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nemy of the Greatest Psychic Ever RAW novel - Chapter 159
158 – [4회차] 공멸( )
4월 혁명군과 성진그룹의 전쟁은 대한민국의 수도 서울을 마경의 땅으로 전락시켰다. 세계에서 다섯 번
째로 안전한 도시로 여겨졌던 서울의 명성은 이제 바닥으로 곤두박질 쳤다.
한국의 주가는 연일 폭락을 거듭하고 국가의 존속 자체가 의심받기 시작했다.
“우리 오성그룹은 소위 말하는 칠대기업이라는 세간의 평판에 심각한 유감을 표명하며, 이번 [성진테러
사건]과 어떠한 연관도 없음을 알리는 바입니다.”
4월 혁명군이 간신히 병력을 추슬러 서울의 재난피해자 구출에 앞장서는 사이, 오성은 재빨리 목소리를
높이며 성진그룹과 선을 긋고 독자적인 구조대를 편성했다.
오성그룹 산하 오성길드에 속한 초능력자들이 위협적인 몬스터들과 맞서는 사이, 재난피해자 구조는 오
성아카데미 졸업생뿐만 아니라 재학생들도 참여하게 되었다.
“4월 혁명군은 무슨, 뭐가 혁명이라는 거야. 나라를 망하게 하면 뭐든지 다 되는 줄 아냐고.”
“그만둬. 나쁜 건 성진그룹이라고. 알고 있잖아.”
“알기는 뭘 알아! 그놈들 때문에 오빠가 죽었어. 엄마랑도 연락이 안 된다고!”
성진그룹이 원흉이라는 건 알고 있다. 그러나 오너일가를 비롯한 이사진들이 잠적하고 성진그룹의 시설
이 모조리 파괴된 지금, 사람들은 원망할 대상이 필요했다.
4월 혁명군은 그런 사람들의 눈에 걸린 시기적절한 산제물이나 다름없었다.
“다연아. 너도 그렇게 생각하지?”
“글쎄… 잘 모르겠어.”
김다연은 그런 점에서 이번 사건에 특별한 감상을 품지 않았다. 가문을 나와 자력으로 살아가기 위해 아
카데미에 재학 중인 그녀로서는 가족이 어찌되건 관심도 없었다.
‘애초에 가족이라고 부를 사람도 할머니뿐이고.’
‘할머니는 날 가족이라고 생각하기는 할까?’
오성아카데미에 입학하고 어느덧 3년차 4분기가 됐다.
대화를 나누고 같이 밥을 먹을 상대 정도는 있다.
그러나 친구라고 부를 존재는 한 명도 없다.
‘전부 바보 같아.’
아카데미를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하면 칠대기업의 산하길드에 들어갈 수 있다. 지금껏 모두가 성공가도
라고 여겨왔던 그 길이 성진그룹의 실체가 드러나면서 큰 의심을 받았다.
당장 표면에 드러난 건 성진그룹과 DM그룹뿐이지만 오성과 삼환, 근대, 정성, 장양그룹도 다를 것 같지
는 않았다.
“이쪽이야! 건물 안에 피해자가 있어! 간판만 떼어낸다면…”
“비켜봐.”
김다연이 비스듬히 걸린 간판에 권총사격을 가했다.
간판이 떨어지며 막혀있던 길이 열렸다.
염동계열 동급생이 곧 건물에 갇힌 사람을 구출해냈다.
“왜 더 일찍 오지 않은 거야, 이 개자식들아! 이 건물에서 사람이 몇이나 죽었는지 알아!?”
“네? 아니, 저기요. 저희가 죽인 것도 아닌데 왜 화를 내세요. 목숨 걸고 위험지역까지 와서 구조활동 하
는데 이게 욕을 먹어야 될 일이라고 생각해요?”
“닥쳐! 5분이야. 딱 5분만 빨리 왔어도 아내랑 아이들이 살 수 있었다고!”
핏발 선 눈으로 B반 염동계열 생도를 향해 삿대질을 하는 생존자의 모습에 모두가 의욕을 상실했다.
서울에 이렇게나 던전이 많았나 싶을 정도로 마경이 된 서울에서 쏟아져 나오는 몬스터의 숫자는 엄청났
다. 임시팀을 꾸려 활동하던 생도들도 까딱 잘못하면 죽을 지경이다.
그 위기를 감수하며 구조에 나서서 생존자를 구출해내어도 돌아오는 건 격한 감정과 모욕뿐이었다.
“감사인사 한 번 하는 게 뭐가 그렇게 힘드냐고.”
“하, 더러워서 못해먹겠네.”
동급생들이 지쳐가듯이 김다연도 썩 기분이 좋지만은 않았다. 낮은 코스트로 무수히 많은 총알을 보급하
며 원거리전투가 가능하기에 구조대에 편성되기는 했지만 뒷맛이 안 좋다.
구조보트에 실린 구출자들이 정원을 다 채우기도 전인데 먼저 구출된 사람들은 한 술 더 뜨고 있다.
“어차피 다 죽었을 거라니깐. 얼른 여길 벗어나자고!”
“학생들도 위험하잖아. 응? 그냥 가자.”
“저기에 사람이 있는 것 같다고? 그거 몬스터야, 몬스터!”
생도 한 명이 작게 중얼거렸다.
“이딴 녀석들을 구하는 게 도대체 무슨 의미가 있지?”
“말하지 마. 우리까지 힘 빠지니깐.”
결국 구조보트에 구출자 여덟 명을 채우고 난 뒤에야 그들은 서울 이남에 마련된 대피소로 돌아갔다. 구
출자를 대피소 직원에게 인계한 뒤에는 1시간의 휴식시간이 주어졌다.
“그냥 도망가자. 오성도 어차피 찝찝한 놈들이잖아.”
“C반 밑으로는 이상한 일에 투입되고 있다는 거 사실이야?”
“몰라. 알게 뭐야, 그런 열등생들.”
김다연은 동급생들이 무어라 떠들건 무시하고 자신의 방으로 돌아왔다.
침대에 몸을 눕히자 피로가 파도처럼 몰려왔다.
‘도대체 난 뭐가 되고 싶었던 걸까?’
자유롭게 살고 싶어서 가문을 나왔는데, 이번에는 아카데미에 족쇄가 채워졌다. 너는 히어로가 되어야
한다며 아카데미 관계자들과 시민들이 끊임없이 희생을 요구했다.
그녀가 바란 삶이 무엇이든 결코 지금처럼 사는 게 아니라는 것만은 분명했다.
-Today News! 4월 혁명군 핵심멤버들은 오성아카데미 자퇴생이었다?
우연히 한 건의 기사를 보았을 때, 그녀는 무심코 기사를 읽어 내리기 시작했다. 지금껏 막연하게 민폐나
끼치는 사람들이라고만 여겼던 4월 혁명군에 약간이나마 관심이 생겼다.
*2023년 4월 29일.
-[4월 혁명군] 빌런조직 출범 선언
*2023년 9월 28일.
-성진그룹에서 A급 신규각성자 송지애 납치시도
-아산시 발전소에서 구출도중 송지애 사망
*2023년 10월 5일.
-[4월 혁명군]과 성진그룹의 전쟁 개시
-충청도 다섯 개 시에서 성진그룹 시설 함락
-제 32보병사단의 살인소장을 비롯한 군 고위장성들의 DM그룹으로부터 성상납 스캔들 및 군수물자 암
매매 추문 폭로
-혁명군에 민간지원세력 가세
*2023년 10월 7일
-[4월 혁명군] 수도권 진입
-경기강원지역 댐 폭파에 의한 수몰지역 다수 발생
-경기강원지역 발전소폭파에 의한 4월 혁명군 피해 급증
-퇴계원 수중던전 저지에 나섰던 쾌검대 궤멸
-한강유역을 북상하던 혁명군 특공대 궤멸
-성진그룹 본부 오너일가와 대치 도중 재난피해자 구출을 위해 교전포기
-4월 혁명군, 수도권 생존자 구출작업 개시
-십대세가 수도권 생존자 구출작업 참여
-성진, MD그룹 외 칠대기업 다섯 생존자 구출작업 참여
.
.
.
이후로는 김다연도 알고 있는 고된 구출과정에서 일어난 크고 작은 사건들만 이어질 뿐. 그녀는 잠시나마
품었던 흥미가 빠르게 식어가는 것을 느꼈다.
“혁명이라…….”
결국 이 사람들의 혁명은 성공한 걸까, 아니면 실패한 걸까.
곧 어느 쪽이든 관계없다는 결론을 내렸다.
세상이 어찌 돌아가든 그녀에게 득이 될 일은 하나도 없다.
모두 자신을 살고자 발버둥치기 급급할 뿐이다.
그건 김다연 또한 마찬가지였다.
***
2024년 1월 1일.
어느덧 신년을 맞이하게 되었지만 그 사실에 기뻐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3분 전, 히어로 협회에서 공식선언문을 발표했다. 서울의 생존자는 0.001% 미만이며 그들을 구하고자
유능한 히어로들이 죽음을 감내하는 건 불합리한 처사라더군.”
“구조는 이제 끝인가?”
“그래. 서울을 특급 위험지대로 지정하고 히어로들의 출입을 불허했다. 소식을 들은 십대세가와 오대기
업도 곧바로 철수작업 진행했고. 우리 측 애들도 눈치껏 빠졌다.”
“잘했다.”
“한도령. 너는… 분하지도 않냐?”
“뭐가.”
“오성에 복수하기 위해 일어난 우리가 오성의 구조대와 협력하고 물러서야 하는 게.”
잘 모르겠다. 오성그룹의 쓰레기들이 죽어 마땅하다는 사실은 틀림없지만 그 밑의 생도들은 무슨 죄인
가.
[서울 마경화]가 진행 중인 지금은 모두가 각자의 소속과 단체를 잊고 구조 활동으로 잠시나마 각자의 꿍
꿍이와 음모를 뒤로한 채 한 마음 한 뜻으로 움직였다.
‘구조 활동이 끝났다면 이제부터는…….’
무슨 일이 일어나게 될지 누구도 짐작할 수 없다.
무거운 책임감이 내 등을 짓눌렀다.
“괜찮아. 분명 어떻게든 될 거야.”
“…….”
민지가 조심스레 내 어깨를 토닥여주었다.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주아름의 공허한 시선을 보면 더욱 입이 열리지 않았다.
쾌검대가 궤멸하고 홀로 돌아온 그녀는 사람이 달라졌다.
사치스러우면서도 쾌활했던 일면은 완전히 사라졌다.
항상 위험한 작전에 참여하길 희망하며 목숨을 걸었다.
그런 사투 속에서 아이러니하게 초능력을 각성했다.
그녀의 초능력은 A급 초상계 능력[강제정지]였다.
「뒤늦게 이런 능력이 생긴들 뭘 할 수 있죠?」
「조금만 더 빨리 각성했다면.」
「그때, 두 사람을 멈추게 할 수 있었다면…….」
초능력을 각성한 날, 주아름이 소리 없이 눈물을 흘리며 내게 했던 말이었다. 허나 죽은 사람은 그들만이
아니었다.
한강유역으로 향했던 팀에서는 충격적이게도 히미코가 사망했다. 저조한 신체능력 탓에 갑작스러운 폭
우에 휩쓸려 손 쓸 새도 없이 팀이 전멸했다고 한다.
라이언은 귀환도중 중상을 입고 후방에 이송되었고 빙결술사마저 지난 작전에서 일만에 가까운 수중몬
스터를 학살하다가 원기가 상해 쓰러졌다. 그나마 건재한 건 이효인뿐이다.
‘4월 혁명군 전력도 수천에 육박하던 때가 있었건만.’
‘지금 남은 건 고작 500명 남짓인가.’
가장 힘겨운 시기를 넘었기에 실전경험을 갖추고 평균실력대도 대폭 상승했다지만 머릿수가 줄어든 것
은 큰 타격이었다. 4월 혁명군의 신규단원 유입이 완전히 끊겼기 때문이다.
-성진그룹의 폭주는 4월 혁명군의 무책임한 몰아붙이기 때문이라는 의견이 주류를 이루고 있습니다.
-구조활동이요? 그들은 서울을 망쳤습니다. 소 잃고 외양간 고치기도 아닙니다. 이건 사후약방문이죠. 4
월 혁명군은 성진의 비리를 밝혀낸 대신에 피해자들을 죽게 만들었습니다.
-4월 혁명군 보스가 다크히어로라고 불린다 한들 그들의 본질은 빌런입니다.
성진그룹이라는 공적이 사라진 지금, 대한민국은 4월 혁명군을 새로운 공적으로 만들고자 불온한 움직
임을 보이기 시작했다. 언론과 십대세가, 오대기업 모두가 그러했다.
“한도령. 역시 움직이려면 지금이 기회라고 생각한다.”
“김일식. 갑자기 무슨 소리를 하려는 거냐?”
맨스카인드의 작전에는 커다란 회의감을 보였던 그가 모든 일이 망가져버린 지금에 이르러서야 의견을
내었다. 검을 닦던 주아름이나 의기소침한 민지까지 그를 쳐다보았다.
“이대로 물러나면 머지않아 모든 거대조직들이 4월 혁명군에게 책임을 묻겠다며 우리를 공격할 거다.”
“당하기 전에 움직일 수 있는 마지막 기회다 이거냐? 기껏해야 한 번 움직일 기회밖에 없는 우리가 뭘 할
수 있다는 말이냐. 뭘 하든 아무런 소용도 없을 텐데.”
“아니. 최소한 오대기업의 영향력은 철저하게 배제시킬 수 있지. 오성의 비밀거점을 치고 이를 고발한다
면 말이다.”
김일식의 눈은 더할 나위 없이 진지했다.
그는 진심이었다.
바로 지금이야말로 우리의 목적을 완수할 때라고 주장했다.
“지금 오성을 치자는 말이냐?”
“서울이 무너지고 놈들의 병력편제가 엉망진창이 된 지금, 역설적으로 비밀시설의 보안은 낮아졌을 거
다. 성진그룹의 민폐는 칠대기업에도 피해를 끼쳤으니까.”
“지금 이상으로 사망자가 늘어나면 조직을 유지하는 것조차도 힘들어진다.”
“오성을 칠 수 없는 조직이라면 건재하다고 한들 아무런 의미도 없지. 우리가 조직 놀음이나 하려고 아카
데미를 나온 게 아니라는 건 너도 알고 있지 않나.”
“…….”
김일식의 말이 옳았다.
우리는 조직놀음이나 하려고 모인 게 아니다.
그러나 그의 주장에는 문제가 있었다.
‘필요에 따라 송지애를 죽인 네가, 이번에는 다른 모두를 죽일 작전을 내지 않았다는 보장이 어디에 있
지?’
김일식에 대한 신뢰는 이미 무너진 지 오래였다.
이정수와 마찬가지로 그는 신뢰할 수 없는 인물이다.
“오성을 치는 거에는 동의한다.”
“치는 거에는 동의한다니? 달리 무슨 생각을 하는 거냐.”
“오성이 바보가 아닌 이상에야 정부의 비밀시설이 털리는 와중에 자신들의 시설수비를 생각해두지 않을
리가 없지. 허를 찌른다고 해봤자 이미 적은 대비를 끝마쳤을 거다.”
“그럼 이대로 물러나겠다는 말이냐?”
“양동을 쓸 거다.”
나는 김일식을 바라보았다.
“본대의 작전지휘만큼 양동의 작전지휘도 중요하지. 현장에서 직접 적의 이목을 끌며 최대한 효율적으
로, 조금이라도 오래 시간을 끌어줄 책사도 필요하고.”
“…나를 양동작전에 쓰겠다는 말이냐?”
“너도 원했던 복수가 아니냐. 비록 일선에서 직접 도움이 되지는 못하더라도 네 초능력을 생각해보면 이
게 맞다.”
김일식의 [위기감지] 초능력은 머지않을 미래에 자신의 신변에 위협이 닥치면 발생한다.
“이유는, 정말로 그것뿐이냐?”
“그래.”
“…알겠다. 그럼 양동부대는 어디에 보낼 작정이냐.”
“오성아카데미.”
“뭐, 뭐라고…! 그놈들의 실력이 어떤지 알고 있으면서,”
“어차피 십대세가 소속은 전부 제 가문으로 돌아갔을 거다. 녀석들은 칠대기업을 그리 신뢰하지 않아. 수
도가 끝장이 난 마당에 언제까지 생도로 남아있을 것 같냐.”
“…….”
“죽일 필요도 없다. 생도들을 인질로 붙잡고 시간을 벌기만 해도 충분하다. 오성의 실체가 언론으로 드러
나면 생도들도 너희에게 협력할 거다.”
물론 아닐 가능성도 높다.
그 전에 김일식을 비롯한 양동부대가 전멸할지도 모른다.
그래도 상관없다.
오히려 바라던 바다.
김일식은 그런 음험한 살의를 읽었다.
그래도 아무 말 없이 내 강요 아닌 강요를 받아들였다.
송지애의 죽음을 방관하였던 김일식에게 내가 침묵해야 했듯이, 그 또한 침묵할 수밖에 없음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이번 양동작전에서 죽어버리든 살아서 돌아오든.’
‘너와는 여기까지다, 김일식.’
싸늘한 겨울 속에서 우리의 우정 또한 차갑게 식었다.
서울이 끝났듯이 4월 혁명군의 결속 또한 끝을 향해갔다.
[4회차] 오성과의 결착
上