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nemy of the Greatest Psychic Ever RAW novel - Chapter 5
005 – [2회차] 아카데미 생도( )
“그게… 따지고 보면 저희가 먼저 잘못을 했고, 이렇게까지 하는 것도 조금… 그렇다고 저쪽이 잘못이 없
다는 건 아니지만 과하다고 생각해서요…”
여생도의 저런 진술이 무슨 의미가 있는지는 모른다.
하지만 아주 조금, 조금은 분이 풀렸다.
‘기껏해야 애들 싸움… 그 정도 마음으로 입에 담았던 험담이었나.’
어이없다는 마음보다도 허탈한 마음이 앞섰다. 저 가벼운 마음 때문에 상처받았을 친구도, 울컥해서 대
형 사고를 친 나도, 저 등신 같은 년도 모두 한심했다.
“정식대련도 아니고 우발적 폭행으로 일어난 사고일세. 입원자가 둘이나 생겼는데 자네 하나가 그리 말
한다고 간단히 무마될 일이라고 생각하나?”
갑자기 임원이 엄한 표정을 지으며 깐깐하게 굴었다.
그만해 미친놈아.
내 인생 못 조져서 안달이라도 났냐.
“다른 둘은 제가 어떻게든 설득해볼게요. 이건… 그러니까… 애들 싸움 같은 거잖아요.”
“허허.”
“어떻게든 안 될까요?”
이년이 왜 이렇게까지 사건을 수습하려 드는지는 모른다. 정말로 죄책감을 느껴서일 수도 있고, 다른 이
유가 있어서일지도 모른다.
허나 한 가지 분명한 점이 있다면, 아카데미에서 퇴학당하는 것은 친구에게도 좋지 않은 일이라는 점이
다.
“으으음…”
임원은 나와 괘씸한 년을 한 번씩 돌아보더니 팔짱을 끼고 깊은 고민에 빠졌다. 장고 끝에 그는 고개를 끄
덕였다.
“알겠네. 피해학생이 그리 말한다면 당장 일을 널리 알릴 필요는 없겠지. 허나 자네의 친구들이 이 일을
문제시하겠다고 결정한다면, 그때는 어쩔 수 없네.”
“감사합니다, 선생님!”
“허허, 참. 선생이라니…”
임원은 경비를 불러 소녀를 쫓아내고는 내 손목에 채워진 수갑도 풀어주었다.
“아직 때 묻지 않은 아이 간의 싸움이라 다행이군. 이번에는 정말로 운이 좋았음을 잊지 말게.”
“…명심하겠습니다.”
“가봐. 꼴도 보기도 싫으니까. 그리고 두 번 다시 얼굴 볼 일 없도록 하자고. 그 나이부터 이딴 취조실 들
락거리기 시작하면 인생막장 되는 거 순식간이야.”
취조실에서 풀려나 복도로 나오자, 아까 그 괘씸한 년이 날 기다리고 있었는지 눈을 마주쳤다.
“저, 저기… 민지를 나쁘게 말한 거. 정말로 미안했어.”
“그래. 나도 니 친구들 반 죽여 놔서 미안했다.”
“…….”
숨 막힌다.
슬슬 돌아갈까.
“질투 때문이었어.”
“뭐?”
“샘이 났다고.”
아니 이년이 설마.
“내가 그렇게 좋았냐? 아무리 그래도 여자 넷은 좀…”
“뭔 개소리래.”
갑자기 오만상을 찌푸리며 째려본다.
“우린 F반이잖아.”
“그게 뭐 어쨌다고.”
“1분기 시험이 끝나고 세 명이 퇴학당했어. 이번 2분기 시험이 끝나고도 세 명이 또 퇴학당했고.”
그제야 그녀가 뭘 말하고자 하는지 눈치 챘다.
“상위 10명은 승급, 하위 10명은 강등되는 구조. E반까지는 못해도 강등으로 끝나지만 F반에서는 최하
위 3명이 분기마다 퇴학당한다… 그게 무서웠냐?”
“무섭기는 무슨… 아니, 무서웠을지도 모르지. 부럽고, 짜증나고, 원망스러웠으니깐.”
여생도는 어딘지 모르게 홀가분한 표정으로 숨겨왔던 내심을 털어놓았다.
“이민지. 걔가 특출 난 재능도 뭣도 없다는 건 알고 있어. 그런 주제에 매 분기마다 좋은 성적이 나오는
건… 너랑 같이 있어서잖아.”
“그렇다고 내 친구가 내가 없어서 퇴학당할 정도로 머리 나쁘지는 않아.”
“알아. 그래도 부럽잖아. 우리랑 똑같은, 어쩌면 우리보다 못났을지도 모를 애가 남자 한 명 잘 사귀어서
잘 풀리는 거. 애초에 넌 F반도 아니고 E반이잖아.”
불공평함. 상실감.
아주 뜻 모를 감정들은 아니었다.
나와 내 친구도 1회차에는 지독하게 느꼈던 것들이다.
“그래서. 너희 셋이서 민지를 헐뜯어서 말로 끌어내리는 건 기분 좋았냐?”
“…좋았어. 적어도 그때는.”
역시 개새끼들은 매가 약이다.
뒤지게 안 팼으면 지금까지도 좋아했을 거라는 말이잖아.
“그래도 이번 일이 있고 나서야 알았어. 너희 장학생들도 벼랑 끝에 내몰려있다는 거…”
“??”
“4년차 졸업에 실패하면 막대한 위약금을 지불하고, 그마저도 C반 이상으로 졸업하지 못하면 최전방으
로 차출된다는 거. 전에는 전혀 몰랐거든.”
저게 뭔 개 같은 소리야. 전혀 짐작 가는 구석이 없는 내 표정에 오히려 여생도가 더 당황했다.
“아, 아니야?”
“그거 어디서 들은 말인데?”
“졸업한 언니한테서…….”
그럼 진짜로 그런 것도 있나보다.
나야 1회차 때 자퇴 때려 박았으니 뭘 알겠어.
“하아… 그럼 도대체 뭣 때문에 그렇게까지 열심히 진급하려고 했던 거야?”
“같이 잘 살고 싶어서.”
“참나… 부러워 죽겠네 진짜.”
역시 이년 나한테 마음 있는 거 아니야?
의심어린 눈초리로 노려보자 신경질적으로 손사래를 치며 멀어졌다.
“아무튼 더 이상 뒷말 나오는 일 없을 거야. 언제까지나 남부끄럽게 살고 싶지 않다고.”
“제발 그래라. 부탁이다.”
“어휴… 아무튼 미안했다. 민지한테도 사과할 테니까 이 일은 어디 가서 얘기하지 말아줘. 우리끼리도 대
충 대련 중에 부상 입었다고 입 맞출 거니까.”
퇴학 일보 직전에 간신히 제자리를 되찾았다.
정말 극적인 하루였다.
“아 맞다.”
풀려났다는 소식을 문자로 전달하자 친구는 또 전화로 엉엉 울면서 무어라 말했다.
“그래그래.”
뭐래는지는 하나도 모르겠지만 아무튼 달래줬다.
꼬박 한 시간을 달랜 뒤, 시계를 봤다.
2회차 인생을 살면서 처음으로 훈련을 거르는 날이 됐다.
***
살겁 아닌 살겁을 펼친 지 일주일이 지났다. 병상에서 깨어난 두 여생도들도 사건을 묻기로 결정했고, 다
행히도 모든 소동은 대련 중의 일인 것으로 무마되었다.
“그래서 F동까지 가서 여자 세 명을 반죽음 상태로 패놓은 이유가 뭐냐?”
“묻지 마라.”
“이 자식 봐라. 뭐만 하면 계속 묻지 말래. 이거 묻지 마 대련폭행 아니냐?”
어디서 이상한 소문이라도 주워들었는지 남학도 몇 명이 얼쩡거리기 시작했다.
내 성질머리를 모르는 E반 생도들이 겁 없이 엉겨 붙으며 지껄여댔지만, 바로 얼마 전에 그 소란이 있었
는데 감점 먹을 일을 만들고 싶지는 않았다.
잠자코 있으니 지들 멋대로 소문을 확대재생산 하더니 [묻지마 대련폭행범]부터 [여자킬러], [한밤중의
잔혹한 캣파이트]까지 별별 소문이 다 돌았다.
“쟤야? 여자들을 싸움 붙였다는 그 카사노바가.”
“생긴 건 별로인데… 아니, 그럭저럭 인가?”
“으으음… 아주 헛소문은 아닌가? 몸 하나는 좋네.”
덕분에 여자들이 날 바라보는 시선이 참 묘하다.
남자들은 한술 더 떴다.
“여자 사귀는 비법 좀 알려줘라.”
“그래서 여자는 니가 팬 거냐, 지들끼리 팬 거냐?”
“너 짱이더라. 싸인 좀.”
…유치하다. 시시한 소문과 관계는 전부 무시하고 오늘도 친구와의 수련에만 전념했다.
“다시는 질투 같은 거 못하게 승급해버리자고. 질투건 뭐건 눈에 보이지도 않으면 닿지도 않는 거야.”
“응, 알았어. 힘낼게!”
“힘만 내지 말고 좀 잘해봐. 코스돌파는 장애물 넘기가 안 되면 그냥 몸으로 때려 부수면서 달리는 게 좋
다니깐?”
“…그게 되는 건 도령이 너밖에 없을 걸.”
다시금 찾아온 일상.
한 번은 놓치기 직전이었던 일상이기에 더욱 각별해졌다.
“야. 유학생 온댄다.”
“알 바 없다.”
“싱겁기는… E반에도 몇 명 들어올지 누가 알아?”
“관심 없다.”
“…하여간, 여친 있는 놈들은 이래서 재미없다니깐.”
“몇 번이고 말하지만 민지는 친구다.”
“아 그래. 여자인 친구다 이거지? 같은 방에서 숨이 가빠질 때까지 운동도 하고, 땀도 흠뻑 흘리고, 다리
가 풀릴 때 즈음 같이 나오는 여자인 친구? 이야 좋겠다.”
“야.”
“뭐 이 부러운 자식아.”
“대련 뜨자 씨발롬아.”
“…무섭게 왜 이래? 하하. 뭔 대련이야, 대련은. 됐어 그런 거. 안 해. 안한다니깐? 어어, 왜 자꾸 종이 들고
와? 대련 안 한다고! 야, 놔, 이거 안 놔!? 지장 찍지 마!”
1년차 3분기가 시작되고 얼마 지나지 않았을 무렵. 어느 반에 은발미소녀가 전학 왔네, 어느 반에는 청발
미소년이 전학 왔네, 별에 별 소문이 무성했다.
물론 나는 소문에 귀를 닫았다. 지금 내 최대의 관심사는 친구의 클래스 승급이었다. 하지만 그런 내게도
커다란 문제가 생겼다.
더 이상 F반 훈련동을 찾아갈 수 없다.
친구의 훈련을 직접적으로 봐줄 수 없다는 말이다.
본인이야 역관광이니 어쩌니 아주 의욕 만만이지만. 저대로 두면 100% 승급 못한다고 확신할 수 있다.
확신의 근거도 있다.
내 초능력 [선택장애가 선택을 하게 하는 초능력]은 장거리 발동이 안 된다. 당연히 지금껏 써줬던 부가스
킬 [훈련속행]도 써줄 수 없다.
‘훈련효율이 좋을 때에도 승급이 안 됐는데 이제 와서 혼자 애쓴다고 될 리가 없잖아.’
심지어 그녀는 나처럼 1회차의 기억이 있는 것도 아니고, 재능이 뛰어나지도 않다. 노력 하나는 인정할만
하지만 요즘은 다른 생도들도 나름대로 열심히 노력하고 있다.
‘노력의 가치가 줄어들겠지.’
심지어 효율도 떨어진다.
전보다 더 열심히 노력하고도 순위가 떨어질 수 있다.
경쟁사회의 비정한 결말이 두 눈에 빤히 보인다.
‘…역시 그 방법밖에 없나.’
친구와 함께 하려면 이제는 이 방법밖에 남지 않았다.
의도적으로 성적을 낮춰서 F반으로 강등된다.
“이번 실습대련에서 3연승을 거둔 생도는 가점 3점을 주겠다! 대신, 1승도 거두지 못한 생도는 감점 3점
이다!”
나는 곧바로 링 위로 올라왔다.
“역시 한도령 생도가 대담하군. 자, 이 오만한 낯짝을 깨부술 상대는 없는가!”
“…”
“만일 한도령 생도를 이길 수 있다면, 그 생도에게는 1승만으로도 3점의 가점을 주겠다!”
교관의 노골적인 유혹에 생도들이 탐욕스레 눈을 빛냈지만, 이내 나와 눈을 마주치고는 한숨만 내쉬었
다.
“아무도 없나?”
“…”
“어쩔 수 없군. 도전자가 없으므로 3승은 거둔 것으로 치겠다. 한도령 3점 가점!”
적당히 대련에서 져주려고 했더니 가산점을 받았다.
다음은 필기과목 쪽지테스트.
여기서 적당히 시간을 때우고 감점을 받자.
“…….”
그래도 가만히 있거나 백지만 내는 건 너무하다 싶어서 손 가는대로 아무 그림이나 그렸다. 다음 날, 해당
과목의 선생이 심각한 표정으로 나를 불렀다.
이번에야말로 감점을 받았구나, 직감하며 내심 기뻐했는데 선생이 생뚱맞은 소리를 했다.
“놀랍군. 자네, 하이랭커 를 본 적이 있나? 솔직하게 대답해주게.”
“본 적 없는데요.”
“이 그림은 차원술사가 능력을 발현할 때 펼쳐지는 다변형 플렉탈의 구조를 그린 것이 아닌가?”
“그냥 낙서인데요.”
“맙소사. 차원술사가 대외활동을 중단한지도 30년이 지났고, 그와 관련된 정보도 세간에는 남아있는 게
없는데…….”
“??”
“단순한 낙서만으로 일평생 단 한 번도 목격하지 못했을 다변형 플렉탈을 그려낼 수 있다니! 아무래도 숨
은 재능이 자극받은 모양이네. 당장 조사를 해봐야겠어!”
“!?”
낙서 한 장 잘못 그렸다가 졸지에 미술용 스케치북에 온갖 종류의 그림을 그릴 것을 요구받았다.
심지어 웬 아줌마 세 명의 맞은 편 테이블에 앉아서 내 그림을 보며 쑥덕거리거나 고개를 끄덕이고, 무언
가 심각한 표정을 짓기까지 했다.
중간부터는 아예 지들이 사진이나 뭘 보여주고는 연상되는 그림을 그리거나 글자를 써보라고도 시켰다.
‘IQ테스트인가?’
낙서 하나가지고 잘도 이렇게 유난을 떠는구나 싶지만, 여긴 초능력이 일상인 세상이다.
‘어떤 병신 같은 계기로 초능력을 각성하는 트리거를 건드릴지도 모르니 저런 반응도 이해는 가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이건 좀 과하다. 도대체 이게 뭔 난리인지 어이가 없었던 것도 잠시, 내가 얼마나 터무니
없는 실수를 저질렀는지 깨달았다.
‘이런 시바. 이 인간들이 뭘 그리라고 시킨 거야?’
가만 보니 비밀조직 이니셜이나 비밀기관이 개발중인 아티펙트도 포함되어 있었다. 벌써 사십 장이나 그
렸는데 실수로 그렸다고 할 수도 없는 양이다.
원작 소설에서 봤던 그림이나 정보를 무심코 그렸던 것이 엉뚱한 오해를 사게 생겼다. 청력에 주의를 기
울이며 대화를 엿듣자 사태가 진짜 심각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 학도의 초능력은 지금껏 전례가 없는 새로운 종류의 능력일지도 모릅니다.”
“전적으로 동감이에요. 비밀조직이나 물건의 일부만을 보고도 그 전체를 그려내는 재주. 확인하기로만 과 , , 속성이 있군요.”
“모든 케이스를 맞추지는 못했으니 무언가 조건과 단서가 있을 거라고 봐요. 그보다 이거… 계통
아닌가요?”
전에 친 사고도 대형사고였지만 지금은 그보다 더하다.
이쯤 되면 사고를 넘어서 재앙이다.
원작의 흐름, 기존의 흐름이 완전히 파괴될 지경이다.
“으윽. 저, 머리가 아파서 더는 못 하겠습니다.”
어설픈 발연기를 하면서 펜을 내려놓자 아줌마들이 의미심장한 시선을 주고받았다.
“역시… 능력발동이 과해서 중단된 모양이에요.”
“이걸로 가능성이 더 높아졌군요.”
“오히려 지금까지 발동한 능력횟수가 인상적이네요.”
아니 이런 미친. 오해를 그만 사려고 그만 그렸더니 지금까지 무심결에 누출한 정보가 하도 많아서 새로
운 오해를 사기 시작했다.
“그보다 밀매조직 의 위장기업은 당국에 신고했습니까? 어쩌면 이번에야말로 악명 높은
빌런 의 꼬리를 붙잡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이 그림 내에서 새로운 비밀이나 단서를 찾아낼 수 있을지도 모르겠군요. 기관에 상세한 분석을 맡겨봅
시다.”
잠시 후, 플렉탈 그림 하나 그렸다고 이 난리통을 만든 선생이 내게 다가와서 진지한 어조로 말했다.
“한도령 생도. 지금부터 내 말을 잘 듣도록 하게. 자네는 전 세계를 통틀어 공식적으로 단 세 명밖에 없다
고 알려진 예지계통 초능력 보유자일지도 모르네.”
그거 아니야 인마.
나한테 이상한 기대감 갖지 마!
다만 전작과 달리 빈도는 매우 낮습니다!
[2회차] 아카데미 생도
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