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nemy of the Greatest Psychic Ever RAW novel - Chapter 200
199 – [5회차] 히어로 수업( )
하정아가 어리둥절해 하며 되물었다.
“방금 신세 갚기를 하고 싶다고 하셨나요?”
“맞아. 슬슬 빚진 걸 갚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그렇게 서두르실 필요는 없어요. 저흰 아직 생도인걸요.”
내가 향후 10년을 의탁할 세력으로 선택한 곳은 당연하다면 당연하게도 하씨세가였다. 이미 3회차에서
한 번 협력관계의 구축에 실패했지만 그때는 내 실력이 부족했었다.
지금은 다르다. 정용인을 잡아 S급 각성환의 존재를 알리는 것도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내가 불편해서 그래. 유아도 히어로수업에는 큰 관심이 없어 보이고 슬슬 아카데미 졸업 후도 생각해야
지.”
“흠흠. 두 분은 마법계열 초능력자가 아닌데 그래도 하씨세가에 관심이 가시는 건가요?”
“그런 생일선물을 받았는데 입 닦고 모르는 체 할 수 있겠냐? 무조건 하씨세가로 가야지.”
오히려 하씨세가에 가지 않겠다고 하면 천 억짜리 선물을 먹튀했다고 원한관계마저 생길 거다. 하정아도
아예 확답을 받으니 마음이 놓였다는 듯이 안색이 환해졌다.
“마침 히어로수업에서 사회견학과제를 내주었죠. 그럼 내친김에 오늘 견학이나 가보시겠어요?”
“견학?”
“제 본가로요. 하씨세가에서도 일단은 구색 맞추기에 지나지 않지만 히어로사무소를 하나 운영하고 있답
니다.”
말로만 들어도 제대로 돌아가는 히어로사무소라고는 느껴지지 않지만 거절할 이유는 없었다. 오히려 바
라던 바였기에 기꺼이 수락했다.
강유아는 모처럼의 외출을 견학에 쓰는 걸 못마땅해 하였지만 마리 앙투아네트를 받은 빚이 있으니 얌전
히 따라왔다.
“차가 굉장한데.”
“접대용이에요. 그만큼 제가 두 분을 신경 쓰고 있다는 거 이해하시죠?”
짐짓 자랑스럽게 말하는데 띠겁다는 생각이 안 들 정도로 신경 쓴 대접이다. 애초에 16살 생도에게 칵테
일바가 달린 차량접대는 헛웃음이 나올 정도로 과했다.
장담컨대 내 옆에 강유아가 없었으면 여자까지 붙여서 음주가무로 현혹하려 들었을 게 틀림없다.
“도령. 이거 봐.”
강유아가 살짝 상기된 얼굴로 칵테일바에서 무언가를 주웠다.
콜라 캔이다.
“앗, 그건…”
하정아가 살짝 당황하며 손을 뻗자 강유아가 의아해하며 시선을 보냈다.
“아니, 그… 더 좋은 것도 많은데 굳이 그걸 드시려고요?”
“우린 미성년자야.”
“보는 사람도 없는 데 뭐 어때요.”
“술은 싫어.”
“알았어요… 그거 드세요.”
살짝 원망어린 시선에서 하정아도 술을 좋아하는 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도착했습니다.”
운전기사의 안내에 차량에서 내리자 고급차량이 무색하게도 뭔가 실망스러운 건물이 나타났다. 연식이
낡고 초라해 보이는 구식빌딩이었다.
헌데 이 빌딩, 위치가 조금 신경 쓰인다. 하씨가문의 사업체들이 모인 빌딩 저층에 자리하고 있다.
“겸사겸사에요. 이왕이면 저희사람 많은 곳에 히어로사무소를 세워두는 편이 좋잖아요? 자선사업도 아
닌데.”
“그렇긴 하겠군.”
사무소에 들어가자 멋들어지게 수염을 기른 중년인이 우리를 반겨주었다.
“오오. 그쪽이 소문이 자자한 오성의 초신성이로군? 만나서 반갑네. 하도응 히어로사무소의 소장 하도응
일세.”
“한도령입니다.”
“강유아.”
“여자친구의 미색이 아주 대단하군. 역시 영웅은 미녀를 취해야 때깔이 좋지. 모쪼록 어려운 발걸음을 했
으니 오늘 하루는 마음 편히 쉬다가 가게나.”
“견학이라고 했는데 뭘 보고 간다거나 하지는 않습니까?”
하도응이 우리와 함께 온 하정아의 눈치를 봤다. 하정아가 고개를 끄덕이자 그가 어깨를 으쓱했다.
“그리 열의가 넘친다면 견학을 시켜줘야지. 따라오게.”
사무소는 비좁고 인원수는 조금 부족해도 항상 열의가 넘쳤던 카르멜 히어로사무소와 달리, 하도응의 히
어로사무소는 명색이 하씨세가의 사업체인 주제에 규모만 크지 열의가 없었다.
근무하는 이들은 사이드킥이 아닌 사원들이었고, 현장에 출동해야 할 히어로는 늘어져라 낮잠을 자고 있
었다.
“미안하네. 못볼 꼴을 보여줘서.”
“일이 굉장히 고된가봅니다. 사이드킥은 모조리 현장출동에 사무소를 지키는 히어로들도 인사불성이라
니.”
“아. 오해하지 말게. 전혀 그런 건 아니니. 저놈들은 그냥 휴가를 맞이해서 게으름을 부리고 있을 뿐이네.
사이드킥 같은 건 애초에 따로 두지도 않았고.”
“네?”
“쉽게 말해서 저들은 히어로면허만 따둔 하씨세가의 마법병단원들이라는 말일세.”
이렇게까지 막장이어도 되나 싶을 정도로 황당무계한 이야기였다. 근데 그게 눈앞에서 벌어지고 있는데
다가 하정아의 본가에서 일어나는 일이니 뭐라 말도 못하겠다.
“걸리면 징계먹지 않습니까?”
“징계? 허허. 이 나라의 어떤 간이 부은 작자가 우리 하씨세가를 감시하겠나. 설령 그런 미친놈이 나타난
다고 한들 옷 벗기고 쫓아내면 그만이지.”
“정부에도 알력을 행사할 수 있단 말입니까?”
“어려울 거 없지. 애초에 히어로사무소를 운영하는 이유가 히어로를 빌미로 정부에서 하씨세가의 권역에
외부사람을 심어두는 걸 방지하기 위해서라네.”
“그러다가 빌런이 나타나기라도 하면 어떡합니까?”
하도응이 허허로이 웃으며 넉살을 부렸다.
“그럼 상황 봐가면서 죽여 놔야지. 애초에 자살지망자가 아니고서야 이 하씨세가의 영역에 제 발로 찾아
올 빌런이 있을 성 싶은가? 그런 놈은 지금껏 한 명도 없었네.”
“일리 있군요. 십대세가의 영역에서 깽판을 치는 빌런이라니 상상도 하기 힘들기는 합니다.”
“게다가 히어로사무소를 두면 좋은 이점이 한 가지 더 있네. 뭘 것 같나?”
모르겠다는 의미로 고개를 젓자 그가 한층 더 즐거워하며 알려주었다.
“하씨세가를 침범하는 적대세력을 빌런으로 몰 수 있다는 거지. 빌런 프레임, 거 얼마나 좋나? 내 마음에
안 들고 거슬리는 놈을 빌런으로 낙인찍을 수 있다는 거, 아주 좋은 일이네.”
나도 모르게 표정관리에 실패할 뻔했다. 지금까지는 어떻게든 흘려들을 수 있는 수준이었지만 더는 아니
다. 이들의 히어로를 취급하는 방식은 도를 지나쳤다.
대중이 불신하는 히어로의 전형적인 온상, 아니 그보다도 한층 더 심한 유사히어로들이다.
“좋은 참고가 되었습니다.”
“후학의 배움에 도움이 되었다면 그걸로 만족하네.”
“혹시 히어로가 되고 싶어서 온 건 아니겠지?”
“처음부터 그럴 생각은 없었습니다.”
“철없이 히어로를 꿈꾸는 것 같지는 않아서 다행이군. 내 그래도 노파심에 충고하지. 명심하게. 진심으로
히어로가 되려는 작자들은 고지식하고 우둔한 이들뿐임을.”
견학은 빈말로도 즐겁다고 말할 수 없었다. 강유아도 생각지 못한 히어로의 실상에 다소 충격을 받은 눈
치였다. 말수가 줄어든 강유아를 보며 하정아가 조심스레 말문을 열었다.
“실망하셨나요? 히어로라는 게 TV에서 보던 그런 히어로가 아니라서.”
“나는 아무렇지도 않다. 유아는 어땠을지 모르겠지만…….”
“저런 건 히어로가 아니야.”
강유아가 그리 말하자 하정아도 표정이 좋지 못했다.
“히어로는, 저런 놈들도 해서 좋은 일이 아니야.”
“미안해요. 그래도 솔직하게 보여드리고 싶었어요. 저희 가문에서 히어로라는 건 저런 느낌이에요.”
“납득 못하겠어. 이런 걸 보여준 이유.”
“화나게 하려고 보여드린 건 아니에요. 조금 현실을 보여드리고 싶었을 뿐이죠. 성실하게 노력해봤자 히
어로사무소 랭킹에서 위를 차지하는 건 저런 사무소들이 전부에요.”
“말도 안 돼.”
“정말이에요. 못 믿겠다면 직접 보여드리죠.”
하정아가 스마트워치를 조작해서 2021년 히어로협회 지정 최우수 히어로사무소 상위 7개를 보여주었
다. 그중 하나에는 놀랍게도 하도응 히어로사무소가 버젓이 존재했다.
나조차도 이런 것까지는 예상치 못했기에 멍한 기분으로 스마트워치를 들여다보았다.
“심사기준이 어떻게 되지?”
“빌런 무사격퇴 횟수, 격퇴 빌런 등급, 구조시민의 감사전화에 의한 레스큐점수 가산, 뭐 그런 것들이죠.
전부 돈과 권력으로 대신할 수 있는 아무래도 좋은 것들이요.”
“…….”
“그래도 저희는 무고한 시민을 빌런으로 만들거나 타지의 빌런을 납치해서 억지로 범죄를 저지르게 만들
지는 않아요. 다른 세가에 비하면 훨씬 깨끗한 편이죠.”
“십대세가의 자리를 유지하려면 그런 짓까지 해야 하냐?”
예상보다 나와 강유아의 반응이 좋지 않음을 깨달았는지 하정아가 쓴웃음을 지었다.
“두 분이 워낙 초연하고 어른스러워서 얘기를 꺼내보았지만 너무 서둘렀나보네요.”
“마음에 들지 않아. 진짜 히어로라면…….”
“진짜 히어로. 그런 게 무슨 의미가 있나요? 애초에 어째서 그런 환상에 놀아나야 하죠?”
“히어로는 그런 식으로 더럽혀져도 좋을 존재가 아니다. 변변찮은 놈들이나 하는 게 히어로라고는 해도,
히어로는…….”
“어머. 감상적이기도 하셔라.”
하정아는 내 말을 조금도 진지하게 듣지 않았다.
“명문 하씨세가의 후계자로서 직접 충고를 드리죠. 그런 마음가짐으로는 설령 SS급 초능력자라고 한들
이 나라에서 오래 살아가지는 못할 거예요.”
내심 십대세가만큼은 다르다고 생각해왔다. 민중을 착취하며 실험용재료로까지 써먹는 정부와 칠대기업
과는 달리, 이 나라를 지켜줄 수 있는 세력이라고 믿었다.
현실은 이 모양이다. 권력을 지닌 자들은 모두 자신들 이외의 인간을 직접 기르거나 도축해야할 가축처럼
여기고 있다.
“한도령씨. 조금은 자신의 위치를 깨달아주셨으면 해요. 두 분은 히어로의 도움이 필요한 일반시민도 아
니고, 실력이 없어서 히어로가 되어야 하는 열등생도 아니에요.”
“유아가 바라는 건 자신의 입장을 이용하는 게 아니야.”
“그래도 당신은 이용하길 원하지 않았나요? 선물을 받았고, 이렇게 하씨세가의 히어로사무소를 찾아왔
죠. 당신은 저희와 손을 잡을만한 힘이 있고, 이를 인정받았어요.”
“…….”
“상위 0.01%의 부유한 삶이 당신을 기다리고 있어요. 강유아씨에게 준 선물이 맛보기로 느껴질 정도의
세계가. 필요한 건……. 약간의 현실자각 뿐이죠.”
우아한 아가씨로만 보였던 하정아가 비정한 현대사회의 괴물로 돌변하기까지는 그리 오랜 시간이 필요
하지 않았다.
“빚은 확실히 갚을 거다.”
“정말로 거기까지 만인가요?”
“오늘 본 일은 없던 일로 생각하지.”
“후우. 어쩔 수 없죠. 배웅은 없더라도 이해하길 바랄게요.”
“견학에 초대해준 건 고맙다고 말해두지.”
하씨가문을 아군으로 삼는 대가로 강유아와의 관계가 파탄난다면 목적과 결과가 뒤집히는 본말전도가
된다.
강유아와 나를 안전하게 지켜줄 기둥으로서 하씨세가를 선택하려던 것이지, 그들의 부품이 되길 원한 게
아니다. 부품은 반드시 소모되고 역할을 다하지 못할 때가 되면 버려진다.
“미안해.”
고급차량의 시트에 편히 몸을 눕히며 갈 때와 달리, 돌아오는 길은 지하철까지 도보로 걸어갔다.
“뭐가 미안해?”
“나 때문에 틀어졌어.”
“신경 쓰지 마. 오늘은 하정아가 너무 서둘렀을 뿐이야.”
어쩌면 우리가 미숙하다고 할 수도 있겠지.
실은 어느 쪽이든 상관없다.
“하씨세가에 진 빚은 혼자서도 충분히 갚을 수 있어. 애초에 그건 [선물]이었지. 선물 때문에 원하지도 않
는 사고관에 맞춰주고 어울려줄 필요는 없어.”
“나한텐 너무 과분한 선물이었어.”
“그럼 다시 가져가라고 할까?”
“그건…”
“정이 들었나? 마리 앙투아네트랑?”
강유아가 조심스레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내심 하정아의 수완에 혀를 내둘렀다.
빼도 박도 못하게 선물로 마음의 빚을 심어버렸으니, 하씨가문의 영향력에서 완전히 자유로워지는 건 불
가능하다. 그래도 이전에도 생각했듯이 빚을 갚는 건 얼마든지 가능하다.
‘던전공략. 빌런조직 궤멸. 정부의 비밀폭로. 각성환의 존재.’
SS급 초능력자가 할 수 있는 일은 얼마든지 넘쳐난다.
“넌 그냥 지금까지대로 살아가면 돼.”
“정말로?”
“힘 있는 사람은 원하는 대로 살아갈 수 있어. 내 힘이 하씨세가 전체만큼 크지는 않더라도 권유를 빙자한
압박에 굴할 정도로 나약하지는 않아.”
강유아가 변한다면 그녀가 품고 있을지도 모르는 비밀에 영영 닿을 수 없게 될지도 모른다. 그녀는 내가
아는 강유아로 남아있을 필요가 있다.
낯간지러운 눈 맞춤이나 키스 같은 건 없지만 꼭 잡아오는 손에서 날 향한 신뢰가 늘어났음이 느껴졌다.
[5회차] 히어로 수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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