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nding Maker RAW novel - Chapter (253)
엔딩메이커-253화(253/473)
< 제91장 – 아르곤 항구의 밤 >
제91장 – 아르곤 항구의 밤
에인션트 드래곤은 특별한 존재였다.
플레이아데스의 역사 전체를 살펴보아도 에인션트 드래곤의 숫자는 정말 손에 꼽을 정도 밖에 되지 않았다.
어째서 그런 것일까.
어째서 에인션트 드래곤에 도달하는 드래곤의 숫자는 적은 것일까.
조금만 깊이 생각해보면 이상한 일이었다.
단일 개체로만 본다면 드래곤은 누구도 부정 못할 최강의 종족이었다.
이렇다 할 천적 따위 존재하지 않았고, 엘프와 드워프들 이상으로 긴 시간을 살아가는 장생종이었으며, 나이를 먹으면 먹을수록 오히려 강해지기에 성체의 사망률 역시 낮았다.
즉, 일단 성체가 되고 나면 미쳐 날뛰지 않는 한 죽을 일 자체가 거의 없는 종족이란 소리였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에인션트 드래곤의 숫자는 적었다.
여러 세대 당 하나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희귀한 존재였다.
‘그냥 나이만 먹는다고 능사가 아니었으니까.’
에인션트 드래곤은 단순히 나이 많은 드래곤이 아니었다.
그저 늙는 것만으로는 에인션트 드래곤에 도달할 수 없었다.
드래곤들 사이에서도 특별한 존재.
인간으로 치자면 십검호들과 같이- 아니, 검성들과 같이 종의 한계를 초월한 자들만이 도달할 수 있는 영역.
대부분의 드래곤들은 나이를 먹어봐야 일반적인 성룡- 어덜트 드래곤 수준에서 성장이 멈추었다.
하지만 그들 가운데 극소수는 그 이상의 존재가 될 수 있었다.
드래곤들 사이에서도 선택받은 존재.
드래곤이란 종의 한계를 초월하여 신의 영역에 도달한 괴물들.
그것이 바로 에인션트 드래곤이었다.
&
카이사는 한 자리에 모인 카를로스의 증표들을 보며 마른 침을 꿀꺽 삼켰다.
드래곤 슬레이어 카를로스.
블랙 드래곤 말레키스를 격퇴한 남부의 대영웅.
하지만 그는 다른 드래곤 슬레이어들과는 차원이 다른 존재였다.
역사 속에 이름을 남긴 드래곤 슬레이어들이라고 해봤자 대부분 어덜트 드래곤을 상대한 것에 불과했다.
하지만 카를로스는 달랐다.
그가 쓰러트린 것은 드래곤들 사이에서는 신이나 다름없는 존재인 에인션트 드래곤이었다.
‘그야말로 대영웅.’
수많은 괴물들을 토벌하고 세일룬 왕국을 세운 라이온 D 세일룬이 유일하게 인정한 필생의 라이벌.
카이사는 두근거리는 가슴을 진정시키지 않았다.
지금 두근거리지 않으면 대체 언제 두근거려야 한단 말인가.
‘카를로스 님의 유산.’
카를로스가 세상을 떠난 이후 근 300년 만에 처음으로 그가 남긴 증표들이 한 자리에 모인 셈이었다.
카이사는 마구 뛰는 심장의 고동 소리를 들으며 손을 놀렸고, 어렵지 않게 일곱 개의 증표를 온전한 하나로 되돌렸다.
각이 졌지만 전체적으로 동그란 직경이 15cm 정도 되는 조형물.
증표를 완성한 카이사는 저도 모르게 손끝으로 마력을 내보냈다.
어쩐지 모르게 그래야만 할 것 같아서였다.
그리고 바로 그 순간이었다.
“빛이?”
카를로스의 증표가 빛나기 시작했다.
남부7가문 각자의 문장들이 빛을 발하는가 싶더니 이내 증표 전체가 강렬한 빛을 발하였다.
“핑크폭탄?!”
저만치 저택 쪽에서 스칼렛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하지만 코델리아는 돌아보지 못 했다.
카이사의 손에 들린 증표에서 강한 빛이 일어난 순간 본능적으로 먼 곳을 향해 시선을 돌린 탓이었다.
콰강-!
멀리서 굉음이 일었다.
하지만 폭발음 같은 것이 아니었다.
증표의 빛이 약해졌고, 덕분에 유더와 코델리아는 보다 명확하게 볼 수 있었다.
저 너머.
밤하늘이 갈라지고 있었다.
높게 솟구쳐 오른 빛기둥이 하늘을 찌르며 은은한 빛을 발하였다.
“항구?”
넓게 보면 카게하마 백작가도 아르곤 항구 내에 위치했다.
하지만 정확한 위치를 따지기 시작한다면 항구라 하기에는 어폐가 있었다. 아르곤 시 외곽에 위치했기 때문이다.
“항구 쪽이야! 저 정도 거리면······.”
“중앙광장!”
카이사의 말을 유더가 받았다.
계산이란 영역에서는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유더였다.
빛의 기둥을 본 순간 아르곤 항구의 지도를 머릿속에 펼쳤고, 정확한 위치를 계산해냈다.
“드워프들의 공방이 위치한 곳이야.”
정확히는 그 옆.
거대한 카를로스의 석상이 있는 장소.
“그럼 빨리 가자!”
코델리아가 폴짝 뛰며 말하자 유더는 고개를 끄덕였다. 자연스럽게 등을 내밀었고, 코델리아는 다시 한 번 폴짝 뛰어 그런 유더의 등에 업혔다.
“핑크폭탄? 블랙망토?”
바로 그때 스칼렛이 달려오며 두 사람을 불렀다.
저택 안에서 증표를 찾고 있던 그녀인 터라 작금의 상황을 알 수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로그 마스터답게 눈치가 빠른 그녀였다.
카이사의 손에 들린 증표와 먼 곳에서 솟구치고 있는 빛기둥을 본 순간 대강의 정황을 파악했다.
“눈치 깠지? 그럼 가자!”
코델리아가 다시 재촉하자 카이사는 씩 웃으며 돌아섰지만 스칼렛은 아니었다.
두 짐승녀와 달리 이성적인 사람으로서 말했다.
“자, 잠깐! 카게하마 백작은? 저 사람 죽은 거야?”
스칼렛이 가리킨 곳에는 카게하마 백작이 혀를 빼문 채 쓰러져 있었다.
아까 난전 중에 카이사가 던진 이후 쭉 기절해 있던 모양이다.
“안 죽었어. 그러니까 빨리 가자.”
카이사가 대수롭지 않다는 듯 손짓하며 재촉하자 스칼렛은 저도 모르게 미간을 좁히며 한숨을 내쉬었다.
그도 그럴 것이 참으로 로그 마스터답지 못 한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불바다가 된 정원과 초토화 된 저택.
여기에 혀를 길게 빼문 채 기절해 있는 집주인까지.
‘이건 그냥 강도 아냐?’
아니, 강도도 아니었다.
그냥 테러범이라고 하는 쪽이 나을 것 같았다.
“아무튼 빨리 가자! 응?”
코델리아가 유더의 등 위에서 재촉하자 스칼렛은 고개를 끄덕였다.
이러나저러나 저렇게 거대한 빛의 기둥이 솟구쳤으니 사람들의 이목이 집중될 터였다.
“알았어, 가자.”
스칼렛이 마뜩찮은 얼굴로나마 답하자 코델리아는 유더의 목을 꽉 끌어안았고, 유더는 지면을 박차 올랐다.
빛의 기둥을 향해 질주했다.
&
스칼렛의 생각은 틀리지 않았다.
많은 이들의 이목이 굉음과 함께 솟구친 빛의 기둥에 집중되었다.
그리고 그중에는 먼 곳에서 상황을 주시하고 있던 시실리아도 있었다.
다크 엘프 시실리아.
영원의 숲에 거하는 하이 엘프 왕가의 후예인 그녀는 고운 미간을 찌푸렸다.
‘마두르스.’
같은 삼기사의 일원이기에 알 수 있었다.
마두르스는 실패했다.
카를로스의 증표들을 모두 빼앗겼을 뿐만 아니라 본인의 목숨조차 잃고 말았다.
‘멍청한 녀석.’
눈물까지 나오진 않았지만 가슴이 아렸다.
이러나저러나 오랜 시간을 함께한 존재였으니 말이다.
하지만 지금은 상념에 빠져들 때가 아니었다.
시실리아는 이를 악문 뒤 정면을 노려보며 생각했다.
‘계획이 헝클어졌어.’
카게하마 백작가와 오펀드 후작가를 동시 타격해 일곱 개의 증표를 모두 모은다는 계획은 실패했다.
카게하마 백작가를 공격한 마두르스는 죽었고, 오펀드 후작가의 전투는 그 의미를 잃었다.
이미 일곱 개의 증표가 모두 모였으니 말이다.
‘결단의 때인가.’
이러나저러나 일곱 개의 증표가 모두 모였고, 카를로스가 남부에 남긴 유산의 위치가 밝혀진 마당이었다.
애당초 남부7가문을 공격한 이유는 유산을 확보하기 위함이었으니 지금 바로 움직이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었다.
하지만 결단을 필요로 했다.
수중에 가용할 수 있는 병력이 거의 다 소진되었기 때문이다.
가모르 칸은 엉뚱한 곳에서 실종되었고, 마두르스는 임무 수행 중에 죽었다.
오펀드 후작가에 쏟아 부은 병력은 후작가의 발을 묶는 곳에 써야 했으니 결국 카를로스의 유산을 차지하기 위해서는 지금까지 아껴온 전력들을 전부 다 풀어야만 했다.
‘마두르스를 쓰러트릴 정도의 실력자.’
마음을 굳혔다. 어설프게 힘을 아꼈다가는 이번에도 실패할 뿐이었다.
시실리아는 숨을 깊이 삼켰다.
눈을 감고 명령을 전달하였다.
“가라.”
가서 카를로스의 유산을 빼앗아라.
사령술사의 명령은 곧 언령이 되어 바다를 건넜다. 밤의 어둠 속에 숨어 있던 이들을 일시에 움직였다.
&
‘썅! 겁나 빠르네!’
달밤 아래를 질주하며 카이사는 욕지거리를 토했다.
오펀드 후작가에서 가장 빠른 그녀의 속도로도 유더를 따라잡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야말로 쫓아가기 급급한 느낌이었다.
더욱이 유더는 코델리아를 업고 있는 상태였다.
아무리 코델리아가 가볍고 유더의 힘이 강하다한들 홀몸으로 뛰는 것과 누군가를 업고 뛰는 것 사이에는 현격한 격차가 존재할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도 못 따라 잡고 있다 이거지?’
오기가 생긴 카이사는 젖 먹던 힘까지 내 속도를 높였고, 덕분에 조금 더 뒤에서 뒤쳐진 채 달리던 스칼렛은 욕지거리를 토했다.
‘야 이 짐승같은 년들아! 같이 가자고!’
급한 건 알았지만 그래도 이게 뭐란 말인가.
그리고 솔직히 자존심이 상했다.
다른 누구도 아닌 로그 마스터의 후예가 제일 뒤쳐진다니. 이게 말이나 될 법한 일인가?
‘하아아아아!’
마음속으로나마 소리친 스칼렛은 헤이스트를 한 번 더 중첩해 걸었고, 전신에 가해지는 고통을 씹어 삼키며 속도를 높였다.
그리고 바로 그 순간이었다.
“멈춰!”
코델리아가 급히 외치자 카이사는 손을 쭉 뻗어 제때 멈추지 못한 스칼렛의 허리를 낚아채 강제로 멈추게 하였다.
그리고 유더가 손을 놀렸다. 회피하는 대신 카이사와 스칼렛을 지키기 위해 정면에서 맞받아치는 쪽을 선택했다.
콰강!
흑룡의 기운이 폭발하며 대기가 뒤흔들렸고, 이쪽을 향해 날아오던 날카로운 검기 역시 분쇄되어 흩어졌다.
측면.
지붕 위.
항구와 가까운 주거지 지붕 위에 멈춰 선 유더와 코델리아는 동시에 같은 곳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코델리아는 진심을 담아 욕지거리를 토했다.
“씨발! 역시 씹검호!”
내가 이럴 줄 알았어! 십검호 중에 배신자 있을 줄 알았다고!
지붕위에 자리한 것은 수염을 멋지게 기른 키가 큰 남자였다.
마테오 루클리아.
루클리아 백작가의 가주인 동시에 남부에 거하는 두 명의 십검호 가운데 하나.
사실 이미 예견된 일이었다.
오늘 이전까지 공격받지 않은 남부7가문은 셋뿐이었는데, 거기서 카게하마 백작가와 오펀드 후작가를 제하고 나면 남는 것은 루클리아 백작가 뿐이었으니 말이다.
코델리아의 노골적인 욕설에 마테오는 눈살을 찌푸렸지만 딱히 반박은 하지 않았다.
중압검이라 불리는 그가 다른 남부7가문을 배신하고 말레키스와 손을 잡은 것은 사실이었으니 말이다.
“카이사 오펀드. 얌전히 투항해라. 거친 수를 쓰고 싶지는 않구나.”
마테오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지붕 위로 괴한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얼핏 헤아려도 수십은 될 것 같았는데, 그게 전부가 아니었다. 루클리아 백작가의 검사들이 곳곳에서 모습을 드러냈기 때문이다.
“진짜 배신했구나.”
이미 마테오가 나타난 상황에서 배신이 확정된 상황이었지만 카이사는 다시 말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 자리에 루클리아 백작가의 검사들을 대동했다는 건 마테오가 정말로 완전히 돌아선 것을 의미했기 때문이다.
뭐였을까.
대체 무엇을 약속 받았기에 남부7가문의 가운데 하나를 이끄는 그가 과거 남부를 멸하려 했던 말레키스와 손을 잡은 것일까.
카이사는 깊이 생각하지 않았다.
어차피 배신한 놈인데 이유 따위 알아내서 뭘 한단 말인가.
‘옛날부터 마음에 안 들었어.’
더욱이 말하는 것을 보아 세바스찬처럼 세뇌된 상태도 아니었다.
그렇다면 그저 때려눕힐 따름이었다.
카이사가 주먹을 꽉 움켜쥔 채 으르렁 거리자 마테오는 한숨과 함께 고개를 내젓더니 검을 뽑아들었다.
“그렇다면 어쩔 수 없구나. 힘으로 제압할 수밖에.”
중압검 마테오 루클리아.
그는 결코 약하지 않았다.
신속의 검이라 불리는 세바스찬보다 한 수 위로 여겨지는 강자였다.
때문에 카이사는 본능적으로 느껴지는 힘의 격차에 식은땀을 흘렸다.
하지만 스칼렛은 그렇지 않았다.
온몸이 땀투성이이긴 했지만 그건 무리하게 유더와 코델리아를 뒤쫓느라 지쳐서 그런 것이지 마테오에게 겁을 먹어서가 아니었다.
그녀가 그럴 수 있는 이유.
유더와 코델리아의 강함을 믿고 있어서가 아니었다.
애당초 유더와 코델리아가 전력을 다해 싸우는 모습을 단 한 번도 보지 못한 그녀였으니 말이다.
스칼렛이 믿는 것.
십검호를 적으로 돌린 상황에서도 여유를 잃지 않은 이유.
“안 쓸 거야?”
스칼렛의 물음에 코델리아는 도리질을 하더니 허리춤의 공간 확장 주머니에서 물건 하나를 쑥 빼들었다.
“카이사!”
“어?”
반사적으로 고개를 돌린 카이사의 손목을 유더가 붙잡았고, 스칼렛이 코델리아의 어깨에 손을 올렸다.
무언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느낀 마테오가 급히 지면을 박찬 그때 손에 쥔 것을- 로그 마스터의 비보 가운데 하나인 문 크리스탈을 높이 들어올렸다.
“씨발 쾅♥”
윙크하며 말하자 하늘에서 달빛이 쏟아져 내려왔다.
폭발대신 은은한 빛이 주변 일대를 뒤덮었다.
“설마?!”
상황을 간파한 마테오는 다급히 검기를 내쏘았다.
하지만 유더는 이번에는 막거나 피할 생각을 하지 않았다. 그저 코델리아와 함께 미소 지을 따름이었다.
츠화악-!
마테오의 검기가 허공을 갈랐다.
유더와 코델리아, 그리고 카이사와 스칼렛은 달빛과 함께 공간을 도약해 사라진 뒤였다.
“젠장!”
여기서 공간 도약이라니.
마테오는 급히 눈을 감고 기감을 널리 퍼트렸다.
혼자가 아닌 여럿이었으니 멀리가지 못 했을 거라 판단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니었다.
상상한 것 이상의 거리를 뛰어넘었는지 놈들의 기척을 찾을 수 없었다.
“마테오 님?!”
루클리아 백작가의 검사들이 당혹스러운 얼굴로 다가오자 마테오는 순간 고개를 들었다.
여전히 멀리서 솟구치고 있는 빛의 기둥을 가리키며 소리쳤다.
“서둘러라!”
지금 여기서 원거리 공간도약을 했다면 갈 곳은 하나뿐이었다.
마테오는 다시 지붕을 박찼다. 그리고 바로 그때였다. 마테오의 머리 위를 지나쳐 나아가는 것이 있었다.
검푸른 비늘을 가졌기에 밤하늘에 녹아들 것 같았지만 마테오는 물론이고 그 자리에 있던 이들 모두가 머리 위를 가로지르는 존재를 명확히 분간할 수 있었다.
블랙 드래곤.
말레키스의 용군단에 속해 있는 드래곤들!
단 두 마리였지만 그 위용은 상상을 초월했다.
몸길이만 30미터에 달할 거체들이 하늘을 누비는 광경을 비현실적이기까지 했다.
“크허헝!”
드래곤 가운데 하나가 포효하자 시실리아가 마테오에게 붙여주었던 마물들이 함께 울부짖으며 본모습을 드러냈다. 드래곤의 뒤를 따라 빛기둥을 향해 돌진했다.
&
달빛과 함께 모습을 드러낸 일행은 착지와 동시에 고개를 번쩍 들었다.
드래곤과 마물들의 포효 소리가 항구 전체를 뒤흔들었기 때문이다.
“미친.”
이쪽을 향해 날아오는 드래곤들의 모습에 카이사는 욕지거리를 토했고, 스칼렛은 숨을 삼켰다.
이미 유더와 코델리아에게 들었고, 어느 정도는 믿고 있었지만 정말로 드래곤을 보고나자 새삼 말레키스의 존재가 실감되었기 때문이다.
“서둘러!”
이쪽을 향해 똑바로 날아오고 있는데 구경만 하고 있을 수 없었다.
코델리아가 소리치자 번쩍하고 정신이 든 카이사와 스칼렛은 얼른 빛기둥의 중심에 위치한 석상을 향해 달렸고, 유더는 초풍신뢰를 펼쳐 단숨에 석상과의 거리를 좁혔다.
“카이사!”
코델리아가 유더의 등에서 뛰어내리며 소리치자 카이사는 손에 들고 있던 카를로스의 증표를 집어 던졌다.
코델리아는 직접 손을 쓰는 대신 염동력으로 증표를 받아낸 뒤 석상을 돌아보았다.
5미터 쯤 되는 거대한 카를로스의 석상을 마주한 순간 본능적으로 증표가 자리할 위치를 간파했다.
“거기!”
카를로스의 허리춤에 차고 있는 검.
손잡이 끝의 움푹 패인 곳을 향해 증표가 날아가자 석상 쪽에서 반응이 있었다.
마치 자석이 이끌리듯 증표가 손잡이 끝에 안착했다.
“크허헝!”
드래곤들의 포효 소리가 더 가까워졌다.
주변 일대의 존재들을 패닉 상태에 빠트리는 드래곤 피어에 카이사와 스칼렛이 움찔했고, 이러나저러나 이 자리에 있는 이들 가운데서 유일한- 그러니까 평범한 인간인 스칼렛은 저도 모르게 몸을 떨었다.
카이사가 그런 스칼렛의 어깨를 끌어안았다.
신수의 피를 이끌어내듯 마주 으르렁 거리며 드래곤들을 노려보았다.
그리고 빛기둥이 사라졌다.
석상 밑에서 빛을 발하던 마법진이 사라지더니 석상의 한가운데에 선이 그어졌다. 그대로 갈라지더니 안에 숨겨져 있던 물건이 모습을 드러냈고, 유더는 주먹을 불끈 쥐었다.
“빙고.”
카를로스의 유산.
남부7가문 모두를 발아래 둘 수 있게 하는 지배의 상징.
원작에서는 설정만 있지 제대로 등장하지 않은 아이템이었다.
하지만 여기까지 오는 와중에 유더는 카를로스의 유산이 무엇일지 짐작할 수 있었다.
‘놈들이 막으려던 건 남부7가문의 힘이 하나 되는 것이 아니야.’
물론 아주 신경 쓰지 않은 것은 아닐 터였다.
어느 정도는 염두에 두었을 것이다.
하지만 역시나 진짜 이유까지는 아니었다.
‘너무 거칠어.’
남부7가문 가운데 둘이 남은 상황이라지만 그렇다고 정면에서 공격하는 것은 수단이 너무 거칠었다.
만약 정말로 증표가 목표였다면 기존에 했던 방식대로 몰래 처리하는 쪽이 나았다.
자신들의 편이 된 루클리아 백작가에게 카를로스의 증표를 넘기면 남부7가문의 결합을 막을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이용할 수도 있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지금처럼 정면에서 마물과 마인을 이용해 공격하면 이야기가 달라졌다.
루클리아 백작가가 카를로스의 증표를 내밀어봤자 마물들과 결탁해 증표를 모은 것이 빤한 상황이니 남부7가문이 그의 말을 따를 리가 없었으니 말이다.
‘결국 놈들의 목적은 남부7가문이 아니야.’
카를로스의 증표로 찾아낼 수 있는 유산 자체가 목적이었다.
그리고 놈들이 탐할 만한 것이라면.
특히나 시실리아가 노릴만한 것이라면.
“크허헝!”
블랙 드래곤들이 다시 포효하였다.
카이사가 마주 고함을 질렀고, 스칼렛은 드래곤 피어를 이겨내고자 이를 악물었다.
그리고 코델리아는 유더에게 눈짓을 보냈다.
자신이 손에 넣는 대신 유더에게 양보하였다.
마법사인 자신보다는 일단은 검사인 유더에게 훨씬 더 어울리는 것이었으니 말이다.
“쿠오오!”
블랙 드래곤 두 마리가 동시에 숨을 삼켰다. 브레스 웨폰을 쏘고자 입을 벌렸고, 그 순간 유더가 석상 안으로 손을 뻗어 카를로스의 유산을 움켜쥐었다.
콰가가가가!
브레스 웨폰이 쏟아졌다.
검푸른 기파가 중앙광장 전체를 집어삼킬 기세로 쏟아져 내렸다.
하지만 그것들은 목적을 이루지 못 하였다.
하나되어 쏟아지던 그것들은 둘로 갈라져 석상의 좌우만을 분쇄할 따름이었다.
스칼렛을 꼭 끌어안았던 카이사가 눈을 떴다.
카이사의 가슴에 얼굴을 묻은 채 헐떡이던 스칼렛은 자신들의 앞에 버티고 선 유더의 등을 보았다.
그리고 두 사람은 동시에 떠올렸다.
남부의 전설을.
대영웅 카를로스의 이야기를.
“아스카론.”
얼티메이트 쓰리.
블랙 드래곤 말레키스에게 치명상을 입혀 깊은 잠에 빠지게 한 용살의 검.
유더는 아스카론을 고쳐쥐었다.
영혼 깊은 곳에서 들려오는 벨렌시아의 불평에 쓴웃음을 지으며 블랙 드래곤들을 노려보았다.
&
< 제91장 – 아르곤 항구의 밤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