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nemy of the Greatest Psychic Ever RAW novel - Chapter 291
290 – [6회차] 도시던전( )
어이없게도 폭식왕의 제어에 성공한 이진태였지만 다른 대원들은 하나같이 적의 가득한 눈을 하며 소리
쳤다.
“당장 폭식왕을 자살시켜.”
“이진태, 너도 봤잖아. 이 던전은 사람들을 몬스터로 만들었어. 저 괴물은 그 몬스터를 잡아먹었다고.”
“뭘 망설이는 거야? 살려둘 이유가 없잖아. 얼른 죽여.”
대원들의 재촉에도 이진태는 순순히 응하지 않았다.
그의 눈에 위험한 광기가 아른거렸다.
“이해가 안 되는데. 그렇게 강한 괴물을 이 몸의 뜻대로 다룰 수 있다면 너희한테도 나쁘지 않은 상황 아
니냐?”
“그건…”
“지금이 수단과 방법을 가리며 싸울 수 있는 시기라고 생각하나? 이런 놈이 앞으로 다섯이나 더 있는데.”
강유아가 고개를 숙였다.
“칠대기업도 같은 생각이었지. 그리고 그놈들은 제어에 실패하고 SS급 던전보스를 SSS급으로 격상시켰
어.”
“이 몸은 다르다. 보다시피 제물을 바쳐 기르는 것이 아닌 마법, 초능력으로 지배하고 있지.”
“네 지배가 풀리면 그때 일어날 일은? 한시도 쉬지 않고 언제나 지배를 유지하는 게 가능해?”
김다연은 고개를 꼿꼿이 들고 이진태를 노려봤다.
이진태는 그런 그녀의 적의를 앞두고도 피식 웃었다.
“이 몸이 실패하기를 바라나? 폭식왕을 죽이고 싶어서?”
“괴물과의 공존은 불가능해.”
“그럼 더더욱 이용해야지. 죽기 전까지 부려먹고 죽여도 늦지 않는다.”
욱하는 김다연의 앞을 내가 가로막았다.
“폭식왕은 칠대기업이 제물을 바쳐 키우던 던전보스였다. 지금보다 약한 형태라고는 해도 네가 쉽게 볼
수 있는 존재가 아니었을 텐데. 어디에서 이런 놈을 마주쳤지?”
이진태가 미간을 찌푸렸다.
역시 현생이 아닌 전생에서 본 몬스터였던 모양이다.
“됐어, 더 중요한 질문을 하지. 네 초능력은 지옥불을 만드는 거라고 생각했는데, 어떻게 정신지배가 가
능하지? 원소계열 초능력과 정신지배는 너무 거리가 먼데.”
지금껏 이진태의 기이한 마법은 수도 없이 목격했지만 모두가 특별한 초능력을 지녔겠거니 생각하고 말
았다. 나는 그런 인식을 당장이라도 깨트릴 수 있음을 이진태에게 상기시켰다.
“이진태. 나는 널 적이라고 생각하고 싶지 않다. 그러니 대답해. 네 초능력이 ‘어떤 정체성’을 지니고 있는
지. 무슨 이유로 폭식왕을 알아볼 수 있는지.”
“네놈…”
지옥불처럼 새까맣게 물든 눈으로 나를 노려보던 이진태가 이내 거칠게 콧김을 뿜으며 대꾸했다.
“이 몸의 초능력은 ‘마왕군 사천왕의 권능’이다.”
“!?”
“이게 이 몸의 초능력의 정체성이다. 폭식왕은 그 마왕군 사천왕이 다루던 부하 중 하나여서 초능력으로
알아볼 수 있었지. 다양한 능력도 마왕군 사천왕의 권능이다.”
아니, 적당히 압박하면서 이진태의 기를 꺾고 폭식왕을 자살시키면 비밀을 지켜주겠다고 하려고 했는데
이걸 이렇게 대놓고 밝혀버린다고?
생각지도 못한 엄청난 이름의 초능력의 등장에 대원들마저 혼란을 금치 못했다.
“폭식왕의 처우를 결정짓기 힘들면 코어부터 파괴하자.”
“그래, 그편이 낫겠어.”
사람은 너무 황당한 이야기를 들으면 머릿속에서 정보가 자연스럽게 빠져나간다.
오성아카데미에 다니면서 온갖 이상한 초능력을 다 보아온 생도출신 대원들도 이진태의 초능력만큼은
쉽사리 이해하지 못하고 현실도피에 가까운 코어파괴에 나섰다.
▷SSS급 던전코어가 파괴되었습니다.
▷SSS급 특수던전 클리어
▷침식된 영역 내 모든 건물이 소실되며 이미 생성된 언데드군단은 새로운 생기를 섭취하지 못하면 시간
이 경과함에 따라 약체화한 끝에 소멸합니다.
▷SSS급 던전보스 이 언데드보급원을 상실하며 광폭화에 돌입합니다.
▷던전클리어 보상으로 모든 능력치가 2 상승합니다.
광폭화!?
“이진태, 폭식왕이 폭주한다!!”
“뭐? 젠장, 폭식왕! 자살해라!!”
폭식왕이 거칠게 양손을 뿌리치며 모래성처럼 무너져가던 부산시청을 가루로 만들었다. 놈의 큼지막한
손이 우리 모두를 짓누르려던 순간, 이진태가 한 걸음을 내딛었다.
-우매한 거인족의 후예여. 원초적인 포악함으로 힘의 우위를 논하고자 한다면, 하늘을 뒤덮은 악의와도
맞서보아라.
이진태의 심상세계가 그 한 걸음과 동시에 천지를 새카만 먹구름이 가득 찬 암흑천지로 돌변시키며, 구름
을 가르고 내려오는 거대한 거인의 발을 하강시켰다.
‘암천의 한 걸음!!’
폭식왕이 꾸어엉 울부짖으며 육안으로 보일 정도로 강력한 충격파를 방출했지만 규모 면에서 압도적으
로 우위를 점한 거인의 발은 아주 잠시도 저지할 수 없었다.
그것은 상성의 문제였다.
폭식왕의 전투력은 다른 회차의 나보다도 강할지 모르지만, 녀석은 심상을 지니지도 않았고 물리력과 중
량, 크기는 이진태의 심상이 녀석을 완전히 압도하였다.
-짓밟혀라, 작은 것아.
콰드득!
거미줄처럼 금이 가는 지면과 함께 거인의 발이 사라지더니, 폭식왕은 핏자국만 남긴 채 사라졌다.
▷S+급 공격대원 이진태가 SSS급 던전보스 폭식왕을 제거했습니다.
▷해당 공격대원의 폭식왕과 던전코어와의 상성이 매우 높습니다. 던전보스 토벌보너스가 더해지며 이
진태의 등급이 가파르게 상승합니다.
▷공격대원 이진태가 SS급 초능력자가 되었습니다.
▷공격대원 이진태가 탁기를 모두 흡수하여 정화된 근원요소들이 초능력자들의 체내로 흡수됩니다.
▷부산던전 공략에 참여한 모든 초능력자들의 모든 능력치가 1 상승합니다.
▷폭식왕의 지척에 있던 초능력자들의 모든 능력치가 추가로 1 상승합니다.
순식간에 일어난 사태에 모두가 멍하니 이진태를 돌아보았다.
“방금 그거 뭐야?”
같이 다니던 일행들도 처음 봤나보다.
장규아의 멍한 물음에 이진태가 허리에 손을 얹었다.
“이 몸의 필살기다. 쯧. 이런 자리에서 쓸 생각은 없었지만 이 몸의 관리부족으로 지배한 몬스터가 폭주
하려 들었으니 어쩔 수 없군. 저런 멍청한 놈은 애초에 내 취향도 아니지.”
이진태가 뱀처럼 가느다란 눈으로 나를 돌아보며 의미심장한 시선을 보낸다. 이 미친놈이 또 날 데스나이
트로 만들고 싶어서 눈독을 들이는 건가.
“취향이라고 한다면…”
“아, 아아아, 안돼요! 그런 남사스러운 짓을!”
갑자기 로리 헤더웨이가 얼굴을 붉히며 소리쳤다.
“음? 뭐가 안 된다는 거냐?”
“남자가 남자를 그렇고 그런 눈으로 쳐다보다니! 있을 수 없어요, 외설적이에요!”
잠시 로리 헤더웨이가 무슨 말을 하는지 이해하는데 시간이 걸렸던 우리는, 한 발 늦게야 그 뜻을 이해하
고 모두의 기겁하는 눈초리를 받아야했다.
“이상한 소리 하지 마라, 헤더웨이! 이 몸이 어째서 저런 녀석을 범해야 하느냐!”
“이진태 게이였어?”
“아니라고 하지 않았느냐! 남색도 꺼리는 건 아니지만 저놈의 육체에는 그런 의미의 관심은 없다!”
아니 시발 남색은 또 왜 안 꺼리는데.
이 새끼 원작에서 로리 헤더웨이 계속 데리고 다니던 이유가 그런 이유에서였냐?
“아하하, 뭔가 굉장해. 남자를 좋아하는 남자를 실물로 보는 건 처음이야.”
“음… 취존.”
눈물까지 흘리며 폭소하는 다연이나 복잡미묘한 표정으로 취존을 말하는 유아, 왠지 조금 상기된 표정의
장규아까지 장내가 아수라장이 되었다.
겨우 혼란이 수습되고도 이진태를 힐끔 쳐다보는 시선들은 두려움이나 경계 대신 웃음기와 호기심이 가
득했다.
‘어쩐지 원작소설이 그 개판을 치면서도 인기가 있더라니, 이런 비밀이 숨겨져 있었다니.’
알고 싶지 않은 비밀이지만 아무튼 그 비밀 덕분에 일행 전체가 이진태를 둘러싸고 균열을 일으킬 수도
있었던 위기를 무사히 지나쳤다.
다들 이진태에 대한 의문은 남은 모양이지만 남색가라는 충격적인 커밍아웃보다는 우선순위가 뒷전이
되었다.
“제갈민. 이쪽은 부산 시 연합공격대다. 지금 막 부산던전의 해방 및 던전보스 토벌에 성공했다. 인천 쪽
상황을 알려주길 바란다.”
-좋지 않아. 천시연이 예지의 힘으로 몰살위기를 겨우 모면했는데도 가주 한 명이 죽었어. 어떻게든 보스
를 해치울 수는 있겠지만 대구로의 지원은 불가능하다.
“알겠다. 그럼 이쪽에서 자체적으로 인원을 모아 대구던전 공략을 시도하겠다.”
-잠깐, 대구에는 선발대를 보냈다.
“선발대? 달리 보낼만한 전력은 없을 텐데?”
이어지는 제갈민의 말에 절로 주먹에 힘이 들어갔다.
-이능관리당에서 자체적으로 초능력자들을 파견했다.
“올드 원의 하수인이 이끄는 그 정당에서? 올드 원의 다른 부하들이 키우던 던전보스가 점령한 도시에?”
-낌새가 좋지 않다. 놈들이 어떤 짓을 저지를지 몰라. 나로서도 놈들이 쓸 계책이 예상되지 않을 정도로
맛탱이가 간 놈들이니 무조건 조심해라.
제갈민의 계책은 인간을 상대로는 절대적인 우위를 점한다고 해도 좋을 정도로 매번 유효했다. 그러나 인
간이 아닌 존재를 상대할 때에는 빛을 보지 못한다.
이는 이능관리당의 당원들이나 초능력자들, 그들을 이끄는 올드 원의 새로운 하수인이 그만큼 비인간적
인 술수를 쓸 것임을 의미했다.
그 사실을 기억하며 통화를 끊으려다가 문득 묘한 사실을 한 가지 깨달았다.
“잠깐. 던전보스가 토벌되지 않은 도시는 교신이 불가능한 거 아니냐? 너, 인천도시의 상황을 어떻게 파
악했냐?”
-스펙터를 써서.
“아… 그래.”
스펙터면 될지도 모르지. 통화를 끊고 인천과 대구의 상황을 알리자 살짝 들뜬 분위기가 금방 무겁게 가
라앉았다.
“연지야… 흑, 흐윽.”
흩어진 공격대원들을 한 자리로 모으자 분위기는 더욱 축 가라앉았다. 하정아가 두 눈을 감은 여자아이의
머리를 감싸 안은 채로 엉엉 울며 걸어왔기 때문이다.
“어떻게 된 일이냐?”
“사촌여동생이 듀라한이 되었다. 잘린 머리를 손으로 들고 덤벼들었다고 하더군. 전투가 끝날 때까지는
어떻게든 이성을 유지했지만 끝난 뒤로는 줄곧 저 상태다.”
“못해먹을 짓이군.”
이진태가 아니었다면 더 많은 생도들이, 더 많은 시민들이 하정아와 같은 슬픔을 느꼈겠지. 구룡환은 내
어깨를 툭툭 두들기고는 말했다.
“작전대로 다음 도시로 갈 차례 아닌가. 감상에 젖어있을 때가 아니다. 수습하고 지원 준비해.”
“그래. 고맙다.”
시간으로 따지자면 20분 남짓한 교전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전체대원 중 10% 가량의 인원이 사망했다.
언데드 군단과의 교전 도중, 앞서 사망한 부산초능력자들이 언데드로 되살아나며 전선에 합류해버린 탓
에 전세가 크게 위태로웠다는 모양이다.
개중 가장 끔찍한 이야기는 폭발계열 초능력을 지닌 좀비초능력자가 폭발하며 열세 명의 대원이 폭사했
다는 대목이었다.
“대구는 지금 우리가 부상을 치료하고 전력을 재정비하는 와중에도 우리가 겪은 것보다 더한 참상이 벌
어지고 있을 거다. 이능관리당이 공략을 자처했지만 놈들은 정예가 아니지.”
피해가 속출할 수밖에 없고, 만일 피해가 적다면 그건 그것대로 심각한 상황이다. 몬스터와 초능력자들
의 교전이 성립되지 않는 이유는 하나같이 엿 같은 이유뿐이기에.
“하정아. 너는 부산에 남은 언데드군단을 소탕해라.”
“저도 갈 수 있어요.”
“부산시의 안전을 확보하는 것도 중요해. 믿고 맡길만한 인선은 너밖에 없어.”
하정아는 고개를 숙이며 작게 중얼거렸다.
“고마워요.”
대구로 향하는 차량 안에서 무전이나 라디오 채널을 바꿔보았지만 들려오는 소식은 찾기 힘들었다. 모든
전파연락이 단절되며 내부와 외부가 격리된 상황이기 때문이다.
한 시간 반 남짓한 시간을 들여 대구에 도착하자 불안은 확신으로 이어졌다.
▷SSS급 던전 에 진입합니다.
▷공격대원 장규아의 고유스킬 에 의해 던전의 정보를 추가로 입수합니다.
▷던전코어가 도시를 완전히 침식했습니다. 대구는 끈적거리는 악몽, 슬라임들의 영역이 되었습니다. 도
시의 지배자 킹슬라임이 ‘소화’를 마치면 한층 더 등급이 상승할지도 모릅니다.
도시가 이미 끝장났다. 이능관리당이 여기서 무엇을 하였든 간에 대구는 슬라임들에게 완전히 점령당한
것이다.
“저거 다 슬라임이야?”
“아마도.”
익사한 사람 시체를 소화하는 블러디슬라임부터 건물 전체를 집어삼킨 거대메탈슬라임까지, 인간의 공
포심을 자극하는 형형색색의 슬라임들이 도처에서 꿈틀거렸다.
그런 재앙의 한복판에서 돌연 거리의 스피커에 불이 들어오며 사람의 목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아, 아. 여기는 대구시청. 현 시각부로 대구던전의 던전보스 킹슬라임과 교섭을 마쳤습니다. 인류는 이제
슬라임의 위협으로부터 안전합니다. 다시 한 번 알려드립니다. 여기는…
“씨발, 도시가 끝장났잖아. 도대체 무슨 교섭을 했다는 건데. 사람도 죄다 잡아먹혔다고!”
김철괴가 거칠게 자판기를 걷어차자 음료수캔과 함께 자그마한 슬라임들이 와르르 쏟아졌다. 대원들이
슬라임의 핵을 찌르고 불사르며 분노를 터뜨리는 와중에도 방송은 계속됐다.
-인류는 일 년에 한 명, SS급 초능력자 한 명을 킹슬라임에게 제물로 바침으로써 슬라임의 침공을 저지할
수 있습니다. 생존자들은 속히 도시 밖으로 탈출하여 이를 알리기 바랍니다.
방송이 끝나자 사방에서 꿈틀거리던 슬라임들이 움직임을 멈추고 길을 열었다. 건물 안에서, 골목 어귀
에서, 지하철 입구에서 사람들이 주춤거리며 걸어나왔다.
공포에 질린 생존자들의 얼굴을 확인하는 순간, 우리는 상황이 아주 엿같게 돌아가고 있음을 깨달았다.
“저거 다 보내면 SS급 초능력자를 하나씩 제물로 바치자고 하겠지?”
“아마도.”
“무시하고 킹슬라임 토벌에 도전하면?”
“생존자가 더 있겠지. 아직 내보내지 않은 인질로 잡은 민간인들이. 지금 방송 때리는 새끼들은 그걸 어
떤 식으로든 기록매체로 남길 거고.”
“결국 칠대기업이 한 짓을 되풀이하겠다는 거네? 이번에는 자기들이 아닌 우리가 희생하기를 강요하면
서?”
다연이의 말에 대원들이 다연이와 나를 쳐다보았다.
불안, 공포, 죄책감.
수많은 감정 속에서 나도 모르게 불길한 감정을 읽어냈다.
원망.
너만 제물이 되면 우리가 위험을 감수하지 않아도 되는데.
그런 감정이 나와 다연이를 향한 시선의 기저에 깔렸다.
‘대원들이 이 정도라면 민간인들은 불 보듯 뻔하군.’
이진태가 물었다.
“간교한 수작을 부리는군. 어쩔 테냐. 이대로 손 놓고 있어도 당하고 쳐들어가도 당한다만.”
“뭘 해도 손해라면 적어도 수작부리는 놈이랑 몬스터는 처리해야지. 포기는 없다. 민간인 구출도 포기한
다. 잡힌 놈들은 이미 끝났다고 생각해.”
SS급 초능력자를 향한 전국민의 원망이 모여들기 전에 행동하려면 이번이 처음이자 마지막 기회였다.
“지금 이 자리에서, 무조건 결판을 낸다.”
[6회차] 도시던전
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