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nemy of the Greatest Psychic Ever RAW novel - Chapter 40
040 – [3회차] 시작지점(Starting Point)
오성아카데미 F반 기숙사 1인실.
거울을 앞두고 멍하니 있다가 정신을 차렸다.
“아.”
거울에 비친 명함에서 눈을 뗄 수가 없었다.
[한도령]
[오성아카데미 1년차 생도(남, 15세)]
문득 내가 울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아무것도 하지 않았는데 눈물이 흘러나왔다.
과거로 돌아왔다는 사실이.
그 모든 일이 일어나기 전으로 왔다는 사실이.
전부 없었던 일이 되어버린 것이 슬퍼서.
그래서 눈물이 흘러나왔다.
“아아…….”
2023년부터 2028년에 이르기까지 5년이 넘는 시간을.
그저 복수에 미친 복수귀가 되어 살았다.
히미코의 비참한 최후를 떠올리면 눈물은 더해졌다.
그래도 마냥 울기만 할 수는 없었다.
‘이번에는 달라. 달라져야만 해.’
2회차의 실패한 기억은 3회차에도 고스란히 이어진다.
그뿐만이 아니다.
▷잔여포인트 : 170P
포인트상점에서 쓸 수 있는 포인트가 늘었다. 졸지에 의도하지 않은 업적보너스도 얻었으니 20P를 다음
회귀를 위한 밑천으로 남겨두면 무려 150P를 쓸 수 있다.
▷[포인트상점] ▷[능력치][초능력][마법][장비][도구][기능][인과][???]
포인트상점을 열자마자 나는 곧바로 한 가지 상품을 검색하였다.
[검색 : 심폐지구력 상승상품]심폐지구력은 오래달리기나 수영 등 반복적으로 오랜 시간 몸을 움직이는 활동에 영향을 미치는 능력이
다. 2회차의 경험을 토대로 나는 심폐지구력의 상승을 절실하게 원했다.
‘조금만 더 버텼더라면.’
중요한 고비마다 나는 실패를 겪고, 그런 후회를 품고는 했다. 지구력이 부족해서 김철괴를 버리거나 보
물고블린을 제때 따라잡지 못하고, 사원에서 히미코를 무리시켰다.
지구력만이 문제는 아니었지만 개인적으로 생각하기에 가장 아쉬웠던 능력이 심폐지구력이었다.
▷심폐지구력 상승에 10P를 지불하시겠습니까?
▷Tip> 포인트를 열 배 더 지불할 시, 해당 기능을 다른 회차까지 포함하여 영속적으로 계승받을 수 있습
니다.
“……!”
구매로 향하던 손이 멈췄다. 일시적인 구매와 영속적인 구매의 가치는 그야말로 천지차이였다.
회귀만 해도 그렇다.
다음번에는 회귀를 할 포인트가 부족하다면, 하는 불안감에 언제나 포인트를 함부로 쓰지 못했다. 하지
만 영속적인 회귀가 보장된다면?
‘포인트를 아끼지 않아도 된다.’
‘어떤 무모한 도전을 하더라도 다음이 있다.’
‘한 번의 실패가 영원한 실패로 끝나지 않는다.’
사실상의 영생.
영원히 반복되는 인생을 살아갈 수 있다.
“…….”
잠깐은 유혹을 느꼈지만 결국 영구적인 회귀를 구매하지는 않았다. 그걸 구매하는 시점에서 앞으로의 내
인생은 몇 번이고 더 실패할 거라고 스스로 낙인 짓는 행위였다.
내가 행동하기에 따라서는 열 번의 회귀도 필요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그 안에 스스로 만족할만한 인생을 살고 영원한 죽음을 선택할 수도 있다. 허나 한순간의 경솔한 판단으
로 영원한 회귀를 구매한다면…….
‘죽고 싶어도 끝나지 않는 인생.’
그건 그저 고문이다.
그러니 영원한 회귀는 사지 않겠다.
만족할 수 있는 삶을 살겠다는 자신과의 약속이었다.
‘그렇다고 이 모든 게 10번 안에 끝날 것 같지는 않네.’
레드프린스 이진태를 죽이겠다는 다짐.
언젠가 그걸 해내기 전까지는 회귀를 멈추지 않을 것이다.
이건 그 복수를 위한 초석이다.
▷으로 100P를 지불합니다.
▷당신의 심폐지구력이 태어날 때부터 천부적 자질을 지닌 천재(S)급으로 상승합니다.
영속적인 회귀를 구매하지는 않겠지만, 영속적인 심폐지구력은 필요하다. 열 번 안에 이진태를 죽일 정
도로 강해지는건 솔직히 힘들 것 같았다.
그와는 별개로 시스템 알림을 보자 온 몸에 전율이 일었다.
S급.
그것은 천재에게나 허락된 경지였다.
범인이 따라잡으려면 극한의 노력이 필요했다.
1회차에도, 그리고 2회차에도.
빌런으로서의 내 경지는 S-급에서 멈췄다.
그런 내게서 처음으로 확실한 S급 능력치가 생겼다.
심폐지구력에 한해서 나는 시작부터 천재나 다름없다.
‘나머지는…….’
구매할 수 있는 상품은 얼마든지 있다.
두 번째 초능력, 희귀한 아이템, 새로운 기능 등등…
그러나 이 이상은 아무것도 구매하지 않았다.
전부 필요 없다.
이 이상 뛰어나져봤자 내게는 의미가 없다.
아카데미 시절 초반부에 혼자 강해져서는 안 된다.
내 친구가 짐이 되기를 두려워하고, 끝내 날 두고 떠난다.
‘2회차의 친구는 데드 엔드였어.’
내가 모르는 곳에서, 내가 모르는 이유로 죽는다.
그런 최후를 겪게 할 수는 없었다.
그렇기에 초능력의 즉시자연각성도 구매하지 않았다.
‘느려도 괜찮아. 천천히 같이 올라가면 돼.’
여차하면 타이밍을 맞춰서 친구랑 내 초능력을 동시에 즉시각성 시킬 수도 있다.
내가 지닌 과 친구가 각성할 은 함께 사용할 때의 상성이 좋다.
동시각성을 이루면 오랜 시간 함께 다닐 수 있겠지.
‘그렇게 하면… 다연이는 어떻게 하지?’
거기서부터 문제가 생겼다. 2회차의 나는 월반시험으로 빠르게 B반에 올라가 다연이와 만났다. 던전실
습시험을 통해서 사경을 넘나들고, 함께 자퇴하며 동거했다.
하지만 이번 3회차에서는 전처럼 경솔하게 예지능력자라는 의심을 받지 않을 예정이다.
친구와 진급속도를 맞춰야 하니 B반에 빠르게 올라갈 수도 없고, 설령 올라간다 한들 던전에서 사경을 겪
지도 않을 것이고, 함께 동거하는 일도 없을 것이다.
“…….”
2회차에서 김다연과 쌓아올렸던 시간은 두 번 다시 반복될 수 없다. 어쩌면 그녀와 내가 가까워지는 일
따위는 영원히 일어나지 않을지도 모른다.
“김다연…….”
그녀에게는 목숨을 빚졌다. 내가 먼저 구한 목숨이었지만, 그 뒤로 그녀에게 빚진 것이 더욱 많았다. 2회
차의 중반부 이후부터는 그녀의 죽음에 충격받아 복수를 위해 살았다.
이제 내 삶은 온전히 친구만을 위해서 사용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아니야. 포기하기에는 일러. 살다보면 언제 기회가 생길지도 모르지.’
죽지만 않으면 기회는 언제든지 온다.
마음을 정리하며 명상실로 향했다.
“후우.”
초능력을 각성하지 않았기에 부속스킬도 없고, 부속스킬이 없기에 훈련효율은 몹시 낮았다.
2회차에 비하면 한없이 느린 발전 속도.
그러나 고된 복수를 감내하면서 단련된 정신력이 초능력의 도움 없이도 기본적인 끈기를 높였다.
‘이래도 1회차에 비하면 빠른 발전이다.’
첫날의 트레이닝이 끝난 뒤.
반에서의 정규수업이 시작되었다.
“초능력자들의 희망직업 1순위인 히어로가 되기 위해서는 먼저 히어로 수칙 12조를 암기해야 한다. 무
분별한 파괴행위로 도시와 시민들에게 피해를 입히지 않기 위해서…….”
전부 알고 있는 내용이라고 생각했지만 막상 듣기엔 그렇지 않았다. 복수에 전념하면서 잊어버린 기억들
이 적잖이 존재했기 때문이다.
그래도 한 번 들었던 내용을 다시 기억하는 일이니 암기나 이해에도 나름 요령이 붙었다.
“으우우…”
다소 여유가 생기자 친구가 수업을 듣는 자리를 돌아보는 여유마저도 생겼다. 미간을 찌푸리며 자그마한
얼굴로 끙끙 앓는 모습이 불쌍하기도 하고, 귀엽기도 했다.
한편으로는 김다연이 호박을 앞두고 어떤 요리를 할지 고민하는 모습도 머릿속으로 스쳐지나갔다.
“…….”
이래서는 안 된다.
적어도 지금 내 앞에 있는 건 김다연이 아니다.
“무릎을 굽혀.”
“응?”
“맨몸 하체훈련은 자세가 중요해.”
체육시간이 되기만을 기다렸다가 말을 건넸다.
언젠가 했던 말을 되풀이하는 것 같아 기분이 묘했다.
“고, 고마워… 그래도 혼자 내버려뒀으면 해.”
“어째서?”
“나 같은 건 배우는 속도도 느리고, 멍청하고, 애들도 안 좋아하고…….”
자신감 없고 주눅 든 표정.
그 모습을 눈앞에 두고 나서야 정신이 들었다.
이런 친구의 모습을 보고 싶지 않아서 노력했던 나날.
1회차의 아련한 기억들.
그 때의 기억이, 감정이 되살아났다.
“기초과정 좀 잘하고 못하는 게 어때서. 중요한 건 흔들리지 않는 의지야. 갈 길은 멀다고.”
“그렇지? 히어로가 되기 위해서는 아직 갈 길이 멀어. 고작 이 정도로 주눅 들어서는 안 되지. 응!”
새삼 열의를 불태우는 그녀의 모습에 흐뭇한 미소가 지어졌다. 저 웃음을 보기 위해 살았던 나날의 다짐
이, 한 번 차갑게 얼어붙은 마음을 녹여주었다.
조금은 느리지만 결코 멈춰서지는 않는, 더디고도 착실한 걸음으로 하루하루를 쌓아올렸다.
“1년차 1분기 시험결과가 나왔다. 전원, 스마트워치로 교과 성적을 확인하도록.”
성적이 나왔다.
[이민지(1년차 생도)]
[교내순위 : 265/300]
[반내순위 : 27/50]
[과목별…]
“우우. 평균보다도 못해.”
주눅 든 친구의 말에 피식 웃었다.
그런 내 행동이 못마땅했는지 어째 표정이 불퉁하다.
“에잇!”
“…….”
그리운 기시감과 함께 스마트워치를 빼앗은 친구가 장난스럽게 웃으며 성적표를 보았다.
[한도령(1년차 생도)] [교내순위 : 263/300] [반내순위 : 25/50] [과목별…]이전과 달리 절반보다는 조금 높은 성적.
“뭐야~ 별로 차이도 안 나면서 비웃은 거야?”
“별로 차이가 안 나긴. 평균보다도 높은데.”
“치사해! 그래봤자 두 순위 차이잖아!”
때 쓰듯이 두 팔을 와앙 하고 휘두르며 달려드는 모습에 그만 소리 내어 웃고 말았다. 잠시 불퉁하던 그녀
도 이내 마주 웃으며 등을 기댔다.
“그래도 왠지 안~심.”
“뭐가?”
“도령이만 너무 앞서가면 같이 있기가 힘든걸. 체육시간마다 선생님들이 재능이 보인다고 말해서 무서웠
다구.”
“…선생들이 뭘 안다고. 전부 헛소리야.”
“그래도 재능은 있는 편이 좋지 않아?”
“당연히 좋지.”
“우씨. 지금 나 놀렸지!”
티격태격 하면서도 마냥 즐거운 우리의 대화에 다른 생도들은 어딘지 모르게 부럽다는 표정이었다.
“좋겠다, 바보커플은.”
“하아. 성적이고 뭐고 나도 연애나 해버릴까.”
“커, 커플이라니! 우리 그런 사이 아니거든!? 그렇지!?”
친구가 당황해서 두 눈을 꼭 감고 소리쳤다.
나는 잠깐 고민했다.
“그런 거였나?”
“그런 거야!”
“그럼 그런 거야.”
당연히 친구 말고는 아무도 납득하지 못하는 기색이었다.
“흥. 열등생 주제에 연애라니, 한심하기는.”
문득 퉁명스레 중얼거리는 일자머리를 발견했다.
어렴풋이 기억이 떠올랐다.
답안지를 밀려 써서 F반에 강등된 녀석이었지.
“그러는 지야말로 답안지나 밀려쓸 것처럼 생긴 주제에.”
“너, 너어어!?”
“뭐가. 너 진짜 밀려 썼냐?”
“아, 아니거든!!”
“그럼 뭔 상관이야?”
분을 참지 못하고 씩씩거리던 일자머리는 1년차 2분기가 되자마자 E반으로 승급해 사라졌다. 놈보다 뒤
처진다는 사실에 조금 욱하는 마음도 들었다.
그래도 이번에는 내 승급 소식에 어두운 표정을 짓던 친구의 얼굴을 보지 않아도 된다.
“느긋하게 하자고.”
조금만 더.
이 평화로운 나날을 만끽하고 싶다.
***
1학년 2분기 성적이 나왔다.
친구와 나 모두 1분기와 비교해서 순위가 비슷했다.
1학년 3분기 성적도 비슷하긴 마찬가지였다.
“…….”
그리고 오늘, 4분기의 성적 또한 25위를 안팎이었다.
변함없는 열등반 평균성적.
분명 나와 친구의 나날을 유지하기엔 딱 좋은 성적이다.
그것이 문제였다.
이대로는 친구와 함께 성적을 올리는 건 불가능하다.
B반으로의 월반시험을 치르는 일은 영영 불가능하다.
졸업까지 우리는 F반 생도가 될 것이다.
이번 회차에서 김다연과의 접점이 완전히 끊긴다.
‘재회할 기회가 생길 거라고 여겼지만 그렇지 않았어.’
‘오히려 이대로는 모든 기회가 사라져버려.’
이것은 양립할 수 없는 운명.
친구를 선택하면 김다연을 포기해야한다.
김다연을 선택하면 친구를 포기해야한다.
가혹하고도 잔인한 선택의 기로.
이를 앞두고 밤새도록 고민하던 도중이었다.
▷당신의 초능력이 선택을 재촉합니다.
떠올리고 싶지 않은 끔찍한 울렁거림.
잔혹했던 순간들.
트라우마에 필적하는 기억이 마구 스쳐지나갔다.
“!!”
플래시백(Flashback).
순간적으로 과거의 사건들이 정신 속에서 펼쳐졌다.
악몽 같은 순간들이 모두 지나쳤을 때.
▷선택장애가 선택을 하게 하는 초능력을 각성했습니다.
1회차라면 2024년이 되도록 각성하지 못했던, 각성하지 말아야 했던 초능력을 자연적으로 각성했다.
“어, 어째서…….”
참을 수 없는 당혹스러움에 손이 덜덜 떨렸다.
그리고 깨달았다.
몸은 과거로 돌아왔을지언정, 정신마저 같지는 않음을.
내가 이어받은 기억이.
성숙해진 정신이.
초능력의 각성시기를 앞당겨버린 것이다.
그 사실이 의미하는 바는 명백했다.
이제부터는 친구와의 성장속도가 벌어질 수밖에 없다.
수정> 영속적인 심폐지구력 구매와 영속적인 회귀 구매를 구분 짓는 내용을 추가했습니다.
[3회차] 아카데미 생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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