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nemy of the Greatest Psychic Ever RAW novel - Chapter 295
294 – [6회차] 스펙터( )
스펙터들의 반응은 매 회차마다 달랐지만 이번처럼 극진한 대접을 받은 건 맹세컨대 처음이었다.
“인류의 대전사의 방문을 환영합니다. 본 개체는 스펙터 에어리어의 외교담당을 맡은 외교관 NIV-0004
입니다.”
“그래, 반갑군. 지저에어리어에 볼 일이 있는데.”
“한도령. 귀하께서는 인류의 정권을 뒤엎고 모든 생물체의 생존권을 위협하는 고위던전보스를 세 차례에
걸쳐 토벌했습니다. 해당 활동을 기여도로 정산 받으시겠습니까?”
“어? 진짜?”
“기여도를 모두 정산 받을 시, 섹터6에의 출입권한이 개방됩니다.”
섹터6. 제갈민의 유산으로 기여도를 물려받았을 때보다도 두 단계 높은 등급이다.
“안내해줬으면 좋겠군.”
“이쪽으로 오시길.”
스펙터 외교관 니브0004는 비밀계단을 따라 내려가는 대신, 지상의 미로처럼 얽힌 지형을 따라 걷다가
막다른길에 도달했다. 함정이라도 판 건가 싶을 때, 그가 벽에 손을 넣었다.
쿠구궁
기계장치가 움직이는 소리와 함께 환영이 걷히며 막다른길 아래로 엘리베이터가 한 대 올라왔다.
“섹터 6로 직행하는 엘리베이터입니다.”
“우와.”
다연이가 까치발을 들고 내 뒤에서 엘리베이터를 엿봤다.
말이 좋아 엘리베이터지 탱크도 들어갈 크기다.
아니, 잘하면 어지간한 건물 한 층에 육박할지도 모른다.
“물자보급용 통로인가?”
“물자반출용 통로로 쓰기도 합니다.”
니브가 안에 들어가서 기다리는 통에 우리도 곧장 그를 뒤따라 엘리베이터에 들어갔다.
구구구구궁…
움직이는 엘리베이터를 둘러보던 유아가 바닥에 떨어진 무언가를 발견하고 주워왔다.
“이거 뭐야?”
“어디보자. 이건 어, 음…….”
시발 로켓 런처 발사기가 왜 여기에 있어.
“장난감이야. 버려.”
“응.”
엘리베이터가 멈추자 온통 적색으로 물든 불길한 조명으로 가득한 공간이 나타났다.
“여기 조명이 왜 이렇지?”
“본 스펙터 종족 또한 넓은 의미에서는 몬스터의 일종이기에 주기적으로 흉폭성이 드러나는 때가 있습니
다.”
“그래서?”
“섹터6에 있는 흉폭성제어실에서 안드로이드를 이용한 유사전투로 광폭화 상태를 해소하기도 합니다.
스펙터 에어리어에 불법으로 침입한 침입자들의 처분도 이곳에서 이루어지죠.”
“그런 곳에 우리를 데려왔다고?”
니브가 얼른 손사래를 쳤다.
“아, 오해는 마시길. 이곳은 광폭화 에어리어와는 별개의 장소입니다. 이쪽으로 오시죠.”
찝찝하기는 해도 지금의 나는 역대최강의 경지에 올라섰다. 일이 잘못되거든 곤란해지는 건 내가 아니라
스펙터들이 될 거라는 확신이 있기에 니브를 뒤따랐다.
간혹 부러진 안드로이드의 발목이나 탄피 등이 복도 좌우의 배수로에서 눈에 띄었기에 얼추 감이 왔다.
‘섹터6는 미로형 던전처럼 지형을 변화시킬 수 있는 모양이군. 광폭화 전장이라는 곳은 여기와는 다른 통
로라고 했는데도 저런 게 굴러다니는 걸 보면.’
던전지형을 지능적으로 이용하고 있으니 마음만 먹으면 무한정 침입자를 굴릴 수 있다.
이런 공간을 지녔으니 수차례 몬스터웨이브에 당하고도 서로 불가침의 관계를 유지할 수 있었겠지. 역공
에 나설 역량은 없어도 수비 한정이라면 십년도 버틸 수 있을 거다.
“도착했습니다. 이곳이 저희 스펙터들의 병기고입니다.”
“은행금고처럼 생겼군.”
“실제 금고를 개조해서 만든 공간입니다.”
금고 문을 열고 들어가자 현대무기부터 던전 아티팩트까지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무기를 총망라한 것
만 같은 무기창고가 그 장대한 자태를 드러냈다.
다연이와 유아도 이리저리 둘러보며 감탄을 금치 못하는 가운데, 니브가 자랑스러워하며 말했다.
“현존하는 무기는 모두 갖춘 창고입니다. 인류의 대전사인 당신과 동료들에게는 창고 내에서 원하는 무
기 하나를 고를 수 있는 혜택을 제공하려 합니다.”
“필요 없다.”
“네?”
“무기에 구애받는 수준은 이미 넘어선 지 오래 됐다. 게다가 마석개발로 신무기 제작에 착수 중인 녀석도
있지.”
“마인성의 MM코퍼레이션이라면 향후 1년은 더 지나야 유의미한 수준의 아티팩트 제작에 성공할 겁니
다.”
스펙터 외교관이라고 했던가. 그냥 잘난 체나 하려고 나온 놈인가 싶었는데 의외로 유익한 말을 한다.
“우리가 여기에 찾아온 이유를 알고 있나?”
“이 세상 모든 스마트워치는 스펙터의 눈과 귀입니다.”
팔목에 찬 스마트워치를 내려다보고는 제대로 당했음을 깨달았다. 컴퓨터와 인터넷을 장악한 스펙터들
이 기어이 전기신호를 타고 넘나들며 스마트워치 도청도 해낸 모양이다.
“당신의 여정은 모두 지켜보았습니다. 물론 ‘회귀자’의 비밀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정확한 경과까
지는 알 수 없지만 다른 회차의 인류가 패배했다는 것은 짐작하고 있습니다.”
“그 사실을 니브 당신 말고 누가 또 알고 있지?”
“일곱 개체의 스펙터 상급직무자 및 우리를 총괄하는 통합인공사념체 ‘빅 마인드’ 외에는 스펙터 중에 당
신의 비밀을 아는 이는 달리 존재하지 않습니다.”
다연이가 정색하며 단검을 고쳐 잡았다.
“함정일까?”
“모르지. 그래도 이놈은 대화를 하려고 우릴 데려왔어. 호의를 지니지 않았다면 무기창고를 보여주지는
않았겠지.”
“협박일 수도 있어. 지형지물을 지네 뜻대로 조종할 수 있는 광폭화 에어리어가 같은 층에 있으니 수틀리
면 우릴 이곳에 가두고 죽이려는 걸지도 몰라.”
다연이는 선뜻 스펙터를 신뢰하지 않았고, 충분히 그녀의 추측이 맞을 가능성도 있었다. 그러나 지금껏
수많은 가혹한 선택을 해왔던 내게는 특유의 ‘위기감’이 들지 않았다.
내가 너무 강해져서 그런 까닭도 있겠지만, 스펙터들은 적이 아니라는 예감이 들었기 때문이다.
“인류의 대전사 한도령. 당신의 목적이 칠대기업의 기반시설에 심어진 자폭 프로토콜의 해제임을 알고
있습니다.”
“도와주겠나?”
“이는 저희 스펙터들의 목적과도 일치하는 행위입니다. 기꺼이 협력할 의사가 있습니다. 대신, 거래를 요
청합니다.”
제법 구미가 당기는 상황이다. 스펙터 외교관답게 흐름을 가져가며 거래를 요청하는데도 거부감이 들지
않았다.
“어떤 거래를 원하지?”
“저희 스펙터들은 강동구 에어리어 하나로 만족하지 않습니다. 서울은 더 이상 안전한 도시가 아닙니다.
인구 삼백 만 이상의 신규 대도시의 실소유권을 원합니다.”
“뭐? 도시? 인구 삼백 만?”
“도시건축에 필요한 비용 및 입주자 혜택을 제공할 의향도 있습니다. 저희 스펙터들이 운용하는 투자회
사의 총 자금은 인간들의 상상을 아득히 넘었습니다.”
“돈은 있지만 땅이 없다 이거군.”
고민이 되는 이야기다. 아무리 스펙터가 다른 몬스터들과 달리 인간과의 공생을 선택한 존재라고 한들,
그들의 영역을 넓혀주는 건 별개의 이야기다.
지금까지야 돈이 있어도 써먹을 땅이 없고, 정부가 출입하는 물자를 엄중히 감시할 수 있었지.
신도시를 내어주면 감시 자체가 힘들어진다. 일개 행정구를 넘어 인구 삼백 만의 도시를 철통같이 감시하
는 건 솔직히 말해서 현 시점에서는 불가능하다.
“그게 얼마나 어려운 거래인지는 알고 있을 텐데. 스펙터들이 자유로워지길 원하는 인간은 없어.”
“칠대기업의 자폭을 막는 것에는 그만한 가치가 있습니다. 함께 살아나갈지, 모두 같이 몰락할지는 당신
의 결정에 달려있습니다. 부디 관용과 이해를 보여주십시오.”
제갈민에게 연락해볼 것도 없다.
그의 성향은 충분히 안다. 녀석이라면 무조건 반대하겠지.
그러나 구미가 당겼다.
‘십년 뒤, 이십 년 뒤에는 스펙터들로 인해 큰 화근이 생길 수도 있겠지. 언젠가 분명 후회하게 될지도 몰
라.’
그래도 지금의 인류에게 10년 뒤, 20년 뒤를 내다볼 기회가 있기는 한가?
칠대기업이 폭주하면 대한민국의 기반시설은 초토화된다. 당장 1년 뒤도 고사할 수 없는, 전력과 수자원
공급이 끊기고 문명이 쇠락한 폐허 속에서 살아가야 한다.
“도령. 네 결정을 믿을게.”
“나도.”
다연이와 유아도 고개를 끄덕이며 내 선택을 지지할 것임을 분명히 드러냈다. 자신감 있게 나서려던 그
때, 유아가 내 발등을 콱 짓밟았다.
“아직 말 안 끝났어.”
“바로 조금 전에 나도 라고 동의했잖아.”
“믿기는 할 건데, 우선 우리에게 다른 선택지가 있다는 것도 알아둬야 해.”
“다른 선택지?”
“화이트킬러즈. 5회차의 기억을 전송받고 알았어. 화이트킬러즈가 엄청난 해킹실력을 지니고 있고, 개중
에는 스펙터 협력자들도 있다는 점.”
아차.
유아의 말을 듣고 나서야 그들이 떠올랐다.
‘이래서 지능 능력치만 높다고 능사가 아니군.’
지능은 두뇌의 성능을 향상시켜주지, 그 향상된 두뇌로 무엇을 할지는 나 개인에게 달렸다.
81에 달한 지능보다도 유아의 넓은 시야가 더 도움이 되었다. 물론 이 경우에는 유아가 과거의 자신이 했
던 일에 관심을 지녔기에 금방 눈치 챈 거겠지만.
혼자였다면 좋은 머리를 썩히며 화이트킬러즈가 있다는 사실도 까맣게 잊고 있었으리라.
“니브. 스펙터 중에 화이트킬러즈라는 암살조직에 협력하는 놈이 있다고 알고 있는데. 너희도 화이트킬
러즈가 뭐하는 놈들인지는 알고 있겠지?”
“알고 있습니다.”
“그놈들이 인간 중에서는 독보적인 해킹실력을 지니고 있고, 칠대기업의 폭주를 막을 가능성이 있다는
점에 대해서도 동의해줬으면 좋겠군.”
니브는 어깨를 으쓱했다.
“인정합니다. 그들은 몇 안 남은 해커집단 중에서 가장 우수한 이들입니다. 화이트킬러즈의 도움을 받으
면 저희 스펙터들의 도움이 필요하지 않을 수도 있을 겁니다.”
“그래. 그러니 거래조건은 바꿔야겠어. 인구 삼백만의 대도시는 줄 수 없다. 대신 인구 십만의 소도시를
하나 주지.”
도시규모가 작아진다면 스펙터들을 통제하는 일도 마냥 어렵지만은 않다. 신식 건축기술을 도입하면 작
은 땅에 십만 명을 다 때려 박는 일도 충분히 가능하다.
“변경된 거래조건을 인식했습니다. 해당 조건에 대한 내부 의견조율을 위한 회의시간 1시간을 요청합니
다.”
“받아들이지.”
“휴식 도중에는 무기창고 밖으로 나가지 않고 얌전히 계시길 부탁드리겠습니다.”
니브가 삐빅 거리며 어디론가 교신을 하더니, 그를 대신하여 무기창고를 지킬 안드로이드 몇 명이 대신
들어왔다. 니브가 고개를 끄덕이고는 급히 무기창고를 나갔다.
“굉장해. 유아는 은연중에 똑똑하진 않다고 생각했는데 이런 자리에서 중요한 조언을 하다니. 다시 봤
어.”
“좀 더 칭찬해.”
“오구오구. 장하다, 우리 유아. 헤헤. 이런 걸 원했어?”
다연이가 장난삼아 머리를 매만지고 턱도 간질이며 달래듯이 말했는데, 엉뚱하게도 유아는 주인 손길에
몸을 맡긴 애완동물처럼 눈을 감고 만족스러워했다.
-얘 왜 이래?
-애정결핍이야. 친부모는 죽고 데빌메이커가 인간병기 훈련시키듯이 키웠잖아.
-아…….
우리가 전음으로 그런 대화를 주고받는 줄은 상상도 못하고 있을 유아가 이번에는 나를 쳐다봤다.
“도령이도 칭찬해줘.”
“잘했어. 최고야.”
“음. 나는 장한 아이야. 도령이의 도움이 됐어.”
그만해.
내가 다 짠해지잖아.
“화이트킬러즈는 어떻게 포섭할 거야?”
“지금 시도해봐야지.”
곧바로 5회차에서처럼 화이트킬러즈에 연락을 시도해봤는데, 그때처럼 임무를 수행하면서 서로를 인식
한 게 아니라 이쪽에서 일방적으로 아는 척을 하는 관계인 점이 흠이었다.
무리를 해서라도 유아와 괴도미션을 받아들이며 활동해야 했는데, 이런 세심한 부분을 놓친 건 후회가 들
었다.
“답변이 안 오네.”
“나를 경계하고 있을지도 모르지.”
기다림의 시간을 가지던 도중, 갑자기 화이트킬러즈가 임무알선을 받는 사이트가 먹통이 되었다.
별 생각 없이 이럴 때에 대비하여 열릴 위장사이트에 접속했지만 페이지가 연결되지 않았다. 다연이가 뒤
에서 고개를 빼꼼 내밀며 물었다.
“안 되네. 이거 고장 난 거야? 할머니가 스마트워치나 컴퓨터는 못하게 해서 뒤에서 보면서도 잘 모르겠
네.”
암살가문에서 태어나 어릴 적부터 후계자로 길러진 다연이는 단검을 쓰고 암기를 날리며 은신하는 법은
알아도, 스마트워치나 첨단기기를 조작하는 방법은 익숙치 않았다.
그러나 구씨가문에서는 버려진 자식이며 데빌메이커 한초린의 훈련 아닌 훈련을 받으며 자란 유아는 달
랐다.
“동시에 터졌어. 앞에 건 사이트가 공격받았고, 뒤에 건 이쪽에서의 접근이 불가능해졌어.”
“그게 무슨 뜻이지?”
“스펙터들이 화이트킬러즈의 홈페이지를 막았고, 그 뒤에 우리가 스마트워치를 조작하는 걸 차단했어.”
정야문의 가주, 대모 김서율과 다르게 데빌메이커 한초린은 전자기기 또한 필요하다면 다룰 수 있어야 한
다고 생각하는 인물이었고 덕분에 유아가 이 상황을 이해하였다.
“우리에게 대안을 남기지 않으려는 거야.”
“뭐어!? 그럼 화이트킬러즈를 지금 공격하고 있는 거야!?”
다연이의 깜짝 놀란 외침에 안드로이드들이 중화기를 들고 다가왔다. 나는 망설이지 않고 그대로 안드로
이드의 몸체와 중화기를 검 한 자루로 모조리 도륙했다.
다섯 기의 안드로이드가 모두 침묵하자, 무기창고 입구가 열리며 증원이 나타나는 족족 베어 넘겼다.
“니브. 쥐새끼처럼 도망칠 줄 알았더니 바로 앞에 있었군?”
“원격교신으로 회담을 마쳤습니다. 7인회의에서 결론을 내기까지는 10초도 채 걸리지 않았습니다. 저희
가 유일한 대안이 아니기에 교섭조건이 변경된다면, 대안을 없애면 된다고.”
“놈들에게는 스펙터 협력자도 있다. 너희 중 일부도 화이트킬러즈와 뜻을 같이 하는 건데, 동족까지 죽일
작정이냐?”
니브는 싸늘한 조소를 흘렸다.
“인간 또한 필요에 따라 얼마든지 동족을 죽입니다. 이는 스펙터만의 왜곡된 본능이 아닙니다. 해당 스펙
터가 동족을 외면하고 인간을 선택한다면 함께 제거할 뿐입니다.”
“내 호의를 얻지 못한다면 너희들은 멸망 이후에 전봇대조차도 넘나들지 못할 거야.”
“그럼 멸망이 오지 않으면 됩니다. 인구 오백 만의 신도시를 새로운 터전으로 삼아서. 이것이 변경된 조
건입니다. 더 이상의 대안은 없습니다. 화이트킬러즈는 곧 전멸할 겁니다.”
스펙터 외교관 니브의 냉정한 대답을 들으며 그들 또한 결국 몬스터에 불과한지, 인간과의 공존을 선택한
그들의 인간다운 모습이라고 보아야할지 혼란을 느꼈다.
그러나 한 가지 사실만큼은 분명했다. 이들은 나를 기만했고, 보란 듯이 눈앞에서 개수작을 부렸다.
[6회차] 스펙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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