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nemy of the Greatest Psychic Ever RAW novel - Chapter 33
033 – [2회차] 국경선의 용병들( )
잘은 모르겠지만 2소대 3분대장 최미나의 말에 따르면 우리 분대는 줜내 호구취급을 당하나보다.
도대체 분대장이 B급 초능력자인 분대에 무슨 깡으로 그딴 취급을 하는지 궁금했는데 저녁 먹으러 나가
는 길에 금방 이유를 알 수 있었다.
“휘유. 계집만 보인 분대에 또 계집이 늘었잖아?”
“어이. 저놈은 남자잖아.”
“아니. 내 눈엔 저놈도 가능해보이는데? 크헤헤헤.”
마지막에 지껄인 놈은 얼굴도 외워뒀다. 눈 마주치니까 저질스레 혓바닥을 내미는데 내가 용병 때려치고
나갈 때 저놈 혓바닥은 뽑고 나갈 거다.
“여성차별입니까? 시대착오적이군요.”
“뭐, 페미니스트 소동이 바로 10년 전 일이었으니까.”
실제세계보다 문명 발전 속도도 빠른 이쪽 세상에서는 페미니즘 운동도 10년 전에 끝났다고 한다.
여성우대정책의 결과로 도시 하나가 망하고 남성초능력자들의 집단탈주가 이어지는 와중에 몬스터 웨이
브까지 겹쳐서 터지고 나라가 망할 뻔한 위기를 겪은 뒤.
자칭 페미니스트들은 반사회적 범죄자로 지정되어 교도소로 수용되거나 최전선 군인으로 강제징용 당했
단다.
“묘하게 과거사에 해박하시네요.”
“뭐 때문에 시비 털리는지는 궁금하기 마련이잖아?”
“그건 또 그렇겠네요.”
“우리 병아리는 어떻게 생각해? 여자 분대에 걸린 거.”
“별 생각 없습니다. 도연이도 여자인데요 뭐.”
시큰둥하게 대답하자 히미코가 뒤에서 음울한 어조로 중얼거렸다.
“실존하는 사상주의자는 모두 사상을 팔아서 타인의 인생을 망침과 동시에 자신을 살찌우는 범죄자들이
지… 우린 그런 범죄자가 아니야…”
“아, 네…”
댁은 페미니스트 이전에 일단 인간이 아닌 것 같거든요? TV나 우물에서 갓 튀어나온 것 같은 일본귀신 같
은 앞머리부터 어떻게 해줬으면 싶다.
물에 젖은 미역처럼 긴 앞머리 사이로 이따금 충혈 된 눈동자와 마주칠 때마다 미친 듯이 심장이 요동친
다.
“헹. 저놈들은 전부 약한 주제에 질투심 때문에 시비나 털고 있는 시답잖은 녀석들이야.”
라이언의 말마따나 이런 식으로 시비를 거는 놈들이 제대로 된 실력자로 보이지는 않았다. 얼추 보기에도
C급 초능력자로 칠만한 상대도 보이지 않는다.
대다수가 E급이나 D-급에 간신히 발을 걸친, 오성아카데미 자퇴생인 나나 다연이만도 못한 수준이었다.
“뭔가 불편하네요. 남자용병들이 추접스럽게 추파를 던지는 것도 그렇고, 식사 때마다 매번 이런 분위기
를 거쳐야 한다는 건 조금…”
다연이가 울상을 지으며 말했다. 나 역시 다연이가 저딴 시선에 계속 노출되는 건 사양이었다.
“한번쯤은 직접 겪는 게 말이 빠르겠다 싶어서 군용식당에 간 거고, 원래는 사제식당에서 해결하는 편이
야. 그쪽은 간부들도 다니는 편이라 규율이 잡혀있거든.”
“우우. 다음부턴 꼭 거기로 갔으면 좋겠네요.”
“으하하. 도영이나 도연이 둘 다 벌써 적응해버린 모양인데? 실력만 따라주면 이번엔 제법 오래 가겠어.”
시간도 슬슬 밤으로 향하고 있어서 내일 일정에 대비해 빈 침상을 눈독들이고 있는데, 웬걸 최미나랑 라
이언, 히미코가 군장을 갖추고 나갈 준비를 했다.
“어디 갑니까?”
“야간임무. 너희 없을 때 받은 의뢰라서 안 따라와도 되긴 하는데, 어떻게 할래?”
“적응도 해야겠고 저희만 남는 것도 좀 그렇군요. 괜찮다면 따라가고 싶습니다.”
“앗, 저도요!”
“하하. 병아리들 자세가 아주 좋아. 마침 무기도 휴대하고 있겠다, 이대로 나가보자고.”
야간임무라기에 망루처럼 세워진 경비초소를 오가는 보초노릇이나 할 줄 알았는데, 황당하게도 우리 분
대는 성문을 벗어나서 국경선 너머로 진출했다.
“야간임무라는 게 정확히 무슨 임무입니까?”
“아? 별 거 아니야. 잠깐 레이더에 포착 안 되는 특수개체 감시하거나 제거하고 오면 돼.”
“…….”
몬스터 관련으로는 지식이 극히 드물다시피 하는지라 얌전히 입 다물고 뒤를 따랐다. 상당한 강행군이었
지만 단원들은 누구 하나 앓는 소리를 내지 않았다.
“제법 잘 따라붙네?”
“체력은 자신 있습니다.”
“후욱. 후욱. 저도 아직 버틸 수 있어요!”
김다연과 히미코의 숨소리가 거칠어질 무렵, 우리는 몬스터들의 대규모 야영지를 발견할 수 있었다.
수천 마리가 떼 지어서 공터에 널브러져 있는 모습은 사뭇 두렵기까지 했는데, 심지어 그 몬스터라는 게
코볼트를 쏙 빼닮은 고블린들이었다.
“으, 으으…”
던전에서의 악몽이 떠오르는지 부들부들 떠는 김다연의 어깨를 다독여주자 떨림이 조금은 가라앉았다.
그런 우리를 묘한 표정으로 바라보던 라이언이 피식 웃었다.
“사이좋은데? 방금 그건 좀 연인 같았어.”
“도연이가 트라우마가 좀 있습니다.”
“…아. 난 또 그런 줄도 모르고. 미리 좀 말하지.”
그래도 여기까지 왔으니 좀 쉬면서 야영지 어딘가에 몸을 숨긴 적을 찾는 건가 싶었건만, 어이없게도 분
대장은 멈출 생각도 없이 계속 강행군을 이어나갔다.
도대체 어디까지 북진하는 거냐…
인간진영에서 탈영하고 몬스터부대에 투신하러 간다고 해도 믿겨질 정도로 황당한 행군거리였다. 이대
로 구 북한의 평양까지 가버리는 건 아닌지 모르겠다.
“자, 도착. 오래 걸렸지?”
“여기가 어딥니까?”
“금천역.”
아, 그래… 평양은 아니고 그거 육분의 일 정도 거리에 있는 금천역에 왔구나. 하하 호호 웃고 넘기기에는
너무 살벌한 거리였다.
“이렇게 먼 거리를 와야 할 이유가 있습니까?”
“레이더에 감지되지 않는 몬스터가 있대도?”
“육안으로 포착하고 돌아가는 사이에 지 멋대로 이동하면 아무런 정보도 없이 당할 거리 아닙니까?”
“그래서 이걸 가져왔지.”
“…비디오카메라입니까?”
“맞아. 168시간, 한 번에 일주일은 녹화되는 카메라지.”
더럽게 비싸게 들리는 카메라였다.
“여기서부터는 따라오지 말고 기다려. 여럿이 같이 내려가다가 빈 깡통이라도 차면 다 죽거든.”
“도대체 뭘 촬영하러 가는 겁니까?”
“S급 몬스터.”
최미나는 웃으며 대답했지만 그녀의 눈은 웃지 않았다. 더 이상의 질문은 받지 않겠다는 표정에 말없이
그녀가 지하역으로 내려가는 모습을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저 안에 도대체 뭐가 사는 겁니까?”
“실물은 본 적 없어서 몰라. 뭔진 몰라도 엄청 위험한 녀석이겠지.”
라이언이 평소의 쾌활한 모습과 달리 상당히 긴장한 표정을 지으며 대답했다. 원작에서도 언급된 적 없는
이벤트에 기다림은 길어지고 두려움은 겹겹이 쌓여만 갔다.
“후하. 죽는 줄 알았네.”
숨 막히는 정적은 최미나가 다시 올라온 뒤에야 간신히 끝났다.
“뭐하고 오셨습니까?”
“카메라 교환.”
“그거 좀 봐도 됩니까?”
그 말에는 라이언이 대신 대답했다.
“그거 봤다는 게 들키면 군 상부에서 어떤 개수작을 부릴지 모른다? 괜한 호기심으로 보지 않는 편이 좋
을 걸?”
“전례라도 있습니까?”
“있지. 우리가 다섯 명이 아닌 세 명이었던 이유.”
“…….”
“으으. 돌아갈 길 생각만 해도 막막하네. 바로 갑니까, 미나 대장?”
최미나는 씨익 웃으며 파이팅이 넘치는 자세로 근육을 꿈틀거렸고, 우리는 한숨을 내쉬며 뒤따라 행군을
개시했다.
“매번 맡는 일이 이런 식입니까?”
“교대로 도는 팀도 있어. 같은 일만 하지는 않아.”
“예를 들자면요?”
“지난주에 했던 임무는 점프하는 고양이만 보면 깜짝 놀라서 얼어붙는 거대적색노루대장 암살하기였
지.”
“거참 혼란스러운 임무네요.”
다시 지옥같은 강행군을 거쳐 고블린들의 야영지를 지나친 뒤, 라이언이 문득 말을 이었다.
“우리 표적은 감지기로 감시할 수 없는 소수개체를 아날로그 장비로 감시하거나 제거하는 거니까, 그 개
체가 꼭 금천역의 S급 몬스터처럼 강하지는 않지.”
“…그게 굳이 10시간이 지난 뒤에나 알려줘야 할 내용이었나요?”
“하하. 그냥 문득 생각나서.”
더럽게 심술궂네.
내심 못마땅하게 여긴 나와 달리, 다연이는 소리죽여 웃으면서 즐거워했다.
“아. 정말 재밌네요. 왠지 옛날 생각이 나버려요.”
“옛날 생각이라니?”
“예전에도 같이 다니던 동료들이 있었거든요.”
물론 웃음은 금방 그쳤다.
김아준, 박성현, 김철괴.
던전에서 뼈를 묻은 동료들을 떠올려서 그렇겠지.
“비슷하네. 이쪽도 두 명 잃고 침울하던 참이었는데.”
“그러네요. 저희 좀 닮은 것 같죠?”
“이 정도면 운명이지. 이참에 용병대라도 꾸릴까? 하하하.”
시원스레 웃는 라이언과 함께 웃는 김다연의 모습을 보며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그녀는 내 생각처럼
약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고.
어쩌면 동료들의 죽음도 전부 견디고 아카데미에서 계속 살아갈 수 있었을 강한 사람이었을 거라고.
‘그럼… 다연이를 배려해서 내렸던 내 결정은 오히려 다연이의 인생을 내리막길로 꼬아버린 건가?’
꼭 그렇게 생각할 이유는 없다. 그러나 이런 가능성이 완전히 사라지는 것도 아니다.
착잡함이 늘어간다.
지난 일들을 떠올리면 너무 많은 실수가 있었고, 잘못된 선택이 수두룩했다.
‘남이 아닌 나 자신이 선택을 하게 만드는 활용법…’
데빌메이커의 가르침은 분명 큰 도움이 되었다. 부속스킬 훈련속행, 정신무장, 상식돌파 그 세 가지가 아
니었다면 그간의 시련을 모두 살아서 넘지도 못했겠지.
하지만 이런 능력이 없었더라면 3년차인 지금까지도 나는 친구와 함께 있었을 것이고, 다연이도 자퇴생
이나 행방불명자가 되거나 독에 중독되는 일도 없었을 거다.
‘그래… 데빌메이커의 선택에는 옳고 그름이 없어.’
나는 그저 선택을 할 수 있을 뿐, 거기에 옳고 그름은 철저하게 배제되어 있다. 이번 생은 근본부터 무언가
가 크게 잘못되었다.
이 부분을 명확히 생각해두지 않으면 앞으로 몇 번의 인생을 더 살아간들 문제가 끊이지 않을 것 같았다.
“고민이 많아 보이는데…”
“아, 네…”
“이런 곳에서 고민에 빠지면… 죽는다고…?”
히미코의 상냥한 듯 상냥하지 않은 충고에 절로 등골이 오싹해졌다. 귀신같은 몰골의 여자한테 저런 경고
를 듣고도 시큰둥하면 그게 더 문제가 있는 거겠지.
“자, 갈 길은 아직 남았다고. 숲 한복판에서 갑작스레 시작된 몬스터 웨이브에 휘말리고 싶지는 않겠지?
다들 근육을 쥐어짜내서 가자!”
최미나의 혼자만 기운 넘치는 외침을 따라 우리는 저마다의 웃음이나 상념을 접고 걸음을 옮겼다. 고민도
일단 살아야 할 수 있는 일이다.
상대적으로 체력이 처지는 히미코와 김다연의 호흡은 진즉에 무너졌고, 라이언의 호흡도 거칠어지기 시
작했다.
가는 길도 힘들었지만 제대로 된 휴식도 없이 같은 길을 돌아오고 있으니 체력적으로 전보다 더 쉽고 빠
르게 지치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병아리 주제에 체력이 대단하구나?”
“그러는 분대장도 괜히 B급 초능력자가 아니네요.”
살인적인 강행군 속에서도 호흡이 흐트러지지 않은 나와 최미나의 모습에 다른 단원들은 괴물 보듯이 우
리를 쳐다봤다. 조금이지만 우쭐한 기분도 들었다.
‘이런 게 평소 단련의 차이라는 거겠지.’
만족감을 느끼기도 잠시, 복귀 도중에 변수가 발생했다. 다른 용병들과 숲 한복판에서 마주친 것이다. 커
다란 곰의 시체를 운반하던 10명 가량의 용병들이었다.
“위성촬영도 불가능한 숲 속에서 마주친 남성용병분대가 둘이라. 피곤해지겠어.”
라이언의 말에 우리는 걸음을 재촉하며 저들을 피해 지나치려고 했지만, 놈들도 우리를 발견하고는 아예
대놓고 이쪽으로 몰려오기 시작했다.
“어이! 같은 용병끼리 뭘 피하는 거야?”
“이리로 오라고!”
나나 최미나, 라이언은 저들을 떨쳐낼 수 있지만 지칠 대로 지친 김다연과 히미코는 무리였다.
“원래도 이런 습격이 있습니까?”
“없었지. 히미코 한 명이면 대장이 업고 다니면 그만이었고, 이렇게까지 끈질기게 쫓아오지는 않았거
든.”
“그럼 지금은…”
“지친 인원이 둘에 욕망을 참지 못했다… 그런 거겠지.”
“더러운 자식들.”
라이언의 말마따나 접근하는 놈들의 시선은 다연이에게 쏠려있었다. 음심을 품은 녀석들이 보란 듯이 무
기를 과시하며 접근해왔다.
“후우. 말로 해결하기는 글렀군. 싸워야겠어.”
대장이 등에 짊어진 배낭을 풀고 바닥에 구르던 돌멩이 하나를 주워들었다.
“병아리들. 다치지 말고 잘 사려야한다?”
“싸울 겁니까?”
“그래.”
최미나는 길게 말할 거 없이 곧바로 돌멩이를 집어던졌다.
슈화악! 퍼엉!
용병 하나가 돌멩이에 직격당해 머리가 터졌다.
‘인지하기도 힘든 속도…!’
메이저리그에 출전한 야구선수마냥 엄청난 속도였다. 강화계열 초능력자답게 순간적으로 인간의 한계를
아득히 넘어서는 근력이었다.
입을 쩍 벌리며 경악한 용병들은 살인투석에 두 번째 피해자가 발생한 뒤에야 정신을 차렸다.
“저 썅년들을 족쳐!”
“거시기도 작은 잔챙이들이다. 쫄지 말고 해치워!”
기지복귀를 앞두고 동족상잔의 혈투가 시작되었다.
[2회차] 국경선의 용병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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