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nemy of the Greatest Psychic Ever RAW novel - Chapter 107
106 – [3회차] 정부의 붕괴( )
스펙터 에어리어에 들어온 뒤, 우리는 한동안 말없이 걸음을 옮겼다. 그러다가 문득 더 이상 목숨이 위협
받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닫고 멈추어 섰다.
“엉망진창이군.”
나는 어깨에 얹어두었던 히미코를 내려주었다.
최미나도 김아준을 내리며 어깨를 풀었다.
“한도령. 넌 잘못되지 않았다.”
“…그러냐?”
“넌 몬스터 웨이브를 막고 싶었던 거 아니냐. 탁씨세가의 배신만 아니었다면 성공했을지도 모른다.”
김철괴가 짐짓 나를 위로하려는 듯 그리 말했다. 장명훈을 잃고 분한 기색이 역력한 주제에 누가 누굴 챙
기는 거냐고 말하고 싶었지만 입이 열리지를 않았다.
과정이야 어찌되었건 결과는 최악이었다. 나로 인해서 장명훈이 스펙터 에어리어 밖에 홀로 남겨졌다.
‘장명훈의 도덕심을 간과했어.’
그가 평소부터 공명정대하고 정의로움에 집착하는 성향이 있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위기상황에서 나름
대로의 융통성은 보여줄 거라고 믿었다.
허나 실제로 맞이한 결과는 전혀 달랐다. 이런 일이 언젠가 벌어질 거라는 징조가 아주 없던 것도 아니었
다. 그저 괜찮을 거라고 외면했던 결과가 이것이다.
‘앞으로도 장명훈을 데리고 함께 할 수 있을까?’
회의적이었다.
그는 진흙탕 싸움으로 치닫는 시기를 넘을 수 없다.
그러기에는 너무 심성이 여렸다.
‘모두 다 데리고 갈 수는 없어.’
특정시기 이후부터는, 메인이벤트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뛰어난 실력과 높은 신용도뿐만 아니라 강인한
정신력까지 겸비한 인재들만을 데리고 나아가야 했다.
그런 점에서 장명훈은 아쉽지만 김아준은 놀라울 정도로 존재감이 뛰어났다.
“김아준. 넌 괜찮냐?”
“응? 밥 먹자고?”
“…그래. 좀 있다가 밥이나 먹자.”
겁쟁이 같으면서도 묘하게 신경줄이 굵고, 소심하다 싶으면서도 비정해야 할 땐 칼같이 선을 긋는다.
장명훈이 중반까지 무난한 동료로 굳건히 파티를 지탱해준다면 김아준은 초반부만 넘을 수 있으면 몇몇
특수한 전장에서 큰 도움이 되는 동료였다.
“목석. 뭔진 몰라도 우리 실패한 거 맞냐?”
“그래. 이 정도면 대실패다.”
“그렇군. 그럼 다음 계획은 뭐냐.”
물론 쇠심줄이 질기기로는 김철괴가 더하다.
그는 몸만 튼튼한 게 아니라 정신력도 튼튼했다.
“공적인 목표라면… 더 이상은 없다.”
“없다고?”
“그래. 서울의 절반이 당한 이상, 이제는 몬스터 웨이브를 막든 막지 못하든 대한민국은 끝났다.”
“그러냐. 그럼 사적인 목표는 뭐가 남았지?”
“도와주겠다는 거냐?”
“왜. 싫냐?”
당연히 싫지는 않다. 싫지는 않지만 남은 시간은 내게 소중한 만큼 이들에게도 소중하다.
“너희도 하고 싶은 게 있으면 지금밖에 기회가 없을 거다. 영화도 못보고 쇼핑도 못하고 부유했던 문명시
절의 혜택을 더는 누리지 못하게 될 테니까.”
“관심 없다.”
“김아준. 너도 그러냐?”
“아니 난 스파이더맨 6 보고 싶은데.”
“…넌 초능력자라는 놈이 초능력 쓰는 슈퍼히어로 영화를 굳이 보고 싶냐?”
“왜. 스파이더맨이면 볼 수도 있지.”
실없는 소리를 주고받으며 긴장을 풀기도 잠시.
슬슬 결정을 내릴 때가 되었다.
“나는 스펙터에어리어에서 조금 더 머물다가 암살가문인 정야문을 찾아갈 생각이다.”
“거기에 뭐 있어?”
“다연이가 있다.”
“으윽. 세상이 망하기 전에 여친 얼굴이라도 한 번 보고 가겠다 이거냐? 완전 재수 없어.”
“굳이 따라오지는 않아도 된다. 코어를 팔고 번 돈도 많이 남았으니 어느 도시로든 내려가서 지하에 셸터
라도 짓고 안전하게 살 수도 있지. 브로커와 접선해서 이민을 가도 좋고.”
김철괴가 단호하게 대답했다.
“일 없다. 우리도 정야문에 따라갈 거다.”
“죽을 수도 있어.”
“그럼 더욱 같이 가야겠군.”
김아준도 너스레를 떨며 재차 말을 이었다.
“돈만 있으면 뭐해? 서울까지 몬스터가 밀어닥치는 판국에 너희랑 떨어지면 하루 만에 객사할 것 같은데.
죽을 때까지 달라붙어서 단물 쪽쪽 빨 거다.”
“하긴 넌 그래야겠다.”
“거기서 대뜸 덤덤하게 인정하지 말라고. 아무튼 스파이더맨은 무조건 볼 거니까 은근슬쩍 못 보게 할 생
각 말고!”
바닥까지 곤두박질쳤던 사기가 어느 정도 회복되었다. 나는 최미나와 라이온, 히미코를 돌아보았다.
“세 분은 앞으로 어떻게 하실 겁니까?”
“모아둔 자금은 부족한데 세상은 요지경이네? 마침 눈앞에 돈 많은 젊은 사장님도 있으니 고용해달라고
졸라봐야지.”
“근육으로 제 목을 조르겠다는 말 맞죠?”
“아놔 이 인간이?”
“하하. 대장이 입담에서 밀리는 건 오래간 만에 보네.”
라이온이 씨익 웃으며 김철괴의 어깨에 팔을 둘렀다.
“이 친구도 터프한 게 제법 마음에 들었어. 대장의 말이 아니더라도 난 따라가겠어. 히미코는 어때?”
“…찬성.”
“히미코가 저렇게 쑥스러워하는 모습은 처음 봐. 흐흐. 젊은 사장님한테 홀딱 반하기라도 한 건 아니겠
지?”
히미코가 긴 앞머리 사이로 한쪽 눈을 드러내며 살벌하게 눈을 번뜩거렸다.
“시끄러워!”
“으악! 지, 지금 나한테 능력 쓰려고 했지! 맞지!”
“쓸 거야. 더 나를 자극하면…”
김철괴와 김아준이 그 섬뜩한 모습을 보다가 두려움을 느끼는지 몸을 크게 떨었다. 날 돌아보는 시선에서
취향 한 번 독특하네, 하는 생각이 훤히 읽혔다.
“여기에 장명훈만 있으면 딱인데.”
김아준이 짐짓 아쉬워하며 중얼거린 직후였다. 폭죽을 쏘아 올리는 것보다 몇 곱절은 커다란 소리가 연달
아 울리더니 서울 북부에 미사일이 내리꽂혔다.
쿠궁, 쿠구구구궁…
폭발은 스펙터 에어리어 너머, 강동대교 북쪽에도 떨어졌다. 빌딩이 무너지고 시민들이 시체도 남기지
못하고 폭사했다. 피난에 늦은 시민들이 떼거지로 죽어나갔다.
“맙소사. 사람들이…”
“칠대기업이 작정을 했군.”
그들은 강남 일대를 사수하고자 강북 전역을 파괴했다.
서울의 절반을 자신들의 손으로 파괴했다.
적어도 이백만이 넘는 시민들이 빠져나오지도 못한 곳을.
포격이 지난 자리에는 대단위 초능력이 쏟아졌다.
칠대기업을 따르는 초능력자들의 초능력폭격이었다.
“명훈이는…”
“늦었다.”
“이럴 순 없어. 어떻게 군이 시민을…”
인간이 같은 인간에 의해, 그것도 시민들이 자국의 군대와 기업의 사병에 의해 사살 당한다. 참혹한 사건
이지만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었다.
망연자실한 동료들을 데리고 스펙터 에어리어의 보다 깊은 지역으로 이동했다.
“본 구역에는 대피소가 존재합니다. 다만, 이용을 원하는 인간은 3억의 추가요금을 지불해야 합니다.”
나는 안드로이드의 제안을 받아들였다. 서울의 절반이 초토화되는 사이, 우리는 스펙터 에어리어의 대피
소에 의탁하며 풍파가 지나기만을 기다렸다.
허나 그때는 미처 알지 못했다. 풍파가 모두 지나기까지는 무려 2년이 지나리라는 사실을.
***
원작에서와 달리 SS급 필드보스 몬스터가 된 엘더 자이언트 웜이 건재했기에 몬스터 웨이브는 무려 2년
이라는 기나긴 시간이 소요되었다.
2024년 4월 15일 국경요새의 함락으로 시작되었던 몬스터웨이브는 2026년 8월 10일에 이르러서야 종
식되었다.
칠대기업과 마법협회에서 보낸 원정대는 모두 소식이 끊겼지만 두 진영 중 어느 쪽에서든 필드보스 몬스
터 엘더 자이언트 웜의 격퇴에 성공한 모양이다.
“한도령. 오늘도 한 판 붙어볼 테냐?”
“아니. 이젠 우리도 나갈 준비를 해야지.”
“2년만의 외출인가. 기대되는데.”
지난 2년 간 우리는 대피소에 처박혀서 하릴 없이 시간을 보내지만은 않았다. 동료들과 함께 대련도 하고
개인수련도 하고 때로는 명상도 하면서 끊임없이 실력을 향상시켰다.
김철괴는 S등급에 올라서면서 가장 극적인 전투력 향상을 보였다. 내재된 잠재력이 죽을 고비를 몇 차례
넘기면서 온전히 발휘되었던 모양이다.
“뭔가 아쉽네. 나한테 딱 맞는 연습장이 없어서 성장이 제한적으로 이루어졌던 게.”
“아니. 화력보다 연사력과 응용에 집중한 것도 나쁘지 않은 경험이었어. 정체되었던 등급도 훈련을 하면
서 나름 상승했으니 효과가 없던 것도 아니잖아?”
“그렇긴 하지? 흐흐. 최약체인 내가 B+급 초능력자가 되다니 놀랍긴 놀라워.”
최미나 팀도 우리와의 대련으로 적잖은 성장을 보였다.
최미나는 A-급, 라이온은 B+급, 히미코는 무려 A+급으로 실력이 급증했다.
탁씨가문에서 얻은 몇 안 되는 전리품 중 하나가 아티펙트였는데 우리가 지닌 아티펙트의 기능은 상태이
상에 강력한 저항력을 부여했다.
‘그런 아티펙트의 저항력조차도 뚫고 공포를 걸 수 있다니.’
‘히미코의 정신력이 대단하긴 하네.’
반면에 나는 영맥에서 쌓았던 정순한 기운이 다소 흐려졌다. 살업을 피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심기체의 균형이 예전처럼 심각하게 깨지지는 않았기에 A+급까지 전투력을 향상시킬 수 있었지만, 최근
들어서는 커다란 딜레마에 빠졌다.
의도적으로 살육을 벌이며 탁기를 얻으면 단번에 S-급으로 올라갈 수 있지만 지금까지의 수행이 물거품
이 된다.
‘몇 년이나 더 노력해야 하지?’
‘애초에 누구도 죽이지 않고 수련만 하는 게 가능한가?’
‘강반검도 필요할 땐 가차 없이 남을 죽였잖아.’
그는 되면서 나는 되지 않는 이유.
그것이 납득이 가질 않았다.
마음이 떠나니 정종무류의 수련을 하기가 점점 어려워졌다.
초일류의 경지를 바로 넘볼 수 있는 실전사투.
일류의 경지에서 정체된 정종무류.
▷당신의 초능력이 선택을 재촉합니다.
마음이 나날이 기울어가고 있다. 이러다 심마에 빠져서 덜컥 주화입마라도 걸릴까봐 때마침 들려온 몬스
터 웨이브 종결소식에 곧장 대피소를 나왔다.
“쿨럭, 쿨럭.”
“헉! 일식이 너 또 피토했잖아. 뭐라도 보였어?”
“하아, 하아…. 그냥 몸이 안 좋은 거다.”
그런 나보다도 안 좋은 시간을 보낸 동료도 있었다.
바로 김일식이다.
“하아. 힘들군…….”
“그냥 앉아있어. 휠체어 밀어줄게.”
“미안하다. 신세 좀 지자.”
모두가 성장을 이룬 시기에 김일식만이 정체되었다.
아니, 정체를 넘어서 고열을 앓다가 중병에 걸렸다.
안타깝게도 대피소에는 치유계열 초능력자가 없었다.
실력 있는 의사는 존재했지만 치료시설이 부족했다.
임시치료로 큰 고비는 넘겼지만 후유증이 남았다.
김일식은 이제 하루 중 한 시간도 걷지 못한다.
대부분의 시간을 휠체어에서 보낸다.
“초능력의 부작용을 조심하게. 그 친구, 무리하게 능력을 사용했다간 정말로 죽게 될 거야.”
“감사합니다. 마음은 아직 변하지 않으셨습니까?”
“대피소 밖의 세상에는 더 이상 관여하고 싶지 않네. 나라도 멸망한 판에 세상살이가 다 무슨 소용이겠
나.”
의사는 대피소를 떠나는 우리에게 그리 충고해주었다. 모처럼 찾은 유능한 의사이니 함께 데리고 다니고
싶지만 본인이 대피소를 떠날 마음이 없어서 어떻게 할 수도 없었다.
그의 말마따나 대한민국이 멸망했으니 바깥에 나간들 정상적인 삶을 누리기도 어려웠다.
“다들 세력도 업데이트는 했지?”
“이게 백만 원이나 주고 구매할 가치가 있어? 안드로이드가 파는 건 죄다 순 사기 같다니깐. 뭐만 하면 맨
날 백만 원 달라고 하니 신용이 가야지.”
“다른 곳에서는 이런 정보 돈 주고도 못 구해. 개인위성을 지닌 집단은 스펙터들밖에 없다고.”
몬스터 웨이브가 지나간 뒤, 대한민국 정부는 붕괴했다. 증권시장은 폭락 끝에 문을 닫았고, 해양과 공중
을 장악한 몬스터들에 의해 교역마저 끊기다시피 했다.
대한민국은 멸망했지만 모든 도시가 사라진 것은 아니었다. 초능력자와 빌런이 머무르는 도시는 명맥을
유지했다.
“경기도에서는 강남과 성남, 수원, 용인을 포함한 영역과 충청북도가 칠대기업의 세력권이네.”
“경기도 인천, 안양, 안산을 잇는 영역에 충청남도는 마법협회 세력권이고.”
“전라도, 경상남도는 빌런협회 영역권이다.”
김아준과 최미나, 내가 각기 다른 지역의 세력도 업데이트 정보를 공유하였다. 대한민국은 이제 칠대기
업과 마법협회, 빌런협회가 나누어 가지고 있다.
엄밀히 말하자면 셋이 아닌 넷이기는 하다.
서울 강북을 포함한 경기도 북부, 강원도, 경상북도 전역은 몬스터에게 지배당했다. 멸망한 북한의 영토
와 마찬가지로 제 2급 위험지대로 지정된 [몬스터랜드]가 된 것이다.
없었습니다
[3회차] 정부의 붕괴
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