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nding Maker RAW novel - Chapter (193)
엔딩메이커-193화(193/473)
< 제70장 – 호국공 >
제70장 – 호국공
아르곤 제국과의 전쟁은 끝났다.
하지만 양쪽 모두 진정한 평화가 찾아왔다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그저 한시적인 휴전.
“전쟁은 끝나지 않는다.”
대륙 제일의 곡창인 실라테스 평원을 제국은 결코 포기할 수 없었다.
그리고 그것은 이미 실라테스 평원의 실익을 누리고 있는 세일룬 왕국 역시 마찬가지였다.
“어느 한쪽이 거꾸러져야만 끝날 싸움.”
하지만 양쪽 모두 국운을 건 총력전까지는 가지 못 했다.
어느 한쪽이 절대적인 우위를 점하고 있는 상황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덕분에 지난 백 년간 세일룬 왕국과 아르곤 제국은 무려 여덟 번이나 전쟁을 치렀다.
자잘한 국지전까지 포함한다면 수백 번도 넘는 전투가 있었고 말이다.
“싫진 않아.”
전쟁이 없었다면 내 인생은 잘해봐야 뒷골목의 건달패 정도로 끝났을 테니까.
어쩌면 그마저도 되지 못 하고 굶어죽었거나.
언제나처럼 전쟁이 일어났고, 병력이 부족했다.
뒷골목을 전전하던 난 빵을 준다는 말에 끌려 병사가 되었다.
처음에는 좋았다.
어쨌든 매 끼니마다 먹을 빵이 생겼고, 편히 누워 잘 수 있는 잠자리 역시 생겼으니까.
먹을 것을 빼앗기거나 잠자다 말고 습격 받거나 하는 일 없이, 먹을 거 먹고 잠잘 거 자는 생활은 당시의 나에게는 그야말로 천국이나 다름이 없었다.
하지만 정말로 전쟁터에 서게되자 이야기가 달라졌다.
첫 전투가 있던 날은 아무리 생각해도 기억이 나지 않았다.
그저 생각나는 거라고는 스무 명이 함께 생활하던 막사에서 살아남은 것이 나 혼자뿐이라는 사실과, 옆자리에서 늘 시끄럽게 떠들던 키다리 녀석이 전투가 시작되자마자 이마에 화살을 맞아 죽었다는 사실 뿐이었다.
전쟁은 계속되었고, 죽기 싫어 몸부림치던 말라빠진 꼬맹이는 점점 살아남는 요령을 익히기 시작했다.
그리고 급기야는 살아남는데 그치지 않고 남을 죽이는 법까지 습득했다.
“죽고 싶지 않아.”
괴로운 일 밖에 없는 인생이었는데 왜 그렇게 삶에 대한 집착이 강했던 것일까.
살기 위해 싸웠고, 살기 위해 죽였다.
첫 살인은 언제 어디서 했는지 기억조차 못 했지만, 스스로 첫 살인이라 규정지은- 의식하고 저지른 살인에 대해서는 기억했다.
창이 상대방의 가슴을 꿰뚫은 그때.
이름도 모르는 눈앞의 병사가 그 생을 마감하였을 때.
살아남았다는 희열은 그다지 없었다.
내 손으로 삶을 하나 끝장낸다는 살인의 쾌감 따위도 존재하지 않았다.
그저 두려웠다.
죽음이.
죽는다는 것이.
시간이 흘렀고, 점점 더 싸우는 요령이 붙었다. 요령은 실력이 되었고, 실력은 다시 노력을 불렀다. 잘하면 더 잘하고 싶어지는 것이 당연한 심리였으니까.
더욱이 전쟁터에서 죽지 않기 위해 할 수 있는 노력은 강해지기 위한 노력뿐이었다.
전쟁이 끝났고, 부모에게 받은 이름조차 없던 뒷골목의 거렁뱅이는 기사가 되었다.
“그리고 다시 20년.”
잠깐의 평화와 두 번의 전쟁.
기사는 백작이 되었고, 백작은 공작이 되었다.
호국공.
나라를 구한 구국의 영웅.
그저 영달을 위해 싸우고 또 싸웠을 뿐인데 그런 거창한 이름까지 얻게 되었다.
“호국공, 그대에게 소개하고 싶은 아이가 있네.”
두 번째 왕.
전쟁 후에 치러진 기사 서임식 때 보았던 첫 번째 왕과는 이렇다 할 인연이 없었다.
하지만 두 번째 왕인 그와는 제법 교류가 있었다.
내가 그를 구했고, 그가 나에게 백작위를 주었으니까.
지난 전쟁이 끝났을 때는 평민 출신의, 부모가 누구인지도 알 수 없는 나에게 공작위를 주었으니까.
“내 아들이라네. 전쟁 직전에 태어난 터라 지금까지 소개할 기회가 없었다네. 그래도 이야기 정도는 들어봤겠지?”
두 번째 왕은 사람 좋아 보이는 얼굴로 웃었고, 나는 속으로 숫자를 헤아렸다.
태어나 세 번째로 치른 전쟁은 자그마치 7년이나 이어졌으니, 전쟁 직전에 태어났다면 이제 일고여덟 살 쯤 되었을 터였다.
“헨리, 이쪽으로 오려무나.”
왕이 손짓하자 왕비의 등 뒤에 숨어 있던 어린 아이 하나가 쪼르르 달려와 두 번째 왕 옆에 섰다.
별다른 일이 없다면 세 번째 왕이 될 아이.
왜인지 무척이나 흥분한 아이는 얼굴 가득 홍조를 띄운 채 나를 올려다보았고, 내가 먼저 예를 갖추기도 전에 어설프지만 진지한 태도로 예를 표하였다.
“헨리 D 세일룬입니다. 호국공.”
신하를 보는 눈이 아닌, 마치 이야기책 속의 영웅을 보는 것처럼 반짝이는 눈동자.
첫 번째 왕과 같은 이름을 가진 아이 앞에 나는 무릎을 꿇었고, 오랜만에 스스로의 이름을 입 밖으로 내어보았다.
“안타리우스 공작가의 그레이 안타리우스가 인사드립니다.”
첫 번째 왕이 내려준 성과, 두 번째 왕이 내려준 작위.
나의 인사에 세 번째 왕은 뭐가 그리 신나는지 해맑게 활짝 웃었다.
&
“디그!”
“그라비티 폴!”
코델리아와 디온 왕자가 거의 동시에 외쳤다.
두 사람 모두 십검호에게 평범한 공격 마법 따위는 통하지 않는다는 것을 잘 알았기 때문이다.
땅을 파헤치고 중력으로 짓누른다. 움직임을 막는데 주력한다.
콰가각!
호국공이 땅속에 처박혔다.
하지만 코델리아와 디온은 방심하지 않았다. 상대는 비록 쇠약해졌다고는 하나 과거 세일룬 왕국을 구한 구국의 영웅이자 십검호의 일원인 호국공이었으니 말이다.
“크으윽!”
디온 왕자가 땀을 뻘뻘 흘리며 중력 마법을 강화했지만 호국공을 거꾸러트리지 못 했다.
중력을 거스르듯 우뚝 선 호국공이 검격을 내지리는 것 역시 막을 수 없었다.
카득-!
허공을 베었다.
아니, 강력한 검기로 마력을 베었다. 마법의 구성을 갈라 마법을 무효화시켰다.
일반적으로는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허공에 검기 좀 휘두른다 하며 부서질 마법의 구성이 아니었다.
하지만 십검호의 검기였다.
마력의 흐름을 읽어내 정확히 핵을 가르는 것이 그들에게는 가능했다.
“커헉!”
마법이 강제로 파괴된 여파를 뒤집어 쓴 디온 왕자가 숨넘어가는 소리와 함께 뒷걸음질 쳤고, 유더와 다프네 왕녀는 숨을 멈추었다. 마법을 베어낸 직후 구덩이를 박차고 도약하는 호국공에게 온 신경을 집중하였다.
‘시간을 번다.’
그것이 이번 싸움의 승리조건.
무리하지 않는다.
시간을 버는 것에 집중한다.
다프네 왕녀와 디온 왕자를 적극적으로 활용한다.
두 사람을 보호하기 보다는 함께 싸운다는 느낌으로 전투에 임한다.
‘보호 대상이 아냐.’
헨리 2세와 왕비들, 그리고 다리안 왕녀가 도망쳤다.
다프네 왕녀와 디온 왕자가 죽는다 해도 성왕의 피는 이어질 터였다.
‘간다.’
더 이상 생각할 시간이 없었다. 그나마 운신이 불편한 허공에 머물고 있을 때를 노려야 했다.
‘흑룡포효! 연환!’
호국공을 향해 유더가 연속해서 흑룡의 기운들을 내쏘았다. 다프네 왕녀는 호국공이 흑룡의 기운을 암청색 검기가 덧씌워진 검으로 부수는 것을 유심히 지켜보았다. 네 번째 흑룡마저 격파한 그때 지면을 박차 돌진했다.
다프네 왕녀의 전력.
그녀의 검은 날카롭고 빨랐다. 하지만 호국공에게 닿기는 부족했다. 호국공이 몸을 팽이처럼 회전시키며 휘두른 검이 그녀의 검을 튕겨내었고, 유더는 초풍신뢰로 거리를 좁혔다. 무지막지한 속도로 돌진하며 흑룡의 기운이 어린 주먹을 호국공을 향해 내쏘았다.
콰가각!
흑룡의 기운이 비껴나갔다.
호국공이 휘두른 검기를 타고 뻗어나가 벽을 강타했고, 지면에 납작 엎드리듯 몸을 낮춘 호국공은 마치 뱀처럼 솟구치며 다프네 왕녀를 노렸다.
“성왕의 빛이여!”
그 순간 디온 왕자가 외쳤고, 하늘에서 쏟아진 순백의 빛이 다프네 왕녀를 뒤덮었다.
“하아앗!”
다프네 왕녀가 기합과 함께 휘두른 검이 호국공의 검과 맞물렸다.
기술의 정밀도와 숙련도에서는 비교가 되지 않았지만, 적어도 순간적인 위력 하나만은 호국공과 호각을 이루는 것이 가능했다.
“으아아!”
다프네 왕녀가 다시 외치며 맞물린 검을 크게 휘두르자 호국공은 저항하는 대신 흐름을 타고 검을 회수했다. 뒤로 크게 물러서며 다프네 왕녀를 보았다.
“성왕의 피인가.”
첫 번째 왕이 가지고 있던 힘.
순간적으로 초대왕 라이온 D 세일룬의 용력을 강림시키는 것.
다프네 왕녀의 힘이라기보다는 디온 왕자가 물려받은 힘인 것 같았다.
다프네 왕녀는 무어라 답하는 대신 검을 고쳐 잡았고, 유더는 순간적으로 다프네 왕녀의 전력을 가늠해보았다.
디온의 보조까지 더해진다면 전체적인 전투력은 루카스보다는 강하고 유더 자신보다는 약한 정도.
이 정도면 함께 싸우는 것이 가능했다.
‘다프네 왕녀에게 맞춘다.’
다프네 왕녀는 코델리아가 아니었다. 그녀와 자연스럽게 호흡을 맞춰 양쪽 모두 주공이 되는 것은 불가능했다.
어느 한쪽이 보조가 되지 않으면 제대로 된 합격조차 불가능했다.
“왕세녀님!”
“보조해라!”
유더가 외친 순간 크게 소리친 다프네 왕녀가 호국공을 향해 돌진했고, 유더 역시 지면을 박찼다.
그리고 코델리아는 그 모든 광경을 한 눈에 담으며 생각했다.
‘무리야.’
저런 식으로는 이길 수 없다.
그저 본 순간 알 수 있었다.
기본적인 전력 차가 너무나 컸다.
야생의 맹수들은 마주한 순간 상대의 강함을 본능적으로 직감할 수 있었다.
코델리아 역시 그러했다.
호국공은 강했다.
제일검을 마주한 순간 느꼈던 아득함보다는 못 하였지만, 그 역시 작금의 자신과 유더가 맞상대할 수 없는 강자인 것은 분명했다.
그렇다면 어찌할 것인가.
어떻게 작금의 위기를 타파할 것인가.
유더와 다프네의 합격이 시작되었다.
디온 왕자는 다프네 왕녀에게 힘을 불어넣는 것만으로도 벅차 보였기에 무언가를 기대할 수 없었다.
‘그냥 합류해?’
합격에 끼어들까?
아니었다. 본능적인 직감이 그것을 거부했다.
다른 것을 해라.
다른 길을 찾아라.
코델리아의 시선이 성검으로 향했다.
성검 클라우 솔라스.
하지만 선뜻 손이 가지 않았다. 이미 유더와 검토한 바가 있었기 때문이다.
‘성검을 쓸 수는 없어.’
일단 위험했다.
대천사- 그것도 태양신이라 불린 솔라리가 사용하던 검이었다.
선조회귀를 하여 천사가 되었다지만, 아직 일반 천사에 불과한 코델리아가 섣불리 사용하려 했다가는 그 힘을 감당하지 못 해 오히려 영육이 망가질 가능성이 있었다.
‘수호진도 부서질 거야.’
성검은 수호진의 핵인 동시에 동력원이었다.
건전지가 빠진 리모콘이 더 이상 작동하지 않는 것처럼, 성검을 빼는 순간 수호진 역시 붕괴할 터였다.
‘그것도 뺄 수 있을 때 이야기지만.’
호국공이 굳이 왕족들을 모두 죽이는 쪽으로 방향을 잡은 것은 성검을 뽑는 것이 불가능했기 때문이다.
‘아마 코델리아 너라면··· 천사이니 가능할지도 몰라. 하지만 그랬다가는 우리 손으로 악마 추종자들의 소원을 들어주는 꼴이 돼.’
유더가 했던 말.
원작에서 악마 추종자들은 수호진이 사라진 왕도에 마인들과 악마들을 투입하였고, 종국에는 지옥의 문을 소환하였다.
콰가강!
굉음과 함께 다프네 왕녀가 크게 튕겨져 나갔고, 유더가 초풍신뢰로 간신히 호국공의 검을 피했다.
본래 유더를 베고자 했던 암청색 검기가 바닥과 벽에 깊은 상처를 남겼다.
“코델리아!”
유더가 소리쳤다. 호국공을 향해 일권을 내질렀고, 호국공은 너무나 자연스럽게 그 일격을 피했다.
그리고 코델리아는 이해했다.
유더가 자신에게 가세하라 외친 것과는 별개로, 작금의 싸움이 지금 같은 방식으로는 의미가 없다 직감한 이유를 깨달았다.
‘역량 차이.’
신체 능력만이라면 유더가 살짝 우위라 해도 좋았다.
하지만 거기에 호국공의 경험과 기량이 더해지니 도저히 극복할 수 없는 격차가 발생했다.
‘십검호.’
노쇠해서 약해진 것이 저 정도였다.
그렇다면 십검호 가운데서도 강한 축에 드는 빛의 검성은- 제일검은 대체 얼마나 강한 것일까.
‘진짜였어.’
죽이지는 않을게.
전력으로 상대하지 않을게.
‘아버님.’
순간 제일검과 겨루고 있을 바이엘 백작이 떠올랐다.
하지만 코델리아는 생각을 모두 끊어냈다.
다시 호국공에게 돌진하는 다프네 왕녀를 보며 감을 날카로이 하였다.
언제부터 코델리아 자신이 생각을 했던가.
집중한다.
그리하여 야생의 감을 일깨운다.
지금 가장 필요한 일.
승리에 도달할 수 있는 방법.
다시 시선이 성검으로 향했다.
그리고 머릿속에서 번쩍하고 빛이 일었다.
“우오오!”
유더가 포효하며 흑룡의 기운을 마구 발산했고, 호국공이 검격으로 그 모든 기운들을 베어냈다.
다프네 왕녀가 배후를 노리고 공격했지만 그마저도 부드럽게 막아냈다.
이대로 가면 오래 버티지 못 한다.
유더와 다프네 왕녀 모두 무리에 무리를 거듭하여 버티는 것이었기에 체력과 기력을 거의 낭비하다시피 소모하고 있었다.
그러니 완전히 지치기 전에, 지금의 균형이 무너지기 전에 손을 써야만 했다.
콰가강!
호국공의 내려치기가 지면을 부수는데 그치지 않고 바닥 전체를 둘로 갈라버렸다. 그 무지막지한 공격의 여파만으로도 유더와 다프네가 튕겨져나갈 지경이었다.
그리고 코델리아는 몸을 날렸다. 수호진의 중심으로 파고들어 성검 앞에 자리했다.
“유더!”
벼락같은 외침에 유더가 시선을 돌렸고, 코델리아와 눈을 맞추었다.
코델리아의 생각.
지금부터 하고자 하는 것.
모두 전하지는 못 했다.
하지만 일부만으로도 충분했다.
‘믿는다.’
유더는 더는 계산하지 않았다. 다시 호국공을 향해 돌진했다.
다프네 왕녀가 포효하며 합류했고, 디온 왕자가 눈에 핏발을 세우며 성왕의 힘을 일깨웠다.
그리고 코델리아는 성검을 보았다.
천사의 날개를 활짝 펼치며 성검을 움켜쥐었다.
&
< 제70장 – 호국공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