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nemy of the Greatest Psychic Ever RAW novel - Chapter 222
221 – [5회차] 보복( )
다사다난한 일들이 있었지만 아카데미 2년차 4분기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돌아갈 집을 잃은 구룡환이
아카데미 기숙사로 향한 것은 당연한 수순이었다.
“구룡환? 이거 놀랍군. 제 가문이 풍비박살 나는 와중에도 뻔뻔하게 아카데미에 돌아왔을 줄이야.”
“…한도령. 살아있었나.”
“그래, 참 유감스럽게도 말이지. 탁재윤은 그렇다 치고 신세연까지 같이 있을 줄은 몰랐군. 배신자 동지
들끼리 소꿉놀이라도 하고 있었나?”
기숙사동에서 얼굴을 마주치자마자 나는 곧장 공격적인 어조로 몰아붙였다. 애초에 여기에 이놈들이 있
다는 소식을 장명훈에게 듣고 찾아왔으니 시비 걸 준비를 하고 온 거다.
“어이! 그때 일은 환이랑은 관계없잖아!”
“관계가 없다고? 친구를 사지에 두고 달아난 일이?”
“네가 먼저 구룡환에게 중상을 입혔잖아. 치료를 위해서는 어쩔 수 없었어. 스크롤을 사용해서라도 더 안
전한 본토치료시설로 이동해야만 했다고.”
“우릴 제외한 다른 이들은 그날 모두 죽었다. 치료를 핑계로 내세우기엔 결과가 좀 참혹하지 않나?”
“그건… 몰랐어! 난데없이 휘말린 상황에 이것저것 따질 겨를이 어떻게 있었겠냐고!”
탁재윤의 거듭되는 대꾸에 여기서 이들을 가루가 되도록 몰아붙이려던 계획이 제동이 걸렸다. 완벽하다
고는 할 수 없어도 그럴싸한 변명에 설득력이 있기 때문이다.
“저기, 도령아. 사정은 모르겠지만 저렇게까지 말하면 쟤들을 너무 탓할 수도 없는 거 아니야?”
선비기질이 있는 장명훈이 오지랖을 발휘했다. 화제의 인물인 구씨세가, 아니 구룡회 소속인 구룡환의
존재에 이끌린 생도들의 이목도 한 둘이 아니다.
명분을 무시하고 끝내버리기엔 명분을 무기로 삼아 구룡회를 박살 낸 전적이 거슬렸다.
‘그냥 힘으로 때려 박아도 되지만 그래서야 흔하디흔한 길거리 빌런들과 다름없지.’
다행히도 늦지 않게 합류한 하정아가 대신 언변을 발휘했다.
“당신들. 제게 해야 할 말이 있지 않나요?”
“하정아…!”
“뭘 그리 놀라시죠? 당신들 가문의 가주들과도 대면을 마친 판국에. 아아… 이젠 본가와의 교류도 막힐
정도로 가문 내에서 입지가 어두워졌나보군요? 아하핫하하!”
호쾌할 정도로 고개를 치켜들며 웃음을 터뜨리는 하정아의 존재에 탁재윤이 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미안. 그땐 경황이 없었어.”
“이런. 한때의 친우로서 하는 변명인가요?”
“받아주지 않더라도 한 번은 사과를 해야 한다고 생각했어.”
신세연은 죄인이라도 된 것처럼 고개를 푹 숙였다.
하정아는 복잡한 시선으로 그녀의 머리를 내려다보았다.
‘설마 봐주려는 건 아니겠지?’
은근히 그런 뜻을 담아 시선을 보내자 하정아가 코웃음을 치며 절대 그럴 일은 없으리라는 의사를 표명했
다.
“뭐, 솔직히 말씀드리죠. 제 손으로 직접 여러분의 목숨을 해친다거나 가문의 어르신들에게 처리를 부탁
한다고 명령하는 일은 없을 거랍니다.”
하정아의 말에 배신자 일당들이 대답했다.
“하정아! 크흑. 역시 너라면 알아줄 거라고 생각했어.”
“미안해.”
“……고맙다.”
멋대로 눈물까지 흘리며 고마워하는 탁재윤이나 거듭 사과하는 신세연, 고개를 숙여 감사를 표하는 구룡
환의 모습에 하정아는 어처구니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뭘 멋대로 기뻐하시는 거죠?”
“어? 그야 우릴 용서해준다고 했으니…”
“저는 그런 말을 한 기억이 없는데요.”
가문의 어른들에게 처리를 부탁하지 않았을 뿐, 하정아가 그들을 용서한다는 말은 없었다. 뒤늦게 그 사
실을 깨달은 배신자 일당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었다.
“여러분은 명문 오성 아카데미의 자랑스러운 생도이죠. 그건 가문을 떠나 개인의 실력만 보아도 명백해
요.”
“……?”
“오성아카데미가 1년 간 받아들이는 생도의 수는 300명. 전국 20개 아카데미의 연평균 1000명에 달하
는 생도들에 비하면 수도 적은데 재능과 실력은 훨씬 더 우수하죠.”
느닷없이 오성 아카데미 자랑을 시작한 그녀의 행동에는 잠자코 대화를 듣던 장명훈을 비롯한 다른 생도
들도 표정이 심각해지기 시작했다.
모두가 그녀의 노림수가 무엇인지 어렴풋이 깨닫기 시작했다. 하정아는 내 생각보다 제대로 된 복수법을
알고 있었다.
“초능력의 도래 이후 8천만 인구를 자랑하는 대한민국, 그 중에서도 5%인 400만 명에 달하는 초능력자
들. 다시금 그런 초능력자 중에서도 1년에 2만 명이 아카데미에 들어가죠.”
“저, 정아야? 너 지금 무슨 소리를…”
“오성아카데미의 생도가 된다는 것. 그 중에서도 50명뿐인 A반 생도가 된다는 것. 모두가 부러워하는 초
능력사회의 차세대 지배계층으로 향하는 지름길이 따로 없죠.”
자신을 비롯한 다른 생도들이, 나아가 배신자 일당이 누리는 일상의 무게를 논한다. 생도라는 이름에 실
린 가치가 얼마나 값진 것인지 모두에게 부각시킨다.
“그런 오성의 A반 생도가 실전에서 동료를 버리고 달아났다… 어떤 이유에서건 변명이 통할 일이 아니에
요. 만일 이 사실이 세간에 알려지면 어떻게 될까요?”
“하정아! 꼭 이렇게까지 해야겠냐?”
“탁재윤. 건방 떨지 말고 끝까지 들으세요. 이건 협박이 아니에요. 현실을 알려주는 거니깐. 사람들은 자
신보다 잘나가는 이들이 추락하는 모습을 보며 기뻐하죠. 이건 본능이에요.”
인간의 저열함을 논하며 하정아의 시리도록 차가운 눈이 분한 기색의 탁재윤을, 고개 숙인 신세연을, 침
묵하는 구룡환을 꿰뚫을 것처럼 응시했다.
“초능력범죄가 만연한 와중에 대중이라면 분명, 가장 먼저 여러분을 헐뜯을 거예요.”
“…!!”
“출신, 신분, 살아오면서 행한 모든 것을 열거하고 평가하며 물어뜯겠죠.”
“그, 그건…”
“신씨세가와 탁씨세가. 두 가문은 이미 여러분의 존재로 인해 알게 모르게 구대세가에 큰 대가를 지불했
어요. 구씨세가, 아니 구룡회는 공중분해나 다름없는 상황인데.”
그런 가혹한 상황에서도 한층 더, 깊은 어둠속으로 세 사람의 미래를 곤두박질치게 만든다. 지금의 하정
아에게는 그런 복수를 선택하는 일이 가능했다.
“여러분이 하기에 따라서는 거기에 쐐기를 박을 소문이 세간에 알려질 수도 있다는 거예요. 가문의 명예
를 한층 더 더럽혀서 감싸 안을 엄두조차도 나지 않을 악명을 동반함으로써.”
“제발 그만둬. 우리가 잘못했어. 시키는 건 뭐든지 할게. 응? 다시는 배신 같은 거 하지 않는다고.”
“아뇨. 제가 여러분에게 바라는 건 후회도 복종도 아니에요. 그 모든 악명을 감수하기 전에 스스로의 행
동에 대한 책임을 지고, 가문에 누를 끼치지 말고 자퇴하세요.”
배신자 삼인방과 구경꾼들 모두가 입을 벌렸다. 놀란 나머지 입이 열렸지만, 하정아의 두려울 정도의 냉
혹한 선언 앞에서 할 수 있는 말이 없어서.
말도 못 꺼내고, 손가락 하나 꼼짝도 못하고, 좌중의 모두가 압도당한 상태로 그녀를 그저 바라보기만 했
다.
“직접 나간다면 오성 아카데미도, 여러분의 가문도 악명이 튈 것을 우려해서 여러분을 쫓아내지는 않을
거예요. 자숙이라는 좋은 형태로 사건은 매듭지어지겠죠.”
“어, 어떻게…”
“아. 젊음을 헛되이 낭비한다고 생각되어서 슬픈 건가요? 그리 걱정하지는 마시길. 세 분의 존재가 세상
에서 잊히기까지는 길어봤자 2년이면 충분하답니다.”
아카데미를 다니고 졸업할 수도 있는 나이. 그 동안의 행적이, 인생에서 가장 귀중한 커리어를 만들 수 있
는 시기를 [자퇴]로 종결당하고, 그 뒤를 [공백]으로 남겨야 한다.
그러나 이것이 최악이 아니라는 사실을 하정아는 넌지시 암시했다. 제 발로 나가지 않으면 쫓겨나게 된
다.
‘심지어 가문에서도 직접 버림받고 쫓겨난다면?’
‘그땐 2, 3년이 아니라 20, 30년도 부족하겠지.’
한 사람의 인생을 꽃피울 순간을, 가장 찬란한 시기를 스스로 버릴 수밖에 없는 현실을 직시하게 한다.
“나쁜 녀석. 꼭 이렇게까지 해야 했냐?”
“저라면 그 목이라도 부지하고 나가는 걸 다행이라고 여길 것 같네요.”
“…….”
지켜보는 생도들도 하정아를 비난하는 모습은 아니다.
이 자리에 저들의 편은 없다.
그 사실을 깨닫자마자 탁재윤이 숙소문을 박차고 나갔다.
신세연과 구룡환도 뒤따라 나가기는 마찬가지였다.
어처구니없게 나가기 전에 날 째려보기도 했는데, 적반하장도 유분수다.
나 때문에 휘말린 건 사실이지만 그게 너희가 저지른 배신을 정당화할 수는 없지.
살인방조나 다름없는 짓을 저질렀으면 사회적 살인 정도는 각오해야 마땅하다.
▷당신의 초능력이 자꾸만 늘어나는 심대한 변수에 앓는 소리를 냅니다.
아카데미를 졸업하더라도 원수들과 태연하게 다닐 생각은 추호도 없다. 초능력이 무어라 하던 나는 하정
아의 선택을 지지하고 거기에 힘을 실어줄 거다.
“우린 사경을 헤치고 나왔어. 목숨 값을 목숨으로 받지 않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자비는 베풀었어. 그런데
도 하정아의 선택이 마음에 안 드는 놈은 지금 나와라.”
“나오면 어쩌려고?”
“반 죽여 놔야지. 미친놈들이 죽을 고비 넘기고 왔더니 정치적 올바름 뺨치는 헛소리를 지껄이는데 그냥
넘어가겠냐?”
장명훈이 찔끔하며 입을 다물었다. 3회차의 몬스터 웨이브 도중에 보였던 실망스러운 모습을 경계하며
조금은 난폭하게 대답한 보람이 있었다.
“뭔가 교실 분위기가 어수선하네.”
“죽은 사람도 있고, 그만둔 사람도 있으니깐.”
그날 이후로도 아카데미 교육과정은 이어졌지만 분위기는 결코 예전과 같을 수 없었다.
한 순간에 절친했던 무리를 모조리 잃어버린 하정아는 언제나 차가운 표정으로 홀로 다녔고, 마음이 약해
진 틈을 타 접근하려는 놈들은 이신이 눈치껏 찝쩍대지 못하게 으름장을 놓았다.
“나 잘하지 않았냐?”
“왜 시키지도 않은 짓을 하고 그래.”
“친구 좋은 게 이럴 때 좋은 거 아니겠냐.”
내가 하정아의 처지에 신경 쓰는 걸 눈치 채고 알아서 발 벗고 나서서 도와준다는데 나쁜 소리를 하기도
뭐해서 그냥 대충 고맙다고 말했다.
아무튼 A반의 주류그룹인 마법그룹이 풍비박살나자 자연스레 교실분위기는 초상그룹이 대신하게 되었
다.
“아하핫! 이것 좀 봐. 1등, 내가 A반 1등이라고!”
“이브이도 아닌 것 같으면서 은근히 똑똑하네. 이름은 뭔 포켓몬 같은 주제에.”
“그건 내가 귀엽다는 말이지? 흐헤헿.”
마법그룹 셋이 자퇴하고 정신이 심란해진 하정아의 순위가 떨어진 영향마저 겹치면서 초상그룹은 다른
분기보다 월등히 뛰어난 성적과 순위를 기록했다.
빈자리는 내 그룹과 이진태 그룹이 채우기는 했는데, 뜻밖에도 TOP10 순위에서 또 한 사람의 이름이 밀
려났다.
“어, 어째서 내 순위가…”
강진혁. 끊임없이 충돌하고 수차례 자존심도 대차게 깨졌던 그가 2년차 4분기 A반 순위에서 11위를 기
록했다.
Rank 01. 이브이(초상)
Rank 02. 최상수(무투)
Rank 03. 표양서(초상)
Rank 04. 마인성(초상)
Rank 05. 한도령(무투)
Rank 06. 이진태(마법)
Rank 07. 진요한(초상)
Rank 08. 하정아(마법)
Rank 09. 장규아(초상)
Rank 10. 강유아(특별)
그야말로 이변의 연속이었다. 나와 이진태의 순위권 등극뿐만 아니라 장규아와 강유아의 TOP10 진입도
예상 외였다.
“아깝게 그게 뭐냐? 이진태 따라다니는 년한테 졌잖아.”
“시끄러워. 13위.”
“윽…….”
이신도 뺀질거리는 성격과 달리 부단한 수련을 거듭한 덕분에 11위의 강진혁과 12위의 로리 헤더웨이에
이어서 13위라는 우수한 성적을 달성할 수 있었다.
대기만성형인 장명훈은 아직 중위권에 머물렀지만 B반보다 파워가 센 생도들에게 샌드백 노릇을 하던
김철괴는 경화계열 초능력의 경화수준이 급등해서 무려 19위에 올라왔다.
“저기 얘들아? 내 순위는 아무도 안 궁금해?”
“누군데 넌.”
“옆자리생도라고!! A반에서 제일 먼저 말까지 섞었으면서 이름도 안 듣고 순위도 안 듣고 너무한 거 아니
야!?”
진짜 쥐뿔도 관심 없다.
“이상으로 23기 생도들의 2년차 교육과정을 마친다. 짧은 방학을 어떤 무의미하고 소모적인 놀이로든
멋대로 소모하고 3년차 교육과정이 시작되는 1월 1일에 다시 보도록 하지.”
“…….”
“아. 참고로 내년 수강비 오른다. 커리큘럼 변경에 따른 증액이다. 자세한 사항은 귀찮으니까 교무처에
가서 따져라.”
여느 때와 다름없이 건성 그 자체인 양범호의 종례를 마지막으로 파란만장했던 2년차도 끝을 맞이했다.
제갈민에게 듣기로는 아카데미를 자퇴한 셋 중 구룡환은 며칠 만에 실종되었고 탁재윤은 암흑가를 드나
들기 시작했으며 신세연은 신씨세가 전속 마법병단에 들어갔다고 한다.
이제는 모두 두 번 다시 얼굴 볼 일도 없는 놈들이다… 라고 생각하고 싶지만 그 중 한 명은 그럴 수가 없
었다.
“탁재윤이 암흑가를 드나든다고? 확실해?”
“틀림없어.”
“기어이 이빨을 드러냈군. 그렇게나 기를 죽여 놨는데도.”
다른 놈들은 몰라도 탁재윤만은 끝까지 주의 깊게 감시했다. 놈은 마리왕비의 초능력이 시간계열 능력임
을 알고 있다. 나와 마찬가지로 [공명현상]을 경험했기 때문이다.
‘그런 녀석이 나와 하정아에 의해 아카데미를 자퇴하고 가문에서도 졸지에 천덕꾸러기 신세가 되었지…’
암흑가에 드나들지 않았다면 넘어갔겠지만 놈은 기어이 발을 들였다. 지금의 상황에서 그놈이 암흑가를
드나들 이유는 아무리 생각해도 하나밖에 없다.
복수.
녀석은 나나 하정아에게 자신의 몰락을 앙갚음하고자 음지에 발을 들였다. 그렇다면 그것이 성공하기 전
에 놈을 찾아가 미리 죽여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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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회차] 후환제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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