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nemy of the Greatest Psychic Ever RAW novel - Chapter 27
027 – [2회차] 무너진 일상( )
명함에 적힌 번호로 전화를 걸자, 어제 들었던 낮고 진중한 목소리가 들렸다.
-그새 생각이 바뀌었나? 참 변덕스럽군.
“능청떨지 마시죠. 김다연. 왜 데려갔습니까?”
-필요했으니까.
“만나고 싶습니다. 어디로 가면 됩니까.”
-정동대교 밑 컨테이너. 물론 혼자 오는 게 좋겠지.
피차 긴 대화는 필요없었다.
전화를 끊고 나는 곧바로 채비를 갖추었다.
‘경찰이나 히어로사무소는… 안 돼.’
상대는 메인빌런 정용인.
느껴지는 기세만으로도 A급 히어로 곽재우와 동급이다.
실제 실력은 어쩌면 그 이상일지도 몰랐다.
히어로가 어째서 빌런이 되었는지.
그가 나를 빌런으로 만들어서 뭘 하려고 하는지.
이제 그런 의문은 모두 뒷전이 되었다.
그는 김다연을 납치했다.
나는 김다연을 구해야 한다.
지금은 그 사실만 생각해야한다.
사아아
유달리 찬바람이 부는 날씨에 어제 북적이던 사람들도 뚝 줄어들었다. 인적이 끊기다시피 한 강변도로에
서 택시를 잡아 이동했다.
접선장소인 컨테이너에 도착해 문을 두들기자 험악한 인상의 대머리가 문을 열었다.
“형님. 위에서 말한 놈이 왔습니다.”
“호오. 저 얼굴… 카르멜 히어로사무소의 사이드킥이군.”
상대가 나를 보고 놀라듯, 나 또한 상대를 보고 놀랐다.
현장출동영상에서 보았던 A급 빌런.
가칭 [쾌검술사]가 가느다란 눈으로 나를 응시했다.
한 발자국도 경솔하게 뗄 수 없었다.
당장이라도 몸이 반 토막 난다는 공포가 일었다.
여긴 이미 녀석의 영역이다.
마음만 먹으면 나 따위는 언제라도 죽을 수 있다.
놈과 나 사이에는 그 정도의 격차가 존재했다.
“정용인은 어디에 있습니까?”
“보스에게 무슨 말을 들었는지는 몰라도, 내가 들은 이야기와 다른 건 확실하군.”
쾌검술사가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의 뒤로 거인이 일어나는 것만 같은 존재감이 더해졌다.
“너는 신입이다. 재회는 일을 다섯 번 성공적으로 완수하면 이루어주겠다고 했지.”
“……!”
“거절하면 돌려보내도 좋다고 했다. 물론… 내 얼굴을 본 이상 그리 순순히 돌려보낼 수는 없지만.”
철컥.
검집에 얹은 손에서 불길한 소리가 들렸다.
“하겠습니다.”
이딴 곳에서 개죽음을 당할 수는 없다.
쾌검술사가 눈썹을 찡그렸다.
“무슨 일인 줄 알고 선뜻 받아들이는 거지?”
“빌런 활동. 아닙니까?”
“맹랑한 꼬맹이로군. 조금 건방지긴 해도 마음에 들었어.”
쾌검술사가 눈짓하자 대머리남자가 수납장에서 코트 하나와 가면 하나를 꺼냈다.
“우리들의 목표는 단기간에 광범위한 영역을 맡게 된 카르멜 히어로사무소의 약점, 인력부족을 이용해
도시에 피해를 입히는 것이다.”
“…….”
“용기는 가상한데 실력은 아직 부족하군. 직속으로 부리기엔 형편없지만 말단 급은 넘어섰어. 흐음… 좋
다. 행동대 하나를 붙여주지.”
사이드킥으로 활동했던 것이 불과 삼일 전이었건만 순식간에 신입빌런이 되었다. 허나 명령을 따르지 않
으면 김다연이 어찌 될지는 아무도 모른다.
‘어려운 일도 아니다. 1회차의 나 역시 빌런이었지.’
묵묵히 지령을 받고 빌런조직의 제3 행동대 대장이 됐다. 대원들은 갑작스레 위에서 꽂은 낙하산 대장에
게 불만이 많은 기색이었지만 기싸움을 할 시간도 아까웠다.
“너. 앞으로 나와라.”
열 명의 대원중에서 제일 표정이 불량한 놈을 불렀다.
녀석은 어쩔 건데, 하는 표정으로 껄렁하게 걸어 나왔다.
나는 녀석의 어깨에 손을 올렸다.
“아악! 이 미친 새끼가 쳐돌았나!”
놈이 주먹으로 내 몸을 후려쳤지만 작정하고 단련한 신체에 근래 들어 원기회복까지 거의 마무리되었다.
동네폭력배에서 빌런조직 말단대원으로 올라선 잔챙이 따위의 주먹으로 어찌할 수 있는 신체가 아니다.
반면, 녀석의 어깨는 강인한 악력을 버티지 못하고 박살났다.
순식간에 깝치던 놈 한 명의 어깨를 박살내어 장애인으로 만들자 대원들이 바짝 얼어붙었다.
“난 인내심이 좋은 편이 아니다. 특히 지금은 더 그래. 그러니 지껄일 말이 있으면 지금 다 지껄여둬라.”
“…….”
“좋아. 이해가 빠르군. 그럼 두 가지만 명심해라. 상명하복, 절대복종. 명령을 이행하지 않거나 작전 도중
도주한다면 평생 불구로 살게 될 거다.”
김다연이 어떤 처지에 놓여있는지도 모르는 상황이다.
한 시가 급하다.
시급히 빌런조직의 지령 다섯 개를 완수해야 했다.
*지령서
-제 3 행동대는 금일 AM 11:00부터 AM 11:20 사이에 허니베어 빌딩 5층, 6층, 7층에 입주한 민간업체
들을 습격하여 철저한 기물파손을 저지르도록.
-경찰출동 시 단기결전으로 제압 후 도주, 히어로출동 시 즉시 현장을 이탈한다.
첫 번째 지령부터 본격적이다. 빌런들도 3일 전의 활약으로 치안공백을 눈치 채고 작정해서 날뛰는 거다.
심지어 이 같은 대대적인 움직임은 이곳, 신도시 동번에서만 일어나는 게 아니다. 서울 외각에 자리한 여
덟 개의 신도시에서 동시다발적으로 일어나는 현상이다.
‘1회차의 기억대로라면 실컷 날뛴 반동으로 맞이할 결과도 비참했었지만.’
빌런조직이 역풍을 맞기까지는 아직 석 달의 여유가 있다.
곧바로 지령서에 언급된 빌딩을 습격했다.
“꺄악! 비, 빌런이야!”
“닥쳐!”
대원들이 난폭하게 비명을 지르는 여자를 때리고 망치로 사무실 컴퓨터를 때려 부쉈다.
시민들은 비명을 지르며 달아났고, 인질생포가 목적이 아니었기에 우리는 시민과 직원들을 무시하고 사
무실 파괴에만 전념하였다.
가면이 얼굴을 가리고 있지만 신분을 노출할 건수를 줄이고 싶었기에 나도 안 쓰던 도끼를 휘둘렀다.
“돈 내놔, 돈!”
형동대원 한 명이 눈이 돌아가서 직원에게 삥을 뜯으려 했지만 나는 곧바로 서슬퍼런 눈으로 녀석을 제지
했다.
“C7. 임무내용을 잊었나?”
“대장. 이럴 때 안 챙기면 언제 한 몫 챙깁니까? 거 딱딱하게 그러지 마시고 대장도 같이..”
나는 녀석을 설득하는 대신, 품에서 손도끼를 던졌다.
퍽!
어깨에 도끼가 꽂힌 녀석이 자지러져라 비명을 질렀다.
다른 대원들이 바짝 얼어붙었다.
비명을 지르는 놈의 어깨에서 손도끼를 뽑았다.
“시간 없다. 다음 층으로 간다.”
말보다 효과적인 행동 덕분에 대원들은 더 이상 쓸데없는 트러블을 일으키지 않았다. 최선을 다해 시설파
괴에 전념한 덕분에 11시 20분이 되자 파괴임무를 끝낼 수 있었다.
“즉시 후퇴한다. 차량으로 이동하도록.”
어깨에 도끼가 꽂혔던 대원은 감히 눈도 마주치지 못하고 따라왔다. 다른 대원들도 두려움 가득한 기색으
로 군말없이 내 명령을 따랐다.
아카데미나 히어로사무소와 달리, 빌런조직은 이처럼 힘과 폭력에 의한 지배가 주요했다.
괜히 인격적인 대접이니 뭐니 해봤자 쓰레기들과 더 쓰레기 같은 짓을 함께 하는 행위밖에 되지 않는다.
빌런조직의 말단들이 하는 짓이 으레 그러하듯이 말이다.
위이이잉! 삐뽀삐뽀..
전원 차량에 탑승을 마치고 출발하기가 무섭게 우렁찬 사이렌소리가 가까워졌다.
“총 가지고 있는 놈.”
“조, 조수석에 있습니다.”
“내놔.”
사격은 주특기가 아니지만 기본소양이라고 할 정도로는 익혀두었다. 창을 열고 뒤 따라붙는 경찰차 타이
어를 향해 사격을 퍼부었다.
탕탕탕탕! 펑!
끼이이이익!
네 발 만에 타이어가 터진 경찰차가 비틀거리다가 급히 멈추어 섰다. 또 한 대의 차량이 머뭇거리며 속도
를 늦추기에 총구를 겨눴더니, 기겁하며 급정거를 했다.
“시답잖기는.”
경찰차 두 대의 추격을 가뿐히 저지해낸 솜씨에 대원들이 나를 바라보는 눈에 경외심이 어렸다.
기어이 안전한 곳까지 도주를 마치자 불순했던 녀석들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콩을 팥이라고 해도 그
렇습니다, 하고 대답할 순종적인 부하들만이 남았다.
은신처에서 휴식을 취하고 있자 쾌검술사와 함께 보았던 대머리남자가 와서 휴대폰 하나를 건넸다.
삐리릭..
모르는 번호다.
전화를 받자 쾌검술사의 목소리가 들렸다.
-신속하고 깔끔한 솜씨가 인상적이군. 보스가 직접 손을 쓴 신입이라더니 확실히 여간내기가 아니야.
“용건은?”
-8시간 뒤, 다음 지령이 내려온다. 대원들을 정비하고 휴식을 취하도록.
“물자보급이 필요하다.”
-거기로 보낸 대머리한테 말해라. 앞으로도 활동자금 전달과 보급품 지급은 녀석을 통해서 이루어진다.
지극히 사무적인 관계임을 나타내듯, 제 말만 마치고 그는 통화를 끊었다. 나 또한 그와 인간적인 교류를
나눌 생각은 전혀 없었다.
“쩌, 쩔어… 우리 대장, 보스가 꽂았다는 모양인데.”
“방금 그 목소리, 특공대 대장 아니었어?”
“굉장해. 우리 아무래도 선을 잘 잡은 것 같아.”
대원들의 충성심이 높아졌다.
그에 반해 내 마음은 빠르게 타들어갔다.
‘저질렀다.’
한 건을 저지른 이상 남은 네 건도 저지를 수밖에 없다.
이제 일상으로는 결코 돌아가지 못한다.
경솔하게 동번 시에 발을 들였던 것부터 실수였다.
‘신도시가 위험하다는 건 분명 알고 있었는데.’
1회차에는 이 무렵에 아카데미에서 썩어가고 있었기에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소문으로만 듣던 것과 달
리, 직접 사건의 중심에 휘말리니 위험도가 폭증했다.
김다연은 납치됐고, 그녀를 구하기 위해 빌런조직의 행동대 대장으로 활동하게 됐다.
-두 번째 지령도 완수했군. 물자지원을 늘려주지.
-세 번째 지령 완수를 축하한다. 활동자금을 늘려주겠다.
-벌써 네 번째인가? 대원을 늘릴 때가 됐군.
쾌검술사는 임무에 대한 보상이라도 지급하는 것처럼 제 3 행동대에 여러 가지 혜택을 주었다. 느려터진
히어로사무소의 승진체계와는 다른, 즉각적인 피드백이었다.
‘이래서 빌런조직은 한 번 대대적으로 소탕하더라도 1년만 지나면 우후죽순으로 생겨나지.’
진급이 빠르고 돈이 된다. 능력도 변변찮고 사회에서 낙오된 초능력자 나부랭이들이 빌런이 되는 주된 이
유였다.
‘한 건만 더 끝내면 된다. 한 건만 더…’
휴대폰에서 벨소리가 울렸다.
지급받은 공기계가 아닌 기존에 쓰던 휴대폰이었다.
“…….”
발신자는 허상준.
어느덧 휴가가 끝나고 출근할 날이 되었나보다.
“죄송합니다. 다연이가 도저히 사이드킥 활동을 이어갈 수 없게 되었습니다.”
-괜찮냐? 너희들, 그렇게나 열심히 해왔는데.
“괜찮습니다. 사이드킥이 아니라도 먹고 살 길이야 어떻게든 찾을 수 있겠죠. 사무소는 요즘 어떻습니
까?”
-심하지. 치안공백을 노리고 빌런들이 아주 신나게 날뛰고 있다. 고양이 손이라도 빌리고 싶은 심정이야.
그냥 너라도 혼자 오면 안 되냐?
“죄송합니다. 다연이를 혼자 둘 수는 없습니다.”
수화기 너머에서 혀 차는 소리가 들렸다.
-너네 그냥 결혼도 하지 그러냐?
“하하.”
-아무튼 알았다. 급여는 10일날 지급되니 그렇게 알고. 석 달 안지나서 퇴직금은 없다?
“예. 급여 챙겨주시기만 해도 감사하죠.”
-쯧. 나중에 한 번 들러라. 곽선배도 말은 안 해도 서운해 하신다. 소주나 한 잔 하자.
허상준과의 통화를 마쳤다.
몇 번이고 도와달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꾹 참았다.
정용인의 정보력이 얼마나 될지 모른다.
만일 사무소에 그가 포섭한 스파이가 있다면.
배신이 발각되고 김다연이 죽을지도 모른다.
“…….”
이곳에 동료는 없다.
행동대 대원들도, 다른 행동대 대장들도, 쾌검술사도.
전부 잠재적인 적일뿐이다.
어설픈 동료애를 품을 때가 아니다.
김다연을 구할 때까진 무조건 버텨야 한다.
▷부속스킬 : 정신무장 발동
손속에 자비가 없는, 잔악무도한 제 3 행동대 대장으로.
정신을 냉철하게 가라앉히자 다섯 번째 지령이 내려왔다.
*지령서
-지난 며칠간 급증한 강력범죄로 인해 카르멜 히어로사무소에 소속된 히어로들의 피로도가 급격히 증가
했다. 오늘, 두 번째 히어로죽이기를 진행한다.
-제 3 행동대는 금일 AM 12:30분에 맞추어 동번지구 중심가 농악은행을 습격한다.
-히어로들이 현장에 출동할 때까지 은행강도로 활동하며, 경찰기동대가 출동하더라도 후퇴 없이 교전한
다. 임무 도중 다른 행동대와 특공대가 지원을 올 것이다.
도시 내에서 히어로들의 영향력을 낮추기 위한 범죄만을 일삼던 빌런조직이 마침내 히어로 그 자체를 목
표로 함정을 설계했다.
마침내 올 것이 왔다. 이 일을 시작하면서 가장 마음에 걸려했던 히어로와의 싸움이 벌어질지도 모르는
것이다.
‘성공가능성은 대단히 높다. 이쪽도 미친 게 아닌 이상에야 동시다발적인 범행으로 곽재우처럼 고등급
히어로는 다른 곳으로 빼돌리겠지.’
아마도 우리 정도의 잔챙이들을 해결하는 건 1년차 히어로 허상준 같은 저등급 히어로가 되겠지. 모르긴
몰라도 허상준과 싸우게 될 가능성도 있다.
‘…어렵군.’
김다연을 구하기 위해 허상준을 죽여야 한다면.
나는 그를 죽일 수 있을까?
▷당신의 초능력이 선택을 재촉합니다.
악몽 속으로 사라진 줄로만 알았던 알림이 떴다.
폐광산에서의 가혹했던 선택.
그에 맞먹는 선택을 강요받는 선택의 기로가 찾아왔다.
개인적으로는 [선택장애가 선책을 하게 하는 초능력자]가 더 그럴싸한 제목이다 싶었는데 주변의 평가는
그건 좀 너무했다, 아무도 읽게 하기 싫었던 거 맞지(…), 제목 바꾸셈 이더군요.
[2회차] 무너진 일상 – 2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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