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nemy of the Greatest Psychic Ever RAW novel - Chapter 18
018 – [2회차] 뒤처진 자리에서( )
집으로 돌아오자 김다연이 심각한 표정을 지으며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무슨 일 있었어?”
“아…. 그게, 동기들한테 연락이 왔거든.”
“동기?”
“아카데미.”
“아.”
김다연도 나와 같은 B반이었지만, 교우관계는 나처럼 협소하지 않았다. 뛰어난 실력과 총사 겸 저격수라
는 특수한 클래스 덕분에 많은 이들의 주목도 받았다.
쉽게 말해서 전도유망한 젊은이라는 말이다. 이른 나이부터 인맥관리에 철저한 정예생도들이 가만 둘 이
유가 없다.
“우리랑 비슷한 사건을 겪었다나봐.”
“봤어.”
“너가? 어떻게?”
나한텐 절대로 연락을 할 동기가 없을 텐데, 라는 단정적인 어조였다. 사실이라서 별 생각은 안 들었다.
“B반 생도들이 병원에 실려 왔더라고.”
“아~ 거기가 거기였구나.”
애초에 내가 통원치료를 받는 병원이 오성아카데미의 지원으로 병원비가 무료일 정도로 오성의 영향력
아래에 있는 곳이니, 오늘의 조우가 마냥 우연인 것도 아니다.
“걔들 말로는 이번 던전폭주는 뭔가 이상했다면서 아무런 전조현상도 없었더라고 하더라고.”
“그래?”
“다른 던전폭주 케이스랑은 흘러가는 양상이 전혀 달랐대. 정말 날벼락이라도 맞은 것처럼.”
그럴 수밖에 없겠지.
그건 진짜 인위적으로 일어난 던전폭주일 테니깐.
“어쩌면 오성아카데미 생도를 노린 테러 아니냐는 얘기까지 나오고 있어.”
“우리랑은 관계없는 일이지.”
“그렇지만도 않아. 어쩌면 우리가 겪었던 사건도……. 같은 경우가 아닌지 얘기가 나오고 있어.”
그간 우리는 의도적으로 던전에서 있었던 일이나 죽은 동료들에 대한 화제를 피해왔었다. 이런 식으로나
마 그 사건을 언급하는 건 사실상 반년만의 일이다.
“같은 경우라면. 그땐 어떻게 할 건데?”
“그건…….”
김다연이 제 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어떻게 하다니. 어떻게도 할 수 없잖아.”
“뭐, 그렇지.”
“…도령이는 뭔가 하고 싶은 거야?”
물론 내게는 해야 할 일이 있다.
복수.
그리고 성장.
우리를 엿 먹인 놈들을 찾아가 죽일 것이고.
누구보다도 멋지게 성장해서 친구와 재회할 거다.
최고나 최강은 바라지도 않는다.
딱 복수를 끝마칠 수 있을 정도까지만.
친구 앞에서 당당할 수 있을 정도로만 성장하면 된다.
“어.”
김다연이 울 것 같은 표정을 지었다.
“하지 마.”
“왜?”
“위험하잖아. 다칠 거라고.”
“걱정 마. 섣부르게 행동하지는 않아.”
“뭘 해야 하는지 알기나 하는 거야?”
묘한 뉘앙스가 느껴지는 말이다.
마치 그녀는 내가 뭘 해야 하는지 안다는 것처럼 들린다.
의심어린 눈으로 바라보자 그녀가 멈칫했다.
“뭔가 알고 있는 게 있구나.”
“…맞아. 도령이는 모르는 비밀, 알고 있어.”
이번에는 내가 걱정되기 시작했다.
도대체 김다연이 어떤 비밀을 알고 있는 걸까.
“그래도 알려주지 않을 거야.”
“어째서?”
“알려주면, 도령이는 틀림없이 떠날 테니까.”
이 대화의 맥락으로는 눈치 채지 못하는 게 무리였다.
이제야 알았다.
그녀는 내가 누구에게 복수해야 하는지 알고 있다.
정확하게, 전부는 아니더라도.
그중 일부에 대해서는 알고 있는 것이다.
“다연아.”
“싫어. 아무 말 안할 거야.”
“네가 생각하는 그런 거, 바로는 안할 거야.”
나라고 복수심이 없는 건 아니다.
그렇지만 개죽음은 사양이다.
원기회복도 다 안 끝난 몸으로는 객사하기 딱이다.
상대는 이 나라에 드리운 거대한 어둠.
그 자체를 휘두르는 무시무시한 흑막이다.
원작 주인공인 레드프린스 이진태조차 고전했다.
자칫 잘못했다간 국가단위의 적과 싸우게 된다.
1회차 수준의 무력으로도 그들은 답이 없다.
‘앞으로 4년 반 가량의 원기회복. 거기에 더해서 경지를 끌어올리기 위한 시간까지 더하면…….’
어림짐작으로 미루어보아 얼추 8년은 걸린다.
10대가 끝나고 20대 중반에 접어들 무렵이다.
“바로 헤어지는 게 아니야.”
“나쁜 놈.”
“…….”
김다연이 눈물을 흘렸다. 어쩔 줄 모르고 쳐다보고 있자니 씩씩거리며 오른팔 소매로 눈물을 훔쳤다.
“혼자만 보낼 거라고 생각했어?”
“……!”
“같이 갈 거야. 가더라도 절대 혼자는 못 가.”
“안 돼. 위험해.”
“너도 위험하잖아. 도령이 넌 되면서 나는 왜 안 돼!”
나한테는 다음 기회가 있지만 너한테는 없으니까.
회귀로 인한 인생 다회차반복.
이것만큼은 누구에게도 공유할 수 없는 영원한 비밀이다.
“네가 약하니까.”
“약하다고…?”
“그래.”
김다연이 헛웃음을 지었다.
“원기부족으로 몸도 제대로 못 가누는 처지에, 누가 누구보고 약하다는 말을 입에 담아?”
“…….”
“말도 안 되는 소릴 할 정도로 내가 못마땅하다는 거야?”
솔직히 그렇다. 김다연은 원작소설은커녕 1회차 시절에도 이름을 알리지 못한 엑스트라였다. 엑스트라
보다 못한 F반 자퇴생이었던 내가 할 생각은 아니지만.
적어도 퇴학 후 5년 뒤의 나는 A반 졸업생 중에서도 S급에 달하는 철왕 김철괴를 죽이기도 했다.
“좋아. 그렇게까지 자신만만하다면 나랑 내기해.”
김다연이 표독스러운 눈으로 나를 노려보았다.
“내가 지면 알고 있는 정보를 공유해줄게.”
“네가 이기면?”
“복수 따위는 포기해. 그리고…”
독기어린 시선이 점차 갈 곳을 잃더니 맥없이, 어쩌면 수줍은 것처럼 바닥을 기었다.
“…자.”
“뭐라고?”
“아, 아무것도 아니야. 아무튼 복수는 포기해.”
좋다.
언젠가는 그녀와 매듭을 지어야 할 문제였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단, 조건이 있어.”
“무슨 조건?”
“삼년만 뒤에 대결하자.”
“…쫄려?”
“조금? 그렇게 많이는 아니고…”
머쓱하니 변명을 덧붙이자 김다연이 피식 웃었다.
“도령이 바보 같아.”
“윽…”
“그래, 알았어. 삼년 뒤로 하자.”
불같이 화를 낼 줄 알았는데 의외로 순순히 허락해줬다.
김다연은 이내 소파 앞까지 날 질질 끌고 왔다.
“가만히 있어.”
그러더니 소파 위에 올라와서는…
그제야 눈높이가 맞는 내 얼굴을 안아주었다.
“이거 알아? 나한텐 이제 도령이뿐이야.”
“…알지.”
“삼년만이라도 좋아. 도령이도 나만 바라봐줬으면 좋겠어.”
반쯤은 고백이나 다름없는 내심을 털어놓았다.
응할 수 없는 마음.
하지만 삼년 만이라면, 어쩌면…….
“미안.”
“바보. 이럴 땐 거짓말이라도 해야지.”
“…미안.”
그저 그 말밖에 할 수 없었다.
***
김다연은 많은 것을 포기했다.
집안의 기대, 스스로의 장래, 히어로의 꿈.
그러나 후회하지는 않았다.
한도령과의 동거는 이전의 자신이 선택할 수 없었을 미래.
아니, 어떤 의미로는 기적이나 다름없었다.
명문가의 자제들이 으레 그러하듯.
그녀의 삶은 정해진 계획대로 흘러가고 있었다.
‘그 사건이 아니었더라면.’
아니.
‘도령이의 부탁이 아니었더라면.’
설령 그런 사건을 겪었더라도 그녀는 변치 않았을 거다.
평정을 가장하며 아카데미를 다니고.
아무렇지도 않은 척 실적을 쌓으며 졸업하고.
가문의 뜻대로 적절한 지위를 지닌 히어로가 되고.
격에 맞는 다른 명문가의 자식과 교제를 하고.
몸을 섞고, 마음을 주고, 세월을 보내고.
할머니가 그러했듯, 자식의 미래를 설계했을 거다.
‘안정적인 번영.’
오직 그것 하나만을 놓고 보자면 실로 완벽한 계획이다.
사실은 굳이 오성아카데미의 B반을 노릴 필요도 없다.
그저 그런 D반 정도로만 졸업해도 차질 없는 계획이었다.
그런데도 그녀가 강함을 추구하고 노력해왔던 이유.
마음 속 깊은 곳에선 변화를, 자유를 바랬기 때문이다.
허나 용기를 낼 수가 없었다.
할머니의 지원이 끊어지면 그녀는 아무것도 아니게 된다.
명문가의 자제도, 오성의 생도도, 장래의 히어로도.
‘인생을 저당잡인 처지.’
말 그대로였다.
레일을 벗어나면 가문도 부모도 돈도 아무것도 없었다.
허나 한 번의 사고가 확고부동했던 미래를 부쉈다.
폐광산붕괴. 지진. 생존의 위협.
동료들의 죽음. 생환.
간발의 차이였다.
살아남은 두 사람과 죽은 자들의 차이는 없었다.
누가 운이 좋았는지, 나빴는지 만으로 갈라진 운명이었다.
‘고작 이 정도로 끝나버릴 수 있는 목숨인데, 도대체 언제까지 견디고 참아야만 하지?’
살아남고도 그녀는 죽고 싶었다.
죽은 동료들에 대한 죄책감, 미래에 대한 절망감.
살아도 산 기분이 아니었다.
「그만두자.」
「어…?」
「아카데미. 같이 그만두자.」
그런 짙은 어둠속에 변화가 찾아왔다.
너무나도 간단히, 그녀의 마음을 붙잡은 사람이 있었다.
「안 돼! 어떻게 우리가 아카데미를 그만둬!」
「…….」
「그 애들은, 이제 다니고 싶어도 못 다닌다고. 우리가 걔들 몫까지 해내지 않으면…」
혼자만 행복해지는 미래를 받아들일 수 없었다. 그건 정해진 인생의 길을 벗어나는 일이다.
할머니의 장난감이라는 혐오스러운 삶의 방식보다도 더욱 처참한, 아무것도 아닌 쓰레기가 되어버린다.
그에게는 미안하지만, 역시 마음을 다잡아야 한다.
그런 비겁한 변명을,
결심을,
거짓말을.
「내가 힘들어.」
「아아…」
「그래도, 안 돼?」
그녀의 여린 품에 고개를 묻으며.
두려움을 녹여버렸다.
‘그래. 바로 그 날 결심했었지.’
자신과 같은 비극을 겪는 와중에도, 그 대혼란의 중심에서 짐이나 다름없었던 자신을 끝까지 지키고자 목
숨을 걸었던 도령이의 부탁이라면.
기꺼이 아무것도 아닌 쓰레기가 되겠노라고. 나아가, 그와 함께라면 결코 쓰레기 같은 삶이 되진 않을 거
라고. 이제부터는 자신이 평생 그를 지켜주겠다고.
‘그도 분명 같은 마음일 거라고 믿고 있었는데…’
달랐다. 그와의 거리감을 좁히려 노력할 때면 언제나 보이지 않는 벽을 느꼈다.
그 이유를 오늘에서야 알 수 있었다.
그는 아직 복수를 포기하지 않은 것이다. 죽은 동료들을 대신해서 원수를 갚을 작정이다.
‘…병원에서 그 사람들은 얘기했었지.’
그 사건에는 군이 관계되어 있다고.
겉으로 드러난 조직만 해도 그러한데 속은 어떠할까.
감히 짐작하기조차 두렵다.
4년의 정양.
그 정도로 어떻게 될 일이 아니다.
이대로는 4년 뒤에 기다리는 건 죽음뿐이다.
김다연은 결심했다.
그도, 그녀도 보다 강해져야만 했다.
쉬익… 쉬이익…
회복캡슐 속 한도령은 이미 수면상태에 접어들었다.
저 상태의 그는 아침까지 절대 깨어나지 않는다.
김다연은 조용히 옷을 입고 현관을 나섰다.
자정이 넘은 시각.
인근 놀이터.
정장을 입은 성인여자가 그네에 앉아있었다.
언뜻 동심을 그려보려는 시도처럼 보일법도 하건만.
이상하게도 저 여자의 모습만큼은 기괴한 인상을 심었다.
‘그림자가…….’
보이는 모습과 맞지 않기 때문이다.
그녀의 발밑에 드리운 그림자는 그네를 구겨뜨렸다.
구부러진 철봉에 무언가가 목이 매달린 채 흔들리고 있다.
감출 수 없는 폭력적인 충동.
그 잔혹한 살의가, 김다연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드문 일이군요. 가문을 떠난 아가씨께서 먼저 연락을 해오시다니. 본가로 돌아오시려는 겁니까?”
“아니. 부탁을 하려고 왔어.”
“부탁이라… 가문의 위광도 없는, 오성아카데미의 생도도 아닌, 평범한 소녀 따위가. 감히, 제게, 부탁
을?”
가로등 아래로 드리운 그림자가 사납게 꿈틀거렸다.
그것은 괴물의 움직임에 가까웠다.
“으읏…!”
던전에서 경험했던 공포.
그것에 준하는 감각이 단숨에 온 몸을 잠식했다.
가문에서 기른 A급 암살자의 살기.
정면에서 견디기에는 너무나도 잔혹한 기운이었다.
허나, 꺾이면 잡아먹힐 뿐이다.
이를 악물었다.
없는 용기를 쥐어짜내어, 고개를 들었다.
“…!!”
그 순간, 암살자의 긴 머리칼이 마구 흩날렸다.
그녀를 중심으로 본격적인 기세가 개방되었다.
폭풍우처럼 몰아치는 스산한 바람.
그것은 살기의 폭풍이었다.
수천 개의 칼날이 매 순간 살갗을 도려내는 것 같았다.
핏, 피빗
의지가 흔들리기 무섭게 뺨이 갈라지며 핏자국이 생겼다.
그림자가 김다연의 발밑까지 도달했다.
칼날로 이루어진 손이 뺨을 스치고, 목을 향했다.
“그저 두려움에 떠는 것. 그게 전부입니까?”
“유산상속을, 포기하겠어!”
절박한 외침에 거짓말처럼 바람이 멎었다.
김다연이 헐떡이며 주저앉았다.
여자는 그네에 앉은 자세 그대로였다.
단 한 걸음의 움직임도 없이.
그저 기세만으로 그녀를 죽음 직전까지 몰아붙였다.
이 정도의 암살자가 한 명도 아닌 열 명…
어지간한 명문가는 하루아침에 멸문시키고도 남을 힘이다.
가문의 두려움이 새삼 실감되고 말았다.
“가주께서 남겨둔 마지막 연결고리마저 끊겠다. 그 남자에게 그만한 가치가 있습니까?”
“사랑에 가치 따위는 필요 없어요.”
“과연. 소녀는 사랑하는 마음으로 비로소 여자가 되나니. 여자의 기쁨을 깨달으셨군요. 축하드립니다.”
여자의 말에는 한 줌의 온정도 담겨있지 않았다.
김다연은 쓴웃음을 지었다.
“이 정도면 부탁 하나쯤은 드려도 괜찮겠죠?”
“과분한 요청이 아니라면.”
“삼공무환약. 가문의 영약이 필요해요.”
삼공무환약은 초능력의 페널티로 극심한 후유증을 앓거나, 마력폭주로 인해 원기를 소실당한 자들의 회
복기간을 대폭 단축시키는, 김다연의 가문이 지닌 비전영약이다.
“그런 부탁일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여자가 작은 케이스를 꺼내 손으로 튕겼다.
다급히 케이스를 낚아챈 김다연은 내용물을 확인했다.
“정말로 삼공두환약을… 어떻게 알고 미리 챙겨오셨죠?”
“가주의 뜻입니다.”
“할머니께서 저를 위해 직접…….”
김다연은 망설임 끝에 결심을 마친 듯, 눈물을 참는 표정으로 고개를 숙이며 예를 표했다. 놀이터를 떠나
는 그녀의 뒷모습을 지켜보며 정장여자가 귓가에 손을 대었다.
“작전중지. 표적은 살려둔다.”
단호한 명령에 오피스텔에 침투했던 그녀의 부하들이 흔적을 지우며 철수했다.
“아가씨… 운이 좋으셨군요.”
암살자는 떠올렸다.
자신에게 직접 내려졌던 가주의 지령을.
-그 아이가 약을 원한다면 기꺼이 주어라.
-허나 그에 마땅한 값을 지불하지 못했다면, 그 대가로 소년을 죽여라.
누군가가 원하는 것을 들어주되, 그 값이 부족하다면 더욱 소중한 것을 대가로 받아간다. 피로 쌓아올린
암살가문의 철칙은 혈족에게도 향했지만, 가까스로 비극을 비껴나갔다.
“부럽군요, 아가씨. 사랑 같은 달콤한 거짓말에 속을 수 있다는 사실이.”
하지만 아실는지 모르겠습니다.
저 냉혹한 가주조차도 한때는 사랑에 빠진 소녀였음을.
끝마친 상념과 동시에 바람이 불고 그네가 흔들렸다.
흔들림이 멎었을 때에는.
여자도, 그림자도 모두 사라진 뒤였다.
[2회차] 되다만 것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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