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nemy of the Greatest Psychic Ever RAW novel - Chapter 147
146 – [4회차] 활동개시( )
下流하류( ).
이는 사회적 신분이나 생활수준이 낮은 이를 일컫는 말이다.
그렇다면 실험체는 하류 중에서도 가장 밑바닥이었다.
사회적 신분은 말살당하고 생활수준은 비참함 그 자체다.
그 이전에 인간으로서의 취급 그 자체를 받지 못한다.
정부의 연구원들에게 그들은 개, 혹은 돼지였다.
“학생. 나좀 사, 사사사, 살려, 려으어으어?”
철창에 매달리며 애원하던 실험체의 머리가 식충식물마냥 네 갈래로 벌어졌다가 다시 닫혔다. 나는 망설
이지 않고 그의 수급을 베며 액션캠에 대고 말했다.
“마지막 실험체 제거. 제천시 구곡리 만빚던전 내 비밀연구소 소탕 완료. 이어서 해당시설을 두 번 다시
이용하지 못하도록 파괴하겠다.”
던전의 보스룸이 있었던 자리에는 가장 거대한 규모의 [폐기시설]이 자리하고 있었다. 철창에 갇힌 실험
체들은 갇혀죽거나, 끌려 나가 죽거나, 혹은 이미 죽은 거나 다름없었다.
액션캠의 영상을 보게 될 전 세계의 시민들도 그 정도 사실은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었다.
▷만빚던전의 코어실에 F급 던전코어를 장착했습니다.
▷던전이 활성화됩니다.
▷던전코어가 파괴되었습니다.
▷Tip> 6시간 뒤, 만빚던전이 본래의 형태를 되찾기 시작합니다. 서둘러서 던전에서 빠져나가십시오.
▷Tip> 던전 내의 개조시설은 던전이 폐쇄됨에 따라 자동적으로 차원의 틈 저편으로 소실됩니다.
던전을 나가면서 보았던 알림이 대충 저러했다.
▷민첩이 1, 근원이 2 상승합니다.
▷당신의 초능력이 ‘지루한 일과’였다고 생각합니다.
이런 알림도 있었지.
아무튼 전부 지난 일이다.
새로고침을 누르자 삭제된 영상이라는 알림이 떠올랐다.
“아, 귀찮아 죽겠네. IP변조 프로그램에 가짜주소 입력에 영상 사이트마다 재업로드에 뭐 이리 손이 많이
가.”
김일식이 투덜거리면서 영상을 다시 올렸다. 그러는 와중에도 현장에 가지 못했던 다른 동료들은 액션캠
의 영상을 보며 경악을 금치 못했다.
“아카데미를 자퇴하지 않았으면 우리도 저렇게 됐을까요?”
“똑같지는 않겠지만 대충 비슷하겠지.”
“저런 끔찍한…….”
초능력자로서 나름 피 보는 일에 익숙해진 동료들이 이러할진대 각종 사이트에서 영상을 열람한 시민들
의 반응이 그보다 덜할 리가 없었다.
정부가 행해왔던 비밀실험이 사실이냐며 지탄의 목소리가 높아지는 한편, 히어로협회는 뭘 하고 있었냐
며 덩달아 까였다.
-Anonymous 22 : 한국정부의 부패도가 기존에 알던 것보다 일곱 단계는 더 심각해 보이는데.
-Anonymous 89 : 나 한국에 체류 중인 기자인데 민빚던전 취재하러 갔다가 쫓겨남. 미친놈들이 칼까지
겨누려고 하기에 생방송 때리는 척 연기해서 겨우 살았음.
-Anonymous 37 : 중국에서는 이미 있던 일이야. 뭔 저런 별 것도 아닌 일로 호들갑은.
-Anonymous 41 : 중국놈은 지 애미도 인체의 신비전에 전시되어서 생체실험에 익숙한가봐?
-Anonymous 37 : 씨발롬아 너 어디사냐 주소까
-무명 7 : 우리집 근처에서 발견됐던 던전도 정부에서 통제 들어갔었는데 안에 실험체 있는 거 아니야?
-무명 13 : 들어가봐
-무명 32 : 야 나 이번달 히어로협회 랭킹 100위권에 들거든? 주소 까면 그 던전 조사해준다.
-무명 7 : 진짜?
-무명 32 : 미쳤냐? 이런 소리 하는 놈 정부관계자니까 절대 인터넷에 주소 지껄이지 말고 살아. 너 실종
된다.
국내와 국외를 막론하고 규모가 있는 사이트에 가면 어디서든 한국정부의 생체실험에 대한 이야기가 거
론되었다. 영상 몇 개 자른다고 어찌 통제될 수준이 아니었다.
늘어나는 의혹을 막고자 정부에서는 사실무근이라며 기자회견까지 열었지만 아무도 믿지 않을 개소리만
이어졌다.
“도령아. 이번 일 너무 크게 벌린 거 아니야? TV를 켜도 컴퓨터를 켜도 어디서든 전부 그 던전 얘기밖에
없어.”
“이건 우리한테 좋은 일이야. 정부의 쓰레기 짓이 만천하에 발각되어야 정부와 칠대기업의 연결고리가
끊어져. 적어도 이번 정권이 끝날 때까지는 그러겠지.”
“그래도 무서운 걸 어떡해. 정부가 보복이라도 하면…….”
민지는 이불을 뒤집어쓴 채로 울상을 지었다.
정부의 보복.
확실히 두려워해야 마땅한 일이다.
“이건 옳은 일이야. 우린 잘못되지 않았어.”
“…….”
“누군가는 밝혀야만 했어. 단지 이번에는 우리가 제일 먼저 시작했을 뿐이야.”
민지를 안심시키려고 꺼낸 말이었는데 도리어 그녀의 얼굴에 수심이 깊어졌다.
“왜 자꾸 남 얘기처럼 초연하게 말해. 도령이는 영상에 얼굴도 찍혔잖아. 모자이크로 감춰도 영상에 전신
이 다 찍혀버렸는데 어쩌려고 그랬어…”
“꽁꽁 감춘다고 능사가 아니야. 지금은 우리의 존재를 세상에 알리고 동료를 모아야 정부의 보복에 맞설
수 있어.”
“그런 거 굳이 해야 할까? 우리가 뭘 하든 사람들이 무조건 도와주리라는 보장은 없잖아. 유튜브에서는
빌런조직을 자청하고 있으니 어차피 범죄자라는 댓글도 있었는데.”
그녀는 두려워하고 있다. 자신이 위기에 처하는 걸 기피하는 건가 싶었지만 다시 생각해보면 뭔가가 달랐
다.
“도령이는 우리를 위해서 충분히 노력했잖아. 이제 괜찮으니까… 그냥 그만두면 안 돼?”
그녀는 순수하게 나를 걱정하고 있었다. 자신보다도 내게 위험이 닥치는 것을 두려워했다. 그 순수한 마
음을 마주하고 나서야 나는 깨달았다.
어느덧 민지에게는 내 존재가 자신의 목숨만큼이나, 어쩌면 그 이상으로 소중해졌다는 사실을.
“미안해.”
그렇기에 더욱 사과할 수밖에 없었다. 그녀가 두 사람만의 도피를 바란다고 한들, 조직의 모두와 평화로
운 나날을 보내기만을 바란들, 그건 불가능하다.
평화란 전쟁에서 승리한 자들에게만 주어지는 훈장이다. 싸워보지도 못하고 물러난다면 그 뒤에 기다리
는 건…….
‘수많은 참상들.’
흑막에 의해 만들어지는 [국가멸망] 시나리오.
혹은 이진태에 의해 만들어지는 [원작] 시나리오.
어느 쪽이든 그 결과는 좋다고 말할 수 없다.
약자들에게는 힘겨운 세상이다.
나는 그런 미래에서 살고 싶지 않았다.
두 사람이 함께 웃으며 지낼 수 있는 세상을 원했다.
히미코가 김다연, 강유아 같은 다른 동료들도 마찬가지였다.
누군가가 부당한 죽음을 맞이해야 하는 세상은 이제 싫다.
“난 멈출 수 없어.”
“…그래. 어쩔 수 없구나. 내가 반한 남자라는 건.”
민지는 슬픈 미소를 짓더니 내 손을 잡았다.
“잊지 마. 그만두고 싶다면 언제든지 같이 해줄 테니깐.”
“…그래.”
“얼른 가봐. 다들 기다리고 있을 거야.”
민지와의 짧지만 깊은 대화를 마친 뒤, 회의실로 향했다.
안에는 이미 다른 동료들이 모여 있었다.
“민지는?”
“아직 독감이 낫지 않았다.”
“그럼 우리끼리 회의를 진행해야겠군.”
이번 회의는 김일식의 소집 하에 이루어졌다.
그는 진지한 눈으로 모두를 돌아보았다.
“다들 알고 있겠지만 이번 생체실험 폭로사건으로 전국이 떠들썩하게 뒤집혔다. 특히 영상에 나온 ‘가면
의 빌런’들에 대한 이야기가 가장 무성하지.”
“말하고 싶은 게 뭐냐.”
“세상에 이름을 떨치고자 한다면 바로 지금이 기회다. 한도령, 네가 바라던 기회가 찾아왔다. 봉성군이
우리를 치고자 초능력자들을 모으고 있다는 정황이 포착됐다.”
이정수나 송지애, 주아름은 드디어 그치들과 끝장을 볼 때가 되었구나 하는 표정을 지었다.
보다 경험이 많은 쾌유천과 빙결술사만이 그 말에 담긴 진의를 깨달았다. 봉성군과의 전면전에는 그보다
더 중요한 전제가 깔려져 있다.
“가면을 쓰고 나설 것이냐?”
“한 번 정체를 드러내면 다시 숨기는 건 불가능하다.”
쾌유천과 빙결술사의 경고에 송지애가 의아해하며 물었다.
“정체를 숨기다니요?”
“가면을 쓰는 순간 영상의 주인, 정부연구소를 습격한 범인이 우리라고 밝혀진다는 말이다.”
“아…! 그, 그러면 봉성군이 아니라 정부까지 우리를…”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찍어 누르려고 들겠지. 하지만 한 번 뿐이다. 정부의 공세를 한 번만 견딜 수
있으면 수많은 이들이 우리를 지지하며 모여들 거다.”
“저희가 버틸 수 있을까요? 아무래도 정부를 상대로는 자신이 들지가 않는데…….”
송지애가 실로 오래간만에 겁쟁이다운 모습을 보였지만 주아름이 붕대를 감지 않은 손으로 그녀의 어깨
를 툭 쳤다.
“이제 와서 약한 소리인가요? 후후. 기호지세라는 말과 같아요. 저희는 달리는 호랑이에서 떨어지면 죽
을 수밖에 없답니다. 싸움을 두려워하면 그대로 정부에게 뜯어 먹힐 거예요.”
“으으으…….”
“정부의 주목을 받는 와중에 송가제약을 끌어들일 수는 없겠죠. 그래도 봉성군을 쓰러뜨리면 가망은 있
을 거라고 봐요. 범죄조직 파벌 하나를 쓰러뜨리고도 얻은 전리품이 상당했죠.”
그녀의 말대로다.
김일식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받았다.
“봉성군을 궤멸시키고 그들의 자금을 탈취할 수 있다면 예상되는 자금이득은 500억을 넘는다.”
“오백 억! 그렇게나 많이요!?”
“그놈들이 알음알음 모아온 던전코어나 몬스터부산물을 모조리 탕진하더라도 몸에 걸친 장비는 남기 마
련이지. 현물까지 합산하면 두세 배도 넘을 수 있다.”
빌런조직은 10년차 이상의 건실한 중견기업이나 신설 대기업 계열사 급의 수익원을 지니고 있다.
몬스터와 초능력자가 판치는 이 세상에서 초능력을 다루는 빌런들은 경찰한테 체포당하는 동네잡범들
따위와는 성향부터가 다르다. 그 옛날, 범죄와의 전쟁시절과도 같다.
조폭들이 회사를 차리고 대부업이나 금융사기 따위로 발을 뻗었듯이 빌런조직들도 기업화의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벌써 일부는 현시점에서 기업화에 성공했지.’
‘하지만 봉성군은 그 정도 급이 되지 못한다.’
그러니 지금이 기회다. 우리 조직에서 부상자가 생겼다며 습격준비를 하는 지금, 역으로 봉성군을 일망
타진해서 대량의 군자금을 마련한다.
그 자본을 바탕으로 이어지는 정부의 압박으로부터 살아남을 수만 있다면, 뒤는 일사천리다.
‘정부의 부당함을 견디지 못하고 손을 더럽힌 빌런들이, 히어로협회를 불신하는 히어로들이 우리조직에
가세한다.’
동네 범죄조직이나 소규모 빌런조직을 뛰어넘어서 지역구를 거머쥐는 중대형 빌런조직으로 일약 발돋움
을 한다. 4회차 최대의 승부처가 머지않았다.
‘쾌검술사와 빙결술사, 그리고 내가 있다.’
‘히미코와 라이언, 이효인도 있어.’
‘동료들도 이젠 한 사람 몫을 충분히 할 수 있고.’
계산이 바로섰다.
그리고 마음이 움직였다.
“한다.”
더는 주저할 이유가 없다.
“정부의 비밀연구소 습격으로 우리 조직의 인지도를 얻었다면, 이번 봉성군과의 전면전을 승리하고 전국
의 인재들을 포섭할 기회를 얻는다!”
“좋다. 결정됐다면 바로 작전브리핑을 시작하지. 머릿수는 저쪽이 앞서니 방심해선 안 된다.”
김일식은 곧바로 봉성군의 정보부터 띄워올렸다.
[적대세력] *조직명 : 봉성군*보스 : 이엄금(A)
*간부 : 파벌보스 셋(B+, C, 비각성자)
*조직원 규모 : 550
*모집 중인 초능력자 용병
-최소 20인 이상
-전원 D급 이상
-현재 고용비 관련 협상 진행 중
자료를 보자마자 모두가 깨달았다.
굉장히 중요한 정보를 가장 필요한 타이밍에 얻었다.
“일전에 받아들인 요지석이 크게 한 건 해줬다. 놈이 다른 파벌에 심어두었던 스파이가 봉성군이 용병을
모집 중이라는 정보를 물어왔다는군.”
“그건 믿을 수 있는 정보인가? 이 정도로 형편 좋은 정보는 반드시 진위유무를 의심해야 한다.”
빙결술사가 끼어들었다. 김일식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미 검증을 마쳤습니다. 요지석 본인도 봉성군과 척을 진 이상, 저희에게 협력할 수밖에 없죠. 정보가
거짓일 가능성은 3%도 넘지 못합니다.”
“그 3% 미만의 가능성은 어떤 경우이지?”
“요지석이 독약을 강제복용 당했거나 초능력에 의해 협박을 받은 상태일 경우, 강요에 따를 수밖에 없습
니다. 그 경우에 대비해서 미리 감시의 눈을 붙여뒀습니다.”
“감시수단은?”
“측근을 돈으로 매수했습니다. 여차할 때에는 요지석의 자리를 물려주겠다고 약속했죠.”
샌님처럼 보이면서 은근히 음험한 술수도 잘 부린다. 빙결술사도 만족했는지 브리핑을 계속하라며 고개
를 끄덕였다. 김일식이 홀로그램에 새로운 자료를 띄워 올렸다.
“봉성군은 크게 여섯 개의 파벌로 이루어진 빌런조직이지만 요지석의 황벌파가 저희에게 포섭되고, 백화
점 습격사건에서 다른 파벌 하나를 쓰러뜨리며 세가 줄었다.”
“그리고?”
“남은 네 개의 파벌은 빌런보스 이엄금이 직접 이끄는 200인급 파벌, 산하 간부들이 파벌보스로 이끄는
150인급 파벌, 100인급 파벌 둘이 있다.”
김일식은 바로 이 부분을 노렸다.
“이엄금은 용병 초능력자들의 포섭과정에서 산하파벌의 자금을 사용하면서 적재적소에 지원한다는 명
목 하에 용병들의 소재지는 자신의 파벌영역 내부로 결정하려 하고 있다.”
“분란이 생겼겠군.”
“그 말대로다. 이엄금의 욕심 때문에 산하파벌과의 연계가 약해진 지금, 우리에게는 두 가지 선택지가 열
렸다.”
“그 두 가지 선택지란?”
“첫 번째 방책은 이엄금의 파벌을 급습해 보스를 죽여 봉성군의 결속을 깨는 것. 두 번째 방책은 봉성군의
산하파벌을 회유하여 아군으로 삼는 것이다.”
이쪽이 동원가능한 전력은 나와 송지애, 이정수, 국경지대 트리오와 쾌유천, 빙결술사까지 도합 아홉.
정상적으로 싸우면 550 대 9에 달하는, 용병을 고용하더라도 그들이 합류하면 저쪽의 용병까지 무사히
가세하여 600 대 29 정도의 항쟁이 될 것을 각오해야 한다.
허나 김일식의 책략이 유효하다면 200 대 9로 단기결착을 내거나 200 대 459로 맞설 수 있다.
‘단기결전이나 포섭에 실패하면 그만큼 위험한 처지에 처하게 되겠지만…….’
어느 쪽이든 도전해볼만한 선택지였다.
[4회차] 단기결전
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