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nemy of the Greatest Psychic Ever RAW novel - Chapter 100
099 – [3회차] 뜻밖의 관계( )
탁재윤과 내 관계는 빈말로도 좋다고 할 수 없었다. 내 실력을 검증하는 자리에서 내 손으로 먼저 탁재윤
을 상대로 고르고, 대련에 맞지 않는 비겁한 살수를 연달아 썼다.
덕분에 탁재윤은 같은 차기간부 내정자인 오성의 TOP10출신 자퇴생들에게 비겁한 놈으로 여겨졌다.
“…우리에게 해코지를 하러 온 건가?”
그런 두려움을 담아서 물어보자 탁재윤이 헛웃음을 지었다.
“쫄리냐? 그럴 거면 애초에 일을 벌이지 말던가.”
“그땐 다시 볼 줄 몰랐지.”
“한도령 이 자식 이거 이진태보다 막나가는 녀석이네.”
“아무리 그래도 그건 아니지. 적어도 난 빌런은 아니잖아.”
“빌런? 이진태가 웬 빌런이야? 그놈 빌런 됐냐?”
어리둥절해하는 모습에 오히려 내가 당황했다. 분명 하정아한테는 일의 경과를 전달했는데 그녀가 탁재
윤한테 이 사실을 알리지 않았던 건가?
“너. 그거 누구한테 먼저 말했지?”
“하정아.”
“…하정아. 그년이 날 밀어내기라도 할 작정인가.”
의도치 않게 마법협회의 차세대 인재들 사이에 생긴 균열을 엿본 것 같다.
“던전 앞에서 의료지원을 요청했다고 했지?”
“어.”
“어디에 먼저 연락했냐?”
“지원팀에 곧바로 전화 걸었다. 번호를 미리 알아뒀지.”
“잘했다. 그럼 이 일은 하정아한테 비밀로 해라.”
나는 호기심을 느끼며 물었다.
“내가 너한테 협력할 거라고 생각하나?”
“어이. 넌 나를 도대체 어떻게 보고 있는지 모르겠지만 나도 어엿한 십대세가의 자손이다. 네가 보기와
달리 얼마나 음습한 놈인지는 다른 누구보다도 내가 가장 잘 알지.”
“그래서?”
“알아듣기 쉽게 말하지. 널 내 밑에 두고 부려먹고 싶다는 말이다.”
“진짜 알아듣기 쉽게 말하네…”
본색도 이렇게 대놓고 드러내니 오히려 없던 호감이 생긴다.
이왕 이렇게 된 거 나도 조금 더 솔직해지기로 마음먹었다.
“날 부려먹어서 뭘 하려고?”
“관심이 있나?”
“만족할만한 대가를 약속할 수 있다면.”
“뭘 원하지?”
“강반검 선생님을 위한 인재포섭과 자금 확보.”
탁재윤이 혀를 내둘렀다.
“너, 내가 이 정보 들고 그대로 정부에 꼰지르면 어쩌려고 대책 없이 본색을 보이냐?”
“마찬가지다. 하정아한테 이 일을 얘기하면 어쩌려고?”
“넌 그러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다. 음흉한 놈이니까.”
“마찬가지다. 너도 그럴 놈이 아니라고 봤지.”
“훗. 재수는 없어도 역시 기대한 만큼 말은 통하는 놈이군.”
왠지 모르게 탁재윤과는 좋은 관계를 구축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럴 거면 그땐 왜 나한테 성질부리면서 나갔냐?”
“그래야 속이기 쉬우니까.”
“하정아를?”
“그래.”
“그때부터 그녀를 경계하고 있었다고?”
“당연하지. 하정아처럼 타산적인 년은 애초에 믿을 수 없어.”
나와 탁재윤의 이야기를 듣고 있던 김아준이 입을 쩍 벌리며 작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와… 대박. 쟤들은 친구사이가 아니라 무슨 잠재적인 경쟁자들처럼 보이네. 짱 무섭다.”
탁재윤이 김아준을 째려보았다.
“저놈은 입이 가벼워 보이는데.”
“제대로 입단속 시키겠다. 그래도 혹시 모르니 다른 할 말이 있다면 자리를 옮기지.”
“아니. 마법협회에서 염탐이나 감시, 도청에 안전한 곳은 여기 의무병동 뿐이다. 인근의 다른 카페나 음
식점에는 어떤 마법적인 수작이 부려져 있을지 모르지.”
“여기라고 특별히 안전하다고 장담하는 이유가 있나?”
“의무병동은 탁씨세가 구성원들의 영역이다.”
그렇게까지 자신한다면 나도 믿어줘야겠지. 장명훈한테 시선을 보내자 그가 동료들을 데리고 나갔다. 얘
기는 다 들었으니 근처 카페에서 경솔하게 입을 놀리지는 않겠지.
“그래서 나한테 시키고 싶은 일은 뭐지?”
“우선은 너희가 습득한 코어를 이쪽에서 매매하고 싶다.”
“전속계약이냐?”
“그래. 대신 단가는 확실하게 쳐주지.”
“중개인을 끼워줘. 네 말만으로는 믿을 수 없어.”
일개 생도나 자퇴생들이 나눌만한 대화는 아니다. 하지만 사회경험이 빠른 탁재윤이나 암흑가에서 회차
경험을 축적시켜온 내게는 그리 어려운 대화도 아니었다.
“사이에 낀 인원이 늘어날수록 내 처지가 곤란해진다는 건 이해하고 있겠지?”
“비밀엄수 계약서를 작성한 감정사를 고용해. 1년 단위로 계약기간 갱신, 신변보호를 약속하고 연 2억 정
도의 보수를 약속하면 손을 잡을 감정사를 알고 있다.”
“네가 아는 사람이냐?”
“암흑가에서 흔치 않게 공정함을 지닌 감정사를 알고 있을 뿐이다. 나이도 지긋한 영감이니 돈에 눈 멀어
서 허튼 짓을 저지르거나 배신하지도 않겠지.”
“희안한 녀석이군. 15살에 아카데미에 들어와놓고 어느 틈에 암흑가에 그런 인맥을 알아뒀지?”
나는 어깨만 으쓱했다.
대답할 마음이 없다는 제스처에 탁재윤도 그러려니 했다.
“뭐, 상관없겠지. 접선방법은 나중에 따로 말해라. 자세한 사항은 추후에 따로 논의하도록 하지. 던전에
서 습득한 전리품은 그렇게 처분하도록 하고…”
“그리고?”
“이번에는 네 조건을 들을 차례군. 강반검 선생님을 위해서 인재와 자금을 모으고 싶다는 건 정확히 무슨
의미지? 얼토당토않은 소동에 엮이고 싶지 않으니 분명하게 말해라.”
탁재윤은 남 몰래 던전 부산품을 습득하는 선에서 그쳤지만 나는 반정부 활동을 논하고 있다. 일의 중대
사로 따지자면 내 쪽이 더 큰 위험을 무릅쓰고 약점을 드러내는 셈이다.
불공평한 노출이지만 나와 탁재윤의 입지부터가 애초에 공평함을 논할 수 없었다. 십대세가의 자손과 부
모도 없는 천애고아가 거래를 하는 것부터가 놀라운 일이다.
‘원작지식이 없다면 그랬겠지.’
원작에서 일어나는 사건과 이해관계를 알고 있는 나는 탁재윤이 나와의 거래로 얻으려는 이득이 그저 던
전부산품을 남몰래 습득해서 이득을 노리는 수준을 넘었음을 알고 있다.
그가 감추고 싶은 비밀을 알고 있지만 그 사실을 곧바로 폭로하는 대신, 우선은 내 목표부터 밝혔다.
“강반검 선생님의 혁명이 실패하자마자 던전과 게이트가 폭발적으로 증가하고 칠대기업이 움직였다. 난
이 모든 사건이 그저 우연이라고 생각하지 않아.”
“하하. 설마 칠대기업이 던전과 게이트를 임의로 열기라고 했다고 주장할 셈이냐? 그건 말도 안 돼.”
“일단은 의혹일 뿐이다. 힘과 자본이 더 갖추어지고 본격적으로 조사한다면 그저 의혹으로 그치지 않을
수도 있지.”
탁재윤의 얼굴에서 웃음기가 싹 가셨다.
“나참. 이 자식은 분명 배경도 없는 녀석이 뭐 이리 위험한 냄새가 나지. 애초에 그딴 걸 알아서 뭐하려
고?”
“칠대기업을 무너뜨릴 거다.”
“뭐? 그걸 말이라고 하냐? 칠대기업이 무슨 동네 슈퍼마켓도 아니고 음모설 하나 띄운다고 무너지겠냐?
그놈들은 대한민국 그 자체나 다름없어.”
“그럼 나라를 전복시켜야지.”
“하이고. 이거 남몰래 뒷주머니 찬다는 게 미래의 테러리스트를 지원하는 꼴 되는 거 아닌지 모르겠네.”
노골적으로 싫은 기색을 드러내는 그에게 넌지시 말했다.
“어차피 너도 칠대기업을 좋아하지는 않을 텐데?”
“좋아하지 않는 거랑 선전포고를 하는 건 다르지.”
“던전코어를 빼돌려서 아티펙트 연구제작에 사용하는 건 선전포고가 아니고?”
앓는 소리를 내도 마음 속 한 편에 흔들림 없는 여유를 지니고 있던 그가 처음으로 진짜 동요를 드러냈다.
“뭔 말인지 모르겠는데.”
“시치미 떼도 소용없다. 칠대기업이나 같은 마법협회 구성원들의 눈을 피해서 던전부산물을 습득하려고
번거로운 계약을 맺는다면 던전코어를 노리는 게 당연하지.”
“던전코어랑 아티펙트 연구제작이 무슨 상관이지?”
“그걸 A반 자퇴생한테 말하는 거냐? 유감이지만 나는 이론 공부도 착실하게 해온 모범생이다. 강력한 아
티펙트들의 재료가 던전코어라는 사실은 이미 알고 있어.”
“젠장. 너 뭐하는 새끼야. 오성에서 그딴 걸 가르칠 리가 없잖아. 분명 입 싹 닫고 언급도 안했을 텐데.”
그런가? 그럼 뭐 암흑가에서 배웠겠지.
어쨌든 둘러낼 여지는 있다.
“B반 담임선생 신진수에게 특훈을 받으면서 배웠다.”
“신진수… 그래. 그 선생에게 특훈을 받았다는 기록이 있지.”
“너 내 뒷조사도 했냐?”
“당연히 했다. 뭐하는 놈인지 알아야 손을 잡든 말든 하지.”
“뻔뻔한 것 봐라.”
“꼬우면 너도 내 뒷조사 하던가.”
“…….”
진짜 뻔뻔함 하나로는 지금껏 만난 모든 인물을 통틀어서 독보적인 원탑을 달린다. 겉으로만 보이던 자존
심 강한 철부지 도련님의 이미지가 오늘의 대화로 완전히 달라졌다.
“형님. 이놈 이거 내가 먹다가 배 터질 것 같은데 어떻게 보입니까?”
“난 자리를 마련해줬을 뿐이다. 귀찮은 일에 엮지 마라.”
“매정하시긴. 거 좀 같은 집안 사람끼리 도우면 뭐가 어때서 저래? 우리 집안사람들이 원래 그렇지 뭐. 어
휴.”
대놓고 핀잔을 줘도 탁재윤의 형이자 나와 동료들을 치료한 시간마법 보유자는 들은 체도 하지 않았다.
탁재윤은 빠르게 포기하고 나와 시선을 마주했다.
“인재확보나 자금지원은 뭐 얼마나 원하는 거냐?”
“최종적으로는 천 명 이상의 중급 히어로와 이십 명 이상의 상급 히어로. 자금으로는 대략 1조 원 정도.”
“미쳤냐?”
“최종적인 기대치를 말하는 거다. 당장은 그렇게까지 엄청난 지원을 바라지 않아. 애초에 그거에 상응하
는 물건을 구해다줄 능력도 없고.”
“이거 완전 또라이네. 진심으로 칠대기업이랑 한 방 붙으려고 작정했잖아.”
물론 이건 어디까지나 대한민국의 멸망을 막기 위해 필요한 최종지원일 뿐이다. 지금은 나한테도, 탁재
윤한테도 그만한 지원을 받거나 제공할 능력이 부족하다.
그런데도 이런 목표를 드러냈다는 건 그만큼 오랜 기간 서로에게 힘을 실어주며 공생하겠다는 의지를 밝
힌 거다.
“아티펙트 개발 좀 앞당긴다고 네가 기대하는 정도의 영향력을 가문 내에서 얻기는 쉽지 않다.”
“이번에 던전에서 얻은 던전코어 등급이 S급이라는 건 알고 있냐?”
“뭐!? S급 던전코어를 얻었다고!!”
탁재윤의 외침에 의자에 앉아서 스마트워치를 두들기던 그의 형까지 시선을 들었다.
“호오?”
감탄하는 표정을 보기가 무섭게 탁재윤이 그와 내 사이에 서서 시선을 가로막았다.
“꿈 깨셔. 이놈은 이미 내 거야. 아까 제안을 받았어야지.”
“그냥 감탄했을 뿐이다. 누가 뭐라고 했냐.”
“웃기시네. 음험한 우리 집안 족속이라면 당연히 욕심이 생겼겠지. 얘 건드리면 절대로 가만 넘어가지 않
을 거야.”
탁재윤의 형은 심드렁한 표정으로 일 없다고 말하며 다시 스마트워치에 시선을 깔았다.
“동번 시에 던전이 몇 개 더 남았지?”
“네 개. 이번처럼 고등급 던전이 걸릴 확률은 희박하다. 애초에 그 코어를 얻은 것도 운이 따라줬지.”
“운이든 뭐든 결과만 있으면 충분해. 그 정도면 가문의 지원을 끌어내고 내 입지를 높이는 용도로도 차고
도 넘쳐. 돈과 인력, 장비. 필요한 걸 곧바로 구해주지. 대신…”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던전코어를 구하면 무조건 너한테 넘긴다. 알고 있다.”
“좋아. 그럼 바로 중개인부터 찾으러 가자고.”
거래를 중재할 중계인을 찾아 계약하고 물건을 모두 넘기기까지는 불과 세 시간밖에 걸리지 않았다. 본래
라면 전리품 처분에만 이틀이 넘게 걸렸을 작업이었다.
그걸 단기간에 끝낸 것도 놀라운데 순식간에 현금으로 17억을 받고 차명계좌로 63억에 전신방어구와 상
태이상 저항기능이 달린 아티펙트까지 넘겨받을 수 있었다.
“전체가치를 모두 합치면 600억쯤 될 거다.”
“S급 코어 치고는 저렴한데.”
“방사능과 연관된 코어라면 위험성이 폭증하니까.”
“하긴. 근데 왜 돈으로 안주고 장비로 때우냐?”
“첫 거래라서 준비된 유동자금이 부족했다. 어차피 너희도 장비가 필요하기는 하잖아? 융통성 있게 생각
해라. 그만큼 다음 거래부터는 더 잘 쳐주마.”
“알았다. 그 정도는 이해해주지.”
“나머지 던전은 언제 공략할 거냐? 뜸 들이면 칠대기업이 낌썌를 눈치 채고 먼저 움직인다.”
“하루만 쉬었다가 들어갈 거다. 서두르다가 던전 안에서 전멸하면 농담으로 끝날 일이 아니야.”
“아쉽지만 어쩔 수 없군. 되도록 빠른 공략을 바라지.”
그렇게 탁재윤은 우리 팀의 비밀 스폰서이자 물주가 되었다. 지급받은 장비와 모든 부상을 확실하게 치료
할 수 있는 연줄을 입수했으니 우리는 더욱 적극적으로 던전공략에 나섰다.
일주일 뒤, 동번 시에 존재하는 네 개의 던전을 모두 클리어할 수 있었다.
습득한 던전코어는 B급 한 개, C급 세 개였는데 총 매매가만 무려 150억에 달했다. N분의 1로 균등분배
를 하니 일인당 무려 30억 원을 챙겼다.
“미, 미친. 이렇게 떼돈을 벌어도 되는 거야?”
“던전 일이 원래 이렇다. 게다가 우린 던전코어만 바로 노려서 부가 전리품이 적은 편이야. 칠대기업 산
하 길드는 던전 몬스터들의 씨만 말리고 던전코어는 그대로 내버려둬.”
“아쉽네. 우리도 던전의 존재를 숨기고 전리품만 주기적으로 뜯어낼 수 있었으면…”
김아준이 짐짓 아쉬워하며 욕심을 내비쳤다.
나는 정색하며 대꾸했다.
“꿈 깨. 꼬리가 길면 밟힌다.”
“그래도…….”
“탁씨가문이 힘을 써도 정부를 부려먹는 칠대기업의 눈을 피할 순 없어. 던전이 발생한 위치가 처음부터
탁씨가문의 사유지였다면 몰라도 말이지.”
“니 말대로 이런 돈 언제 또 벌 수 있을지 모르잖아.”
“아니. 돈 벌 기회라면 그리 멀리 있지 않다. 조만간 아주 값비싼 일이 하나 벌어질 거다.”
칠대기업 산하 길드에 소속된 유능한 초능력자들의 소득은 이번 일주일간 우리가 맛본 돈맛처럼 대단하
지는 않다.
그들은 애초에 길드에 소속되어서 일하는 노동자에 가깝고, 가장 큰 소득은 기업이 얻는 것이기 때문이
다. 하지만 그들은 큰돈을 벌 기회가 자주, 그리고 빠르게 찾아온다.
김아준은 이런 기회가 영영 찾아오지 않으리라고 여겼지만 나는 그렇지 않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얼마 안 남았어. 이제 곧 빌런과 몬스터들이 움직인다.’
국가멸망의 위기와 직결되는 커다란 사건.
막아낸다면 그 어느 때보다도 더 큰 돈을 벌어들일 수 있는 기회가 찾아온다. 나는 그 시련을 함께 헤쳐 나
갈 배후세력으로 탁재윤과 탁씨세가를 고른 것이다.
그 사건은 내 생각보다 훨씬 빠르게 찾아왔다. 동번 시 던전공략을 끝마치고 불과 한 달 뒤인 2024년 3월
15일.
-썩어빠진 히어로 협회의 부패를 더는 참지 않겠다.
-전국의 빌런들이여, 때가 도래했다.
-오늘, 부패한 정부를 타도할 빌런협회의 출범을 선포한다!
사상초유의 강력한 반정부세력, 빌런협회가 출범했다.
[3회차] 뜻밖의 관계
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