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nemy of the Greatest Psychic Ever RAW novel - Chapter 134
133 – [4회차] 괴리감( )
흐드러지게 핀 벚꽃도 저물어가는 어느 봄날의 끝 무렵.
시커먼 장정들이 아지트 문을 두들겼다.
“상납금 바치러 왔수다!”
조직원 둘이 불퉁한 표정을 지으며 가방백 하나를 내려놓았다. 이정수가 냉큼 달려와서 지퍼를 열고 돈다
발을 꺼내 지폐계수기에 꽂아 넣었다.
드르르르륵.
빠르게 올라가는 숫자를 쳐다보거나 백과 지폐계수기, 현금보관함을 오가는 지폐를 눈동자로 쫓고 있자
니 마찬가지로 조직원들 뒤에서 눈을 굴리던 요지석이 입을 열었다.
“그쪽은 뭣 하러 범죄조직을 꾸리는 건데?”
“음?”
“수금하러 온 처지에 이런 말하기도 우습지만 막상 돈 되는 도박일은 못하게 하고 돈 안 되는 치안확보 일
만 계속하잖아. 이럴 거면 히어로사무소나 차릴 것이지.”
“이유가 있다. 네 입장에선 다행인 거 아니냐? 내가 히어로였으면 니넨 진즉에 체포되었을 테니깐.”
“…그걸 생각 못했네. 히어로사무소 차릴 생각 말고 평생 범죄조직이나 꾸려라. 완전 천직이 따로 없네.”
저렇게 멍청한 놈도 황벌파 파벌보스라는 점에서 지방조직의 한계가 보인다. 서울 근교였으면 빌런조직
의 일개파벌을 책임지는 파벌보스만 해도 A급 초능력자는 된다.
정용인의 조직 기준으로는 [쾌검술사]나 [빙결술사]급은 되어야 한다는 말이다.
“봉성군에서 당장 움직임은 없고?”
“없다.”
“치안은?”
“문제가 생겼다.”
“그건 좋지 않은 소식인데. 무슨 문제가 생겼지?”
요지석이 뭣 씹은 표정을 지으며 대답했다.
“우리 영역에 소형던전이 하나 열렸다.”
“미친. 추정등급은?”
“알까보냐. 보고했던 조직원도 셋이 가서 하나만 돌아왔는데.”
“던전 생성 당시에 현장에서 목격했던 거냐?”
“돌아온 놈이 목격자다. 신종 몬스터를 봤다고 하더군.”
벌써부터 느낌이 안 좋다.
그렇다고 이대로 방치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최대한 빠른 시일 내로 손을 쓰겠다. 너희는 엄한 놈들이 들락거리다가 피해자 늘리지 않도록 현장단속
만 부탁한다. 폭력배들이 민간인 통행방해 한다고 SNS 안타게 조심하고.”
“말이라고 하냐? 허참, 이놈 나이는 15살밖에 안 된다면서 말하는 거 들어보면 산전수전 다 겪은 빌런이
따로 없네.”
상납금 확인을 마친 뒤, 요지석 패거리는 현장단속을 하러 나갔다. 나는 동료들을 불러 모아 긴급회의를
열었다.
“우리 영역에 소형 던전이 열렸어. 아직 정확한 진술은 듣지 못했지만 생존자 겸 목격자가 한 명 있고, 초
기대응에 나서려면 이번 주 내로 손을 써야해.”
“굳이 우리가 가야해? 더, 던전은 위험하다고 들었는데. 아카데미에서도 절대 들어가지 말라고 배웠다
고.”
“그거야 F반일 때 얘기지. 솔직히 말해봐. 이정수, 1년 간 단련을 마친 지금의 네가 오성 아카데미 F반 생
도들보다 뒤처질 거라고 생각 하냐?”
이정수가 발끈했다.
“절대 그럴 리가 없지!”
“그렇지? 그렇게나 훈련을 했는데. 너흰 이미 최소한의 전투력을 갖췄어. 저등급 던전이라면 충분히 공
략을 시도해볼 수 있어. 여차할 땐 내가 개입해도 되고.”
“우후후. 던전이라, 몬스터를 베는 감각은 어떨지 기대가 되네요. 마음껏 벨 수 있는 튼실한 놈도 있으면
좋으련만.”
주아름의 들뜬 목소리에 모두가 뜨악한 표정으로 그녀를 돌아보았다. 병상에서 겨우 일어나고도 그녀의
유혈본능은 전혀 가라앉지 않은 모습이었다.
오히려 한동안 운신이 불편했던 반동으로 피를 보는 일에 더욱 적극적으로 변했다.
“일단 나는 반대한다.”
김일식은 반대의견을 밝혔다.
“던전은 위험하다. 어떤 변수가 나타날지도 모를뿐더러 던전의 위험도는 전문가들도 쉬이 예측하기 어렵
고, 예측이 빗나가는 경우도 허다하다.”
“음. 그 말 자체는 맞는데 이건 범죄조직의 입장을 고수하기 위해서라면 무조건 공략할 수밖에 없어.”
나도 심정적으로는 김일식에게 동의한다.
그래도 소형던전이 그렇게까지 위험하다고 여기지는 않았다.
신진수의 특훈을 받은 경험이 쌓여있기 때문이다.
정말로 위험한 던전이면 내가 판단할 수 있다.
물러서야 할 때를 구분하는 것도 충분히 가능하다.
비상시에 퇴로를 확보할 시간을 벌 무력도 갖추고 있다.
“범죄조직이 민간인들에게 자릿세를 받고 공권력이 개입하지 않는 이유가 뭐라고 생각해?”
“매수당했으니깐.”
“그것과 더불어서 귀찮은 일이 벌어지면 범죄조직이 공권력이 나설 일을 대신 해결해주기 때문이야. 소
형던전은 충분히 그런 범주에 속하지. 심지어 우린 입막음도 안하고 있어.”
“여기서 물러나면 찍힐 거다, 이거냐?”
“십중팔구는 그렇겠지. 요지석과 우리를 몰아내려고 빌런조직 봉성군에서 공권력을 움직이려 들지도 몰
라.”
치안확보에는 아무런 도움도 되지 않으면서 민초들의 돈만 뜯어먹는 패거리로 낙인 찍혔다간 지역 소상
인들도 우리에게 자릿세를 주는 대신, 다른 파벌에 돈을 가져다 바칠 거다.
부패한 경찰들도 본격적으로 우릴 족치려 들기 시작하고 처지가 곤란해지겠지.
“후우. 그렇게까지 말한다면 어쩔 수 없지. 던전이 내 전문분야가 아니라는 것만 알아둬라.”
“괜찮다. 던전이라면 자신 있으니까.”
“너… 던전공략 경험이 있냐?”
“어딘지는 밝힐 수 없지만 경험은 있지.”
“진짜 뭐하던 놈인지 모르겠네.”
김일식이 새삼스레 감탄했다. 이정수나 송지애, 이민지는 역시 나라면 뭐든지 잘할 것 같았다면서 고개
를 끄덕였다. 주아름만이 마냥 칼질할 생각에 신났다.
“아, 너희들. 이왕 던전에 갈 거면 샘플보관함도 줄 테니까 여기에 몬스터들 체조직이나 혈액 좀 담아주
지 않을래? 마석이나 던전코어를 구해다주면 더 좋고.”
“M 바이오 연구라도 이어서 하려고요? 설비나 시설도 없는데 그런 건 받아서 어쩌려고요?”
“저렴한 기재는 사비 털어서 방에 들여다 놨지. 전문허가를 받은 의약품 생산으로 이어지지는 못하겠지
만 그럭저럭 효능이 있는 야매 의약품은 만들 수 있을지도 모른다?”
동료들이 큰 관심을 보였다.
“의약품이면 포션도 만들 수 있어요?”
“너네 무슨 트롤 잡으러 가니?”
“소형던전에서 트롤도 나와요?”
“나오겠니?”
“나오면 도망쳐야죠.”
“그럼 포션도 못 만들어.”
이정수가 몹시 낙담했다.
“어떤 의약품을 만들 수 있습니까?”
“일시적으로 시력이 상승한다거나, 손톱이 길게 자라난다거나? 소소한 초능력 하나를 일시적으로 보유
하게 된다고 생각하면 돼. 대부분은 신체성능개선과 관련되겠지만.”
“어떤 연구를 하셨는지에 대해서는 도령이한테 이미 들었습니다. 인체변형지수를 넘는 위험한 공식을 다
룬다고 하던데.”
“송 사장이 그런 것도 알려줬어?”
“스파이 의혹이 있던 핵심연구원들에 대한 프로파일링에 기재된 정보였습니다. 사장이 직접 그리 언급할
정도면 저희가 복용하기엔 위험할 것 같습니다만.”
“솔직히 말하자면 부작용이 조금 있어. 음, 조금은 아닌가? 조금 많이? 적당히 많이? 그냥저냥?”
부언설명이 길어질수록 김일식의 표정이 점점 굳었다.
민지가 애써 웃으며 끼어들었다.
“설마 엄청나게 위험한 걸 저희한테 먹이려고 하신 건 아니죠? 의약품은 임상실험도 필요하잖아요.”
“그걸 우리한테 시키겠다는 거야.”
“아.”
김일식의 말에 민지가 입을 닫았다.
역시나 스파이 1순위로 예상했던 위험한 연구원답다.
청담비가 어깨를 으쓱했다.
“얘들도 참. 부작용이라고 너무 겁먹는 거 아니야? 길어진 손톱이 줄어들지 않는다거나, 시력이 너무 올
라서 책을 못 읽는다거나 하는 소소한 부작용밖에 없다고.”
“…이미 듣기만 해도 생활이 불편해지고 있지 않아요? 그런 수상한 건 먹고 싶지 않으니 청대리님도 자제
해주세요.”
“송 아가씨도 참. 송 사장님 막내딸 아니랄까봐 꼭 닮은 소리만 하시네. 알았어요. 그렇게까지 복용하고
싶지 않으면 무리하게 강권하지는 않아요.”
송지애한테 대답하는 걸 들어보면 강권하지는 않겠지만 포기하겠다는 뉘앙스도 아니다.
“저희가 복용하지 않더라도 약품제조를 하려는 겁니까?”
“다른 곳에 팔면 돈이 꽤 될 텐데. 탐나지 않아?”
“그러다 송가제약한테 덜미 붙잡히는 거 아닙니까?”
“아무렴 중요기술을 다 가져다 쓰겠니? 적당히 기초기술만 응용해서 써먹어야지.”
“그럼 다행이고요. 그래도 판매처는 충남 밖으로 구해야 할 겁니다. 매드 사이언티스트가 여기에 있다는
소문이라도 퍼지면 악명 높은 빌런조직들이 우르르 몰려올 테니.”
이건 농담이 아니라 진담으로 하는 말이다.
빌런들도 우수한 연구인력의 중요성은 알고 있다.
실제로 양지의 기업으로 위장한 빌런기업도 있는 세상이다.
매드 사이언티스트는 빌런조직 섭외대상 1순위다.
어쩌면 흑막까지 그녀를 탐낼지 모른다.
그래도 본전을 보고 싶은 생각이 들기는 하다.
관련업계에서 그녀의 행방을 주목하고 있었으면 우리의 존재가 눈에 들어왔을 거다.
청단비를 받아들인 시점에서 이미 칠대기업이나 정부, 흑막에게 찍혔을 가능성이 미약하게나마 존재한
다는 뜻이다.
‘이왕 찍혔다면 돈이라도 조금은 버는 편이 좋겠지.’
‘가급적 안전한 선에서.’
다행히도 판매루트에 대해서도 떠오르는 곳이 있다.
3회차 시절, 카르멜 히어로사무소에서 입수한 판매처가.
「직접 도축해서 얻은 몬스터 부산물이나 마정석, 마정핵, 던전코어가 있다면 첨부된 업체에 연락하시는
게 좋을 겁니다. 원래 저희랑 계약하던 업체라서 신용은 있거든요.」
「거래업체는 해외법인기업인데 흔히 있는 페이퍼컴퍼니와는 다릅니다. 실제로 취급하는 물품은 마도
구, 흔히 말하는 아티펙트이죠.」
「메르의 소개로 연락드렸다고 하신 뒤에 장기거래와 단기거래 유무에 따라 단가가 다르다는 점을 알고
있다고 말하시면 됩니다. 이후에는 협상유무에 따라 판매가가 달라지겠죠.」
물론 3회차에서 보장받았던 ‘소개’는 이번 4회차에서 사용할 수 없다.
카르멜 히어로사무소에서 소개를 보장받지 못한 지금, 그들의 암구어를 사용했다간 졸지에 정보유출로
혐의를 받게 된다. 특히나 그쪽에서는 정용인이 뒤통수를 칠 예정이다.
가뜩이나 내부에 배신자도 있을지 모르는 마당에 내부인들의 정보를 써먹은 빌런조직이 타 지역에서 나
타났다?
‘내가 곽재우나 아담스미스라면 당장 충남 아산시까지 찾아가겠지. 패거리를 이끌고.’
곽재우는 A+급 초능력자 중에서도 상당히 완숙한 경지에 도달했다. 업계의 7년차 대선배인 그가 직접 움
직인다면 지금의 내 동료들 수준으로는 떼죽음을 면할 수 없다.
설령 운 좋게 죽을 고비를 넘기고 나쁜 의도가 없었음을 알릴지라도 의혹을 완전히 떨쳐내지는 못하겠지.
‘애초에 범죄조직을 가장한 시점에서 히어로사무소에게 찍혔다간 그대로 파멸이다.’
일의 성사가 어찌 되든 간에 득이 되지는 않을 것이다. 고로 야매 의약품을 제조한다면 소개장과 무관하
게 쌩으로 교섭을 시도해보아야 했다.
일단은 이 사실을 혼자만 기억해두고 청단비에게 기회가 된다면 샘플을 구해다주겠노라 약속했다.
“우후후, 출정의 때가 되었어요!”
“으으. 역시 무서워.”
“이정수. 사내답지 못하게 약한 소리 하지 말아요!”
주아름의 채근에 이정수가 도축장에 끌려가는 소 마냥 측은함을 불러일으켰다. 민지랑 송지애도 얼굴 위
로 두려움이 엿보이기는 했지만 서로를 돌아보고는 없는 용기도 쥐어짜냈다.
“던전공략 까짓것 해보지 뭐!”
“차대리님에게 샘플을 주기로 약속했으니 어쩔 수 없네요.”
처음엔 거부감을 보이면서도 막상 실전을 앞둔 지금, 긴장하는 모습을 보이지 않는 사람이 하나 더 있었
다.
“김일식. 넌 안 무섭냐?”
“쫄릴 거 뭐 있냐. 너가 있는데.”
“날 그렇게 믿어?”
“죽을 것 같으면 널 몬스터 먹이로 던져버릴 거야.”
“…너무하잖아 그건.”
북적거리는 우리의 모습에 요지석이 조금 어이없어했다.
“어디 피크닉 가쇼? 아주 난리들 나셨네.”
“그럼 죽을 상 짓고 갑니까?”
“니들 공략 실패하면 우리도 엿되니까 하는 말이지.”
요지석은 이미 나와 손을 잡았다. 여기서 덜컥 던전에 들어간 우리 파티가 전멸이라도 했다간 졸지에 빌
런조직 봉성군에 자기들만 노출되게 된다.
당연히 그 결과는 개죽음으로 직결될 터. 요지석 입장에서는 나나 내 동료들이 죽는 상황은 반드시 피해
야 했다.
“이틀 지나면 구조대 보낸다?”
“그 안에 끝낼 겁니다.”
목격자의 진술대로 소형던전이 맞으면 길어봤자 하루 이내로 던전공략을 끝낼 수 있다.
우리는 마지막으로 각자의 짐과 무장상태를 점검하고는 뒷골목에 자리한 입구로 발을 들
였다. 4회차 최초로 시도하는 던전탐사이자 몬스터와의 전투의 시작이었다.
[4회차] 괴리감
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