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nding Maker RAW novel - Chapter (406)
엔딩메이커-406화(406/473)
엔딩메이커 405화
제3장 – 더블 팀 #5
“스프링클러? 그게 무슨 소리지?”
‘도와줘요, 알렉세이!’를 세 번 정도 외친 덕분에 냉정을 회복한 유더는 마치 스프링클러라는 단어 자체를 생전 처음 듣는다는 듯 고개까지 갸웃하며 물었다.
‘침착해라, 침착해라 유더. 상황에 몰려 주어진 조건들을 망각하지 마라.’
지구에 와서 그런지 스스로에게 하는 말이 마치 알렉세이의 말처럼 느껴지는 유더였다.
알렉세이의 말.
주어진 조건들을 망각하지 마라.
강진호는 추론에는 증거가 없었다.
비록 매섭게 진실을 찌르고 들어왔지만 결국 심증에 의해 만들어진 허술한 주장에 불과했다.
그러니 여기서 흠칫하면 안 된다.
움찔하며 아니라고 부정하는 것 역시 하책이다.
‘그냥 모른 척을 해야 해.’
하지만 아예 모른다고 잡아떼는 것 역시 하책이다.
강진호에게 두 사람을 지켜봤다는 식으로 이야기를 한 직후였으니 말이다.
“아, 혹시 그 천장에서 물을 뿌리던 그걸 말하는 건가? 지하 주차장이라고 하니 그것밖에 생각이 나지 않는데.”
새삼스러운 이야기였지만 유더는 연기력이 좋았다.
뭘 말하는지 감이 온다는 투로 말하는 모습이 정말로 감쪽같았다.
“정말 지켜만 봤다는 건가?”
정보가 극도로 부족한 상황에서 강진호가 고를 수 있는 선택지는 몇 개 없었다.
때문에 강진호는 계속해서 강공으로 나갈 수밖에 없었고, 유더는 페어리들을 마주했을 때처럼 맑은 표정으로 말했다.
“멀리서 지켜만 봤지. 사실 지켜만 봐도 재미있었고. 1등과 2등이 서로 옆집에 사는 걸 까맣게 모르다가 알게 되었는데, 알게 되자마자 서로 순식간에 연인이 되었잖아?”
유더의 말에 강진호는 입술을 살짝 깨물며 표정을 정돈했다.
이러나저러나 부끄러운 이야기였기 때문이다.
그리고 동시에 그는 생각했다.
‘거짓말을 하고 있어.’
표정이 너무 맑다.
아직 유더를 마주한 지 얼마 되지 않았지만, 강진호는 알 수 있었다.
아니, 직감했다.
저 인간은 지금 구라를 치고 있다.
저 맑은 얼굴이야말로 증거다.
하지만 결국 심증의 영역이었다.
그리고 유더 역시 생각했다.
‘눈치 깠군.’
유더 자신이 거짓말을 하고 있다는 것을 눈치챘다.
하지만 유더는 당황하지 않았다.
그는 강진호였고, 강진호가 지금 속으로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지 짐작했기 때문이다.
‘증거가 없으니 여기서 그칠 수밖에 없지.’
거짓말이라는 것을 확인할 방도가 없으니까.
유더는 속으로 까만 미소를 지었고, 강진호는 잠시 침묵하다 입을 열었다.
“그럼 우리를 관찰하던 중에 나타샤가 나타난 걸 봤고, 나타샤가 뭔가 숨기고 있는 일이 있는 것 같아서 따로 관찰하다가 나타샤의 일을 해결해 줬다는 건가.”
추궁 아닌 추궁에 속으로 움찔한 유더였지만 이번에도 동요를 드러내지 않았다.
오히려 기회는 이때라는 듯 진실을 꺼내 들었다.
“그렇게 된 거지. 뭔가…… 마이아를 보는 기분이 들었거든.”
마이아 탄탈롯.
유더의 나타샤.
누이이자 친구이자 어머니 같은 사람.
어린 시절의 유더에게는 세상 그 자체와도 같았던 여인.
강진호도 마이아에 대해서라면 알고 있었다.
유더의 스토리에서 코델리아 다음으로- 아니, 때때로는 코델리아보다도 더 중요한 역할을 하는 여성 캐릭터.
남들한테 말한 적은 없지만 유더의 품에 안겨 죽음을 맞이하는 마이아의 이벤트를 보며 눈물을 훔친 적도 있는 강진호였다.
그래서 그런 것일까.
아니면 그 이상의 무언가가 있는 것일까.
강진호는 나타샤에게서 마이아를 보았다는 유더의 말에 더 이상 토를 달고 싶지 않다는 마음이 들었다.
동시에 훨씬 더 중요한 일을 떠올렸고 말이다.
“고맙다.”
“어?”
“나타샤의 일. 생각해 보니 나타샤를 도와준…… 아니, 구해준 일에 대한 감사를 먼저 표했어야 하는데 너무 늦은 것 같다. 용서해 다오.”
만약 유더와 코델리아가 나서지 않았다면 나타샤는 어떻게 되었을까.
상상만 해도 눈앞이 깜깜해지는 강진호였다.
강진호의 진심 어린 감사에 유더는 빙긋 웃더니 약간의 고민 끝에 말했다.
“그럼 나타샤에게 잘해줘. 너한테 그녀는…… 마이아 같은 사람일 테니까.”
“……그래, 알겠다.”
훈훈한 대화와 눈빛을 교환한 둘은 새삼 쑥스럽다는 듯 헛기침을 토했고,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동시에 발걸음을 내디뎠다.
* * *
“버튜버?”
“네네, 버튜버.”
홍유희와 강진호가 함께하는, 그리고 가끔씩 나타샤도 도와주는 일.
“버튜버가 뭔데?”
유튜버 친구 같은 건가?
코델리아가 고개를 갸웃하며 묻자 홍유희는 흐흐흥 웃더니 노트북을 작동시키며 말했다.
“인터넷으로 방송을 하는 일이에요. 아, 인터넷은 뭐냐면요.”
“인터넷은 알아. 인터넷에서 방송하는 유튜버? BJ? 그런 것도 알고.”
“오, 그럼 설명이 편하겠네요. 버튜버는 버츄얼 유튜버라는 건데요, 쉽게 생각하면 2D나 3D 캐릭터로 방송을 하는 거예요. 저는 목소리를 내는 거고요.”
“어…… 만화 캐릭터 같…… 이? 성우처럼?”
“네네, 만화랑 성우도 아시네요. 아, 이거예요, 제 버튜버용 캐릭터.”
홍유희가 마우스를 딸칵딸칵 클릭하자 노트북 화면에 예쁜 여자 캐릭터 하나가 떠올랐다.
“어, 나?”
“에헤헤…… 저작권 문제 때문에 살짝 다르긴 하지만 언니가 모델이긴 해요.”
홍유희 말마따나 영웅전기2의 코델리아와는 조금 다른 외모였는데, 그 다른 외모라는 게 분홍색 머리칼이 된 거라 더더욱 지금의 코델리아처럼 보이는 캐릭터였다.
“휴대폰 카메라로 제 동작을 캡처하게 하면 실시간으로 제 움직임을 따라 저 캐릭터가 움직이거든요? 그걸로 방송을 하는 거예요.”
“세상에.”
고작해야 2년 남짓한 사이에 이런 게 가능해진 세상이 되었다고?
코델리아가 놀라워하는 모습에 잔뜩 신이 난 홍유희는 지난 방송들을 재생시키며 말을 이었다.
“이렇게 제가 게임을 하면서 시청자분들하고 소통을 하고…… 오빠는 채팅방 관리를 해요. 평소에 촬영이나 프로그램 관련된 일도 다 오빠가 하고요.”
화면 속에서 코델리아 캐릭터가 눈도 깜박이고, 고개도 갸웃하면서 방송을 하는데, 게임 진행 상황에 따라 표정도 자연스럽게 바뀌는 것이 정말 신기했다.
“그럼 나타샤는? 나타샤도 버튜버인 거야?”
코델리아의 물음에 나타샤는 움찔하며 표정을 굳혔고, 홍유희는 까르르 웃으며 말했다.
“맞아요, 제 방송에 가끔씩 등장하는 기센 언니 컨셉인데, 나오면 시청자들이 다들 엄청 좋아해요. 나타샤 언니가 매도 멘트 한번 날려주면 도네가 마구마구 쏟아진다니까요?”
“매, 매도 멘트?”
코델리아가 눈을 깜박이며 되묻자 홍유희는 신나서 고개를 끄덕였고, 나타샤는 접시 물에 코라도 박고 싶다는 얼굴이 되어 입술을 깨물었다.
물론 얼굴은 새빨갛게 달아올랐고 말이다.
“이게 나타샤 언니 캐릭터예요.”
“와, 닮았다.”
푸른 눈에 백금발을 가진 미인 캐릭터.
몸매도 좋고 눈매도 날카로운 것이 딱 나타샤를 연상시켰다.
“이건 나타샤 언니의 매도 스페셜이고요.”
조회 수가 백만이 넘는 영상을 홍유희가 재생시키자 나타샤는 두 손으로 얼굴을 덮어버렸고, 코델리아는 그 이유를 이해할 수 있었다.
빨갛게 얼굴을 붉힌 채로 떠듬떠듬 매도 대사를 쏟아내고 있는 나타샤 캐릭터의 모습이 너무나 귀여우면서도 부끄러웠기 때문이다.
“나타샤 언니 특징이 싫다고 하면서 결국 도네하면 다 해주는 거거든요.”
“도, 돈을 주잖아. 돈은 소중한 거라고.”
나타샤의 항변에 홍유희는 으흐흐 웃더니 흐뭇한 얼굴로 말했다.
“우수한 사원이에요. 언니가 봐도 그렇죠?”
“그, 그래.”
홍유희에게 답한 직후 코델리아는 촉촉한 눈빛으로 메시지 마법을 보냈고, 나타샤의 얼굴은 더더욱 붉어졌다.
“그럼 이걸로 영웅전기 방송하는 거야?”
“영웅전기도 하긴 하는데…… 요즘엔 다른 게임을 더 많이 해요.”
“어? 그럼 랭킹은?”
“어…… 두 달 전 이후로 저랑 오빠랑 둘 다 1등과 2등에서 은퇴했어요. 이제는 그냥 네임드 유저?”
“지, 진짜로?”
코델리아가 깜짝 놀라서 되묻자 홍유희는 고개를 끄덕이더니 돌연 손가락을 꼼지락거리며 말했다.
“이제 와서 굳이…… 오빠랑 1등과 2등을 다툴 이유가 없는 것 같아서요. 다른 쪽에서 제가 많이 이기기도 했고.”
다른 쪽에서 많이 이겼다.
대체 뭘 이겼다는 것일까.
어찌 되었든 꽤나 충격적인 이야기인 동시에 납득이 가는 이야기이기도 했다.
코델리아 자신도 여전히 유더와 경쟁할 때가 많긴 했지만, 몇 번 이긴 뒤로는 경쟁에 임하는 자세나 결과에 대한 느낌이 꽤나 달라졌으니 말이다.
“아, 맞다. 언니. 저 굿즈도 만들었어요.”
“굿즈?”
“버튜버 굿즈요. 나타샤 언니 상품도 엄청 잘 팔려요.”
“제, 제발.”
마지막 목소리는 나타샤였고, 그녀는 이미 그로기 상태가 되어 있었다.
하지만 그랬기에 그녀의 가냘픈 목소리를 제대로 듣지 못한 홍유희는 얼른 보러 가자는 듯 코델리아의 손을 잡아끌었다.
“나타샤 언니 집 남는 방 하나를 창고로 쓰고 있거든요. 이쪽이에요.”
그렇게 개방된 문 너머에 펼쳐진 풍경에 코델리아는 멍한 얼굴로 눈을 깜박였다.
생각보다 훨씬 더 본격적인 상품들이 있었기 때문이 아니었다.
홍유희의 버튜버 캐릭터는 사실상 코델리아였고, 그렇기에 눈앞에 자리한 모든 굿즈들은 사실상 코델리아의 굿즈들이었다.
“에헤헤.”
홍유희는 마치 학교 성적을 자랑하는 아이 같은 표정이 되어 코델리아를 보았고, 코델리아는 정신 나갈 것 같은 와중에도 꿋꿋이 굿즈들을 살펴보았다.
사실 컵이나 브로마이드, 심지어 등신대 피규어 같은 건 이미 유델리아 신성국에서 많이 본 코델리아인 터라 딱히 타격이 되지 않았다.
진짜 타격이 된 것들은-
“어…….”
이거 그거 아닌가.
그, 가슴 마우스 패드.
“아, 아니! 이건 그, 제 소장용이에요. 판매용이 아니라.”
홍유희가 다급히 말했지만 코델리아는 거기서 다시 의문을 느꼈다.
아니, 니가 그런 걸 왜 만드는데.
그리고 피규어들.
발매된 적이 없는 오리지널 피규어들이 그야말로 한가득.
“아니, 그, 돈이 생기니까 막 갖고 싶은 것도 많아지고…… 헤헤헤.”
홍유희가 부끄럽다는 듯 몸을 비비 꼬며 말하자 코델리아는 참 귀엽다는 생각과 동시에 지금까지와는 비교조차 할 수 없는 부끄러움을 느꼈다.
‘나, 나는 날 왜 이렇게 좋아했던 거지?’
코델리아에 죽고 못 사는 홍유희를 보니 새삼 과거의 자신이 떠오른 탓이었다.
코델리아.
홍유희를 기준으로 한다면 전생의 자신.
강진호는 유더를 즐겨 사용했을 뿐 딱히 팬심 같은 것을 보인 적이 없었다.
하지만 홍유희는 달랐다.
지금 보여주듯이 그야말로 사생팬 수준이었으니 말이다.
왜 그랬던 것일까.
이게 그 나르시시즘이라는 건가?
생각해 보니 코델리아 자신은 지금 홍유희를 몹시도 귀엽게 느끼고 있었다.
‘지, 진짠가?’
진짜 나르시시즘이었나?
유더가 이걸 알면 진짜 미친 듯이 놀리지 않을까?
그런데 바로 그때였다.
까톡!
별안간 들려온 소리에 깜짝 놀란 코델리아와 홍유희는 서로를 보았고, 홍유희는 반사적으로 휴대폰을 꺼내 들었다.
그리고 휴대폰 화면에 떠오른 메시지.
[그래서, 우리 이번엔 진짜 정모하는 거지?]채팅방 멤버들 가운데 하나- 코와붕가의 메시지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