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nemy of the Greatest Psychic Ever RAW novel - Chapter 141
140 – [4회차] 검을 들어야 하는 이유( )
쾌검술사는 특유의 무심한 표정을 유지한 채 비닐 봉다리 하나를 들고 걸음을 옮겼다.
다른 행인들처럼 스마트워치를 뒤적거리지도, 목적지를 향해 바쁘게 움직이지도 않았다. 혼자만 세상에
서 격리된 것처럼 느릿하게, 천천히 움직였다.
그 모습을 운전석에서 지켜보던 김일식이 내게 물었다.
“왜 저리 느려터지게 움직이지?”
“난들 알겠냐.”
덕분에 그를 관찰하는 일은 그리 어렵지도 않았다.
덤으로 한 가지 사실을 깨달을 수 있었다.
“저 녀석, 집에 들어가기 무진장 싫은 거 같은데?”
“…….”
“왜 그래? 뭔가 짚이는 구석이라도 있냐?”
집에 들어가기 싫다.
그 말과 동시에 떠오르는 기억이 있었다.
저물어가는 석양이 발치에 그림자를 늘어뜨리는 시각.
내딛기 힘겨운 걸음.
히미코가 기다리는 돌아가고 싶지 않은 집.
죄책감과 자조로 가득한 2회차의 빛바랜 기억이었다.
쾌검술사의 뒷모습에서 과거의 내가 아른거렸다.
“…잠깐, 여기서 기다리고 있어.”
“무슨, 너 뭐하는 거야! 기껏 잠복까지 해놓고는…”
“전투가 벌어지기 전에는 아무도 나오지 마.”
조수석 문을 열고 차에서 내렸다.
처진 발걸음을 내딛는 쾌검술사의 등에 대고 말했다.
“저기요. 잠깐 시간 좀 내주시죠.”
“꺼져라.”
“당신, 초능력자죠?”
쾌검술사의 걸음이 멈췄다.
그가 비스듬히 고개를 튼 채, 나를 시야에 담았다.
“네놈도 범상한 수준은 아니군. 뭐하는 놈이냐.”
“정부에 맞설 조직을 결성중인 예비 빌런입니다.”
“현역도 아닌 예비라.”
그의 입가에 싸늘한 조소가 어렸다.
“소꿉놀이에 어울려줄 생각은 없다. 꺼져라.”
“2년 내로 S급에 오를 대장과 A급에 오를 수 있는 핵심조직원이 둘. 자금지원을 해줄 기업도 찾아두었습
니다. 소꿉놀이라도 이쯤 되면 장난으로 끝낼 수는 없죠.”
“그게 나와 무슨 상관이지?”
“복수하고 싶은 대상이 있지 않습니까? 제 조직이 당신에게 힘을 빌려드릴 수 있습니다.”
“건방진 놈. 말로 해서는 안 되겠군.”
쾌검술사가 나를 향해 완전히 몸을 돌렸다.
무심했던 눈에 살의가 일었다.
걸음을 벌리고, 무릎을 굽히며, 검 손잡이를 쥐었다.
그로부터 한 줄기 실선과도 같은 영역이 내게 뻗어 나왔다.
그와 동시에 나 또한 영역을 마주 방출하였다.
▷부가스킬 발동!
▷완전방어 성공!
한 줄기 실선이었던 쾌검술사의 영역에 비하면 내가 뻗어낸 영역은 한 뭉치의 굵은 실 줄기나 다름없었
다.
더 많은 근원요소를 소모하면서 서로 엉킨 근원요소의 가닥을 깨끗하게 풀어내지 못해 속도와 위력이 모
두 죽었다. 그렇지만 그의 검이 어디를 노리는지는 분명히 인지했다.
식별했다.
그리고 받아쳤다.
극히 일순간에 일어난 한 합의 교전.
쾌검술사의 기세가 종전과 달리 몰라보도록 삼엄해졌다.
“그 기술. 어디서 배웠지?”
“알고 싶습니까?”
“죽고 싶지 않으면 당장 대답해.”
내게 일말의 관심도 없었던 이전과 달리, 지금의 쾌검술사는 커다란 격정을 품었다. 비록 그 감정이 살의
이기는 해도 긴장관계가 해소된다면 그 뒤에는 관심만이 남는다.
누군가에게 품은 감정의 크기는 곧 관심의 크기로 이어지는 법. 이 상황에서 그의 물음에 어떻게 대응하
느냐에 따라 쾌검술사의 포섭가능성이 크게 변화한다.
‘진실을 말하는 건 최악이지.’
‘그는 내게 한 줌의 신뢰조차도 지니지 않았어.’
그렇다면 믿고 싶은, 혹할 수밖에 없는 흐름으로 돌려준다.
나는 자연스레 거짓을 입에 담았다.
“당신과 같은 방법으로 배웠습니다.”
“닥쳐라! 감히 날 능멸하려고 들다니, 네놈이 지금 무슨 말을 지껄였는지 알면 그딴 소리는 감히 입에 담
지도 못했을 거다!!”
“!?”
잘못 찔렀다. 쾌검술사는 지금까지 보였던 차분한 살의를 넘어서 무슨 생사대적을 앞둔 것 마냥 격분했
다.
스캉!
키아아아앙!
번개처럼 뻗어 나오는 영역을 맞받아치기가 무섭게 갑작스레 쾌검술사의 영역이 나를 짓뭉갤 기세로 폭
증했다.
감당할 수 없는 맹공임을 깨달음과 동시에 나는 본능적으로 을 발동했다. 너무나도
자연스럽게 필살의 일격을 회피한 나를 보며 쾌검술사가 눈을 부릅떴다.
‘이번엔 내 차례다!!’
큰 기술을 사용한 직후에 허망하게 공격을 투과시킨 순간.
내가 휘두른 봉이 무방비 상태의 복부에 적중했다.
쿵,
질주하는 화물차량이 건물을 들이받을 때의 충격.
그만한 충격이 쾌검술사의 체내에 실려 그를 뒤로 날렸다.
쾌검술사의 신체가 30m는 넘게 땅을 뒤엎었다.
‘아직 멀었다!’
대화에 응하지 않겠다면 이쪽도 어느 정도 실력을 보여주마.
그리 마음을 먹으며 달려들던 도중이었다.
고개 숙인 쾌검술사의 기세가 무언가 이상했다.
이건 아니야.
생존본능이 비명을 내질렀다.
전방을 향해 땅을 박차며 날아드는 그 짧은 순간.
고개 숙인 쾌검술사의 입가가 시야에 들어왔다.
녀석은 비릿한 조소를 짓고 있었다.
‘당했다!!’
지면을 들어 엎다시피 밀려난 끝에 취한 웅크린 자세는 교묘하게 감춘 반격자세였다.
그의 오른팔을 중심으로 선들이 쉴 새 없이 엄습해왔다. 최초의 일합을 주고받을 때와 같은 가느다란 선
이 겹겹이, 살아날 길도 남기지 않을 것처럼 펼쳐졌다.
피할 수 없다. 은폐의 장막으로 하나를 걷어내더라도 뒤이어 날아드는 검격에 베여버릴 뿐이다.
‘전부 받아치지 않으면 죽는다!!’
카가강!! 카가가가강!!
손아귀가 터졌다.
검압이 볼을 스쳐지나갔다.
옷이 난도질되며 허리춤에서 피가 번졌다.
스팟, 팟, 파팟,
따라잡기조차 벅찬 검속이 거듭되는 질풍연격 속에서 한층 더 가속하기 시작했다. 자기연마의 경지를 넘
內氣어서 그의 내기( )가 주변공간에 왜곡된 법칙을 강요했다.
이 순간, 그의 검은 찰나를 75분의 1로 쪼갠 극한의 단위 속에서 검격을 쏟아내었다.
마치 항거할 수 없는 거대한 자연재해처럼 밀어닥치는 폭풍과도 같았다. 그런 공격을 모조리 받아쳐낸 것
은 지난 회차들의 경험이 뛰어났기 때문이 아니다.
▷당신의 초능력이 의 선택을 강제합니다.
내가 지닌 초능력의 에고(Ego)가 나 자신을 상대로 초능력을 발동했다.
▷(Hidden)도전난이도 : 어려움
▷자체 정신방어력에 대한 돌파체크
▷돌파성공
기억에 없는 검식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그저 죽음이 밀어닥친다고만 여겨졌던 폭풍 같은 연격 속에
서 규칙성과 흐름이 눈에 보이기 시작했다.
제 아무리 쾌검술사가 대단한 검술실력을 지녔다고 한들, 이만한 속도의 검에 무수한 변화를 담기란 무리
였다.
‘으아아아아!!’
영혼이 깎여나갈 것만 같은 접전의 연속.
그 끝에서 쾌검술사가 검을 거두며 뒤로 물러났다.
살아남았다.
어떻게든 간신히 목숨만은 건질 수 있었다.
빈말로도 온전히 막았다고는 말 못한다.
진짜 죽을 뻔했다.
초능력의 도움이 없었더라면 3초간 펼쳐진 수백 번의 검격 중 절반도 못 넘기고 전신이 도륙 난 채로 죽었
으리라.
“네놈… 내 전심전력을 다한 연격에서 살아남다니.”
“크크. 뭐. 보통내기가 아니냐?”
“죽일 보람이 있겠구나.”
아니 이 개새끼야.
다 막았잖아.
실력 인정하고 동료 좀 되 달라고.
“그만! 거기까지다, 쾌검술사!”
김일식이 뒤에서 소리쳤다.
석궁을 겨누는 소리와 함께 작은 보폭의 걸음소리도 들렸다.
히미코가 그를 시야 내에 두고 지켜보기 시작했다.
“진즉에 좀 나오지 왜 이제야 나왔냐?”
“아니, 그 미친 속도로 싸우는 걸 어떻게 끼어들라고.”
김일식의 불만은 합당했다.
쾌검술사의 검속은 같은 A급 초능력자도 피하기 버겁다.
A+급 곽재우도 반응에 실패할 때가 존재했다.
내가 그의 검격을 전부 받아칠 수 있었던 건 정말 요행이다.
무수한 경험과 초능력의 보조, 뛰어난 신체능력과 정신력.
넷 중 단 하나라도 부족했으면 그대로 비명횡사했다.
“히미코는?”
“나랑 같이 멍 때렸지.”
“…미안.”
히미코 본인에게도 악의가 있는 건 아니었겠지. 솔직히 나도 누가 눈앞에서 이런 검속으로 싸우고 있으면
도와야겠다는 생각보다는 기가 질려서 차에서 나갈 엄두도 못 냈을 거다.
스스로도 이런 굉장한 검격을 받아내고 살아남았다는 사실에 감격이 벅차오를 지경이니 말 다한 셈이다.
“동료들과 합공이라도 할 셈인가?”
“설마. 아까도 말했다시피 저는 당신을 포섭하러 온 겁니다.”
“건방진 소리를 지껄일 실력은 있군. 인정하지.”
“그럼 제안을..”
“앞서나가지 마라. 네게는 아직 들어야 할 말이 남아있다.”
그가 맹수처럼 사납게 으르렁거리듯이 분노를 드러냈다.
“비기 일섬. 그 기술을 터득한 내막을 밝혀라.”
“…….”
거짓말은 통하지 않는다. 입에 담는 즉시 이번에야말로 둘 중 한 명이 죽을 때까지 살벌한 칼부림이 벌어
진다. 본능적인 직감 앞에서 나는 마냥 둘러댈 수만은 없음을 깨달았다.
처음 그를 보고 본능에 따라 잠복을 그만두었을 때처럼, 그를 상대할 때는 기만이나 속임수를 쓰려고 들
어서는 안 된다.
“솔직히 말하죠. 그 기술을 쓰던 사람과 마주한 적이 있습니다. 일섬을 직접 눈으로 본 건 세 번은 되겠군
요.”
2회차의 카르멜 히어로사무소의 현장출동영상에서 한 번.
2회차의 히어로 유인작전 끝에 아담스미스를 죽일 때 한 번.
3회차의 시가지 매복전에서 마지막으로 한 번.
그의 실력은 볼 때마다 감탄을 금치 못했다.
그렇기에 세 번이나 견식 할 기회가 있어서 다행이었다.
‘경험이 부족했다면 최초의 일섬조차 막지 못했겠지.’
나 또한 부족한 근원요소를 다루고자 ‘장막’의 형태로 다뤄왔다. 허나 내가 지닌 ‘장막’도 쾌검술사의 ‘일
섬’에 비하면 잔재주나 다름없었다.
근원요소를 그처럼 정밀하게, 두려울 정도의 정신력으로 뽑아 쓰는 인물은 달리 존재하지 않았다.
쾌검술사는 가장 미세한 단위의 기를 가장 짧은 단위의 시간 속에서 누구보다도 빠르게 연속해서 펼쳐낼
수 있는 인물이다. 마지막의 폭풍연격은 단연 발군이었다.
“세 번이라.”
“정말입니다.”
“그 말이 사실이라면… 너 또한 검왕의 제자라는 말이군.”
검왕.
그의 입에서 나온 뜻밖의 이름에 당혹스러움을 금치 못했다.
‘검왕이라니. 그 사람은 중국 초능력계의 최강자로 손꼽히는 삼왕일제 중 한명이었을 텐데…?’
설마 검왕이 남 몰래 한국에 방문한 적이 있었단 말인가?
아차.
지금은 생각에 빠질 때가 아니다.
“그렇습니다.”
검성이 가르쳤다는데 그렇다고 대답해야지, 아니면 뭐라 대답할 말이 궁하다.
대충 보니 쾌검술사가 검성 제자 같은데 제자도 아니면서 그녀의 검을 세 번이나 봤으면 말이 안 된다. 거
짓말이 통할 상대가 아닌 건 알지만 달리 방법이 없었다.
‘통했나?’
최대한 의연한 어조로 대답했다고 생각했다.
근데 불안하네.
저놈 대답이 없는데. 설마 거짓말이라고 들킨 건가.
“거짓임다~!!”
이효인이 헷갈리지 않게 거짓말이라고 까발려줬다.
야, 이 미친년아.
목 끝까지 튀어나오려던 말을 간신히 참았다.
“근데 절반은 진짜이기도 함다!”
“…그걸 굳이 이 자리에서 큰 소리로 말해야만 했냐?”
“죄, 죄송함다… 자다 깨서 상황을 잘 모르겠슴다.”
폭풍같은 연격을 상대하면서도 어떻게든 눈만큼은 감지 않았건만, 이효인의 트롤링에는 나도 모르게 그
만 암담한 심정에 눈을 꾹 감아버렸다.
뒤늦게 적일지도 모르는 사람 앞에서 위험한 짓을 했다며 눈을 떴지만 쾌검술사는 공격할 기미도 안 보였
다.
‘괜히 머쓱해지네.’
쾌검술사가 이효인에게 물었다.
“네 초능력은 진실과 거짓을 구분할 수 있는 건가?”
“그렇슴다! 페널티로 조사결과를 숨기지 못하는.. 읍읍!”
김일식이 기겁하며 입을 막았지만 이미 한 발 늦었다.
나뿐만 아니라 모두가 그녀의 이야기를 들었다.
“그렇단 말이지.”
쾌검술사의 눈매가 한층 가늘게 좁혀졌다.
젠장, 포섭은 틀렸나.
이젠 영락없이 전투만 남았구나 싶어서 무기를 고쳐 잡았다.
“그 어벙한 여자에게 감사해하는 게 좋을 거다.”
“그게 무슨…”
“검왕은 제자를 두지 않는다.”
“!!”
“네가 검왕의 제자일리는 없으니 그녀의 검, 일섬을 세 번 봤다는 말이 사실이겠지.”
나도 모르게 자연스럽게 유도심문에 걸렸다.
전투실력으로 진 것뿐만 아니라 심리전까지 졌다는 말이다.
정말 혀를 내두를 수밖에 없는 대단한 녀석이었다.
“복수를 돕겠다고 했나?”
“네, 그게 영입조건입니다.”
“좋다. 그럼 내가 바라는 복수를 알려주지.”
쾌검술사가 사람의 머리통이라도 씹어 먹을 것처럼 살기를 가득 담아내며 말했다.
“검왕. 그녀를 죽이는 것이다.”
“……!”
뜻밖에도 쾌검술사의 복수의 대상은 한국정부나 칠대기업이 아니었다.
중국 초능력계의 정점에 누구보다도 가까운 인물, SS급 무투계열 초능력자 검왕을 죽이는 것. 이것이 쾌
검술사가 영입조건으로 내건 복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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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ystem : 새로운 떡밥 [검왕=여자=미녀?]가 등장했습니다!
-수정 : 2019-12-30 PM 07:51 오타수정
[4회차] 검을 들어야 하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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