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nemy of the Greatest Psychic Ever RAW novel - Chapter 110
109 – [3회차] 얼굴보기 힘든 그 인간( )
검문소를 지키던 안경쟁이가 한 손으로 안경대를 밀어 올리며 띠거운 표정을 지었다.
“시동을 끄고 차에서 내리라고 했을 텐데요?”
“그 전에 하나만 묻자.”
“뭡니까.”
“뭘 믿고 자꾸 개기냐?”
“하. 지금 마법협회의 정식회원인 저를 겁박하려 드는…”
나는 내 안에 잔뜩 응축시키며 꽁꽁 감춰두었던 기운을 가감 없이 풀어내었다. 빠르게 늘어나는 기세에
안경쟁이의 동공이 거칠게 떨렸다.
“대포 돌려.”
“그렇게는 못하겠다면?”
“다 부숴버려야지.”
놈의 입이 열리기도 전에 주먹 끝으로 응축시킨 아우라를 총탄처럼 쏘아 보냈다.
▷부가스킬 발동!
대포의 포신에서 불이 뿜어지자마자 그대로 대포가 폭발하며 사방으로 파편을 쏟아내었다. 고밀도의 아
우라 탄을 대포탄이 뚫지 못하고 뒤로 역류해버린 결과였다.
“으악!”
“아아악! 내 팔, 내 팔이!”
비산하는 파편에 맞은 검문병력들이 비명을 내질렀다. 안경쟁이가 품에서 책 한 권을 꺼내며 빠르게 무어
라 중얼거리다가 기겁하며 책을 들었다.
푸확!
책을 뚫고 파고든 비수가 그대로 남자의 손등까지 관통했다. 책을 놓치고 비명을 지르는 안경쟁이에게 달
려들어서 그대로 목덜미를 낚아챘다.
“사, 살려..”
“살려는 줄게.”
그리고는 있는 힘껏 지면에 등판을 메다꽂았다.
“끄억!”
비명과 함께 안경쟁이가 입에 거품을 물고 기절했다.
나는 그대로 안경쟁이를 뒷좌석에 집어던지고 차에 올라탔다.
“출발해요!”
“네, 넵!”
검문소를 돌파하면서 김아준이 걱정스레 물었다.
“우리 벌써 거대조직 두 개를 엿먹인 거 같은데. 이거 정말 괜찮은 거 맞아?”
“저쪽에서 우릴 호구로 보고 덤벼드는데 당해주는 게 곤란하지. 힘의 논리로 억압하려 들면 순순히 당해
줄 정도로 만만치 않다는 걸 알려줘야지.”
“뭔가 다른 방법은 없었을까?”
어쩌면 있었을지도 모른다. 김일식이 멀쩡했거나 제갈민이 살아있었다면 유익한 조언을 건네줄 가능성
이 있었겠지. 하지만 김일식은 지금 기절하다시피 잠들었다.
제갈민은 진즉에 어디선가 개죽음을 당했다. 지난 실패들이 끊임없이 새로운 실패를 부르고 있다.
‘그래도 멈출 수는 없어.’
이번 회차의 최후가 어떻게 되더라도 마법협회에 발목이 잡혀서 끝나서는 안 된다. 거대조직이 강요하는
전장이 아닌 내가 원하는 전장에서 원하는 죽음을 선택하겠다.
사람은 태어날 시기를 자신의 뜻대로 고르지 못했을지언정, 죽은 순간만큼은 자신의 의지로 고를 수 있
다.
‘내 최후는 이런 곳이 아니야.’
안양을 벗어난 우리는 수원시 외각을 지나 천안, 공주, 논산을 지나쳤다.
안양에서 마주친 검문소 이후로도 몇 차례의 검문소가 더 등장했지만 때로는 김아준의 파이어볼로, 때로
는 내 무력으로 강행돌파나 정면돌파에 성공했다.
논산에서 익산시로 접어드는 경계부근에 접어들 무렵에는 마법협회도 발칵 뒤집혀져서 추격자들이 따라
붙었다.
“저 또라이들 막아!”
“빌런협회의 스파이가 틀림없어!”
“망할. 인질만 없으면 그냥 마법부터 꽂고 보는 건데.”
인질을 붙잡은 건 그나마 현명한 선택이었다.
“빌런협회로 건너가면 이 짓거리를 또 해야겠지?”
“뭐 그러겠지.”
“힘센 놈이 지나가는데 왜 다들 시비를 못 걸어서 안달일까?”
“머슴처럼 부려먹고 싶으니까 그렇겠지.”
“생도시절엔 이런 일을 겪을 거라고는 상상도 못했어.”
끊임없이 우울한 소리를 지껄이면서도 김아준은 스마트워치로 스도쿠 퍼즐을 풀고 있었다. 퍼즐풀이에
열심인 모습을 보면 그냥 심심해서 되는대로 떠들어대는 것 같다.
오히려 걱정이 되는 건 히미코였다. 그녀는 언제나 먼저 입을 여는 법이 없었다.
“…….”
“히미코. 심심하지 않아?”
“딱히.”
언제부턴가 자연스레 반말로 말을 건네도 좋다 싫다 하는 반응조차도 없다.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기
다란 앞머리 아래로 무슨 표정을 짓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표정만 봐도 ‘즐거움’ ‘저거 때려 부수고 싶음’ ‘졸림’ 등의 감정이 역력히 드러나는 최미나와 라이온을 좀
배웠으면 했다.
‘아. 앞머리 때문에 그거 배워도 표정은 안 보이네.’
시답잖은 생각을 하는 가운데, 도로를 봉쇄한 무리 너머로 면식이 있는 상대가 보였다.
“저, 저건…! 걔잖아, 걔!”
“이름 까먹었냐?”
“그러니까 그, 맞다! 맨날 잠만 자던 재능충 녀석!”
구룡환. 구 A반 TOP10의 일원이자 마법계열 초능력자다. 십대세가 중 하나인 구씨세가의 일원이기도
하다.
겉으로 나서기 좋아하는 하정아나 탁재윤과 달리, 구룡환은 대외활동에 그다지 크게 열의를 보이지 않는
다. 그보다 매사에 건성이고 귀찮음이 가득하다.
그런 주제에 능력을 검증하는 시험 때가 되면 적당히 뛰어난 결과를 거두며 매번 TOP10의 자리를 고수
했다.
‘승리를 장담할 수 없다.’
‘아마도 질 확률이 더 크겠지.’
탁재윤과 나 사이의 상성이 내게 크게 유리했다면, 구룡환과 나 사이의 상성은 구룡환이 크게 유리했다.
수수하게 뛰어난 신체능력을 기반으로 삼아서 활동하는 나로서는 결정적인 한방기가 없다는 사실이 가
장 두드러지는 약점이다. 헌데 구룡환은 장기전에서 가장 강한 놈이다.
‘원작소설에서 밝혀진 구룡환의 초능력은 수면마법의 선구자.’
구씨세가에서도 지금껏 존재하지 않았던 새로운 마법을 저놈이 구사한다. 심지어 그가 원하면 [수면마법
의 탐구자]라는 새로운 초능력을 다른 이들에게 하사할 수도 있다.
잠재력이 무궁무진한 괴물 같은 녀석이지만 그에게는 한 가지, 세상 사람들이 모르는 비밀이 존재한다.
“괜찮아. 속도 줄이지 말고 돌파해도 돼.”
“정말로?”
“그래. 대충 파이어볼이라도 던져.”
“고, 공격까지 하라고!? 그러다 반격이라도 당하면 어쩌려고!”
“나 한도령이야. 내 말 믿어서 손해 본 적 있어?”
“있지! 몬스터 웨이브에 직격으로 휩쓸려서 죽을 뻔했잖아!”
“…아무튼 믿어봐.”
김아준은 마지못해서 파이어볼을 던졌다.
“앗! 비, 빗나갔어!!”
불안한 정신상태 때문에 김아준이 천 번에 한 번 저지를까 말까 한 치명적인 실수를 저질렀다. 최미나와
라이온마저 경악을 금치 못하며 탄식을 내뱉었다.
“어어??”
근데 빗나간 파이어볼을 향해서 구룡환의 다리가 질질 끌려가는가 싶더니, 대뜸 온 몸으로 파이어볼에 맞
았다.
적중과 동시에 놀라운 마력운용으로 불길을 꺼뜨리기는 했지만, 그대로 허공을 붕 날아가서 차량 두 개를
⼤박살내고 자로 처박힌 채 고개를 축 늘어뜨렸다.
“뭐, 뭐야. 우리 비실이 초능력이 저렇게 강했어? 딱 봐도 B+급 위력이 아닌데?”
“대장도 참. 눈치 없어? 저 쭉정이가 위기상황에서 초능력 등급이 오른 거잖아! 설마 맞는 대상이 파이어
볼에 제 발로 딸려오는 흡입탄을 날리다니, 엄청난 실력이라고!”
최미나와 라이온은 정말로 김아준이 강해진 줄 알고 연신 감탄했으나 정작 놀라운 위력을 보인 당사자는
어리둥절하며 의문을 감추지 못했다.
“아니, 저게 뭐지? 왜 내 초능력이 저렇게 강해보이지? 분명 평소보다 더 못했었는데…”
“됐어. 이제 능력 쓰지 마.”
“도령. 너 이거 어떻게 된 건지 알아? 뭔가 잘못된 것 같은데 이해가 안 된다고.”
나는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
“저거 연기다.”
“뭐!?”
“일부로 우릴 보내준 거라고.”
최미나와 라이온이 이번에는 날 보며 감탄했다.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적의 현장지휘관을 포섭했다고?”
“젊은 소령님 너무 유능하잖아!”
당연히 그것도 착각이다.
포섭이고 뭐고 구룡환은 연락처도 모른다.
스마트워치에서 기존에 쓰던 단톡방도 한참 전에 나갔다.
“다들 이거 어디 가서 말하면 안 됩니다.”
“뭔데 그래?”
“구룡환은 빌런조직의 간부입니다.”
최미나와 라이온, 김아준이 일제히 입을 쩍 벌렸다.
“그, 그게 정말이야?”
“십대세가의 후계자가 실은 빌런조직의 간부라고?”
“잘나가는 도련님이 도대체 뭐가 아쉬워서?”
구씨세가의 가주이자 구룡환의 부친인 구룡마, 그가 빌런조직의 보스이자 빌런협회의 간부이기 때문이
다. 물론 아무리 나라도 거기까지 이들에게 알려줄 생각은 없다.
이건 알고 있는 게 오히려 위험한 정보여서 언제 이들의 목숨이 위태로워질지 모르기 때문이다.
‘원작에서는 이진태가 빌런협회의 끄나풀을 잡고 올라가다가 이 비밀을 알게 되고 구룡환과 싸우게 되었
지.’
이진태는 그야말로 죽을 고비를 넘긴 끝에야 간신히 구룡환을 죽일 수 있었다. 도저히 힘의 가감을 둘 수
있는 상대가 아니었기에 벌어진 살인이었다.
당연히 그 결과로 구룡환의 부친인 구룡마를 적으로 두게 되었고, 오랜 동료인 로리 헤더웨이가 보복살인
을 당한다.
‘지금은 아예 그 이진태 팀이 빌런협회에 가세해버렸으니 완전히 별세계 얘기가 되어버렸지만.’
아무튼 구룡환은 빌런들에게 친화적인 인물이고 우리가 빌런협회의 영역에 진입하는 일을 그리 꺼려하
기는커녕 은근히 돕기까지 하고 있다.
현장지휘관인 그가 일격에 처참한 패배를 겪는 모습을 봤으니 잔뜩 모여있던 마법계열 초능력자들도 죄
다 얼어붙었다.
“가까이 오지 마! 오는 놈은 저놈처럼 다 날려주겠어!!”
김아준이 짐짓 위협스레 파이어볼을 만들자 히어로들이 움찔하며 몇 걸음씩 물러섰다.
“뭔가 느껴지는 기세는 약한데.”
“그게 속임수일지도 모르지. 구룡환 간부가 당했다고.”
“이건 위험해. 실력을 가늠할 수도 없는 강적이야.”
김아준의 실력과 실제로 벌어진 결과의 괴리감이 협회 병력을 더욱 움츠러들게 만들었다. 덕분에 우리는
빌런협회의 영역인 익산시로 무혈입성 할 수 있었다.
“와하하, 대단한데 형씨들!”
“새로운 빌런은 언제나 환영이라구!”
“휘유. 몇 명 죽이고 온 거야?”
국경을 지키던 빌런들이 친근감을 보이며 말을 걸었다.
“31명.”
“오우야. 용케 목숨 건졌네.”
“빌런협회에서 출세하면 우리도 기억해달라고!”
친근감 너무 과해.
부담스러운 인사를 무시하며 전라북도에 진입했다.
목적으로 삼은 전라도에는 진입했지만…
“이제 어떻게 찾지?”
“그러게.”
모래사장에서 바늘 찾기가 따로 없다. 전라도 어부 중에 신진수 찾기의 난이도가 그 정도로 높지는 않아
도 무진장 막막한 건 사실이었다.
“일단 해안가 주변으로 돌아다니면서 낚시하는 사람은 다 찾아가볼까?”
“주먹구구식이지만 일단은 그래야겠어.”
해안도로 밑으로 방파제가 마구 뒤엉켜있는 광경을 지켜보며 정찰을 이어나갔다.
“으으. 여긴 어디지?”
반사적으로 뒤통수를 쳐서 기절하려고 돌아봤다.
인질이 아니라 김일식이었다.
“전라도. 국토횡단에 성공했다.”
“황당한 녀석… 김철괴는 어디에 갔지?”
“떨어졌다. 자력으로 합류할 거다.”
김일식이 마른기침을 했다.
“바다바람은 환자에게 그리 좋지 않군.”
“미안. 트렁크 문짝을 던져서 어쩔 수 없어.”
“내 옆에 쓰러져있는 놈들은?”
“인질.”
“행선지를 노출해서 좋을 건 없을 텐데.”
“나중에 김철괴랑 교환할 수 있지 않을까 싶어서.”
김일식이 속을 알 수 없는 눈으로 나를 빤히 쳐다보았다.
그러고는 고개를 저었다.
“김철괴는 S급 초능력자다. 그 가치를 감안하면 이딴 인질하고는 교환거리가 되지 못해.”
“다른 교섭의 재료로 써먹을 수 있지 않겠어?”
“어떤 교섭을 바란 것이든 간에 이놈들을 데리고 다니는 위험이 훨씬 더 크다.”
“그럼 어떻게 하자고.”
“처분해야지. 직접 죽이거나, 빌런협회에 팔아넘기거나.”
너무나도 자연스럽게 나온 ‘처분’이라는 말에 김아준이 크게 동요를 드러냈다.
“저, 정말로?”
“뭘 이제 와서 놀라는 거냐. 너희가 여기까지 오면서도 한두 명을 죽인 게 아니었을.. 쿨럭, 컥, 커흑!”
입가를 가린 옷소매에 피가 묻어나왔다.
각혈한 건 김일식인데 표정은 김아준이 더 안 좋아졌다.
“괜찮아?”
“니 걱정이나 해라. 심약한 녀석.”
“어쩔 수 없다는 건 알고 있어. 이왕이면 죽이지 않아도 될 사람은 살려도 괜찮지 않느냐는 말이지. 도령
이도 그래도 된다고 하면서 인질로 잡았던 거고.”
“오면서 쓸데없는 소리만 안 했으면 입막음을 할 필요는 없을 거다. 빌런협회에 넘기면 돈이든 정보든 대
가도 얻을 수 있으니 더 좋겠지.”
“뭔가 우리 범죄그룹처럼 변해버린 것 같네.”
딱히 틀린 말은 아니기에 아무도 반박하지 않았다.
김아준은 평소의 실없는 웃음조차 짓지 못했다.
“그래서, 지금 어디로 가는 길이냐.”
“해안도로에 어부 있나 찾아다니는 중이다.”
“후우… 이래서 멍청이들이란. 이 시국에 그런 천하태평한 어부가 있겠냐? 있다고 해도 사람들 눈에 띄게
해안도로에서 낚시를 하겠어? 인적 없는 곳에서 해야지.”
“인적 없는 곳이 어디에 있는데?”
“섬.”
“섬 어디?”
“신안군처럼 작은 섬이 많은 군도.”
라이온이 물었다.
“거기 주민들은 여행자 납치하고 감금해서 강제노동 시키고 그러지 않아?”
“걔들은 우리가 더 무서울 겁니다. 정체불명의 고등급 초능력자 여럿이 사람 찾는다고 들쑤시러 찾아왔
으니까.”
“그런가?”
역시 무리에는 머리 쓰는 사람이 한 명쯤은 있어야 한다. 김일식이 지침을 정해주니 삽질에 들일 시간이
줄었다. 우리는 가까운 섬마을과 이어진 해상도로를 향해서 차를 돌렸다.
“전 이쯤에서 가도 될까요?”
“요즘 배 좋아요. 차도 다 실을 수 있어.”
“아으으.”
대리기사는 은근슬쩍 탈출하기에 실패했다.
[3회차] 얼굴보기 힘든 그 인간
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