을 한 잔 나눈 바이엘 백작이 흐뭇한 얼굴로 말했고, 주변에 있던 이들 모두가 고개를 끄덕였는데, 시선이 바이엘 백작이 아닌 유더와 코델리아에게 모여 있었다.
‘씨, 씨발. 밥도 못 먹겠네.’
‘허허, 이것도 다 지나갈 지어니.’
필사적인 눈빛을 보내는 코델리아에게 이번에도 득도한 눈빛으로 답한 유더는 바이엘 백작을 보며 말했다.
“무사 귀환을 축하드립니다, 아버지.”
“그래, 다친 자는 있어도 죽은 자는 없으니 이번 원정은 대성공이었다. 네 형인 게일 역시 맹활약을 했지.”
“하하, 아버님도 참. 코델리아 양 앞에서 부끄럽습니다.”
말은 그렇게 했지만 입꼬리가 잔뜩 올라간 것이 정말 기쁜 모양이었다.
‘음, 게일이 코델리아를 좋아하는 건 아니겠지?’
일단 원작 상으로 보면 게일에게도 결혼을 코앞에 둔 약혼녀가 있었으니까.
유더가 경계 아닌 경계를 할 즈음, 바이엘 백작이 다시 유더를 보며 입을 열었다.
“유더, 빅터에게 들었다. 이번 친목회에 코델리아와 함께 참가하고 싶다 했다지?”
“예, 아버지. 코델리아 양과 함께하고 싶습니다.”
유더가 똑 부러지게 답하자 바이엘 가의 가신들인 기사들의 눈에 다시 흐뭇함이 깃들었고, 체이스 백작 역시 흥 소리를 내며 작은 미소를 지었다.
바이엘 백작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너도 우리 바이엘 가의 자식이니 참여하는 것이 마땅하다. 하지만 유더, 우리 바이엘 가는 무가이다. 때문에 집을 나서기 위해서는 스스로의 몸을 지킬 수 있음을 증명하는 시험에 통과해야 한다. 그 사실은 알고 있겠지?”
“알고 있습니다, 아버지.”
아버지의 시험 퀘스트.
유더가 이번에도 시원하게 답하자 더욱 기꺼워진 바이엘 백작이 자리에서 일어섰다.
“본래라면 시일을 정해 시험을 치러야 하지만 그랬다가는 여정이 늦어지겠지. 어떠냐, 유더. 지금 이 자리에서 내게 시험을 받는 것은.”
밥 먹다 말고 갑작스러운 제안이었지만 유더는 당황하지 않았다. 이미 준비는 끝났으니, 오히려 시험 일정이 당겨지면 당겨질수록 좋았다.
‘할 수 있어?’
‘할 수 있어.’
코델리아에게 눈빛으로 답한 유더는 한 차례 숨을 삼킨 뒤 자리에서 일어섰다.
“시험에 응하겠습니다, 아버지.”
메인 시나리오를 시작하기 위한 마지막 관문.
당연한 이야기였지만, 유더는 정답을 알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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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3장 – 체이스 백작가 #3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