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nemy of the Greatest Psychic Ever RAW novel - Chapter 274
273 – [6회차] 반년의 유예( )
불과 이틀 사이에 일어난 일을 뒤늦게 전해들은 제갈민은 당연하다면 당연하게도 다연이를 째려보았다.
“너, 잘도 멋대로 일을 저질러주었군 그래?”
“시간낭비 할 여유는 없어. 너도 알고 있잖아?”
“계획을 길게 잡은 건 발각될 여지를 완전히 없애기 위해서야. 네가 멋대로 움직여준 덕분에 올드 원은 협
회에 심어둔 하수인을 통해서 수상한 낌새를 눈치 챘겠지.”
“…….”
“아직 EIO와 데빌메이커 한초린의 포섭도 끝나지 않았어.”
“이제 와서 멈출 수 있다고 생각해?”
“망할. 일은 김다연이 저지르고 뒷감당은 내가 하게 생겼군.”
남 일처럼 손 놓고 방관할 수도 없게 된 제갈민이 후속대처로 골머리를 앓았다.
“도령이는 나 따라와. 아직 할 일 안 끝났어.”
“시원스레 대형사고를 저질러놓고 아직 뭘 더 할 셈이냐!?”
“강유아. 그년 만나러 갈 거야.”
“…….”
단단히 열 받은 여자에게 시비를 걸고 싶어 하는 남자는 없다. 적어도 제갈민과 나는 그런 성격이었다.
“좋았어? 나보다 가슴 큰 여자랑 놀아나서.”
“그런 말투 쓰지 마. 유아는 그런 애가 아니야.”
“왜, 엉덩이도 커?”
“…….”
“있지, 나도 처음에는 이해해보려고 했어. 외로워서. 함께 아카데미를 그만두자고 했던 시절처럼 누구라
도 곁에 있었으면 해서 유아를 곁에 뒀을지도 모른다고.”
복도를 걷던 그녀가 걸음을 멈췄다.
“5회차의 도령이는 날 버렸어. 아무것도 해주지 않았어. 3회차의 도령이가 유아의 마음을 외면했던 것처
럼. 아니, 그보다도 더 심했지. 아예 곁에 두지도 않았으니까.”
“유아에게 숨겨진 비밀을 알아내야만 했어.”
“정말로 그것뿐이야? 어떤 흑심도 없었다고 확신할 수 있어?”
“처음에는 없었어.”
“처음에는, 말이지?”
“…….”
“그래, 그렇겠지. 본인조차도 제 마음을 몰랐을 텐데, 무슨 수로 남한테 확신을 주겠어.”
그녀는 더 이상 내게 말을 걸지 않았고, 불편한 침묵 속에서 우리는 교실로 돌아갔다.
“휘유. 남녀 둘이 사이좋게 강의 째고 사라졌다가 돌아오다니. 데이트라도 하고 온 거야?”
“조용히 해. 나 지금 기분 안 좋아, 아준아.”
“어, 응…….”
김아준이 눈치를 보더니 나한테 다가와서 귓속말로 물었다.
“쟤 생리 날이야?”
눈치보고 나온 말에 눈치가 없네.
조회시간이 끝나자 다연이가 유아의 앞에 섰다.
“우리 같은 수업인데 같이 가지 않을래?”
“실전요리를 신청했어?”
“응.”
“이상한 아이.”
“…….”
성격 이상한 유아에게 이상한 아이 취급받은 다연이가 참을 인을 마음속으로 외우며 함께 강의실로 향했
다. 그녀는 유아와 접선해서 무얼 하고 싶은 걸까.
자신이 함께하지 못한 회차에서 내 곁에 있었던 유아에 대한 화풀이? 질투? 아니면 감사인사를?
‘무어가 됐든 둘만의 시간이 필요하겠지. 6회차의 유아 입장에서는 영문 모를 상황에 불과하겠지만.’
저쪽은 유아에게 맡기고, 마인성은 제갈민에게 맡기고.
자연스레 내 관심은 강의가 겹친 다른 생도에게 향했다.
“장규아. 같은 강의를 듣고 있었나?”
“옮겼어. 같은 강의로.”
“옮겨? 감점이 있을 텐데, 어째서 그런 짓을 했지?”
“너랑 같은 강의를 듣고 싶어서.”
“…….”
우호적인 감정이 느껴지는 부드러운 미소.
나만을 바라보는 시선에서 깊은 호감이 느껴진다.
누군가의 호의를 사는 건 좋다만 이건 경우가 다르다.
“원래 강의로 돌아가.”
“어째서?”
“어째서냐니, 거기에는…….”
이진태가 있잖아.
목 끝까지 나오려던 말을 간신히 눌러 삼켰다.
‘협회의 주박에서 벗어나서 그런 건가? 이진태의 곁을 아무렇지도 않게 떠나버린 이유가 뭐지?’
나는 고민 끝에 이 건을 직접 물어보았다.
“이진태를 감시하려던 거 아니었나?”
“알고 있었구나? 맞아. 저 애, 초능력이 하나가 아니야. 협회의 상태창 리스트에서 감지되었어. 바로 보안
등급을 올리고 직접 감시 및 접촉으로 조사할 예정이었지.”
“예정이었다니… 더는 조사하지 않아도 되냐? 이진태가 뭐하는 놈인지 알아내기엔 시간이 부족했을 텐
데.”
장규아는 산뜻한 어조로 대답했다.
“협회장에게 연락이 왔어. 그간 미안했다고, 앞으로는 좋을 대로 살아도 된다고. 마음의 짐이었던 아이들
도 정야문의 도움으로 해방됐고 이진태는 이제 아무래도 상관없어.”
흐름이 변했다. 본래라면 이진태 쪽은 당분간 건드릴 생각이 없었건만, 배양체를 건드리며 내 신분을 사
칭한 행동 때문에 장규아의 관심이 이진태가 아닌 내게 쏠렸다.
원작소설을 읽을 때에는 이진태의 입장에 몰입하며 이런 여자가 내 곁에 있다면 어떨지 상상도 했었지
만…….
‘지금은 달라.’
이민지, 김다연, 강유아.
서로 마음을 주고도 지켜내지 못한 상대가 셋이나 있다.
거기에 무책임하게 장규아를 더할 수는 없다.
“돌아가. 나한테는 다연이가 있어.”
“후훗. 자기과신이 너무한 거 아니니? 네 곁에 있고 싶고, 너에 대해 알고 싶은 마음은 있지만 그게 널 좋
아하고 사랑하고 싶다는 의미는 아니야.”
“그럼 뭘 하고 싶은 거지?”
“협회의 뜻대로 남은 수명을 사용해야만 했던 운명으로부터 해방시켜준 은인에 대한 감사와 호기심 때문
에? 어떻게 하면 답례할 수 있을지도 곁에서 지켜보며 고민하고 싶었어.”
“그럼 이진태의 곁으로 돌아가. 난 이진태가 아무도 지켜보지 않는 사이에 더 위험한 존재가 되는 상황을
원치 않아.”
장규아가 뜻 모를 표정을 지었다.
“그거, 굉장히 이상하게 들리는 말이라는 거 알지?”
“알아. 그래도 지금은 묻지 말아줬으면 해.”
“알았어. 은인을 위해서라면 그쯤이야. 아직 옮기지 않은 강의들은 다시 참여할게. 그리고…”
“또 뭔가 용건이 남았나?”
“이진태가 불가사의한 힘을 지닌 건 알고 있지만, 그를 너무 미워하지는 말아줘. 묘한 행적에 의문이 많
은 남자지만 나쁜 사람은 아니야.”
“그 이진태가, 나쁜 사람이 아니라고?”
“몰래 봤어. 골목길에서 다친 고양이를 치유해주는 모습.”
아, 그거.
원작 내용대로라면 사역마 만들려고 구해줬던 건데.
설마 그걸 계기로 호의를 품게 된 건가.
‘말해줘야 하나?’
그 고양이 일주일 안에 던전 100개 정찰 하다가 죽는다고. 말할지 말지 고민하다가 그냥 넘어갔다.
안 그래도 이진태에게 관심이 사라진 마당에 있던 호감까지 깎아버리면 장규아가 이진태를 방치해버릴
지도 모른다. 그걸 계기로 이진태의 흑화가 앞당겨지면 6회차는 끝장이다.
이진태와 올드 원.
마왕군 사천왕의 일원이자 두 명의 전생자.
둘 중 어느 쪽도 폭주하도록 방치해서는 안 된다.
“크윽!”
“시합중지! 한도령 승!”
점수따기용으로 신청한 강의를 마치며 상념을 접는데, 대뜸 창 자루가 앞을 가로막았다. 방금 전까지 신
나게 두들겨 맞던 최상수가 화난 얼굴로 나를 노려보았다.
“그 정도로 내가 만만했나? 시합에 집중하지도 않고 한눈팔면서 상대할 정도로.”
“솔직히 그렇지. 뭐, 나쁘게 생각하지는 마라. 딱히 악의가 있었던 건 아니니까. 제대로 된 시합이 성립되
기에는 내가 너무 강하고, 너는 상대적으로 약했을 뿐이다.”
“크윽……. 이 수치, 잊지 않겠다.”
원한을 산건가?
개운치 않은 뒷맛에 찝찝함을 느끼고 있자니, 하정아가 웃는 낯으로 다가와 친한 척 말을 걸었다.
“분해서 그럴 거예요. TOP10의 일원이라며 추앙받던 처지에서 난데없이 나타난 승급생에게 된통 깨졌
잖아요?”
“너도 그러냐?”
“설마요. 전 무투계열 초능력자도 아닌데. 소문으로만 듣던 23기 최강의 초능력자가 어떤지 보러 왔을 뿐
이에요.”
“직접 본 소감은 어떻지?”
“괴물이네요. 강반검의 어린시절이 이렇지 않을까 싶을 정도로. 어떻게 또래 나이에 이 정도로 강해질 수
가 있죠?”
순수한 호기심 어린 물음에 지독할 정도로 현실적인 답을 돌려주기는 좀 그렇다. 5회차의 하정아의 최후
를 생각하면 더욱 못해먹을 짓이다.
“나이에 맞지 않게 강하다는 건 네가 생각하는 것처럼 그리 즐거운 일도, 기쁜 일도 아니다.”
“어머. 훈계인가요?”
“충고다. 정상적인 방법으로 나이에 맞지 않는 실력을 손에 넣으면 결코 그런 식으로 웃지는 못할 거야.”
“그건 당신이 정상적이지 않은 방법으로 강해졌다는 뜻이죠?”
“…쓸데없는 말이 많았군.”
역시 어설픈 동정심과 죄책감으로 입을 열었다간 좋은 꼴을 보지 못한다. 등짝에 파고드는 시선을 떨치며
멀어지는데 자그마한 기척 하나가 잽싸게 다가왔다.
‘김다연? 아니, 달라.’
허깨비마냥 주변반경 5m에 접근하기 전까지는 감지조차도 불가능한 김다연과 달리, 이 기척은 멀리서
부터 느껴진다. 무시하고 식당으로 향하자 상대도 대놓고 접근했다.
“안녕!”
“이브이?”
오늘따라 마주치는 사람들이 많군. 교내최강자니 23기 최강의 생도 같은 소문이 퍼지면 싫어도 주목을
받을 수밖에 없다만 낯선 기분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식사 같이 할래?”
“상관없다.”
“궁금한 거 물어봐도 돼?”
“된다.”
“너희 마인성이랑 따로 뭐 하는 거야?”
크림수프에 잘게 찢은 빵을 콕콕 찍어먹으면서 묻는 이브이의 말에 대답을 한 템포 늦췄다.
“그건 왜 묻지?”
“궁금해서. 마인성이 초상그룹 외의 다른 생도들에게 관심을 주는 건 처음 있는 일이거든.”
“개인적인 건도 엮여있다. 마인성 본인에게 직접 들어.”
이브이의 얼굴에 대놓고 실망했다는 감정이 떠올랐다.
문득 나는 이게 흔치 않은 기회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이브이는 가까워지고 싶다고 아무 때나 친해질 수 있는 녀석이 아니지. 매 회차에서 그랬어.’
먼저 접근하는 경우는 좀처럼 없고, 그나마도 접근할 때 호감을 사두지 않으면 어느 순간부터 교류가 단
절된다. 관계형성에 적극적으로 공을 들이지 않으면 안 되는 타입이다.
초상그룹을 판에 끌어들이기로 결정해놓고 이런 식의 차가운 태도는 그리 현명한 판단이 아니다.
“대신 다른 걸 대답해주지.”
“다른 거?”
“강함의 비결만 제외하면 뭐든 대답해주겠다.”
이브이는 금새 기분이 좋아졌는지 웃는 낯으로 뭘 물어볼지 고민하다가 손에 튄 크림스프를 쪽쪽 빨았다.
“으음~ 막상 물어보려니 어려운데? 정말 뭐든지 괜찮은 거 맞아? 듣고 나서 화내는 거 아니지?”
“무례한 걸 물어보면 당연히 화내겠지.”
“으으음, 어떠려나. 될 것 같기도 하고, 안 될 것 같기도 하고. 으으, 모르겠다.”
참으로 깊은 고민 끝에 이브이가 에라 모르겠다 하는 표정으로 냅다 물어보았다.
“너 양다리 맞지?”
수저를 떨어뜨릴 뻔했다.
경련을 일으키려던 팔근육을 의식적으로 붙잡아서 다행이다.
“양다리라니, 무슨 엉뚱한 말을.”
“그치만 사실이잖아?”
뭐지 이 상황은? 무얼 암시하는 거지?
극심한 혼란에 빠진 내게 이브이가 의기양양하게 말했다.
“다 봤다고? 장규아가 너랑 웃으면서 대화하는 거. 같이 붙어 다니던 이진태나 다른 전학생 앞에서도 안
웃던 애가 남자 앞에서 그런 미소를 지으면 확신범이지, 암.”
“장규아를 관찰하고 있었나?”
“응? 아, 응. 스타일이 좋구나, 싶어서. 보다시피 나야 키가 작고 몸매도 안 좋으니까, 그런 서구적인 미녀
같은 아이를 보면 싫어도 관심이 가거든.”
핑계 반 진심 반처럼 들리는 말이지만 이유야 아무래도 상관없다. 오해받는 걸 즐기거나 괜히 어물거렸다
간 쓸데없는 오해를 사고, 그게 다연이의 귀에 들리면 진짜로 큰일 난다.
“오해다. 장규아랑은 남녀 사이의 그런 일은 없었어.”
“그럼 무슨 일이 있었는데?”
“그건… 음. 미안하지만 그것도 비밀이다. 장규아 본인의 사생활과 관련된 일이라서.”
“또야? 뭐 그리 남의 사생활이랑 관련된 비밀이 많아?”
“미안하게 됐다.”
“흥. 됐어. 더는 안 물어볼 거니깐.”
새침한 얼굴로 물티슈로 손가락을 닦으며 자리에서 일어나는 이브이. 이대로 보내면 이번 회차에서 그녀
와 다시 말을 섞는 일은 없을 거라는 생각에 냅다 그녀를 붙잡았다.
“잠깐.”
“으응?”
“어, 음. 그러니까… 이걸 써라.”
대충 손에 잡히는 냅킨을 내밀자 이브이가 물티슈로도 지워지지 않았던 물기를 닦으며 물끄러미 나를 쳐
다보았다.
“흐으음? 과연, 이런 느낌이었나?”
“……?”
“역시 바람둥이는 아무나 하는 게 아니구나?”
“또 오해사기 쉬운 말을…”
“오해인지 아닌지는 당사자들끼리 해결하는 게 좋지 않을까? 헤헹. 아무튼 식사 즐거웠어. 공공시설에서
너무 낯 뜨겁게 싸우지는 말고?”
휘파람까지 불면서 경쾌하게 멀어지는 이브이의 말에 조심스레 기감을 펼쳤다.
“식사는 즐거웠어?”
“아, 전혀 안 즐거웠어.”
“아닌데. 완전 즐거워보였는데. 다른 여자 손까지 잡고. 매너도 좋더라?”
웃는 게 웃는 게 아닌 다연이가 등 뒤에서 손에 든 접시를 들고 잔반처리함으로 향했다.
“따라와. 유아 관련으로 할 얘기 있으니까.”
“…….”
한입도 먹지 않고 접시에 담은 음식을 모조리 부어버리는 모습이 A01이나 S02와 함께 탄 차량보다도 더
무서웠다. 괜히 암살가문의 후계자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6회차] 반년의 유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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