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nemy of the Greatest Psychic Ever RAW novel - Chapter 233
232 – [5회차] 마지막 강의( )
유아는 내 믿음이 헛되지 않았음을 몸소 증명했다. 비틀거리는 걸음으로, 확실한 자부심이 어린 얼굴로
나와 눈을 마주치며 고개를 끄덕였다.
나 역시 마주 고개를 끄덕여주고는 유아를 부축하며 엘리베이터를 돌아보았다.
엘리베이터는 처음부터 19층에 도달한 적이 없었다. 아니, 19층의 존재야말로 고위간부가 자신의 환상
능력을 통해서 부여한 환상이다.
프론트에서 사전약속을 잡고 엘리베이터에서 존재하지 않는 19층을 누르는 시점에 이미 정신공격에 당
한 것이다.
“시험은 합격했을 터. 모습을 드러내라.”
“놀랍군. 설마 세 명 전원이 모두 살아남을 줄이야.”
엘리베이터의 거울에서 까마귀가면을 쓴 남자가 걸어 나왔다. 눈에 보이는 것과 달리 왜곡되고 굴절된 기
운에서 상대의 초능력의 실체를 한층 더 종잡을 수가 없었다.
“양범호의 사망에는 조직 내의 배신자가 관여했다… 분명 그렇게 말했었지. 결론부터 말하자면, 배신자
를 잡는 것은 불가능하다. 시도함과 동시에 데빌메이커가 눈치 챌 거다.”
“정말이냐?”
“이미 겪어본 시행착오다. 같은 실수를 반복할 수는 없지. 데빌메이커를 치고 싶다면 조직과 무관하게 움
직여야 한다.”
기껏 협력을 구하러 온 입장에서는 힘 빠지는 이야기였지만 그의 말이 사실이라면 자칫 경솔하게 뒤를 캐
다가 데빌메이커에게 걸릴 위기를 한 번은 넘긴 셈이다.
“데빌메이커가 언제 어디에 출몰하는지는 알 수 있나?”
“알고 있다. 일단은 교사로 위장한 상태라서 데빌메이커가 다음 강의를 위해 장소와 시간을 지정할 거
다.”
“뭐? 그 데빌메이커에게 강의를 듣는다고?”
고위간부는 가면을 쓰고도 짐작할 수 있을 정도로 긴장한 목소리로 엄중하게 경고하였다.
“데빌메이커가 누군가를 가르치는 건 메인빌런 후보군으로 생각하는 경우밖에 없지. 만에 하나라도 그녀
의 가르침에 혹해서는 안 된다. 기다리는 건 반드시 파멸뿐이니.”
“우리가 그런 쉬운 사람이 아니라는 건 앞선 시험으로 확인하지 않았었나?”
“그렇군. 너희라면 괜찮을지도 모르지. 그래도 데빌메이커는 언제나 상상을 뛰어넘는 묘수를 쓰는 메인
빌런이다. 다음 출현시기에 반드시 잡아야 할 거다.”
이로써 전력이 또 한 명 증가했다.
“일단 본부에서 나가도록 하지. 엘리베이터를 너무 오래 붙잡고 있는 것도 할 짓은 못 되지.”
“그럼 근처의 적당한 룸이 있는 고급한식집으로 가지.”
작전논의를 하며 엘리베이터가 1층에 도착하는 순간, 돌연 우레와 같은 소음과 동시에 총탄이 빗발치며
쏟아졌다.
투다다다당!!
핑! 핑핑, 핑!
도탄된 탄환이 엘리베이터 내부를 튕기며 요란하게 울리는 가운데, 늦지 않게 펼친 를 유지하
며 동료들의 상태를 확인했다.
유아는 직접 구해준 전신갑옷의 방어력으로, 적염의 공주는 적색베리어로, 간부는 온 몸으로 총탄을 막
았다.
“너, 몸이…!?”
간부는 몸을 뚫고 총탄이 관통해도 전혀 타격을 입은 표정이 아니었다.
“멀쩡하다. 그보다 이미 데빌메이커에게는 발각된 모양이군.”
“배신자들의 습격이냐?”
“감히 겁도 없이 이 장 시에르에게 총을 겨눌 녀석은 없다. 데빌메이커의 사주를 받은 게 아닌 이상에는.”
고위간부 장 시에르. 그가 까마귀가면 위로 손을 얹는 순간, 시커먼 연기가 로비 전체로 자욱하게 번지며
공격을 가하던 조직원들을 휩쓸었다.
뼈가 뒤틀리는 소리와 끔찍한 비명이 아우러지는 가운데, 연기 속에서 장 시에르의 목소리가 들렸다.
“먼저 가라. 알아서 따라가겠다.”
“개죽음만 당하지 마라.”
로비를 가로질러 벗어나려는데 출입문이 열리질 않았다.
강한 결계가 외부와의 연결을 격리하고 있다.
“본녀의 소견으로는 물리력으로 해결할 수 있는 유형의 결계가 아니다. 장 시에르의 정신세계에서 힘을
발휘한들 소용없는 것과 비슷한 이치다.”
“그럼 이대로 잠자코 기다려야 한다는 건가?”
“모든 결계에는 파훼법이 있지. 결계는 매개체를 통해서 펼쳐진다. 다른 빌딩이라면 무리였겠지만 이 빌
딩은 어차피 빌런조직의 본부. 조금 불타는 정도는 상관없겠지.”
나도 모르게 눈이 휘둥그레졌다.
“건물을 불사를 셈이냐?”
“한도령. 유아를 잘 지키고 있어라. 전신갑옷 따위로는 막을 수 없는 최대 화력으로 간다.”
적염의 공주가 영창에 돌입하며 두 손을 건물바닥에 가져다대자 건물 전체로 막대한 열기가 퍼져나가며
공기가 후끈 달아올랐다. 삽시간에 1층 로비가 사우나처럼 달아올랐다.
70도
120도
180도
거침없이 솟구치는 온도가 어느덧 통상 사우나에서도 일반인은 감당할 수 없는 수준에 다다르자 블랙매
지션즈 조직원들의 경악어린 외침이 속출했다.
“뭐야 이 온도! 왜 이렇게 뜨거워!!”
“지형공격이다!!”
“시발, 창문 빨리 열어! 숨 쉬기가 답답하잖아!!”
적염의 공주의 전신이 새파란 불길에 휩싸였다. 도대체 전신파츠가 무슨 소재로 만들어졌는지 짐작도 안
갈 정도로 맹렬한 불길에 지면이 녹아내리기 시작했다.
기어이 250도를 돌파한 온도에 총탄이 스치기만 해도 불길이 솟구치며 로비가 화염에 휩싸였다.
치이익..
호신강기를 넓혀 유아를 보호하면서도 아주 조금 보호범위 밖으로 나간 어깨견갑에서 연기가 일었다.
“미쳤군.”
인간이라면 구사할 수 없는, 안드로이드만이 가능한 전략.
결계 범위 내부를 모조리 불사르는 화공이다.
확실히 이 수라면 결계술사가 결계를 해제할 수밖에 없었다.
‘이만한 화력을 일으키려면 스스로가 가장 뜨거운 화염에 휩싸여야 하고, 그만한 대인피해를 감수해야
하지.’
그렇지만 안드로이드는 애초에 인명을 그리 중시하지 않는다.
히어로의 탈을 쓴 적염의 공주는 예외라고 할 수 있지만.
그조차도 빌런들의 본부라는 점에서 전장이 좋았다.
우우웅… 팟!
결계가 걷히자마자 우리는 곧장 빌딩을 빠져나왔다. 잠시 후, 전신에서 새하얀 김을 뿜어내며 적염의 공
주 또한 뒤따라 걸어 나왔다. 발치에서 아스팔트가 녹아내리기까지 한다.
구구궁…
빠져나온 건물도 삼분 남짓 고온에 영향을 받은 탓인지 불길한 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이래서는 건물붕괴도 시간문제다.
장 시에르를 뒤로한 채 자리를 뜬지 얼마 지나지 않아 지면이 요동치며 모래먼지가 도로를 휩쓸었다. 기
어이 적염의 공주의 열마법에 블랙매지션즈 본부가 붕괴했다.
“거하게도 해주었군.”
“적진에서 자비를 베풀 이유는 없다. 본녀의 자비는 무기력하고 나약하며 무지몽매한 대중에게만 주어진
다.”
“…넌 또 대중을 뭐라고 생각하는 거냐.”
유아의 나쁜 면모를 극대화한 것처럼 성격 나쁜 소리였지만, 아무튼 적염의 공주는 지나가던 택시를 잡았
다.
“어디로 가려는 거지?”
“조력은 끝났으니 파츠수리를 하러 간다.”
“그렇군. 이왕 시작한 일, 끝까지 도울 생각은 없나? 돈이라면 개인적으로 따로 챙겨줄 수 있다만.”
“본녀가 지난 10년간 히어로업계에서 벌어들인 돈이 얼마나 되리라고 생각하는가. 파츠 하나 바꿀 수 없
는 수십억 미만의 푼돈 따위에는 흥미 없다.”
“파츠 하나에 수십억이라니, 실화냐…….”
황망해하는 내 시선에 아랑곳 않고 그녀는 택시에 타고 훌쩍 떠나버렸다. 유아는 지친 기색이었지만 장
시에르와의 재회를 위해 사전에 약속한 한식집으로 향했다.
“한 명이 줄었군.”
장 시에르는 로비에서의 전투가 무색하게도 코트 옷자락 하나 베이거나 뚫린 흔적 없이 멀쩡하게 방에 들
어왔다.
“원래부터 단기조력자였다. 대신 하씨세가가 데빌메이커 토벌을 도울 수 있지.”
“하씨세가면 전력은 충분하다. 문제는 데빌메이커이다만. 배신자가 움직였으니 그녀가 다음 강의를 준
비하지 않을 가능성도 존재한다. 이 접점을 잃으면 토벌기회 자체가 사라지지.”
“의중을 확인할 필요가 있겠군.”
나는 곧바로 한초린의 스마트워치에 연락을 걸었다.
통화는 연결되지 않았지만 메시지가 도착했다.
크단다.]
순순히 실력을 드러내지 않아서?
그도 아니면 민간인의 죽음을 방관하지 않아서?
이유가 어느 쪽이건 다시는 마주치고 싶지 않은 상대다.
그래도 이대로 피할 수만은 없다.
데빌메이커가 흑막과 연결된 고리임은 기정사실이 되었으니.
나는 여기가 승부수를 던질 타이밍이라고 여겼다.
합니다.]
유아와 장 시에르가 미쳤냐는 시선을 보냈지만 나는 아랑곳 않고 스마트워치를 내려다보았다.
[Message(한초린) : 데빌메이커가 빌런을 좋아한다는 사실은 알고 있니?] [Message : 저와 유아는 빌런이 되지 않을 겁니다.] [Message(한초린) : 만일 교수님이 데빌메이커라면 빌런도 빌런지망생도 아닌 너희를 만나야 할 이유가있을까?] 데빌메이커의 행동에는 분명한 목적이 있다. 원작의 그녀는 이진태를 타락시켜서 사상최악의 메인빌런
을 만들어내겠다며 집착했지만 결과적으로 그건 헛수고였다.
이진태는 이미 추락할 곳이 없는 개쓰레기였고, 그 사실을 알게 된 데빌메이커는 이진태의 손에 살해당한
뒤였으니까.
▷높은 지능(45)이 데빌메이커의 행동원리를 인식합니다.
▷높은 지능(45)이 데빌메이커의 심리를 이해합니다.
데빌메이커 본인도 그 사실을 도중부터는 알고 있었을 거다. 이미 사상최악이나 다름없는 이진태에게 본
래의 목적마저 무시하며 끝까지 접근했던 이유.
거기에 데빌메이커를 움직이게 만들 정답이 숨겨져 있다. 나는 그 정답을 메시지로 보냈다.
몰라도 직접 듣고 가능하다면 도와드릴 의향이 있습니다.]
그만한 존재가 아니면 할 수 없는 일이 있기에.
자신보다 강한 메인빌런을 만들 필요가 있기에.
그녀는 메인빌런을 만드는 일에 전념했으며.
이진태의 곁을 떠나지 못하고 그에게 살해당했다.
본부. 일주일 뒤 오전 10시까지 늦지 않게 나오렴.]
돌아온 메시지를 보고 나뿐만 아니라 유아와 장 시에르 모두 할 말을 잃었다. 한참의 침묵 끝에 어렵사리
장 시에르가 입을 열었다.
“히어로협회 본부?”
“잘못 본 건 아닌 것 같군.”
데빌메이커는 국제수배순위 20위권에 달하는 메인빌런. 그 위험수준은 구룡회주 구룡마에 필적한다. 일
국의 삼대빌런조직 중 하나의 수장과 필적하는 위험도를 지녔다는 말이다.
도대체 그녀가 히어로협회 본부에 무슨 짓거리를 하려는 건지는 몰라도 원작보다 위험한 짓을 하리라는
건 확실했다.
“하씨세가뿐만 아니라 히어로협회 자체의 지원이 필요할 것 같다만, 무조건 함정을 판다면 거기에 있겠
군.”
“동감이다. 이걸 협회본부에 알려야할지 골치 아프게 됐어.”
“신고 안 해?”
유아가 의아해하며 물었다. 다행히도 장 시에르는 나와 같은 생각을 품고 있는지 네가 설명하라며 턱짓을
했다.
“협회본부에서 소동을 일으키는 걸 막기 위해 문자를 보여주고 한초린이 데빌메이커임을 설명하는 건 대
단히 곤란한 일이야. 우리한테도 직접적인 조사가 들어오겠지.”
“우린 피해자야.”
“데빌메이커가 노린 대상은 반드시 메인빌런이 되거나 도중에 사망했어. 협회는 우리가 메인빌런이 되는
최악의 경우를 상정해서 접촉조차도 못하게 막을 거야.”
어중간한 장소라면 하씨세가를 끌어들이고 무력으로 승부수를 보겠지만, 데빌메이커가 둔 초강수가 너
무나도 강력한 나머지 실로 난감한 사태에 직면한 것이다.
그제야 상황이 그리 간단하게 돌아가지 않게 되었음을 알게 된 유아도 혼란스러워하기 시작했다.
“그럼 어떻게 해?”
“협회에는 사실을 숨기고 하씨세가 마법병단만 적당한 핑계로 그날 그 시각에 협회본부에 출입하도록 만
들거나, 아니면 협회 고위임원을 아군으로 포섭해야겠지.”
“고위임원?”
“한국 히어로협회장이나 부협회장, 고령이나 은퇴로 일선에서 물러나 배후지휘 및 경영을 돕는 이사진
들, 각 히어로지부의 지부장 같은 협회 내 고위관리들 말이야.”
“도령이는 그런 쪽에도 인맥이 있어?”
“당연히 없지.”
진짜로 접점이 없던 걸 어떡하라는 말인가. 애초에 무능한 히어로협회랑 뭘 같이 하려고 마음먹는 일부터
가 원작지식을 지닌 내게는 무리한 요구다.
“그거라면 일단 내쪽에서 한 명을 구해줄 수는 있다. 다만 신용할 수 없는 인물이라는 점은 미리 밝혀두
지.”
“뭐?”
“삼대천 정도 되는 빌런조직이 히어로협회 임원 하나 구워삶아두지 않고서야 어떻게 공존을 해왔겠나.”
듣고 보면 맞는 말이기는 한데 새삼 기분이 심란해진다.
“하씨세가의 출입은 그 임원을 통해서 구대세가와 히어로협회의 합동훈련 명목으로 해두지. 이거면 됐
나?”
“가능하면 블랙매지션즈의 보스도 끌어들였으면 하는데.”
“보스는 안 된다. 일 년에 한번, 연간회의 날이 아니면 모습을 드러내는 일도 없는 신출귀몰한 분이라 연
락조차도 불가능하다. 단념하는 게 좋을 거다.”
“그럼 어쩔 수 없군.”
“하씨세가 정도면 조력자로는 충분하다. 도움을 줄 방법이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나도 한 손 보탤 예정이
고.”
장 시에르의 환상마법이 얼마나 뛰어난지는 몸소 경험했다.
뿐만 아니라 데빌메이커 대책을 위한 하씨세가 병력주둔책까지 마련했다. 하정아 역시 데빌메이커의 포
획기회라는 말에 직속 마법병단을 이끌고 나설 것을 약속했다.
이후는 우리 측의 준비와 데빌메이커의 준비, 어느 쪽이 보다 뛰어났는지를 실전에서 겨룰 뿐.
“일찍 나왔군, 하정아.”
“거물 중의 거물, 데빌메이커를 잡는 날에 게으름을 부릴 수는 없죠. 그런데… 유아의 그 갑옷이랑 무기는
뭐죠?”
“튼튼해.”
“아니, 그 무식하게 성능 좋아 보이는 갑옷은 누가 봐도 튼튼하거든요? 본인이 좋다면 뭘 장비하든 상관
은 없는데 무기가… 하아. 괴짜랑 말해야 입만 아프지. 본부나 들어가죠.”
“응.”
초조와 기대 속에서 시간은 빠르게 흘러 어느덧 마지막 강의 날짜. 우리는 히어로협회 본부에 입성했다.
[5회차] 마지막 강의
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