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nemy of the Greatest Psychic Ever RAW novel - Chapter 136
135 – [4회차] 초능력의 실체( )
엑토플라즘 모체숙주는 실험체다.
그 사실은 몹시 충격적이며 동정해야 마땅한 일이었다.
“던전 밖으로 나오지 않겠다고 약속해라.”
-내 아이들을 살려줄 건가?
“약속해.”
-그럴 순 없어. 복수를 위해서는 인간의 가죽이 필요해.
“너도 누군가에게 희생되는 괴로움을 알고 있잖아.”
그렇기에 나는 교섭을 시도했다.
대화가 통하는 상대라면 기적같은 일이 일어날지도 모른다.
스펙터도 최초에는 인류를 위협하는 강적이었다.
엑토플라즘도 그런 변화를 맞이할 수 있을지 모른다.
모든 몬스터가 인류의 적이 되리라는 법은 없다.
설령 인류를 적대하더라도 종족과 계층을 구분 짓는다면.
흑막의 휘하에 있는 자들만을 해치우려 든다면.
내게는 이 존재를 못 본 체하며 넘어갈 의향마저 있다.
-아무도 날 구해주지 않았어.
“그럼 나도 네 아이들을 구해주지 않을 거야.”
-그럴 순 없어! 넌 아이들을 살려야해.
“왜 그래야하지? 자비를 베풀지 않는 건 너도 마찬가지면서?”
-아이들을 잃어도 널 죽이는 건 가능하니까.
정면에서 떠오르던 얼굴이 사라졌다.
-넌 너무 깊이 들어와버렸어.
등 뒤의 벽에서 섬뜩한 목소리가 들렸다.
뒤를 돌아보기가 무섭게 얼굴이 스르륵 사라졌다.
-여긴 내 소굴이야.
천장에서.
-누구도 내 소굴에서 날 거역할 순 없어.
심지어는 바닥에서까지 얼굴이 솟아올랐다.
이윽고 사방천지에서 거대한 얼굴이 날 노려보며 소리쳤다.
-그러니 협력해! 생존의 대가로 왼팔을 자르고 물러나. 그러지 않으면 아이들을 죽인 죄를 묻겠어!!
“네 원수는 정부의 비밀연구소가 아니었냐? 나도 그들과 적대관계다. 우린 동료나 친구가 될 수 있어.”
-내 아이들이 죽지 않았다면 말이지.
개 같은 소리였다.
애초에 엑토플라즘은 몬스터다.
그런 놈들이 고치에 잔뜩 들어있는 걸 가만 두고 보라니.
선악을 막론하고 어떤 초능력자도 그걸 살려 두진 않을 거다.
정신모체와의 교섭은 불가능한 것이나 다름없었다.
녀석의 처지는 실로 딱하고 불상하다.
딱 거기까지 만이다.
“너라면 같은 적을 둔 몸으로써 종족을 초월한 좋은 동료가 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결국 내 아이들을 죽이겠다는 말이냐!!
“교섭은 결렬됐다. 넌 오늘 여기서 죽는다, 괴물.”
-당하기 전에 먼저 죽여주마!!
“크윽…!”
악을 쓰는 목소리가 사방팔방으로 메아리치며 번져나갔다.
나는 즉시 아우라로 귀를 덮었다.
아무리 소리를 친다 한들 같은 수는 통하지 않는다.
카앙!
벽면 위에 떠오른 얼굴을 향해 칼을 휘둘렀다.
베는 느낌 대신 벽에 칼이 부딪히며 두 동강이 나버렸다.
엄청난 빠르기로 이루어지는 영체화였다.
‘실체화와 영체화의 전환속도가 엄청나다.’
‘게다가 저 심상치 않은 원한까지.’
‘어떤 공격이 가해질지 몰라.’
승부가 길어질수록 내 역량이 커지는 것보다 정신모체가 자신의 잠재력을 발휘하는 속도가 빠를 거라는
직감이 들었다.
던전은 발생한지 얼마 지나지 않았다.
엑토플라즘이 출현한 날도 바로 어제였음을 감안하면 놈은 아직 자신의 힘을 다루는 법도 전부 터득하지
못했을 거다.
‘그저 감정에 몸을 맡기고 날뛸 뿐.’
‘사후폭주로 만들어진 몬스터라고는 해도 지금은 몬스터야.’
‘저런 형태로나마 생명을 얻고 움직이게 됐어.’
녀석의 힘과 능력은 결코 만능이 아니다.
몬스터는 인간보다 출력한계나 그릇의 용적이 넓을 뿐.
단기결전에서는 초능력자의 손에 죽기 마련이다.
무조건 단기간에 녀석의 약점을 찾아내야 한다.
시간은 내 편이 아니다.
“네 아이들을 전부 죽여주마!”
녀석이 반복적으로 했던 말에 힌트가 숨어있었다.
고치에 든 엑토플라즘.
그놈들을 죽여서 없애버려야 한다.
-안 돼!!
놈의 절규가 짙어지며 다리가 휘청거렸다.
팔이 엉뚱한 방향으로 휘둘러져 하마터면 자해할 뻔했다.
▷엑토플라즘 정신모체의 발동!
▷의 특수효과에 의한 저항력 무시 효과 적중.
▷상태이상 발동!
내 몸을 뜻대로 가누지 못한다.
자신의 의지대로 검을 휘두를 수 없다.
그 불합리함 속에서 나는 강한 기시감을 느꼈다.
그래, 그때도 이런 느낌이었다.
이진태에 의해 사후의 자유조차도 박탈당했을 때.
죽이고 싶지 않아도 죽여야만 했던 순간들.
멈추고 싶어도 멈추지 못했던 순간들.
그때에 비하면 한없이 조잡한 수준에 불과한 혼란이지만.
“감히 내게, 잘도 이딴 개수작을 부렸겠다!!”
분노는 부자유의 경중을 가리지 않는다.
격동하는 감정.
절박했던 순간에의 기억.
▷당신의 초능력이 선택을 재촉합니다.
오장육부를 뒤흔드는 강렬한 적의가 내 안을 가득 채웠다.
지금 이 순간.
나는 무엇을 해야 하는지 온전히 이해했다.
▷부속스킬 발동.
나를 혼란스럽게 만들던 덧씌워진 감각이 말끔히 사라졌다.
내 정신은 온전히 살의를 실행하기 위한 도구가 되었다.
-느, 능력이 해제됐다고!?
“대가를 치를 시간이다, 개자식아.”
-아아악!!
엑토플라즘이 든 고치들이 연달아 터져나갔다. 그때마다 정신모체는 괴로워하며 벽과 천장, 사방곳곳에
서 피눈물을 흘렸다. 마치 자신의 살이 베인 것처럼 고통스러워하는 모습이다.
그것이 결정적인 힌트였다. 엑토플라즘들은 단순한 하위개체 몬스터가 아닌 정신모체의 일부나 다름없
었다.
‘녀석은 스스로의 힘을 쪼개어 고치 속에 담았다.’
‘힘이 쪼개어진 상태다.’
‘어딘가에는 실체화한 상태로 자신의 일부를 쪼개기 위한 [변환기]나 [부화장치]가 존재한다.’
고치에 담긴 엑토플라즘을 해치우는 것도 나쁘진 않지만 [변환기]나 [부화장치]를 찾아내는 것만은 못하
다.
자연상태로 그런 형편좋은 물건이 탄생할 리 없으니, 그 물체에는 엑토플라즘 정신모체가 지닌 아우라가
대량으로 투입되었을 것이 틀림없었다.
찾아내어 파괴할 수만 있다면 지금까지보다 훨씬 막대한 손실을 강요할 수 있다.
‘엑토플라즘들이 손톱처럼 한 번 잃어도 다시 자라날 수 있는 존재라면, 변환기는 한 번 잃었다가는 두 번
다시 되찾을 수 없는 팔정도는 된다.’
감각교란을 무시하고 점점 더 깊은 영역으로 전진하자 녀석의 얼굴이 점점 더 험악하게 일그러졌다.
벽에서 튀어나오는 얼굴은 이제 지옥의 야차나 미치광이의 꿈에 나오는 존재가 이럴까 싶을 정도로 흉측
하게 변했다. 놈이 울부짖을 때마다 간간히 걸음이 멎었다.
▷엑토플라즘 정신모체의 발동.
▷부속스킬 에 의한 대항시도.
▷대항체크 성공.
녀석의 원념은 내 걸음을 잠시 붙들 순 있을지라도 나를 완전히 멈추게 만들지는 못했다.
정신무장을 발동할 때의 나는 자연스럽게 지난 회차에서 복수에 전념하던 시절의 냉혹함을 떠올리고, 그
때의 강함을 지금의 심신으로 펼쳐내었다.
정신모체의 절규가 커지는 것 이상으로 내 안의 내제된 원한이 걷잡을 수 없이 솟아올랐다.
-이럴 순 없어. 나처럼 불행한 녀석이 죽어서도 복수조차 성공할 수 없는 세계는 잘못되었다고!!
“어리광 부리지 마라.”
-너라고 다를 줄 알아!? 넌 운이 좋았기에 거기에 있을 뿐이야. 난 그저 운이 나빴을 뿐이라고!!
운. 그게 얼마나 지독한 녀석인지는 알고 있다. 3회차의 사후폭주로 TOP10 중 넷이 죽고 A반 생도들이
떼죽음을 당하면서 진저리나게 체감했다.
메인이벤트가 앞당겨지고 흑막은 암중에서 마음껏 실력 발휘를 하며 나는 마음껏 휘둘리기만 했다. 그 모
든 게 정말로 딱 한 번, 한 번의 불운이 찾아와서 일어났다.
“인정하지. 너는 운이 나빴다.”
-알아주는 거야?
“하지만 지금보다도 더 운이 나빠질 수 있지.”
놈의 얼굴이 떠오른 벽을 주먹으로 후려갈겼다. 손이 찢어질 것 같은 고통이 전해졌지만, 대신에 어설프
게 쌓아올린 벽이 뚫리며 감춰진 부화장치가 나타났다.
빼돌려진 하수관과 점액질, 던전의 창조물을 짜깁기 하여 만들어진 하수탱크 속에서 배양액이 넘실거렸
다.
-어, 어떻게 여기를 찾아냈지!?
“운으로.”
-말도 안 돼!
물론 거짓말이다. 높은 통찰력과 정신무장은 엄청난 시너지 효과를 일으킨다. 찰나 간에 괴리감이 느껴
지는 요소는 전부 파악하고 냉정하게 분석할 수 있다.
녀석은 이 사실을 모른다. 그렇기에 더욱 내게 두려움을 품고 저항의지를 상실했다.
-이렇게까지 운이 없을 수가 있다니!
“놀라기에는 아직 이를 텐데.”
부화장치를 향해 가차 없이 창대를 휘둘렀다. 폭탄 터지는 소리에 맞먹을 굉음과 함께 하수탱크가 박살나
더니 배양액이 마구 쏟아져 나왔다.
-아아아! 아아아아악!!
“넌 아직 더 불행해질 수 있어. 내가 장담하지.”
-그만 둬. 제발 그만 둬어어어!!
영체형 몬스터인 [엑토플라즘 정신모체]는 정신에 영향을 미치는 [정신공격]과 분체를 생성해서 집단으
로 몰아붙이는 [무리공격] 두 가지의 공격수단이 존재했다.
후자는 시작부터 내 무력으로 가로막혔고, 그나마 통용되던 전자조차도 [정신무장] 앞에서는 무의미했
다.
초능력을 각성한 시점에서 이 싸움의 승기는 내게 기울었다. 회귀자의 눈에 띈 것도 불운이지만 그런 회
귀자의 각성은 녀석에게 있어서 가장 커다란 불운이었다.
“그래도 넌 아직 행복한 거다.”
-대체 무슨 개소리야! 이 미친 인간 놈아!!
“네가 죽더라도 생전의 원한을 대신 갚아줄 사람이 있으니까.”
-닥쳐, 닥쳐, 닥쳐! 이렇게 된 이상 네 정신을 강탈해서라도 살아남겠어!!
“할 수 있다면 어디 한 번 해봐라.”
나는 정신무장을 풀고 녀석의 침입을 받아들였다.
머릿속으로 타인의 기억이 스며들었다.
낯선 이들에게 납치되어 수술대에서 깨어난 기억.
사지가 속박된 채로 강제로 투약을 당한 기억.
신체가 변형을 일으키며 망가져가는 기억.
수많은 고통 위로 새로운 고통이 덧씌워졌다.
확실히 고통스러웠다.
사후폭주가 생긴 것도 납득이 갔다.
‘이만한 원한이면 곱게 눈 감고 싶지 않았겠지.’
‘인정해주지.’
‘저등급 초능력자에게는 충분히 원통한 일이었다.’
나는 그 모든 고통스러운 기억을 받아들였다.
허나 엑토플라즘 정신모체는 그러지 못했다.
-뭐, 뭐야 이 기억들은!
-말도 안 돼. 정부도, 협회도, 아무도 믿을 수 없잖아!!
-쓰레기 같은 세상, 개 같은 미래들!!!
그는 절망했다.
원한을 갚겠다는 의지마저도 상실했다.
▷엑토플라즘 정신모체의 정신체를 구성하던 원한이 근본부터 망가집니다. 정신강도가 급속도로 약화
됨에 따라 엑토플라즘 정신모체의 등급이 B급에서 F급으로 하락합니다.
▷엑토플라즘 정신모체가 고유스킬 를, 사념체로서의 종주권을, 자신의 존재의의를 상실합니
다.
말라붙은 정신체로부터 메마른 단발마가 새어나왔다.
그것이 녀석의 유언이었다.
▷엑토플라즘 정신모체를 제거했습니다.
▷보스토벌 성공!
▷던전 클리어!
▷보스몬스터의 체내에 심어진 원념의 던전코어가 소멸했습니다. 던전의
공간왜곡 및 현실침식 현상이 중지됩니다.
▷Tip> 24시간 뒤, 하수구가 본래의 형태를 되찾기 시작합니다. 서둘러서 던전에서 빠져나가십시오.
뒤를 이어서 능력치가 얼마나 올랐다든지 어떤 경험이 쌓여서 긍정적인 보정이 주어졌다든지 하는 문구
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졌다.
내게는 그 모든 것들이 그저 불필요한 사족이었다. 내가 죽인 건 보스몬스터이자 가엾은 희생자였다.
‘만일 내가 그처럼 붙잡혔더라면, 나는 그와는 다른 선택을 할 수 있었을까?’
불가능하다. 스스로도 그렇게 확신했다.
괴물이 되는 것밖에 복수의 방법이 없다면 기꺼이 괴물이 되어야 마땅했다.
그에게는 애초에 주어진 선택지가 적었다.
아는 것이 적었기에.
치명적인 함정에 빠져버렸기에.
평상시에 일상에 안주하고 스스로를 단련하지 않았기에.
중대한 시련을 앞두고 속수무책으로 당해버렸다.
정부의 실험체로 전락하고 시체가 되어 사념을 일으켰다.
‘딱한 녀석.’
엑토플라즘이 사라진 던전을 거슬러 올라갔다.
십분 쯤 걸으니 여운이 가라앉았다.
타인의 일이 대게 그렇다. 오래 담아둘 것이 아니다.
사다리로 향하면서 자연스레 시스템 알림에 눈길이 갔다.
무심코 알림을 쫓아 움직이던 눈이 덜컥 멈췄다.
“뭐야 이게.”
새로 각성한 초능력. 지금껏 당연히 [선택장애가 선택을 하게 하는 초능력]이라고 여겼던 내 능력.
그 능력의 이름이 내가 알던 것과 달랐다.
지난 회차 동안 내가 가지고 있던 초능력은 [선택장애가 선택을 하게 하는 초능력]이 아니었던 것이다.
[작품후기]
상상도 못한 정체 ㄴ⊙○⊙ㄱ
[4회차] 초능력의 실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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