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nemy of the Greatest Psychic Ever RAW novel - Chapter 209
208 – [5회차] 얄팍한 친분( )
친선대련 이후, 오성아카데미 A반의 분위기는 싸늘하게 가라앉았다. 중국공안대원들과 비교하면 변변찮
은 한국 초능력자들의 실상을 여실히 깨달았기 때문이다.
다른 아카데미 생도들이나 차라리 오성의 B반 생도라면 우리들은 다르다고 위안이라도 됐겠지만 현실은
달랐다.
“우린 A반이잖아. 23기 A반은 분명 근래 5년 이내에 최고의 실력자들이 모인 실력파 세대라고 했다고.”
“그러면 뭐해? 반쯤 깨지다시피 했는데.”
“한도령이 나섰으면 어차피 친선대련은 우리가 이겼어.”
“그 한도령이가 없었으면?”
“…….”
모두가 깨달았다. 한국 최고의 인재들이 모였다는 23기 A반 생도들의 수준이 중국의 공안대원들만도 못
하다는 사실을.
이는 재야인재나 다름없는 나와 이진태 같은 부류를 제외하면, 한국 십대세가의 차세대 인재양성수준이
중국 공안의 인재양성에 뒤쳐졌음을 의미했다.
“히어로 수업 따위를 듣지 않고 실력증진에 도움이 되는 수업을 들었더라면 나았을 텐데.”
“쓸데없는 인명구조 따위를 배우니까 이 꼴이 난 거잖아.”
가뜩이나 히어로수업을 못마땅하게 여겼던 생도들은 그리 주장하였고, 히어로수업을 중히 여기던 생도
들은 이에 반발했다.
“너희 집안의 교육이 부족해서 그런 거겠지. 히어로수업이 어쩌고 해봤자 넌 그날 한 판도 못 이겼잖아?”
“너희가 약한 걸 히어로수업 탓으로 돌리지 말라고!”
“뭐 이 새끼야?”
가뜩이나 B반에서 올라온 경쟁상대라서 A반 하위권 생도들과 사이가 좋지 않았던 장명훈과 김철괴가 시
비에 휘말렸다.
얼굴이 멍투성이가 된 옆자리생도가 알려주지 않았더라면 말리러 가지도 못했을 거다. 급히 현장에 달려
가 뜯어말리고 보니 양측 모두 생도복과 얼굴이 너덜너덜해졌다.
“한심한 녀석들. 분풀이 따위로 주먹다툼이나 하고 잘하는 짓이다. 전원, 삼일 간 근신. 머리 식혀라.”
양범호는 그렇게 사건을 마무리 지었지만 이 날의 소동을 기점으로 A반에 갈등의 골이 깊어졌음은 두 말
할 필요도 없었다. 어쩔 수 없이 괴도미션 활동주기를 늦추었다.
“이런 시기에 아카데미에 문제가 생기면 우리들이 밖에서 뭘 하고 다녔는지 조사가 들어올 수도 있어.”
“멍청이들. 걸림돌만 되고 짜증나.”
“너무 그렇게 말하지 마. 다른 나라의 초능력자들에게 밀린 게 그만큼 충격이 컸던 거겠지.”
강유아의 기분을 풀어주려고 그날 밤은 훈련도 미뤄두고 피자 세 판을 시켰다. 물론 한판은 내 몫이고 나
머지 두 판이 강유아의 몫이다.
강유아가 한 손으로 피자를 와구와구 먹으며 다른 손으로 TV리모콘을 꾹꾹 눌렀다.
“평소에 보는 프로그램이라도 있어?”
“내셔널 지오그래픽.”
“동물 나오는 그거?”
“응.”
“그걸 왜 봐?”
“동물의 동작이 실전에 써먹기 좋아.”
곰곰이 생각해보니 그럴싸한 발상이다. 어차피 초능력자의 신체능력은 범인의 수준을 아득히 뛰어넘었
다. 인간 이상의 힘을 지닌 동물들의 전투방식이 도움이 될지도 몰랐다.
“오.”
“저걸 따라하려고?”
“좋은 기술 같아.”
그렇다고 기린은 아니지 인마.
니 목은 몇 미터짜리가 되려고 저걸 보고 있냐.
그냥 신기한 거 보고 감탄할 뿐이잖아.
“뭐 신기하긴 하네.”
경화계열 초능력을 습득한 기린이 기다란 목으로 켄타우로스 등에 올라탄 오크사수들을 초토화시키는
광경을 보고 있자니 광고시간이 되어버렸다.
어느덧 피자 한 판을 모두 먹어치운 강유아가 재주껏 한 손으로 채널을 돌렸다.
요. 5분이 넘는 추격전에 휘말린 시민의 수만 수십여 명에 달하고 있습니다.]
“간도 크지.”
저 정도로 설치면 현장에서 사살당해도 할 말 없겠는데.
그런 생각이나 하며 생중계를 멍하니 바라보았다.
콰쾅 팡팡팡!
고층빌딩 한 채에 테러리스트 한 명이 붕 날아가 처박히면서 창문 수백 개가 일제히 깨졌다. 하늘에서 빗
발치는 파편을 피해 아나운서와 시민들이 비명을 지르며 달아났다.
요동치는 카메라를 보며 영화 한 편 보는 것보다 뉴스를 보는 게 더 극적이겠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누군데 저리 시원스레 잘 까버리지? 현역 히어로치고는 솜씨가 상당한데.”
“다른 채널로 볼래.”
“그래. 이 채널 아나운서나 카메라맨은 정신 차리려면 한참 걸리겠네.”
채널을 바꾸자 새까만 불길에 휩싸인 초능력자가 초능력자 셋과 동시에 공중전을 벌이는 모습이 찍히고
있었다.
툭
강유아가 들고 있던 피자가 피자판 위로 떨어졌다. 나 역시 멍한 기분이 들기는 마찬가지였다.
“저놈이 왜 저기서 나와?”
“전화할까?”
“너 이진태 스마트워치 식별코드도 있어?”
그렇다. 생중계로 공중파 3채널에 보란 듯이 나오고 있는 초능력자의 정체는 바로 이진태였다. 검왕지보
를 노린 중국의 암살자들이 암살에 실패하고 교전이 벌어진 모양이다.
‘미친놈들이 정체를 감출 생각도 안하네.’
뭐 저런 황당한 암살자들이 다 있나 싶었는데, 영상을 계속 보니 달아나려는 암살자들을 단단히 빡친 이
진태가 끝까지 따라붙느라 교전이 이어지고 있었다.
결국 사태는 현장에 출동한 경찰의 초능력 특수부대가 이진태를 체포하고, 어디선가 튀어나온 장규아가
그가 생도신분임을 알린 뒤에야 암살자들을 붙잡으며 마무리되었다.
“장규아 식별코드가 있어.”
“너 은근히 사교성이 좋구나?”
“내가 좀 인기 있지.”
강유아가 으쓱거리며 장규아에게 전화를 걸었다. TV화면 속 장규아가 스마트워치를 힐끔 내려다보더니
곧장 손가락을 옆으로 슥 그었다.
“풉.”
“어, 어째서.”
강유아가 울상이 되어 스마트워치를 내려다보았다.
한 번 더 전화를 걸려는 걸 말렸다.
“난리 통에 전화 받을 여유가 없나보지. 전화하지 마. 지금 걸면 안 받을 것 같은데.”
“그런 거겠지?”
“그런 거겠지.”
강유아가 침울한 표정으로 피자 한 조각을 들어올리는데 화면 속 장규아가 재차 스마트워치를 힐끔 내려
다보았다. 그리고는 카메라를 향해 손바닥을 들며 한쪽 귀에 손을 대었다.
전화 받아버렸냐…….
누구한테 걸려온 전화인지는 모르겠지만 지 전화는 안 받고 남의 전화는 받았다며 배신감에 눈물까지 글
썽거리는 강유아를 보며 이걸 어떻게 달래줘야 하나 눈앞이 깜깜해졌다.
먹던 피자도 내려놓고 방에 틀어박힌 것이 단단히 마음에 상처를 받은 모양이다.
‘강유아는 정에 휘둘리는 성격은 아니라고 생각했는데. 의외로 여린 구석도 있었군.’
이진태가 어찌될지 살펴보는 것도 중요하지만 지금은 강유아를 달래는 게 더 중요했다.
“그만 울고 나와. 피자 식어.”
“안 먹어.”
“장규아는 니 전화 씹고 지금쯤 치킨 뜯고 있을 걸?”
방문 너머의 온도가 갑자기 몇 도는 내려간 것 같다.
“치킨만 먹을까? 이진태 죽다 살아났다고 기념 삼아서 보쌈 족발 파스타 랍스타 근본 없이 이것저것 다
사다먹겠네.”
“거짓말. 장규아는 그렇게 많이 안 먹어.”
“그래그래. 니 전화 안 받을 줄도 몰랐지.”
방문이 벌컥 열렸다.
“다 먹을 거야. 피자 한 조각도 안 줘.”
“그래, 다 먹어라.”
눈물자국이 빤히 남은 얼굴로 피자를 뜯어먹는 모습이 참 애처럼 보인다 싶으면서도 한편으론 기분이 좋
았다. 이런 모습을 보여줄 만큼 강유아가 내게 마음을 열었다는 뜻이기에.
***
이진태가 의문의 암살자들에게 습격을 받는 사건은 이제 이틀에 한번 꼴로 빈번하게 일어났다.
“쟤 누구 죽이기라도 했냐?”
“그때 팔 잘린 놈 부모가 공안 고위직인가보지 뭐.”
“민폐 오지네. 쟤 하나 때문에 이게 다 뭐야.”
암살방법도 어찌나 기똥찬지 수업 도중에 이진태가 들어간 건물이 폭삭 주저앉거나 식당에서 밥 먹던 이
진태가 식판을 내던지고 목을 움켜쥐며 거품을 물기도 했다.
덕분에 건물이 무너질 때 먼지를 뒤집어쓰거나 제 식판에도 독이 든 음식이 있는 거 아니냐며 생도들이
기겁을 했다.
“그냥 자퇴 좀 해주면 안 되나?”
이진태에게 불만이 많은 생도 중에는 이신도 포함되어 있었다. 원체 타고난 성정이 껄렁한 이신이 자기보
다 더 껄렁한 이진태를 아니꼽게 보는 건 당연했다.
“여기서 이진태 자퇴하면 우리 체면도 구기는 거야.”
“그놈 나가는 게 우리랑 뭔 상관인데?”
“중국놈들이 이진태 엿 먹이려고 일부로 아카데미에 있을 때 개수작 부리고 있잖아.”
갑자기 이진태를 비호하는 이유는 놈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어서가 아니다. 안 보이는 곳에서 인생 꼬인
이진태가 심연던전에 틀어박히기라도 하면 나만 엿 먹기 때문이다.
중국 측에서도 최초의 암살습격 이후로는 공안 쪽 사람 대신 삼합회나 다른 암흑가의 암살자들을 쓰고 있
다.
‘실력도 실력이지만 기발함도 점점 대단해지고 있지. 이진태가 심상 하나쯤 소진하고 위기감을 느끼게
될지도 몰라.’
그런 상황을 막기 위해서 나는 이진태를 아니꼽게 여기는 생도들과 달리, 역으로 그를 챙겨주는 태도를
취했다.
“이진태 나가면 그림이 어떻게 되겠어? 중국놈들이 무서워서 한국 최고의 교육기관인 오성아카데미 A반
생도들이 자기 동급생을 쫓아내는 꼴이 되는 거야.”
“이런 미친. 그 꼴은 또 두고 못 보지. 우리 한도령이가 힘만 센 게 아니라 머리도 좋았네. 큰 실수 저지를
뻔했어.”
“알았으면 애들 선동하는 거 그만하고 이진태 멘탈 건드리는 짓도 접어라. 안팎에서 일 벌이고 있는 거 알
고 있으니깐.”
이신이 움찔거리며 어색하게 웃었다.
“하하, 티도 안 냈는데 어떻게 알았냐? 눈치 하나는 진짜 귀신같다니깐.”
원작에서도 이진태에게 이런저런 수작을 벌이던 이신이 이 좋은 기회를 마다하고 얌전히 있었을 리가 없
지. 혹시나 해서 했던 말에 제풀에 찔린 이신이 머리를 긁적인다.
그래도 교실에서 공개적으로 다른 생도들도 들으라고 큰 소리로 이야기 한 보람이 있긴 있었다.
“야, 이진태. 톡방 들어와라. A반 생도가 짱개들한테 맞고 다닌다고 소문이라도 나면 곤란하니깐. 뉴스
보고 달려가는 것보단 단톡방에서 톡 보고 찾아가는 편이 낫잖아.”
“이놈이 미쳤나?”
“나라고 너 신경써주고 싶진 않거든? 이신이랑 한도령이 직접 널 돌봐주라고 한 거야. 고마운 줄 알기나
해.”
이진태가 묘한 시선으로 이신따까리와 이신, 그리고 나를 번갈아가며 돌아보았다. 장규아나 로리 헤더웨
이도 별 일을 다 본다는 표정이다.
그래도 꺼지라는 말은 안 나오는 걸 보니 이신이 단단히 사고를 치기 전에 시기적절하게 끼어든 것 같다.
“한 수 배웠네요. 그런 체면은 한도령, 당신이 아니라 우리가 먼저 신경 써야 했는데.”
하정아의 말에 다른 십대세가 자제들도 수치스러워하는 기색이었다. 나야 허울 좋은 핑계였을 뿐이지만.
“이제부터라도 잘 지켜주면 되지. 이왕 말 나온 김에 십대세가 차원에서 경호도 해주고 그래주면 좋겠는
데.”
“맡겨주세요. 십대세가의 저력을 똑똑히 보여드릴 테니.”
과연 하정아가 호언장담한대로 그날 이후부터는 이진태를 노리는 암습이 십대세가의 경호 인력에 번번
이 가로막혔다. 어쩌면 대통령보다 경호수준이 높지 않을까 싶다.
괜한 말을 꺼내서 이진태가 심상을 소모하는 일이 사라진 건 아닌지 후회까지 들기 시작했다.
‘뭐, 그래도 회차 하나 통째로 날려먹는 것보단 낫지.’
애써 그렇게 마음의 위안을 삼으며 2년차 3분기 분기시험장으로 향했다.
“시험 준비는 어때?”
“준비할게 있나. 그냥 보는 거지.”
이번 분기 수업은 기억에 남는 것도 없고, 시험도 전투관련이라 긴장감도 들지 않았다. 전광판으로 먼저
시험 보는 생도들의 모습이나 구경하면서 시간이나 때울 뿐이다.
내년에는 중국과의 성장격차를 고려해서 한층 업그레이드 된 교육과정을 준비한다는데 뭘 배울지가 의
문이다.
‘원작에서 4년차는 현장실습이었지.’
히어로사무소나 협회, 길드, 정부청사 등 다양한 조직에서 견습으로 뛰면서 실적을 쌓고 점수를 평가받
는다. 솔직히 4년차 교육과정 쯤 되면 그런 거 빼곤 달리 가르칠 것도 없다.
‘진짜 뭘 가르치려고 그러지?’
의문만 무럭무럭 키워나가는데 어째 주변이 소란스럽다.
“저, 저거 뭐야! 저거! 위에서 내려오는 거!”
“비행기?”
생도들의 웅성거림이 점점 커졌다. 저 멀리 시야 저편에서 비행기 한 대가 엄청난 속도로 추락하고 있다.
근데 그 방향이… 정확히 우리가 있는 시험장 쪽이다.
“이런 미친놈들.”
양범호랑 국내 빌런들이 잠잠해졌다 싶더라니 이번엔 중국의 미친 암살자들이 더 막나가기 시작했다. 시
험장에 비행기를 충돌시키려는 것이다.
[5회차] 얄팍한 친분
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