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nding Maker RAW novel - Chapter (230)
엔딩메이커-230화(230/473)
< 제83장 – 성십자 수호단 #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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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더는 꿈을 거의 꾸지 않는 편이었다.
특히 환골탈태 이후에는 수면 시간 자체가 극도로 짧아진 탓에 그렇지 않아도 적은 편이었던 꿈꾸는 빈도가 더더욱 줄어들고 말았다.
하지만 아예 꿈을 꾸지 않는다는 것은 아니었다.
몹시 드물지만 꾸는 일이 있었고, 유더는 직감했다.
지금 자신은 꿈을 꾸고 있는 것이라고.
“과연.”
자각몽 같은 것은 아니었다.
아무리 유더라 해도 꿈속에서 완전히 이성적으로 사고하는 것은 무리였고, 설사 그것이 가능하다 할지라도 꿈속에서는 세상의 법칙 자체가 달라졌다.
돼지가 하늘을 날고 고양이가 춤을 추는 것을 봐도 ‘아, 역시 이래야지. 자연스러워.’ 라고 생각하고 마는 것이 꿈이었으니 말이다.
유더는 주변을 둘러보았다.
아웃복서009- 강진호의 방이었다.
자신의 전생.
플레이아데스에서 다시 태어나 17년을 보내기 전의 자신.
방은 무척 넓었다.
애당초 큰 것도 있었지만 방 안에 가구라고 해야 할 것이 거의 없는 터라 더더욱 그렇게 느껴졌다.
침대 하나와 책상 하나와 책장 하나와 서랍장 하나.
유더는 서랍장 위를 보았다.
코델리아가 보았다면 의외라고 할 정도로 많은 사진들이 서랍장 위를 장식하고 있었다.
유더는 제일 왼쪽에 있는 사진에 시선을 두었다.
얼추 이십 년 전.
험악하게 생긴 외국인들 사이에 눈매가 사납지만 전체적으로 예쁘장한 어린애 하나가 서 있었다.
사실 유더는 이 사진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주변에 있는 사람들은 제대로 된 동료들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냥 유더 자신을 쓰다 버릴 패 정도로 생각하던 인간들.
함께 사진을 찍게 된 것도 딱히 큰 이유가 있어서가 아니었다. 그저 놈들의 변덕에 불과했다.
유더는 바로 옆에 있는 사진을 보았다.
눈매가 사나운 소년이 조금 자라 있었다.
소년 빼고는 모두 외국인들이었지만 아까와 달리 소년 또래로 보이는 아이들 몇 명이 사진 속에 자리했다.
유더는 계속해서 사진들을 보았다.
소년은 자라 청년이 되었다.
그리고 마지막 사진 속에서 청년은 술에 거나하게 취해 주사를 부리고 있었다.
“은퇴한 날이네.”
전생하기 전으로부터 5년쯤 전.
유더는 주변에 자신의 이야기를 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았다.
과거를 부정한다거나, 지난 세월 중에 좋았던 일이 아주 없었던 것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여간해서는 이야기를 하지 않았다.
동종 업계에 있던 사람들조차 유더의 이야기를 믿지 않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다.
“너무 어렸으니까.”
그런 일들을 겪기에는.
유더는 반쯤 발가벗은 채 춤을 추고 있는 5년 전의 자신의 바라보다 피식 웃었다.
만약 유더 자신이 외국이 아닌 한국에서 태어났다면, 그래서 정상적인 삶을 살았다면 저 사진 속의 자신은 은퇴식이 아니라 다른- 대학의 종강 파티나 MT··· 대학을 가지 않았다면 직장 동료들과의 야유회 같은 곳에서 주사를 부리는 모습이지 않을까.
‘생각해보니 은퇴 이후에는 사진을 한 장도 찍지 않았구나.’
새삼 자신의 턱을 어루만져 본 유더는 시선을 책장 쪽으로 돌렸다.
영웅전기 관련 서적이 빽빽이 꽂혀 있었다.
요즘 세상에 게임 공략집 같은 게 종이책으로 나올 리 만무한 터라 죄다 오래된 물건들이었다.
‘영웅전기2편이 갓 출시된 당시에는 그래도 종이책으로 공략집이라는 게 나오던 시절이었으니까.’
때문에 유더가 뒤늦게 영웅전기2를 시작한 시점에도 중고 서점 등에서 공략집을 구하는 것이 가능했다.
‘물론 출시 당시라 해도 거의 황혼기였지만.’
때문에 책장에 꽂혀 있는 영웅전기 관련 서적들은 대부분 1편이나 2편이 출시된 초창기를 다룬 책들이었다.
유더는 그것들에 손을 뻗었다.
한 권 뽑아 좌르륵 넘겨본 뒤에는 책상을 돌아보았다.
방 전체가 그러하듯이 책상 위 역시 간결했다.
커다란 모니터 세 개와 뽑아 쓰는 티슈 하나, 거기에 청축 키보드와 게임용 마우스.
그리고 전투 중에만 사용하는 VR 기기와 전용 컨트롤러.
유더는 코델리아처럼 책상에 앉지 않았다.
컴퓨터를 켜는 대신 다시 공략집을 보았다.
그리고 생각했다.
꿈이기에, 현실에서는 애써 떠올리지 않으려는 것들을 자연스럽게 생각했다.
“이상해.”
영웅전기2의 세계에서 환생한 것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었다.
환생 자체를 부정하면 애당초 논리의 전개 자체가 불가능했기 때문이다.
“예전부터 생각했어. 너무 자세하다고.”
소리내어 말한 유더는 다시 공략집을 넘겼다.
노란폭풍- 코델리아를 박살내기 위해 집념이라고 해도 좋을 정도로 영웅전기에 대해 파고든 유더였다.
그렇기에 단언할 수 있었다.
“이상해.”
영웅전기는 지나칠 정도로 설정이 세밀했다.
고대 드워프 문자.
하이 엘프들의 언어.
진짜 마법진이 아닌가 의심될 정도로 복잡한 마법진들.
물론 반지의 제왕의 저자인 톨킨도 반지의 제왕을 위해 여러 언어들을 창조했으니 영웅전기 제작진들이라고 비슷한 짓을 하지 말라는 법은 없었지만, 그래도 위화감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하지만 더 이상한 것은 따로 있어.”
유더는 다시 한 번 육성으로 말했다.
마치 스스로에게 들려주듯이 말이다.
“기억이 끊어졌어.”
유더 자신은 플레이아데스에서 유더 바이엘로 다시 태어났다.
그리고 17세의 어느 날 전생의 기억을- 강진호의 기억을 각성했다.
그런데 여기서 이상한 점이 하나 있었다.
환생에 이어 기억을 각성했다는 사실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었다.
“기억하지 못 해.”
매달 발표되는 랭킹 발표 이후.
코델리아를 신나게 놀린 뒤 접속을 종료한 직후.
그 뒤의 기억이 존재하지 않았다.
유더가 기억할 수 있는 아웃복서009 강진호의 기억은 그 시점에서 끊어져 있었다.
“어째서.”
무엇 때문에.
세상의 모든 일에는 이유가 있기 마련이었다.
그렇기에 기억의 단절에도 어떠한 원인이 있을 것이 분명했다.
무엇일까.
단순히 우연일까?
전생을 전부 기억하는 건 무리이기 때문에 일부 밖에 떠올리지 못 하는데, 그게 하필 그 시점에 딱 끊긴 것일까?
“환생까지 한 마당이니 가능성을 완전히 부정할 수는 없어. 하지만 믿기에는 너무 공교로운 점이 많아.”
코델리아 역시 게임을 종료한 이후의 기억이 존재하지 않았으니까.
때문에 유더는 두 가지 가설을 떠올렸다.
“하나, 필요하지 않다.”
그 시점 이후의 기억은 필요하지 않다.
플레이아데스에서 다가올 멸망을 막기 위해 필요한 기억은 딱 거기까지일 뿐. 그 이후의 기억까지는 필요로 하지 않는다.
“둘, 그 시점에 무언가 사고가 났다.”
유더 자신과 코델리아 두 사람이 거의 동시에- 죽었다는 인지조차 제대로 못 할 사고를 당해 생을 마감했다.
유더는 일단 첫 번째 경우에 집중해보았다.
필요하지 않다.
필요를 따진다.
그렇다면 필요를 판단하는 것은 누구인가.
첫 번째 가설이 성립하려면 의도를 가진 타인이 필요했다.
유더 자신과 코델리아를 플레이아데스에서 환생시킨 타인이.
“여기서 일단 정지.”
유더는 더 깊이 파고드는 대신 또 하나의 의문점으로 의식을 돌렸다.
어느 쪽이든 이상한 건 마찬가지였지만, 둘 중 이상함의 우열을 따진다면 유더는 앞의 것보다는 뒤의 것- 지금부터 이야기해볼 것을 더 이상하게 생각했다.
“시간의 문제.”
유더와 코델리아는 영웅전기1과 2는 물론이고 영웅전기3편까지도 플레이한 기억이 있었다.
그리고 이 세계는 이미 수십 차례 확인 과정을 거쳤듯이 기본적으로는 영웅전기 시리즈의 이야기를 따라가고 있었다.
북부12가문의 자제들을 납치하려는 악마의 손의 시도.
북부 야만족들을 타락시키고 있던 악마의 눈.
예정된 운명대로 왕실을 배신한 호국공.
그리고 머지않은 미래에 깨어나 남부를 뒤엎을 블랙 드래곤 말레키스.
대체 어떻게 된 것일까.
영웅전기 시리즈가 예언서라도 된다는 말일까?
만약 그렇지 않았다면, 영웅전기 시리즈가 플레이아데스에서 일어날 일들을 담은 것이 아닌, 이미 일어난 일들을 기록한 것이라면.
“과거와 미래가 연결되지 않아.”
시간의 흐름을 역행하는 결과였으니까.
시간이 일방향으로 흐른다면 다른 세계고 나발이고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타임 슬립인 걸까?”
세계의 벽을 넘는 과정에서 동일한 현대가 아닌, 플레이아데스의 과거로 온 것일까?
“강진호의 시간선과 유더의 시간선이 서로 나란히 흐르는 강이라 가정한다면.”
수평으로 폴짝 뛰어 넘어온 것이 아니라 대각선으로, 그것도 뒤쪽으로 넘어온 것이라면.
그래서 과거로 오게 된 것이라면.
“지식이 부족해.”
코델리아가 들으면 실망할지도 모를 일이었지만, 유더 위키라 해서 정말 세상의 모든 지식을 다 담고 있는 것은 아니었다.
시간과 관련된 물리학에 대한 지식은 사실상 없다시피 한 유더였다.
때문에 이번에도 더 깊이 파고들지는 않았다.
삶의 많은 부분을 전장에서 뒹구는 것으로 보낸 유더는 당장 눈앞의 상황에 집중하는 경향이 있었다.
큰 그림이고 나발이고 일단 오늘을 넘겨야 그릴 수 있는 것이었으니 말이다.
유더는 다시 책장에 공략집을 꽂아 넣었다.
그리고 이번에도 책상에 앉는 대신 방문 쪽을 돌아보았다.
방문 밖에서 인기척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누구지?’
유더 자기 혼자 사는 집이었는데.
유더는 습관적으로 서랍 속에 숨겨둔 권총을 꺼내든 뒤 조심스럽게 방문을 열었다.
대형 TV 한 대와 소파 밖에 없는 거실에는 아무도 없었지만, 부엌 쪽에서 흥얼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유더는 멍한 얼굴로 눈을 깜박였다.
“코델리아?”
“라면~ 라면~ 맛있는 라면~”
코델리아가 엉덩이를 씰룩 거리며 라면을 끓이고 있었다.
라면 하나 끓이는데 앞치마까지 두른 그녀는 이쪽을 돌아보더니 배시시 웃으며 말했다.
“내가 라면 엄청 잘 끓인다고 했지?”
그러고 보니 이건 꿈이었다.
꿈이었으니 코델리아가 나와 라면을 끓여도 이상할 게 없었다.
때문에 유더는 얌전히 식탁에 앉아 코델리아가 라면 끓이는 것을 쳐다보았다.
인덕션 앞에 서서 요리하는 코델리아의 뒷모습을 보니 저도 모르게 가슴이 두근거렸다.
“다 됐다. 그치만 라면 먹기 전에 꼭 해야 할 게 있어.”
라면 끓이는 동안 사용하던 젓가락을 톡톡 털어낸 코델리아는 빙글 돌아서더니 유더에게 다가섰다.
그대로 유더의 뺨을 어루만지더니 얼굴을 가까이했다.
그리고는 요염하기 짝이 없는 미소를 흘리며 속삭이듯 말했다.
“이건 야한 꿈이니까.”
“어?”
“야한 꿈이라구요. 야. 한. 꿈.”
코델리아는 유더의 귀를 살짝 깨물더니 연이어 뜨거운 숨을 불어넣었다.
약점을 찔린 탓에 순간 몸을 부르르 떤 유더가 귀엽다는 듯 뺨에 입술을 맞추더니 유더의 허벅지 위에 걸터앉아 미소를 흘렸다.
“유더야, 라면이 퉁퉁 불겠지? 퉁퉁 불게 해줄 거지?”
다시 까르르 웃은 코델리아는 유더의 목을 끌어안으며 얼굴을 가까이했다.
그리고 거기까지.
더 이상 이어지지 않았다.
꿈이라는 건 본래 제일 좋은 부분에서 끊어지기 마련이었으니 말이다.
“씨발.”
“유더야?”
“아니, 그냥. 문득 생각이 나서.”
고개를 갸웃하는 코델리아에게 어설프게 웃어준 유더는 억지로 꿈을 다시 떠올리는 대신 다시 현실을 보았다.
유더와 코델리아는 생크루트에 도착해 있었다.
번화한 교역도시.
남부와 중앙 사이에 떡하니 자리하고 있는, 거의 작은 나라 하나 크기인 영원의 숲 때문에 남부 사람들이 중앙으로 올라가기 위해서는 두 가지 루트 중 하나를 선택해야만 했다.
하나는 남부의 서쪽에 위치한 교역도시 제페르를 통하는 것이었고, 다른 하나는 바로 눈앞의 교역도시 생크루트를 통하는 것이었다.
“유더야, 유더야. 점심에는 뭐 먹을 거야? 여기서 먹고 갈 거지?”
오랜만에 번화한 도시에 나와서 그런지 코델리아는 잔뜩 신이 나 있었다.
이것저것 먹고 싶은 것들을 떠올리기 바쁜 모양이었다.
“단 거 먹을 거야. 단 거. 엄청 달달한 거.”
상상만으로 좋은지 발을 동동 구른 코델리아는 냄새라도 추적하듯 코를 킁킁 거렸다.
“저쪽이다!”
저쪽에서 단 냄새가 난다!
과연 짐승.
야생의 소녀.
하지만 애석하게도 유더는 당장이라도 달려 나갈 기세인 코델리아의 손을 붙잡을 수밖에 없었다.
“응? 에스코트 해주려구?”
“아니, 그게 아니라··· 좀 미뤄야 할 것 같아서.”
유더의 말에 코델리아는 눈을 깜박였지만 잠깐 뿐이었다.
단 거에 정신이 팔려 감지하지 못 했던 것들을 눈치 챘기 때문이다.
“뭐야, 미리 연락이라도 해둔 거야?”
“어, 대충.”
정확히는 코델리아가 한참 꿈나라를 헤매고 있을 때.
유더는 프로스트 앤빌 부근에서 마주했던 성십자 수호단에게 배웠던 방식대로 신호를 보내두었다.
간단한 합류 신호.
그리고 그 결과가 눈앞에 있었다.
“성십자 수호단이 어거스트 바이엘 백작님과 어거스트 체이스 백작님을 뵙습니다.”
성십자 수호단 특유의 검고 하얀 옷을 입은 수도사 아홉.
보무도 당당히 나타나 예를 표하는 그들의 모습에 코델리아는 어깨를 축 늘어트렸고, 유더는 애써 웃음을 참은 뒤 성십자 수호단을 맞이했다.
“유더 어거스트 바이엘이 성십자 수호단을 뵙습니다.”
“코델리아 어거스트 체이스가 성십자 수호단을 뵈어요.”
코델리아 역시 애써 실망한 기색을 감춘 뒤 예를 표하자 선두에 서 있던, 방금 예를 표한 청년이 환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성십자 수호단의 수호단원 마누엘입니다. 수호단의 영웅이신 두 분을 뵈어 정말 기쁩니다. 수호단까지 안내해드리겠습니다.”
보아하니 마누엘뿐만 아니라 뒤에 도열해 있는 단원들도 이쪽을 보는 시선이 무척이나 호의적이었다.
“호의에 감사드립니다.”
“뭘요, 당연히 해야 하는 일이지요.”
다시 활짝 웃은 마누엘은 흥분한 기색을 감추지 않고 안내를 시작했다.
< 제83장 – 성십자 수호단 #2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