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nemy of the Greatest Psychic Ever RAW novel - Chapter 325
323 – [6회차] 소원( )
탑을 클리어한 뒤, 4개월이 지났지만 세상에 극적인 평화가 찾아오지는 않았다. 올드 원의 사후, 그의 초
능력 중 일부가 탑의 마력과 결합해 사후폭주를 일으킨 탓이다.
“게이트는 앞으로도 계속 생겨날 거야. 앞으로도 나타날 몬스터들을 막기 위해서라도 더 많은 실력자들
이 필요해. 한도령. 너가 도와줬으면 좋겠어.”
“미안하다.”
“정말 이러기야? 우린 결사대 동료였잖아. 올드 원도 같이 죽였다고. 몬스터가 두려워지기라도 했어?”
이브이는 그런 사후폭주의 저지를 위해 나를 설득하고자 찾아왔지만, 내게는 그녀를 도울 수 없는 이유가
있다.
“다연이가 임신했다.”
“뭐? 정말? 언제?”
“생도시절에.”
“아이 낳으면 보러가도 돼?”
“너무 일찍은 곤란하다. 적당히 때가 되면 연락하지.”
이브이는 어빌리티즈 공격대의 몇 안 남은 생존자들과 함께 초상협회의 최고수뇌부가 되어 게이트봉쇄
활동의 최전선에 나가기를 멈추지 않았다.
그녀에게 사랑을 고백했던 마인성의 죽음을 잊기 위해서인지, 죽은 이들의 몫을 대신하기 위해서인지는
몰라도 그녀의 왕성한 활동 덕분에 초상협회는 세를 키워나갈 성 싶다.
“이브이는 어때?”
“언제나 그렇듯 시끄러운 여자다. 적어도 십년 가량은 초상협회가 세 협회 중에서는 가장 잘 나갈 것 같
군.”
“뭔가 어색하네. 탑에서의 혈전이 아직도 어제 일처럼 선명하게 떠오르는데 이렇게 아무 일도 하지 않고
있는 거.”
다연이는 초췌한 안색으로 침상에 누워 그리 말했다. 물수건을 갈아주고 꼼꼼히 식은땀을 닦아주자 간지
럽다며 다연이가 몸을 연신 뒤틀었다.
눈에 띄게 배가 부풀어 오른 건 아니지만 이렇듯 멀쩡해보이던 다연이는 이내 입술을 질끈 깨물며 내 손
을 꽉 잡았다.
“흐윽… 또 시작했어.”
“다연. 역시 이건 아니야.”
“안 돼. 참을 수 있어. 고작 진통이야.”
한 시간여 가량의 진통 끝에 기진맥진한 다연이가 기절하다시피 푹 잠에 들었다. 잠시 후, 연구소에 다녀
온 유아가 지친 표정으로 소파에 몸을 구겨 넣었다.
“결과 나왔어.”
“의사는 뭐래?”
“선천능력자야. 출산이 임박하면 통제되지 않은 초능력이 다연이를 더 고통스럽게 만들 거라고 했어.”
강반검의 뒤를 이어 세기의 대영웅이라 불리는 나와 정야문의 새로운 문주가 된 다연이의 사이에서 잉태
된 아이는 뱃속에서부터 이미 초능력을 지닌 선천능력자였다.
문제는 자아조차도 제대로 형성되지 않은 아기가 제 초능력을 온전히 통제하지 못한다는 점이었다.
“역시 낙태시키고 싶어. 이유를 모르는 것도 아니고 아기의 초능력 때문이라는 것도 알아냈어. 다연이는
원치 않겠지만 이대로는 다연이가 죽어. 아무리 생각해도 이건 아니야.”
“안 돼. 만일 네 독단으로 아기를 낙태시켰다간 그 일로 다연이의 원한을 사게 될 거야.”
“그래도 죽는 것보다는 낫잖아. 유아야, 도와줘. 이대로 다연이를 잃을 순 없어. 설득이든 뭐든 얼른 행동
으로 옮기지 않으면 정말로 다연이가 죽을지도 몰라.”
진심어린 내 부탁에도 유아는 고개를 저었다. 다연이의 고집을 내가 꺾지 못한 시점에서 그녀의 원한을
살 걸 각오하면서까지 유아가 나를 도울 리가 없었다.
사후폭주가 지속돼? 게이트가 계속 열려? 몬스터가 쏟아져? 실력자의 도움이 필요해?
이브이가 전한 바깥세상의 이야기는 더 이상 나와는 아무런 관계도 없는 이야기였다. 이제 내게 있어서
가장 위협적인 적은 몬스터가 아닌 다연이의 뱃속의 아기였다.
“하정아는 연락이 돼?”
“전혀. 만일 연락을 하더라도 내가 아니라 도령이에게 먼저 할 거야.”
하정아는 하이소서러의 생존자들을 추스르고 마법협회 전력의 일부와 함께 먼 타국, 유럽의 프랑스까지
여정을 떠났다.
소풍이나 비즈니스 따위가 아니다. 마리왕비와의 계약을 이행하기 위해서, 지구상의 모든 프랑스인을 죽
이기 위한 잔혹한 학살의 여정을 떠난 것이다.
‘죽은 하창엽 가주를 볼 낯이 없군.’
정략결혼을 한 하정아와의 관계가 순탄치 않으리라고는 생각했지만 설마 얼굴조차도 보지 못하게 될 줄
이야. 심지어 손을 더럽히는 그녀의 여정을 내가 도울 일조차도 없었다.
「따라올 생각은 말아요. 당신이 해야 할 일은 김다연의 곁을 지켜주는 걸 텐데요?」
「너는 그걸로 괜찮은 거냐?」
「괜찮을 리가 없잖아요. 하지만 제 인생의 고비 때문에 당신과 김다연 사이에 불화를 만들고 싶지는 않
아요. 적어도 앞으로 태어날 아기에게는 아무런 죄도 없으니까.」
마지막으로 나눈 작별인사조차도 마음을 무겁게 만들었다. 달군 팬에 올리브유를 두르고 양상추와 버섯,
후추가루를 볶고 밥과 고추장을 넣으면서도 심란함은 가시지 않았다.
“요리, 언제 배웠어?”
“혼자 살면서.”
그마저도 그리 떠올리고 싶은 나날은 아니다. 1회차와 2회차. 복수를 위해 살아가던 도중 깎여나가는 정
신력을 다잡고자 시작한 요리였다.
민지와 다연이의 요리를 다시 먹고 싶다는 생각으로 시작한 요리였기에 내가 만든 요리는 요리의 맛보다
도 짜디짠 눈물의 맛으로만 기억했다.
“맛있어.”
“잘 됐네.”
“앞으로도 요리 해줘.”
나는 선뜻 그러겠다고 대답할 수 없었다.
***
한 달이 지났다.
-속보입니다. 세월의 탑을 정복한 300인의 결사대 중 한 명인 하씨세가의 마지막 일원이자 코드네임 [대
마법사]로 불리는 하정아가 유럽연방의 프랑스에서 대학살을 벌이고 있습니다.
-현지에서는 하정아가 마기에 의해 타락했다며 시급히 그녀를 메인빌런에 등재하고 국제히어로협회의
도움을 바란다는..
하정아는 프랑스의 주요 초능력자들이 모인 자리에서 실력자들을 단번에 제거하고 연이어 프랑스 전역
의 파괴를 순차적으로 이행하기 시작하였다.
그 악마적인 활약에 지대한 관심이 있던 데빌메이커 한초린 또한 떠나면서 저택에 거주하는 이가 한 사람
줄었다.
“어이. 세상 살 맛 난다는 얼굴로 있어도 부러워 죽겠을 놈이 뭐 그런 표정을 짓고 있냐?”
“제갈민?”
“연합협회도 슬슬 기틀이 닦인 김에 짬 내서 놀러왔다. 그 고집스러운 협회의 엘리트들 머리 위에 연합사
령부를 만들어두는 게 어찌나 힘들던지.”
“수고가 많군.”
“너가 더 고생이지. 강유아한테 얘기는 들었다. 그 애, 낳으면 다연이가 죽을지도 모른다면서.”
나는 입을 다물었다.
제갈민이 한숨을 내쉬었다.
“얌마. 애는 다시 낳을 수 있지만 다연이는 다르잖아. 그 고생을 했는데 다연이가 죽으면 앞으로는 어떻
게 살려고 그래?”
“다연이가 직접 경고했어. 몰래 낙태시키면 두 번 다시 얼굴 볼 생각은 하지 말라고. 바로 이혼하겠다고.”
“하… 지독하게 됐네. 난 우리 중에서 니가 제일 행복하게 살 줄 알았더니 어떻게 된 게 제일 불행해 보이
는지 모르겠어.”
답답한 분위기에 화제도 전환할 겸, 그간 잊고 지냈던 이들의 얼굴과 이름을 떠올려보았다.
“김철괴는 뭐하고 지내냐?”
“코드네임 철왕. 세계에서 제일 단단한 남자로 연합공격대에서 한참 활약 중이다. 그놈이 닫은 SSS급 게
이트만 이달로 두 개에 SS급도 여덟 개야.”
“게이트가 그렇게 많이 열리냐?”
“북한 땅에서 쏟아져내려올 것까지 대비하니까. 거긴 아직 통신시스템도 덜 갖춰져서 이래저래 고생이
지.”
“장규아랑 로리 헤더웨이는?”
제갈민이 어깨를 으쓱했다.
“나도 몰라. 이진태 유품 들고 어디로 훌쩍 사라졌다는데. 원체 종잡을 수 없는 애들이었으니까. 들리는
소문으로는 멸망한 영국을 지배한 종말급 몬스터 잡으러 간다는 말도 있고.”
원작에서의 두 사람의 성격이라면… 아니, 나와 함께 아카데미 생활을 한 동료들이라면 충분히 있을법한
이야기다.
“도와달라는 부탁을 하지 않은 건 아쉽게 됐군.”
“부탁하면 도울 마음은 있고?”
“이진태에게는 그만한 빚을 졌으니까.”
전생자이자 마왕군 사천왕의 일원인 이진태. 그는 내 회귀의 첫 번째 목표이자 숙적이기도 했었다.
한 때는 그의 손에 의해 한반도가 멸망하는 회차조차도 존재할 정도로 올드 원에 못지않은 잔혹한 적이었
으나, 이번 6회차에 한해서는 스스로의 의지로 올드 원과의 공멸을 택했다.
그가 얼마나 탐욕스러운 인물인지, 잔혹한 심상을 품고 있는지 알고 있는 입장에서는 더욱 놀라운 결과였
다.
“탁재윤 형 탁재홍 알지? 탁위일 자리를 물려받아 새로운 가주가 된 양반. 원한다면 다연이의 뱃속의 아
기를 초능력으로 ‘존재하지 않는 상태’로 되돌려줄 수 있다고 하더라.”
“…말했잖아. 낙태는 안 할 거라고.”
“그래도 알아는 두라는 거지. 혹시나 다른 마음이 들지도 모르니깐. 더 궁금한 건 없냐?”
나는 고개를 저었다.
“잘 살아라. 남부럽지 않게. 넌 그럴만한 자격이 있어.”
“그래. 너도.”
제갈민이 남기고 간 탁재홍의 명함.
나는 차마 그 명함을 쓰레기통에 버리지 못했다.
그로부터 이주 뒤.
다연이의 진통이 그 어느 때보다도 심해졌을 때.
나는 명함을 다시 꺼내들었다.
팍!
부지불식간에 날아든 장침이 명함과 함께 벽에 박혔다.
다연이가 침상에서 상반신을 반쯤 든 채로 나를 노려보았다.
“하지 마. 절대 포기, 못해.”
“왜 이렇게까지 고집 부리는 거야. 이번이 마지막 회차가 되어달라면서. 회귀 같은 건 하지 말라면서. 그
런데 네가 먼저 가버리면 어떻게 참을 수 있냐고!”
“어차피 나 오래, 못살아. 아기를 낳, 을 수 있는 건… 흐윽. 이번이, 처음이자, 마지막, 이야.”
다연이의 충격적인 고백에 나는 대꾸조차 하지 못했다.
경악한 내게 다연이가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보통은 이렇게, 어린, 나이, 에… 후우. 도령이처럼, 강해지는, 건, 무리, 라고.”
“다연이 너 설마… 단기간에 경지를 상승시키려고 근원지기를 쓴 거냐?”
샐쭉하게 짓는 미소. 무언가를 얼버무리고 싶을 때에만 짓는 웃음이었다. 언제나 그렇듯 비겁하지만 사
랑스러운 그 미소에 이번만큼은 도저히 마주 웃을 수가 없었다.
“우리가 서로를 사랑했다는 걸, 확인할 수 있는, 유일한 결실이야. 우리 아기, 미워하지 말아줘.”
“널 죽일 아기야. 좋아할 수 있다고 약속할 자신 없어.”
“그럼, 날 봐서라도, 약속해줘. 아무런 흔적도, 남기지 못하고, 죽는 건, 싫어.”
눈물샘이 고장 난 것처럼 눈물이 멈추지 않았다.
근육이 찢어지는 괴로움보다도 더한 쓰라림이 심장에 퍼졌다.
“약속할게. 그러니 죽지 마.”
“그렇게 걱정되면, 포인트상점, 쓰면, 되잖아.”
“상점은 이제 못써. 소원의 제약이야.”
“그래? 아쉽, 네…….”
“아기의 이름은 뭐로 지을지 생각했어?”
다연이를 죽일 아기라고 여겼기에 스스로는 생각하지도 않았던 아기의 이름. 혹여나 생각해둔 이름이 있
을까 싶어서 던진 물음에 다연이가 짓궂은 미소를 지었다.
“한다연.”
“너…”
“내가 죽더라도, 우리 아기, 나처럼 사랑해줘.”
“…….”
“그런 의미로 지은, 이름이야.”
거짓말은 수도 없이 저질러왔다. 이진태와 올드 원의 죽음을 이루기 위해, 사랑하는 이들과 행복한 미래
를 맞이할 수 있도록 때때로 많은 이들을 속이기도 했다.
“좋은 이름이야.”
“그렇지?”
그 많은 거짓말을 통틀어서 가장 힘든 거짓말을 했다. 떨리는 손으로 눈물범벅이 된 내 얼굴을 닦아주며
다연이가 말했다.
“핏. 바보 아니야? 울긴 왜 울어.”
그로부터 두 시간 뒤, 진통이 한층 거세지며 다연이는 산부인과로 이송되었다. 대기실에서의 초조한 기
다림 끝에 착잡한 얼굴로 유아가 돌아왔다.
“아기는 살렸어.”
“다연이는.”
유아는 고개를 말없이 고개를 숙였다.
지옥에 떨어진 것만 같은 절망감이 온 몸을 잠식했다.
“절개수술 끝에 확인했어. 저 아기, 파괴에 특화된 무투계열 선천능력자야. 내장이 너무 많이 상했어. 지
금껏 버틴 게 기적이다 싶을 정도로.”
“아기는, 지금 어디에 있지?”
“후회할 짓은 하지 마. 다연이가 자기 목숨과 맞바꾸면서 낳은 아이야.”
신생아실에서 곤히 잠든 아기를 바라보았다. 제 어미를 죽이고도 뻔뻔하게 잠든 그 얼굴을 보고 살의가
끓어올랐다.
손만 뻗으면 강제로 내력을 뒤틀어 살해할 수 있다는 유혹이 손끝에 머물며 떨어질 줄을 몰랐다. 민지에
이어 다연이마저 잃은 슬픔과 절망감은 그토록 컸다.
「우리 아기, 나처럼 사랑해줘.」
침대 안전가드가 손아귀 안에서 잔뜩 우그러졌다.
“제기랄.”
나는 아기를 죽이는 것을 포기했다.
“8년밖에 안 남았다고. 나도, 8년밖에 더 못산다고. 그런데, 그런 나보다도 먼저 죽으면 어쩌자는 거야.
해주고 싶은 게 잔뜩 있었는데, 못 다한 말이 얼마나 많았는데.”
“…….”
“크흑, 크흐윽…….”
차갑게 식은 다연이의 시체, 말없이 뒤에서 나를 지켜보는 유아, 얼굴조차 보고 싶지 않은 아기.
눈물과 서러움으로 지샌 그날 밤 이후. 잿빛처럼 가라앉은 마음이 무색하게도 세월은 멈추는 일 없이 흘
렀다. 그렇게 7년이 지난 어느 날, 멈추었던 내 안의 시간이 다시 흘렀다.
“지금 뭐라고 했지?”
“제 강령술로 김다연의 영혼을 불러들일 수 있다고 했어요.”
7년 만에 영국에서 돌아온 로리 헤더웨이가 말했다.
—
다연이가 죽고 남겨진 리틀다연이와 강유아.
두 사람과 도령이가 함께 보낼 마지막 1년이 소원편의 끝을 장식하겠네요.
넘나 슬픈 것 ㅠㅠ
[6회차] 소원
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