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nemy of the Greatest Psychic Ever RAW novel - Chapter 121
120 – [4회차] 아카데미 생도( )
뛰어난 신체특성을 다수 지닌 덕분에 나는 수업시간에 아주 조금, 가볍게 힘을 쓰는 것만으로도 심상치
않은 잠재력을 보일 수 있게 되었다.
근력측정기를 가볍게 툭 밀었는데 앞서 낑낑거리며 밀던 녀석보다 2.5m는 더 멀리 날아갔다.
“하, 한도령 4.5m!”
“와아, 쩔어!”
“방금 건성으로 친 거 아니야? 장난 아니게 세잖아!”
시험을 감독하던 F반 담임마저 평상시의 건방지고 무례한 태도 대신 진지한 어조로 요구했다.
“한도령! 진지하게 다시 해봐라. 네 재능은 아무리 봐도 F반에서 끝날 수준이 아니다.”
“싫다.”
“뭐, 뭐라고!? 지금 내 말에 토를 단 거냐!”
“그래, 토 달았다.”
“너 이 자식, 감점 10점!!”
물론 담임의 성격을 아는 나는 교묘하게 감점을 유도해서 갑작스레 월반이 되는 상황을 저지할 수 있었
다. 윗반으로 갈수록 지금 보여준 힘은 그냥 지닌 놈들도 심심찮게 존재한다.
태도도 불량하고 F반 출신인 나를 굳이 반드시 윗반으로 올려야 할 이유는 없는 것이다.
“야, 이민지. 오늘도 수련이냐?”
“응? 어, 어…….”
말을 건네면 주변 생도들이 수군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저 양아치는 왜 맨날 민지한테만 말 걸어?”
“좋아하나보지.”
“내가 민지보다 몇 배는 더 예쁜데……!”
안 예쁘다. 그보다 외모 이전의 문제다.
1회차의 일을 모르는 이들은 평생 이해할 수 없겠지.
“훈련실로 들어가서 얘기하자. 훈련 봐줄게.”
“음… 좋아! 도령이는 강하니까. 헤헤.”
훈련실로 자리를 바꾸자마자 나는 진지한 표정을 지으며 손바닥 뒤집듯이 말을 바꾸었다.
“솔직히 말해서 근력운동은 너한테 어울리지 않아.”
“완전 충격! 너무해. 훈련 봐준다고 했으면서!”
“몸을 쓰는 무투계열 초능력자들은 어렸을 때부터 근력이나 근골이 비범하고 무기술에 조예를 보여. 너
한테는 보이지 않는 재능들이야.”
“아직 각성도 안 했는데 어떻게 그런 걸 알아? 예외사례는 각성수업에서 도령이도 봤잖아.”
“음… 보기는 했지.”
초능력의 각성은 특정 [트리거]를 충족시키면 한 순간에 찾아오는 방식이다. 가령 아령을 1만번 쉬지 않
고 연속으로 들어올린다거나, 1 대 17로 싸운다거나 하는 식이다.
까다로운 조건이 달린 능력들은 개성이 뚜렷하고, 수수한 조건의 능력은 범용성이 뛰어나다.
‘나랑 민지의 초능력 트리거는 결국 못 찾았지만.’
지금은 민지의 초능력을 각성시키는 게 중요한 상황이 아니다. 어떻게든 민지를 설득해서 3개월 만에 같
이 아카데미에서 자퇴하는 일이 최우선이다.
“아카데미에서 하는 말을 전부 믿어서는 안 돼.”
“무섭게 갑자기 왜 그래?”
“C급 이하의 졸업생 중 공적활동을 하지 않는 선배들의 대다수가 연락두절이나 행방불명자가 된 거, 알
고 있어?”
실제로 그런지는 모르지만 오성이 암중에서 움직이고 있다면 틀림없이 그러할 거다. 가문의 지원을 받는
놈들은 살아남고, 그렇지 못한 놈들은 희생양으로 낙점되어 죽겠지.
“진짜 그만해. 이런 거 무섭단 말야.”
“무서워도 들어. 중요해서 하는 말이니까.”
나는 친구에게 아카데미에 대한 근본적인 불신을 심어주었다.
“담임한테 들었어. 너도 나처럼 오성에 선택받아 입학한 전액장학생이라고.”
“도, 도령이 너도?”
“그래. 배경이 있는 다른 생도들은 몰라도 우리처럼 아무런 배경도 없는 장학생들은 특히 조심해야 해.”
“우리 가능성을 높이 봐줘서 지원을 해주는 고마운 분들이야. 이런 식으로 나쁘게 말해서는 안 돼.”
“정말로 순수한 마음으로 지원을 했다면 그렇겠지. 이대로 졸업까지 노력해서 초능력을 각성하고 힘을
얻은 들, 그 결말이 희생양이 되는 거라면 난 사절이야.”
민지가 의심어린 시선으로 나를 째려보았다.
“도대체 어디서 무슨 소리를 듣고 와서 이러는 거야?”
“입학 전에 따로 시간을 낸 적이 있어.”
“그래서?”
“졸업생을 찾아가서 뭘 하고 사는지 들었지. 그런대로 나쁘지 않은 선배였어. 하지만 한달이 지난 뒤에는
연락이 두절되었고, 시설관계자들도 행방을 알 수 없다고 했지.”
“그게 뭐가 어때서. 일 그만두고 다른 곳으로 옮겼을지도 모르는 거잖아.”
“내가 찾아갔던 선배는 전부 세 명이야. 셋 모두가 이주에서 최대 한 달 사이에 연락이 끊겼다고. 넌 이게
진심으로 별 거 아닌 정상적인 일이라고 생각해?”
이민지가 오한을 느꼈는지 몸을 부르르 떨었다.
제 팔뚝을 손으로 매만지며 공포에 질린 눈을 보였다.
“우린 아직 갓 입학한 새내기에 불과해. 오성이 무슨 짓을 꾸몄는지는 몰라도 도망치려면 지금밖에 없어.
철없는 새내기가 제 꿈을 버렸다고 여기게 만들어야 해.”
“싫어. 난 아카데미에 남을 거야.”
“어째서! 정말 죽고 싶어? 정확히 무슨 짓을 하는지는 몰라도 졸업한 뒤의 말로가 어떤지는 너도 알게 됐
잖아!”
민지는 울먹이며 내게 따졌다.
“나라고 안 무서운 줄 알아? 무서워. 무섭다고. 그래도 할 수밖에 없잖아. 한 번 뿐인 기회란 말이야.”
“이민지…”
“우리나라 최고의 교육기관에서 고아인 날 골라줬다고. 애비애미도 없는 년이라고 욕하던 고아원 원장
앞에 초능력자가 되어서 당당하게 돌아갈 수 있는 유일한 기회인걸.”
그녀의 한탄을 듣고 나서야 깨달았다. 내게는 원작소설 속의 세계란 2021년 1월 1일부터 시작되지만 이
세계의 거주민들에게는 그 이전의 시간도 존재했다.
각자의 삶이 있고, 과거가 있었다.
한 사람의 인생을 바꾸기 위해서는 그들의 삶 전체를 이해하고, 과거에 내린 선택을, 결심 그 자체를 바꾸
어야 한다. 지금의 이민지를 설득하기 위해서는…
“복수하고 싶어?”
“…!”
“원한다면 내가 도와줄 수 있어.”
고아원 원장 앞에서 성공한 자신을 보이며 멸시하든, 힘으로 겁박하든, 아예 그를 죽이고 이 세상에서 없
애버리는 일이든 지금의 나라면 가능했다.
짜악!
이민지는 그런 내 제안을 앙칼진 싸대기 한 번으로 거절했다. 눈물을 방울방울 매단 그녀가 나를 노려보
았다.
“남 일이라고 가볍게 말하지 마. 너랑 난 달라. 재능도 있고 뭐든지 될 수 있는 그런 아이잖아. 아직 아무
런 재능도 찾지 못한 잠재력뿐인 날 흔들고 괴롭히지 말란 말이야!”
훈련실 문을 열고 달려 나가는 그녀를 붙잡을 수 없었다.
거절당했다.
당연히 그녀라면 내 손을 잡아줄 거라고 생각했는데.
지금껏 단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일이었다.
친구는 언제나 내 편이었다.
그녀와 보낸 1회차의 기억은 아직도 잊을 수 없다.
힘겹지만 즐거운 시간이었다.
이제 그 추억을 떠올리는 건 나 혼자뿐이다.
“…….”
나는 이를 악물고 힘껏 손을 휘둘렀다.
빠아악!
이민지의 가녀린 싸대기와는 소리부터 다른 묵직한 주먹.
그런 주먹으로 내 볼을 때리자 정신이 번뜩 들었다.
고작 이런 일로 주눅 들어서는 안 된다.
설령 내 노력을 그녀가 몰라준다 한들 그래도 상관없다.
내가 기억하고 있으면 된다.
훈련실을 나서자 깜짝 놀란 생도들이 시선을 돌렸다.
‘귀찮은 소문이 나겠군.’
나는 으름장을 놓았다.
“나와 민지 사이의 일에 대해서 함부로 지껄이지 마라. 걸리면… 곱게는 안 끝난다.”
한 손으로 붙잡은 악력기가 불길한 소리를 내더니 뚝 하고 끊어졌다. 부러진 악력기를 내던지자 생도들이
경악하는 소리를 내며 뒷걸음질 쳤다.
아카데미에서의 귀중한 석 달 중 첫 달은 그런 식으로 지나가고 말았다.
“이민지.”
“저리 가. 너랑은 할 말 없어.”
그녀는 나와의 대화를 철저히 피했다.
이대로는 안 된다.
나는 특단의 대책을 세울 필요성을 느꼈다.
어떻게 하지?
어떻게 하면 민지를 설득할 수 있지?
한참 고민하던 도중, 익숙한 일자머리가 다가왔다.
김일식이었다.
“너, 승급 안할 거냐?”
“뭐?”
“승급 안할 거냐고. 왜 일부로 감점을 받고 있지?”
니가 신경 쓸 일이 아니라고.
그렇게 퉁명스레 답하려던 것을 멈추었다.
김일식.
3회차의 이놈은 내가 생각하던 것보다 똑똑한 녀석이었다.
자력으로 B반, 나아가 A반까지 올라간 놈이다.
전형적인 책사라고 부를 수 있는 타입의 인재.
그라면 분명 적절한 조언을 해줄 것이다.
“승급할 생각은 없다. 오히려 자퇴할 작정이다.”
“진짜냐? 도대체 너 정도의 재능충이 뭐가 아쉬워서 자퇴를 하려는 거냐. 이해가 안 되네.”
“나는 오성의 비밀을 알고 있다.”
잠시 고민했다. 이 비밀을 회귀 초기에 김일식과 공유하는 것이 정말 옳은 선택인지에 대해서.
이내 결론을 내렸다.
한 번은 믿어도 된다. 배신당하면 다음 회차부터 김일식을 믿지 않으면 그만이다.
‘김일식은 3회차의 동료 중 한 사람이었어.’
마지막 여정까지 함께 하지는 않았을 지라도 4년하고도 몇 개월을 한 팀으로 다녔다. 그런 김일식도 믿지
못하면 이 세상에 어느 누구를 믿을 수 있겠는가.
“졸업생 중에 C급 이하의 초능력자들은 오성에 막대한 빚을 짊어지고 채무금액을 삭감하는 조건으로 비
밀시설이나 특수부대에 취직하게 된다.”
“오. 정말이냐?”
“그리고 모두 죽는다. 연구시설에 가면 실험체로 몇 년을 굴림당하다가 죽고, 특수부대에 가면 석 달 내
로 단 한 명의 예외도 없이 전부 임무에 투입되어 소모된다.”
김일식의 표정이 빠르게 굳었다.
“그런 정보를 어떻게 네가 알고 있지? 그게 진짜라는 보장은 있냐? 네가 날 놀리려고 하는 농담이 아니라
는 증거 말이야. 직접 확인하지 않으면 믿을 수 없는 이야기인데.”
“희생되기 전의 졸업생 선배에게 들은 주소지가 하나 있다. 직접 가보지는 말고 사람을 고용해서 조사해
라. 기록에 남지 않는 방식으로 은밀하게.”
“…알았다. 알아보고 만일 그게 사실이라고 확인된다면, 그때 가서 다시 연락을 주지.”
주소지를 받은 김일식은 세상에서 가장 충격적인 비밀을 깨달은 사람처럼 얼굴을 굳혔다.
그날 이후로 날마다 김일식을 붙잡고 조사를 마쳤냐며 확인하고 싶은 충동이 일었지만, 나는 최대한 평정
을 유지하고자 노력하며 그가 먼저 접촉하기를 기다렸다.
기다림의 시간은 그리 길지 않았다.
불과 일주일 만에 김일식이 내게 먼저 연락했다.
“확인은?”
“했다. 깊게는 못 들어갔지만 시설에 드나드는 차량부터 역순으로 조사하면서 어느 정도는 상황을 파악
했지.”
“이제 내 말을 믿을 수 있겠냐?”
“믿는다. 설마 오성이 이런 일을 저지르리라고는 생각지도 못했지만……. 직접 조사까지 한 마당에 더는
현실을 외면해서는 안 되겠지. 너, 자퇴한다고 했었냐?”
“그래.”
“자퇴하면 그 다음의 계획은 있고?”
솔직히 없었다.
그래도 정해둔 방침은 존재한다.
‘원작의 조연들이나 이진태가 밖에서 챙길 몫들은 하나도 건드리지 않겠어.’
3회차의 이진태가 지구에 머무르는 것에 싫증을 내고 본래 세계로 돌아가려 대학살을 저지른 계기.
그건 너무나도 빠른 속도로 대한민국이 멸망한 것도 있지만, 그 이전에 자신의 뜻대로 만사가 풀리지 않
아서 사소한 일상부터 스트레스가 누적되었기 때문일 가능성도 존재한다.
범죄조직 몇 개 털어먹는답시고 세계제일의 또라이 이진태가 대재앙을 일으키는 참변을 되풀이할 수는
없다.
‘히어로로 활동해서도 안 된다.’
히어로협회 소속이 되어 아무리 등급을 올린다한들, 때가 되면 의무의뢰전을 수행해야 한다.
뛰어난 실적을 거둔 내 팀을 히어로협회는 사지나 다름없는 강진혁 호위임무로 돌렸다. 지원은 사실상 없
다시피 했고 현지 경찰병력의 자체적인 협력을 얻은 수준에 불과했다.
B반이나 A반 동료들도 없는 지금, 그 정도의 위기를 겪는다면 헤쳐 나가기는 극도로 어렵다.
‘무엇보다도 양지에서의 활동은 오성 아카데미에 걸릴 가능성이 높아. 그러니 남는 건…’
하나밖에 없다.
“음지에서 활동한다.”
“음지라… 하긴. 대놓고 활동하기는 좀 그렇지. 명문 중의 명문으로 손꼽히는 오성 아카데미가 뒤로는 그
딴 시설에 생도들을 넘기고 있었는데.”
“인재를 모아서 빌런조직을 결성할 거다.”
“진짜로 악행을 하려는 건 아니지?”
“물론이다. 날 뭘로 보는 거냐. 돈이나 모으고 욕망에 충실하게 살 작정이었으면 오성의 더러운 수작질
따위는 눈 감고 못 본 척 하면 그만이었다고.”
이번 4회차의 나라면 모르긴 몰라도 A급 히어로까지는 순식간에 오를 수 있을 터. 잘만 하면 아카데미에
재학 중인 4년 이내로 S급도 노려봄직하다.
전도유망한 젊은이로서 창창한 미래가 기다리고 있는 길을 나는 직접 걷어찼다.
원작주인공들의 일상에 개입해서 대참사를 일으킬 여지를 없애기 위해서, 그리고 오성 같은 더러운 놈들
이 운영하는 아카데미에서 친구를 안전하게 빼돌리기 위해서였다.
“훗. 좋은 의미로 내 눈이 틀렸군. 넌 내가 예상한 것보다 더 거물이 될 것 같다.”
“내가 거물이 될 거라고?”
“그래. 왠지는 모르겠지만 네게선 상당한 경험을 쌓은 베테랑 히어로들의 관록이 엿보인다. 전문용병 특
유의 살벌한 기세도 은연중에 느껴지고.”
“그럴 리가 있겠냐. 나도 너희처럼 이제 막 15살인데.”
“그렇지. 그래서 널 더 주목했다. 처음엔 힘만 센 재능충이다 싶었는데 보면 볼수록 뭔가가 더 있어. 이번
조사를 마친 뒤에는 그런 생각이 더 커졌다.”
잠시 후, 김일식은 생각지도 못한 제안을 했다.
“날 네 조직에 영입해라. 머리 쓰는 일이라면 나름 뛰어난 편이라고 자부한다.”
“너, 앞으로 내가 뭘 할 줄 알고 그러는 거냐?”
“뭐든 오성에 남는 것보다는 낫겠지. 아니면 빌런조직에는 책사 같은 건 필요 없다 이거냐?”
그럴 리가.
“기꺼이 환영하마.”
그렇게 나는 4회차 최초의 동료로 김일식과 손을 잡았다.
—
같은 소제목, 다른 느낌
[4회차] 아카데미 생도
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