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nemy of the Greatest Psychic Ever RAW novel - Chapter 253
252 – [5회차] 다가오는 멸망( )
유아의 고모가 데빌메이커였다니.
어딘지 모르게 배신감마저 느껴지는 이야기였다.
‘잘 생각해보면 납득이 안 가는 건 아니지만.’
데빌메이커는 날 위협하면서도 유아의 안위만은 보장해줬다. 유아의 목숨으로 날 위협하긴 했어도 결국
내가 그녀를 포기할 수 없으리라는 확신을 품었기에 가능한 협박이다.
유아의 고모는 그녀가 쓸 만한 빌런이 되라며 지원을 해왔던 점도 어렴풋이 데빌메이커답다는 생각이 들
었다.
‘스무고개 수색으로 유독 찾아낼 수 없었던 이유도 알겠군.’
강유아의 진짜 고모는 존재하지 않는다. 하지만 고모임을 자처했던 데빌메이커는 존재한다. 그 모순으로
인해 몇몇 질문에서 발생한 모순이 그녀의 위치를 추려낼 수 없게 했다.
그게 죄책감 때문인지, 언젠가 유아가 흑막을 상대할 보험 중 하나가 될 것이라 믿었기 때문인지는 모른
다.
‘그래도 당신 또한 유아를 지키려고 한 건 마찬가지였군.’
비록 유아를 지키기 위해 거쳐온 일들과 벌이고자 했던 일들은 용서받을 수 없지만, 그녀가 존재함으로
인해 유아가 지금껏 살아올 수 있었던 것은 사실이다.
만일 내가 그녀를 죽이지 않았더라면 이진태와 데빌메이커가 지금쯤 흑막과 사투를 벌이고 있었을지도
모르지.
‘내가 잘못되었던 건가?’
그들이 죽은 결과, 메인이벤트 두 개가 연달아 터졌다. 별장에서 호텔로 돌아오기가 무섭게 협회본부가
빌런들에게 함락되었다는, 원작기준 2028년에나 일어날 사건도 열렸다.
협회장이 살해당하고 히어로의 권위가 바닥으로 추락했으며, 빌런과 몬스터가 날뛰는 대혼란의 시기가
도래했다.
‘칠대기업조차도 이번에는 세력이 크게 줄었지.’
모든 조직이 약체화된 영향으로 새로이 대규모로 늘어나는 던전을 적시에 막아내지도 못하고 있다. 이제
길거리를 돌아다니는 몬스터는 그리 놀라운 광경도 아니다.
회사에 출근하는 직장인들은 무장트럭을 몰고 잡몹들을 치며 질주하고, 마트에 향하는 주부들은 아파트
단지 단위로 히어로들의 경호를 받아 이동한다.
“세기의 대영웅 강반검이 대단하긴 하군. 다른 지역에서 들려오는 소문은 전부 지옥이 따로 없던데.”
어느 산악도시는 신규던전에서 탄생한 SS급 로드몬스터 나방군주에게 함락되어 벌레들의 번식장이 되
었네, 어느 해안도시는 주민 전체가 하루아침에 익사체로 발견되었네.
사미철이 전해주는 소식은 하나같이 인류의 존속 자체가 가능한지 의심스러울 정도로 암울한 이야기뿐
이었다.
“그래봤자 강반검은 혼자다. 언제까지고 그 혼자서 버틸 수는 없겠지. 저항군을 조직하고, 패배할 거다.”
예상대로 일주일이 채 지나지 않아 강반검의 인류저항군 출범선언이 내려졌다.
전국에서 강씨세가의 도시를 향해 모여드는 피난행렬과 인류저항군에 가입하는 초능력자들이 끊이질 않
았다. 그 즈음, 호텔주인이 거들먹거리며 찾아와 요구했다.
“아시다시피 요즘 시국이 난처하지 않습니까? 그래서 이번에 호텔 숙박비를 올릴 수밖에 없게 되었습니
다. 식량도 가격이 폭등하고 모든 물자의 값이 오른 탓에…”
“알겠다. 어느 정도의 숙박료를 원하지?”
“많이는 아니고 한 달에 십억 만 지불해주시면 감사히,”
호텔주인의 목이 복도에 나뒹굴기까지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사미철이 멍하니 입을 벌리다
가 감시카메라를 손으로 가리켰다.
“이거, 찍혔을 텐데.”
“그럼 증거를 없애야지.”
호텔카메라를 파괴하고 경비실에서 기록도 제거했다. 직원 중 몇몇은 호텔주인의 실종을 수상하게 여겼
지만 나는 사미철을 호텔주인 대리로 내세웠다.
“사장님 어디갔어요?”
“오늘부터 내가 사장대리다.”
“네? 아니, 그런 게 어딨어요.”
“월급은 내가 지불한다.”
“아 그럼 사장대리 맞죠. 보너스도 주세요?”
“실직할래? 피난민들은 먹고 재워만 줘도 일할 텐데.”
사미철은 월급을 십분의 일로 삭감하는 패악질을 부리며 호텔의 기강을 다잡았다.
그러거나 말거나 유아의 의식은 돌아올 기미가 보이지 않았고, 심기체의 균형파괴로 내가 주화입마를 겪
듯이 유아는 의식을 회복할 수 없게 되었음을 깨달았다.
그나마 나처럼 살인으로 타인의 기를 얻은 게 아니라 한초린의 기에 강제적으로 신체조종을 당한 게 전부
라 다행이다.
‘유아가 직접 한초린을 죽이기라도 했으면 의식불명이 아니라 폭주로 당장 사망했겠지.’
희망이라면 희망이고 절망이라면 절망인 사실과는 별개로 날이 찬 10월이 될 무렵부터는 새로 몬스터 에
어리어가 된 지역에서 몬스터 대군이 몰려들기 시작했다.
강반검이 힘겹게 탈환한 도시는 유지할 병력이 없어서 버려졌고, 다시 새로운 로드급 몬스터가 둥지를 트
게 되었다.
“한도령이. 이런 곳에 있었으면 진즉 말을 하지, 왜 이제야 부르냐? 섭섭하게 시리.”
“이런저런 일이 있어서.”
“그보다 언제 건물주가 됐냐? 강씨세가에 호텔 갖는 거 쉽지 않을 텐데. 대단하네.”
난리 통에 이신이나 김철괴를 무료숙박을 미끼로 호텔에 불러들였다. 빌런이 되었다고 얼씬도 안할 줄 알
았는데 둘은 꽤 순순히 찾아왔다.
“너흰 내가 무섭지도 않냐?”
“협회전쟁에서도 도와준 마당에 뭘 이제 와서.”
“빌런이 된다면 그럴만한 이유가 있었겠지.”
무신경하다 싶을 정도로 신경줄이 굵은 이신과 김철괴의 대답에 이놈들은 무조건 믿을 수 있는 놈들이라
는 확신을 얻었다. 덕분에 6회차를 대비하는 마음이 한결 편안해졌다.
“다음 생에는 더 잘해주마.”
“바보냐? 지금 잘하라고.”
“식비도 무료로 해줘라.”
두 사람의 강한 요구에 못 이겨 결국 식비도 무료로 해줬다.
해가 바뀌어 2024년이 되자 화이트킬러즈에서 연락이 왔다.
-Message(백의신사) : 저희 화이트킬러즈는 인류저항군과 힘을 합쳐 몬스터들의 도시급 던전에서 던전
코어를 탈취하는 임무를 맡게 되었습니다.
-Message : 그렇습니까.
-Message(백의신사) : 이진태개새끼님도 희망하신다면 특급 괴도미션으로 던전코어 탈취 임무를 수행
하실 수 있습니다만, 저희와 함께 대의에 동참하시겠습니까?
유감스럽게도 그런 건 내 목적이 아니다.
5회차의 망해가는 세상을 지킬 의지 따위는 남지 않았다.
-Message : 거절하겠습니다. 죄송합니다.
-Message(백의신사) : 언제라도 생각이 바뀌거든 연락 부탁드립니다. 두 분을 위한 자리는 비워두겠습
니다.
-Message : 적염의 공주는 무사합니까?
-Message(백의신사) : 이런, 모르셨나보군요. 협회 본부가 습격 받을 당시에 전사했습니다. 스펙터 에어
리어도 몬스터 에어리어 너머가 되어서 완전히 단절되고 말았습니다.
-Message : 그렇습니까…….
백의신사와의 연락은 그것이 마지막이었다. 필시 무리하게 도시던전 탈환작전을 진행하던 도중에 두 번
다시 돌아올 수 없는 길을 건너버렸을 게 틀림없었다.
‘인류나 국가, 미래 따위는 아무것도 필요 없어.’
이제 내게는 유아를 지킬 도시 하나, 호텔 하나만 남아있으면 된다. 그 너머의 것을 지킬 의지도, 여력도
없다. 이신이나 김철괴도 그 사실을 알기에 저항군활동을 권유하지 않았다.
그런 소소한 비극이 있던 2024년에 비해 2025년은 특별한 해였다. 남부의 한 도시전력을 공급하던 핵발
전소에서 핵폭발이 일어나며 몬스터들이 대거 돌연변이를 일으켰다.
전선에 나선 초능력자들이 무수한 죽음을 맞이하고, 살아남기 위해 베테랑이 된 초능력자들이 넘쳐났다.
‘흑막은 어째서 습격해오지 않는 거지?’
그 즈음, 나는 흑막의 침묵을 불안해하는 걸 넘어서 절망감마저 느꼈다. 어쩌면 흑막은 지금의 나를 별도
로 손을 써야 할 정도의 위협으로 인식조차도 못하는 건 아닐까?
진지하게 그럴 가능성이 높았다. 내게는 더 이상 흑막을 몰아붙일 어떤 수단도 존재하지 않았기에.
‘4회차와 같이 정부나 칠대기업의 비리를 폭로한다고 한들, 반쯤 멸망하다시피 한 한반도가 완전히 무너
질 뿐이지.’
빌런과 몬스터만으로도 불과 2년 사이에 대한민국의 반 이상이 무너졌는데 정부와 기업마저 한몫 더한
다면 나머지 반마저 모두 무너져내려도 이상할 게 없었다.
아무리 강반검이 대단한 인물이라 하더라도 그를 따를 민중이 와해되면 끝장이다. 물량에는 장사가 없
다.
제공할 의향이 있지만 교환조건으로 의뢰를 수행해야 한다.]
2026년. 어떠한 소득도 없이 나날이 폐인이 되어가던 내게 정야문에서 구원의 손길이 내밀어졌다.
다연이의 가문은 암살가문 치고 단약제조능력이 몹시 뛰어났다. 4회차의 최후에 강반검과 함께 이진태
에게 맞서던 정야문주나 날 암살한 다연이의 실력만 떠올려도 신용이 간다.
그들은 SS급 초능력자가 보다 높은 경지로 오르기 위해 필요한 ‘심기체를 안정화시키는 단약’을 지녔을
확률이 높다.
다. 애석하게도 우리는 변절자를 추려낼 시간도 방법도 없지.] [Message : 그래서?] [Message(셰도우) : 부산시를 유지하는 SS급 마나코어를 파괴하고, 누구도 부산에서 빠져나오지 못하
도록 외부와 이어진 게이트관리소를 봉쇄하길 바란다.] [Message : 진심인가?]
관금세가가 정부와 데빌메이커의 뒤를 봐주었다고 그들의 대착점에 선 정야문이 선하다는 순진한 생각
은 하지 않았지만 아무리 그래도 이건 도가 지나치다.
한국 최후의 다섯 도시 중 하나라는 점을 감안하면 부산시에 거주하는 인구는 대략 350만 명. 내게 그만
한 숫자의 사람들을 모조리 죽이라는 말과 다름없었다.
죄책감을 느껴서 소중한 연인인 강유아를 살릴 기회를 놓칠 셈인가?]
나는 하룻밤을 꼬박 고민한 끝에 이신과 김철괴에게 이 미션에 참여할 것임을 밝혔다. 만일 내가 돌아오
지 못한다면 유아를 부탁한다는 말을 전하기 위해서였다.
“멍청한 녀석. 남자가 여자한테 반하면 간이고 쓸개까지 내준다더니 네 꼴이 딱 그 모양이네.”
“뭐, 그렇게 됐다.”
“도저히 따라가겠다는 말은 못하겠지만 남아서 유아를 지키는 것 정도는 해주마.”
이신은 사미철과 함께 호텔에 남기로 결정했다.
“후회하지 않냐? 이 건이 세간에 밝혀지면 너도 메인빌런은 확정이다. 백만 단위의 사람들의 죽음에 관여
하는 거다.”
“상관 안 한다.”
“…이런 것까지 상관 안하는 건 좀 그렇지 않냐? 나야 그편이 편하고 고맙긴 하다만.”
김철괴는 이 말도 안 되는 미션을 돕겠다며 함께 부산으로 향했다. 맞을수록 단단해지는 녀석의 능력은
나와 이신에게 시달린 덕분에 SS급에 도달했으니, 실로 믿음직한 전력이다.
“임무보조를 위해 정야문에서 파견되었다. 향후 코드네임은 S01로 부르면 된다.”
일전에 아카데미 분기시험을 훼방놓으려던 블랙매지션즈의 빌런들을 깔끔하게 처리했던 그림자사냥꾼
A01이 정야문의 작전보조역할로 파견되었다.
코드네임의 앞자리가 바뀐 걸 보니 그새 등급이 상승한 모양이다. 헌데 경지를 넘어선 내 눈에는 그녀가
더 강해 보인다.
“코드네임보다 한 단계씩 실력이 높은 건가?”
“…과연, 대단하군. 비트레이어의 악명에 걸맞게 실력 하나만큼은 진짜배기다 이건가. 암살자의 기척감
소를 뚫고 한 눈에 실력을 간파하다니.”
“주화입마에 몇 년 시달리다보면 누구라도 기에 대한 통찰력이 늘기 마련이지.”
정장차림의 그녀가 드물게도 눈에 띄는 반응을 보였다.
“주화입마? 몇 년? 그건 요즘 새로 나온 농담인가?”
“웃음기 하나도 없는 진담이다.”
“도대체 어떻게 살아있는 거지? 고등급 초능력자가 주화입마에 빠지면 못해도 1년 안에 죽음을 맞이하
기 마련인데.”
그녀의 말대로 이번이 첫 번째 삶이라면 나날이 통제력을 상실하는 압박감을 견디지 못하고 인생을 비관
하며 자살하거나 폭주 끝에 죽음을 맞이했겠지.
허나 여러 회차를 거치며 정신적으로 강해지고 유아가 깨어날 때까지 버티겠다는 집념을 지닌 이상, 쉽게
죽을 순 없다.
‘한동훈도 전언을 전하기 위해 몇 달을 독에 중독된 채로 고통을 참으며 나를 기다렸지.’
그보다 월등히 강한 나라면 몇 달이 아닌 몇 년을, 인류멸망의 위기 속에서 주화입마의 고통을 참는 한이
있더라도 기다려야만 했다.
그조차도 해낼 수 없다면 죽은 제갈민이나 한동훈에게 고개를 들 면목도 없다.
데빌메이커가 유아의 고모라는 충격적인 진실에 대해 화를 내야 할 사람은 내가 아닌 유아다. 그녀의 정
당한 분노를 보기 위해서라도 나는 반드시 살아서 그녀를 깨워야만 했다.
“작전을 개시하지.”
우리는 부산시청에 진입했다. 조선시대 궁궐보다도 화려하게 변한 시청건물 안에서는 멸망으로 치닫는
시국이 무색하게도 잔치가 한창이었다.
위기의 순간일수록 사기를 고취시켜야 한다는 취지로 고등급 초능력자들을 초청해서 놀자 판을 열어놓
았다.
“덕분에 침입하긴 쉬워서 좋긴 한데. 좀 깨는군.”
“맛은 좋다.”
“넌 또 그걸 먹고 있냐?”
성게알 하나를 입에 털어 넣은 김철괴가 구박에도 아랑곳 않고 초밥접시 하나까지 통째로 들고 따라왔다.
그 이색적인 모양새에 주변의 시선이 쏠리자 S01이 말했다.
“이목을 살 짓은 그만두었으면 하는데. 비트레이어의 동료라고 해도 너무 무신경한 짓이 아닌가?”
김철괴가 마지못해 초밥접시의 초밥들을 부지런히 먹어치우는 방식으로 없애는 사이, 끝내 우리에게 주
목한 초능력자 한 명이 눈가를 가리는 가면을 쓴 채로 다가왔다.
“오랜만이네요. 설마 그날 이후로 한 번도 연락을 안할 거라고는 생각지도 못했어요. 연락처까지 바꿔버
리다니.”
“아는 사람인가?”
김철괴가 고개를 저었다. 당연히 나도 고개를 저었는데, 상대가 나를 뚫어져라 노려봤다.
“정말로 절 모른다고요?”
“가면을 쓴 수상한 여자를 알 길이 있나.”
“후. 제 변장실력이 뛰어났다는 칭찬으로만 알아두죠.”
상대가 가면을 벗은 뒤에야 나는 그 얼굴을 알아보았다. 시간이 좀 지나긴 했어도 변치 않은 매력과 카리
스마를 겸비한, 오히려 몇 년 전보다 미모는 한층 무르익은 여인.
“하씨세가는 어쩌고 이런 곳에 있지?”
“본가 무너지고 피신 온지가 언젠데 무슨 뒷북이에요?”
몰살이 예정된 도시에서 3년 만에 재회한 여인.
그녀는 하씨세가의 재녀, 하정아였다.
[5회차] 응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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