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nemy of the Greatest Psychic Ever RAW novel - Chapter 135
134 – [4회차] 괴리감( )
하수도 던전은 뒷골목의 맨홀뚜껑 위로 나타난 점액질의 괴물을 통해서 그 존재가 알려졌다.
점액질 괴물이라는 말에 너무나도 당연하게 슬라임을 떠올렸던 우리는 그 괴물을 눈앞에 두고 나서야 커
다란 배신감을 선사받았다. 괴물은 슬라임이 아니었다.
“이게 뭐야?”
“인간형 슬라임?”
“완전 징그럽게 생겼네.”
흐느적거리는 인간형체의 점액질 괴물.
그것을 유심히 지켜본 끝에 나는 확신할 수 있었다.
‘이건… 기억에 있다.’
신종몬스터가 아니다.
분명 정부의 비밀연구소에서 본 녀석들이다.
“엑토플라즘.”
“뭐?”
“그게 이 몬스터의 이름이다.”
엑토플라즘Ectoplasm.
인간의 영혼을 형상화한 존재를 본따 붙인 이름이지만, 어딘지 모르게 성스러운 이미지가 드는 이름과 달
리 그 실체는 이목구비 없이 팔다리 달린 점액질 괴물이다.
“통상 전투대열로!”
집단전에 대비해서 진열훈련은 평상시에 시켜두었다. 명령이 떨어지자마자 재빨리 각자 서야 할 위치로
자리를 옮기며 검이나 방패, 창, 석궁을 들었다.
제일 선두에는 방패를 든 내가, 측면 뒤로 검을 든 주아름이, 그 뒤로 창을 든 민지와 송지애가, 마지막으
로 석궁을 든 김일식이 엑토플라즘을 노려보았다.
“주아름은 사지와 몸체의 절단을 시도하고 민지와 송지애, 김일식은 몸체 안에서 보이는 붉은 핵을 찾아
서 부숴야 해.”
“바로 시작하나요?”
“그래.”
주아름의 검이 엑토플라즘의 왼팔을 절단했다. 놈이 허우적거리며 다가오는 걸 방패로 강하게 밀쳐서 뒤
로 튕겨냈다.
민지와 송지애가 핵을 찾아서 쓰러진 엑토플라즘의 몸체에 창을 마구 찔러 넣는 사이에도 김일식은 침착
하게 석궁의 조준자세를 유지했다.
핵은 연달아 절단된 오른팔 손바닥 안에서 발견되었다. 김일식의 석궁사격이 핵을 부쉈다.
“우왓, 녹아내리잖아!”
“다들 물러서. 목숨이 위험할 정도는 아니지만 저런 게 피부에 닿아서 좋을 건 없어.”
만약에 대비해서 후방에서 상황을 지켜보던 이정수가 식은땀을 흘렸다.
“이거 보스몹 맞지?”
“맞겠냐? 초입부터 나타나는 이런 약해빠진 놈이.”
엑토플라즘은 거리를 허락하거나 직접 붙잡힌 경우에는 피부가 떨어져나갈 정도로 강한 접착력을 보인
다.
그렇기에 적당한 거리를 확보하며 핵을 찾아 파괴하면 지금 상대한 것처럼 손쉽게 해치울 수 있다. 애초
에 암살자의 통찰력으로 단번에 핵을 찾아 부수면 교전도 생기지 않는다.
‘예전엔 나름 실전에서 좋은 훈련거리가 되어주었지.’
신속한 판단력과 냉철한 관찰력, 일격에 핵을 파괴하는 관통력 등을 연마하기에 이보다 좋은 몬스터도 드
물다.
“검의 부식정화 기능이 작동했어요.”
“우우. 창날은 아예 녹슬었어.”
“이번엔 경험삼아서 한 번 상대해보라고 한 거야. 다들 체감했겠지만 엑토플라즘은 약하다고 방심했다간
무기나 방어구가 엉망진창이 될 수 있어.”
민지가 울상을 지으며 꼭 이렇게까지 해야 했냐며 아끼던 창의 창대를 쓸어 만졌다. 무기에 너무 지나친
애착을 지니는 것도 위험하기에 시기적절한 교훈이 되었다고 생각했다.
“가자. 던전탐사는 이제 시작이야.”
“벌써 이 던전이 싫어지기 시작했어.”
민지의 우울한 중얼거림과 함께 우리는 하수구 던전의 입구인 맨홀을 통해 지하에 진입했다.
긴 사다리를 내려가 지하에 발을 들이자 명백히 서울의 지하수로라고는 믿을 수 없을 만치 넓은 공간이
나타났다. 인근건물의 하수관은 아예 보이지도 않았다.
‘환경변화가 극심하다. 난이도가 조금 높을지도 모르겠어.’
‘그런데 물은 다 어디로 갔지?’
하수로라면 당연히 흘러야 할 물이 하나도 없었다.
불쾌해야 할 악취조차도 나지 않는다.
무심코 수로 저 편의 어둠을 빤히 노려보았다.
“…….”
보이는 건 없다.
꺼림칙함이 점점 더 심해졌다.
냉정하게 고민해본 결과, 결론이 나왔다.
“다들 다시 올라가. 던전의 위험도가 예상보다 높아졌어.”
“살았다!”
“공략에 실패하면 주민들이나 우리나 모두 다 곤란해진다며.”
진심으로 기뻐하며 앞장서서 사다리를 오르는 이정수와 달리, 민지가 걱정스런 표정을 지으며 내 옷깃을
잡았다. 내가 무언가 감춘 게 있다면 털어놓으라는 재촉이었다.
“이건… 자연발생한 던전이 아니야.”
“무슨 말이야?”
“하수로 던전이 정상적으로 던전이 되었다면 지하에는 악취 나는 폐수가 흐르고 있겠지. 그런 환경에서
거주할 수 있는 몬스터들이 물속과 통로 안을 돌아다닐 거야.”
“엑토플라즘이 있잖아.”
“그건 달라. 녀석들이 불결한 존재이기는 해도 물을 먹어치우는 존재는 아니야. 이 던전은 뭔가가 잘못됐
어.”
동료들의 얼굴에 불안이 더해졌다.
이정수의 뒤로 김일식과 송지애가 차례로 올라갔다.
주아름이 내키지 않는다는 표정을 지었다.
“정말 이대로 돌아가야 하나요?”
“위에서 기다리고 있어.”
“기다리고 있으라니… 혼자 공략하려는 건가요?”
“설마. 최소한의 정찰을 하려는 거야. 여긴 차라리 나 혼자 정찰하는 편이 안전해. 너희를 지키면서 공략
할 순 없어.”
“칫… 지금의 저로서도 도움이 되지 않는단 말인가요?”
“넌 강해. 아카데미 기준으로도 B반은 가볍게 갈 거야. B반 애송이들도 이 던전에서는 죽을지 몰라.”
“…알았어요. 빨리 돌아오세요.”
주아름이 사다리를 올라갔다.
민지가 소매를 꾹 잡아당겼다.
“다치면 안 돼.”
“그래.”
“약속이야.”
“약속할게.”
민지가 사다리를 올라가다가 한 번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어서 올라가라는 의미로 턱짓을 했다.
동료들이 모두 던전을 떠난 뒤에야 나는 시스템 알림을 켰다.
▷하수로 던전(Rank E)에 진입했습니다.
▷당신의 높은 통찰이 던전의 ‘후천적 발생’ 가능성을 자각했습니다. 던전의 숨겨진 정체성을 발견할 확
률이 높아집니다.
불길한 예감은 빗나가지 않았다.
역시 이 던전에는 무언가 좋지 않은 요소가 숨겨져 있다.
손전등을 키고 텅 빈 수로를 돌아다니기 시작했다.
말라붙은 바닥, 깨진 벽, 말끔한 천장.
꼭 가뭄이라도 찾아온 것처럼 황폐해 보이는 장소다.
길목 한 편에서 엑토플라즘 두 마리가 나타났다.
스멀스멀…
느릿하게 움직이는 놈들을 관찰하다가 예비 장검을 찔렀다.
▷엑토플라즘을 제거했습니다.
▷엑토플라즘을 제거했습니다.
판단력과 관찰력, 일격필살을 가능토록 할 근력과 기술, 적절한 무기를 갖추었다. 그런 내게 있어서 엑토
플라즘은 그다지 어려운 적도 아니다.
다시금 3분여를 걸어가자 엑토플라즘들이 이동한 흔적이 바닥 이곳저곳에서 보였다.
‘뭐지 이건?’
핏자국이 섞여있다. 속도를 높여서 흔적을 따라가자 신발 한 켤레부터 바지 끝단, 셔츠 조각, 단추 따위가
듬성듬성 떨어져있었다.
앞서 엑토플라즘에게 붙잡힌 조직원의 흔적으로 추정된다. 옷이 이렇게 떨어져나갈 정도라면 소화도 이
미 끝났겠지.
“우우-”
멀지 않은 던전 룸에서 사람의 목소리가 들렸다.
나는 검과 방패를 힘껏 움켜쥐고 문을 방패로 밀어 열었다.
“우우-?”
“아-?”
그곳에 사람의 가죽을 어설프게 뒤집어 쓴 엑토플라즘 두 마리가 있었다. 의태를 시도한 흔적이었지만 미
숙한 엑토플라즘들이 성공적으로 변신을 마치기에는 재료가 부족했다.
이대로 성인남성 셋 내지는 청소년 다섯을 먹어치우면 사람의 외면을 지니고 사람흉내를 낼 수 있겠지.
“역겨운 녀석들.”
역시 민지나 다른 동료들을 올려 보내길 잘했다.
이런 광경은 베테랑 히어로들도 경악을 금치 못한다.
온갖 더러운 일을 일삼는 용병들도 기겁하며 자빠질 일이다.
허나 내게는 다르다.
인세에 다시없을 악몽도, 최악의 광경도 아니다.
자신도 모르게 누군가에게 이용당했음을 깨달았을 때.
자신의 의지와 무관하게 친구와 연인을 죽여야 했을 때.
그때의 처절함이 있기에 나는 조금도 절망하지 않았다.
“너희 같은 존재가 살아도 될 세상이 아니다.”
전신의 근육이, 신경이, 말단세포까지 활성화되는 감각 속에서 체감시간이 한없이 길게 늘어졌다.
죽인다.
그 하나만을 위한 동작을 머릿속에 새기고, 육체에 새기며, 아우라가 뻗어나가는 영역에 다시금 새겼다.
▷부가스킬 발동!
▷부가스킬 발동!
늘어난 영역을 돌파하며 휘두른 검을 다시금 허리춤으로 가져왔다. 일순간의 질주가 끝나자 핵을 관통당
한 엑토플라즘 두 개체가 그대로 녹아내렸다.
다른 회차에서 A급 이상 초능력자들의 결투를 보면서 머릿속으로만 그렸던 기술이 실제로 성공했다.
‘실력이 더 늘었군.’
이번 회차의 나라면 빠르기 하나로는 한 손가락으로 꼽는 실력자인 [쾌검술사]의 영역 안에서도 공수를
주고받을 수 있다는 확신이 들었다.
당장은 무리더라도 조금 더 신체수준이 향상된다면 대단한 맹위를 떨칠 수 있게 되리라.
▷상승의 묘리를 쾌검술과 영역에 접목하여 고등기술 일섬을 실전에서 활용했습니다.
▷근력이 1, 민첩이 2, 응용이 1 상승합니다.
▷새로운 고급기술 의 운용법을 터득했습니다. 당신은 여러 종류의 영역을 구사할 수 있습
니다.
얼마만큼 강해졌는지, 얼마만큼 능숙해졌는지.
시스템이 그 사실을 다시금 알려준다.
자부심을 지녀도 좋을 일이지만 지금은 그럴 때가 아니다.
‘엑토플라즘이 들어온 흔적이 없었다.’
‘분명 여기에서부터 시작되었어.’
나는 세심히 주변을 살펴보았다.
그리고는 발견했다.
던전룸의 벽에 교묘하게 숨겨진 비밀통로를.
“…….”
쓰레기처럼 나뒹구는 책장을 밀어내자 텅 빈 공동이 시커먼 속을 드러내었다.
▷비밀통로를 발견했습니다.
▷통찰이 1 상승합니다.
내딛는 걸음이 끈끈하다.
손전등이 비치는 바닥에 무수한 점액들이 어려 있었다.
엑토플라즘들은 분명 이 안에서부터 나왔다.
‘통로의 크기가 크군.’
‘…적어도 인간이 지나다니려고 만든 게 아니야.’
던전의 비밀영역을 나아가기를 얼마간.
푸른 야광빛을 내뿜는 고치들을 발견하였다.
고치의 안에는 태아처럼 웅크린 엑토플라즘이 있었다.
한두 개가 아니다.
당장 눈에 보이는 것만 이삼십 개를 넘는다.
▷던전의 숨겨진 정체성인 ‘엑토플라즘 생산 공장’의 존재를 깨달았습니다.
▷통찰이 1 상승합니다.
▷현재 공략중인 하수구 던전(Rank E)이 엑토플라즘 소굴(Rank D)로 새로이 명명됩니다.
깨어나지 못한 고치를 닥치는 대로 베고 찔렀다.
푸른 피와 점액질들이 마구 흘러내렸다.
아랑곳 않고 칼질을 이어나갔다.
눈에 보이는 무리를 몰살하고 다시 전진했다.
새로운 고치 무리가 나타났다.
다시금 검을 휘두르며 학살 아닌 학살을 반복했다.
그렇게 일곱 번째 고치들을 전멸시킨 뒤.
여덟 번째 고치들을 향해 검을 치켜드는 순간이었다.
-그만둬라, 인간!
“누구냐.”
-내 아이들을 죽이지 마라!
벽면 위로 고통스러워하는 얼굴이 떠올랐다.
그것을 응시하자 시스템이 얼굴 위로 알림을 띄워 올렸다.
나도 모르게 얼굴이 굳었다.
이런 녀석은 비밀연구소에서도 보지 못했다.
“너는… 대체 뭐지? 어떻게 그런 식으로 존재할 수가 있지?”
-잃어버렸어. 내 육신, 내 인생을.
“뭐라고? 인생이라니, 넌 그저 몬스터잖아!”
-아니야!! 아니라고!!!
“으윽…!”
벽면 가득히 떠오른 얼굴이 크게 소리치자 머리가 찡하고 울렸다. 단순히 성량만 큰 게 아니라 상태이상
을 유발하는 사특한 아우라가 섞여있었다.
공격행위로 치부하고 당장 칼부림을 해야 할 상황인데도 왠지 모르게 전의가 생기지를 않았다.
“어떻게 네가 인간일 수가 있지? 아니, 잠깐만.”
-난 죄가 없어. 잘못되지 않았어.
“넌 설마… 정부의 비밀연구소에서 희생된 ‘실험체’였냐?”
벽면에 떠오른 얼굴이 눈물을 흘렸다.
-정부. 연구소. 그래! 그들이야. 그들이 날 이렇게 만들었어.
“이런 미친.”
-복수해야 해. 놈들에게 빼앗긴 육체를 되찾겠어. 녀석들의 가죽을 뒤집어쓸 거야. 그러기 위해 살아남았
어!!
정말로 충격적인 진실이었다.
던전보스가 정부의 비밀실험에 이용된 실험체였다니.
“놈들은 몬스터를 만들어내고 있었던 건가?”
-뮤턴트. 돌연변이. 실패작! 녀석들은 날 실패작이라고 불렀어. 그리고 죽였어. 시체를 버렸어!!
“하지만 넌… 살아 있잖아. 도대체 어떻게 그런 모습으로 살아있는지는 모르겠지만.”
-내 아우라가 나를 살려줬어. 내 복수의 소망을 들어주었어. 이건 하늘의 내린 기회야! 일생일대의 기적이
라고!!
“사후폭주…!”
이건 정말 희귀한 케이스였다.
지금껏 사후폭주는 산 자에게 저주를 내리거나 일정공간을 페널티와 한도 없이 증폭된 초능력이 미쳐 날
뛰는 죽음의 대지로 만들 뿐이라고 여겨왔다.
원작에서도 그렇게 기술되었고, 직접 이쪽세계에서 살면서 듣고 본 것들도 그러했다.
‘정부도 의도한 게 아니야.’
그렇지 않고서야 놈들의 기준으로 이런 흥미로운 결과물을 안산시 시내 하수구에 풀어놓을 리가 없다.
버려진 시체에 머무르던 아우라가 인근 게이트에서 새어나온 마기와 뒤섞이며 누구도 예상치 못한 이상
현상을 초래했다고 보는 편이 가장 적절했다.
즉, 이 녀석은 인간의 악의에 의해 희생당한 피해자이자 죽은 자의 원념으로부터 탄생한 영체형 몬스터였
다.
[4회차] 초능력의 실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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