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nemy of the Greatest Psychic Ever RAW novel - Chapter 66
065 – [3회차] 대참사( )
오성아카데미 창립 이후 실습시험에서 이 정도로 많은 생도가 사망한 것은 최초였다.
“우리는 빌런들의 도전을 결코 좌시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들에게 우리의 자랑스러운 인재들을 앗아간
대가가 무엇인지 혹독하게 치르도록 만들겠습니다.”
오성그룹은 대대적으로 빌런조직 토벌을 위한 토벌대를 구성했다. 수도권에 자리 잡은 수많은 빌런들이
죽어나갔지만 뉴스를 보는 내 시선은 그저 냉담했다.
‘전부 잔챙이들뿐이지. 결국 보여주기용 쇼에 불과해.’
어이없게 얻어걸린 빌런조직 일부가 성난 토벌대에 휘말려 몰살당했지만 그런 경우는 극히 드물었고, 조
직의 규모도 작고 위험도도 낮은 편이었다.
무엇보다도 저런 짓을 한다고 죽은 생도들이 돌아오지도 않고, 그들이 해야 할 일을 누군가 대신할 수도
없다. 당장 오성아카데미의 3년차 운영부터가 불투명해졌다.
“이런 일이 어떻게 일어날 수 있었는지 아직도 모르겠어.”
“놈들도 사후폭주가 일어나리라곤 예상할 수 없었겠지.”
“그럼 그냥 운이 나빠서 일어난 대참사란 말이야?”
“그래.”
“이건… 운이 나빴다는 말로 끝내기엔 너무 가혹해.”
A반 생도의 절반이상이 죽었다.
추후 집계된 바에 따르면 정확히 35명이 죽었다.
‘열다섯 명.’
생존자는 고작 열다섯 명에 불과했다.
TOP10중 마법계열 초능력자 하정아가 이끄는 팀 다섯이 살았고, 최상수의 팀 둘이 살았고. 이진태 팀 셋
이 살았고, 나와 김다연, 제갈민, 강유아, 강진혁이 살아남았다.
그 외에는 전부 죽었다. 우리의 눈에 보이지 않았던, 급박한 상황에 시간을 허비했던 자들은 전부 죽었다.
“이 일을 누가 책임질 수 있을까?”
“원칙 상 총감독관이 책임져야겠지.”
“그 선생님은… 결계마법에 갇혔잖아.”
이 사태에 책임을 져야 할 총감독관 양범호도 실종되었다. 우울하게 고개를 숙이는 김다연을 착잡한 마음
으로 바라보고 있자니, 실크모자를 눌러쓴 남자가 다가와 말했다.
“살았을 리가 없잖아.”
그 날의 사건 이후, 줄곧 종적을 감췄던 제갈민이었다.
“애초에 이 사건은 전부 양범호 그 작자의 경계가 부족했기 때문이야. 최고난이도 상승에 대비해 빌런들
을 모아둔 감옥동에 A급 빌런 셋이 포함된 빌런조직이 침투했어.”
“그건… 뉴스에서 못 봤던 내용인데.”
“본가에서 전해들은 이야기다. 오성은 이 건을 대외비로 부쳤어. 그래도 같은 생존자로서 너희에게는 이
이야기를 알려줘야 한다고 생각했어.”
그의 용기에는 고맙지만 나는 그에게 묻고 싶은 말이 몇 가지 더 남아있었다.
“아카데미는 떠날 생각이냐?”
“…그래.”
“한동훈이 죽어서?”
“그것도 있고.”
“강유아를 버린 게 죄책감이 들어서?”
제갈민이 주먹을 파르르 떨었다.
나는 그의 심정을 이해했다.
“널 탓하려는 게 아니다. 나도 도망치고 싶었으니까.”
“그래도 넌 도망치지 않았어. 그 대가로…”
제갈민의 시선이 의수를 장착한 왼손에 미쳤다.
나는 의수를 쥐었다 폈다 하며 움직였다.
“멋지지?”
“바보냐?”
“네 생각만큼 우리는 널 원망하지 않아. 그냥 그걸 말하고 싶었을 뿐이다.”
제갈민의 초능력 [숙련자의 성장노트]는 내 초능력과 마찬가지로 전형적인 대기만성형이다. 실제로 그
상황에서 제갈민이 뛰어든다 한들 시체를 한 구 늘리는 행위밖에 되지 않았다.
다만 그도 깨달았을 것이다. 같은 상황이 반복된다면 우리는 제갈민을 믿지 못하고, 그도 스스로를 믿지
못할 것임을.
“앞으로는 어쩔 거냐. 본가로 돌아가냐?”
“아니. 정보상을 차릴 생각이다.”
“그건… 정말로 의외인데. 생각도 못해본 장래희망이야.”
제갈민은 명함을 두 장 건네주었다.
“언제든지 연락해라. 아카데미의 연을 생각해서 특별히 첫 의뢰는 무료로 받아주마.”
“강유아는 만났냐?”
“그건… 나한텐 유아를 만날 자격이 없어.”
“강유아는 널 만나고 싶어 하던데.”
“시끄러워. 아무튼 난 자퇴한다. 너희도 슬슬 생각해두는 게 좋아. 이대로 아카데미에 남아있는 게 맞는
선택인지.”
제갈민이 카페를 떠난 뒤, 김다연이 한숨을 내쉬었다.
“도령이는 어떻게 할 거야?”
“나도 자퇴해야겠다.”
“꼭 그래야해?”
내 결심은 이미 확실하게 굳었다.
“무조건 해야 돼.”
이번 빌런습격 같은 사건이 4년차까지 계속 벌어질 거다.
그 중에는 이번 대참사보다 더 위험한 이벤트도 있다.
그런 환경에서라면 모를까 이제는 TOP10도 절반이 됐다.
“한 번 성공한 습격을 두 번이라고 하지 못할 이유가 없지. 졸업하기도 전에 죽는 건 사양이야.”
“으음.. 도령이가 그렇다면 어쩔 수 없네.”
김다연이 산뜻하게 대답했다.
“같이 그만두자.”
“진심이야?”
“그럼 그렇게 위험한 아카데미에 나만 놔두려고 했어?”
“당연히 아니지.”
“히히. 그렇게 말해줄 거라고 믿었어.”
자퇴서를 내러 가는 길에 교무처에서 뜻밖의 면면들을 잔뜩 마주쳤다. 놀랍게도 강진혁이나 강유아, 이
진태, 하정아 등 살아남은 A반 생도의 대다수였다.
“너희도 자퇴하러 왔냐?”
“그래.”
“아주 멍청하지는 않은 모양이네.”
강진혁의 말에 이들이 전부 자퇴서를 제출하러 왔거나, 이미 자퇴서를 제출하고 다른 생도들의 접수를 기
다리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근데 여기서 왜 줄지어서 기다리고 있냐?”
“직원이 도망쳤다. 윗사람 부른다고.”
“나 같아도 그러긴 하겠네.”
짜증어린 눈으로 직원석을 노려보는 생도들을 보다가 빈 자리에 자퇴서를 종이비행기로 접어 집어던졌
다.
“뭐하냐?”
“내가 자퇴하겠다는데 무슨 허락이 필요해? 통보하면 되지.”
“이야. 이놈 강단 하나는 끝내주는데?”
생도 몇이 짓궂게 웃으며 자퇴서를 접어 던졌다. 곧 얌전히 줄지어 서있던 하정아를 비롯한 다른 생도들
도 멋쩍은 표정을 지으며 자퇴서를 빈자리에 올려놓았다.
일반학생이라면 학교에서 자퇴한다는 것은 자신의 인생을 건 모험이나 다름없지만, 뛰어난 초능력자인
우리들에게 있어서는 오성아카데미를 향한 보이콧에 불과했다.
이거 나간다고 먹고 살 길이 막막해지거나 하지는 않는다. 막말로 우리는 당장 현장에서 뛰어도 될 실력
자들이다.
“기념으로 스마트워치 번호나 교환할까?”
“단체대화방 하나만 남겨두자고. 인맥 하나는 건지고 가야지.”
“좋다. 언제든 공격대에 취업하고 싶으면 말해라.”
비극적인 사건을 겪었다고 우리가 꿈도 희망도 사라진, 동료의 죽음에 미쳐버린 폐인이 되지는 않았다.
폐광산에서의 사건과 달리 이번 사건은 적이 명백히 드러났고, 누군가를 탓할 여지도 존재했다. 우리의
적은 빌런조직이고, 사건을 방지하지 못한 건 오성아카데미의 탓이었다.
질질 짜며 어른들의 뜻대로 끌려 다니는 대신, 우리는 각자의 미래를 알아서 개척하겠다며 돌아 나섰다.
“잠깐! 다들 왜 이리 성급한가. 지금 막 보고를 듣고 오는 참이니 진정 좀 하게!”
헐레벌떡 대머리 남자가 달려왔다.
“누구야 저 사람?”
“오성아카데미 부학장. 대연그룹에서 꽂아준 인사인데.”
하정아의 뒤를 따르던 마법계열 TOP10 두 명이 대화를 주고받았다. 부학장이라던 인간이 사색이 되었
다.
생도라고 다 같은 생도가 아니다. 개중에는 아카데미의 부학장을 멸시어린 눈으로 내려다볼 수 있는 생도
도 있다. 저 두 사람의 배경은 명백히 부학장보다 위에 속했다.
“제발 고정들 하게. 아카데미에서도 이번 사태에 큰 우려를 표하며 생도들을 위한 대책을 마련하고 있네.
이런 식으로 아카데미를 나가는 건 자네들에게도..”
“좋지 못하다. 그렇게 결정을 내리고 우리의 가치를 폄하하겠다 이 말씀이신가요? 유감이지만 저흴 너무
얕보셨군요.”
평상시에는 다른 TOP10의 도발이 없는 한 얌전히 있던 도도한 아가씨, 하정아가 오늘만큼은 누구보다
도 앞장서서 자신의 분노를 가감 없이 드러내었다.
“오성은 이 나라의 모든 명문가문의 믿음을 저버렸습니다. 최고의 교육기관은 그에 마땅한 보안을 지닌
다는 너무나도 당연한 상식을 말이죠. 오성이 최고일 수 있는 이유를 아시나요?”
“그, 그건..”
“초능력으로 일가를 이룬 명문가문들의 지지를 얻었기 때문입니다. 앞으로는 얻을 수 없는, 적어도 저희
가 살아있는 한은 결코 허락되지 않을 지지이기도 하죠.”
부학장이 망연자실하며 털썩 주저앉았다.
“오성은 저희의 믿음을 저버렸고, 저희의 미래를 책임지도록 놔두지 않을 겁니다. 오성은 최고일 수 없지
만, 명문은 변함없이 명문으로 남을 테니까요.”
싸늘한 독설과 함께 부학장을 등지고 돌아서는 모습은 그야말로 한폭의 그림처럼 아름다웠다.
그러나 마냥 당당한 모습에 환호할 수만도 없었다. 짧지만 유익했던 생도시절이 끝나고 지난 회차들과 마
찬가지로 가혹한 사회로 나설 시기가 되었기 때문이다.
몇 번의 암살행으로 자금에는 여유가 있지만, 10년 내로 나라가 멸망할 판국에 그딴 게 중요한 때가 아니
었다.
‘이민을 가야하나? 아니, 대한민국이 망하면 게이트 대범람이 시작되고 전세계에 그 여파가 미치겠지.’
나만이 아는 미래의 지식이 하나 둘씩 ‘실패’나 ‘비극’, ‘파멸’이라는 단어로 덧씌워졌다.
무얼 하더라도 전부 소용없었다.
그렇다고 두 손 놓고 멍하니 있다가 죽음을 맞이하고 싶지도 않았다. 뭐라도 하면서 발버둥 쳐야만 했다.
“잠깐! 다른 생도분들은 다 떠나도 좋지만 한도령 생도, 자네만은 멋대로 떠날 수 없네!”
“…뭡니까?”
“설마 잊고 있던 건 아니겠지? 자네가 오성에게 발탁된 장학생이라는 사실을! 계약을 등지고 떠나겠다면
그간의 교육비와 계약파기에 의한 위약금을 지불해야 한다!”
안 그래도 머리가 복잡한데 뒤통수를 망치로 두들겨 맞은 것처럼 욱씬거렸다.
개판 쳐도 되나?
그냥 깔끔하게 돈 내고 관계청산 할까?
격렬하게 고민하던 도중, 강진혁이 내 어깨에 손을 얹었다.
“지금 내 절친을 협박하겠다는 건가?”
“아, 아니, 결코 그런 의도는…”
“전세계적으로 명망높은 K&L 공격대의 예비대원인 이 강진혁이 고른 친구를 핍박하다니, 그 저의가 의
심스러운데.”
강진혁이 악동 같은 표정을 지으며 나를 감싸고돌았다.
“부학장, 당신은 아카데미를 말아먹은 무능한 인사라는 평판 하나만으로는 만족할 수 없나봐?”
“아무리 그래도 이건 계약서에 규정된 사항일세! 어차피 아카데미를 나갈 자네한테는 관계없는 일이 아
닌가!”
“그건 어떨까. 우리 한도령이가 대답하기에 따라서는 없던 관계도 지금 생길지 모르겠는데.”
강진혁이 품에서 청색 명패를 꺼내들었다.
“야. 받아라.”
“이게 뭐냐.”
“예비단원 추천증표다.”
“…!”
나뿐만 아니라 이 자리에 모인 모두가 깜짝 놀랐다.
“한도령에게 그 정도의 가치가 있나?”
“목숨을 빚진 은인이잖아.”
“아. 그 정도면 예비단원 추천 정도는 해줄 수도 있겠네.”
강진혁이 자신만만하게 웃었다.
“너, 이거 진짜 흔치 않은 기회다. 원래는 아무한테도 추천할 생각 없었는데 빚진 게 커서 갚으려고 하는
거라고.”
“너희 공격대는… 레이드보스 몬스터 토벌이나 고등급 던전탐사, 탑 원정을 하는 그 K&L 공격대 아니
냐?”
“맞지.”
“전세계에서 가장 뛰어난 재능을 지닌 천재를 엄선하고 또 엄선해서 미지의 위협에 맞서는 그런 집단 아
니야?”
“그래, 그거 맞다고.”
“거기에 날 추천하는 게 말이 돼?”
당연한 의문이었다.
K&L 공격대원 중에는 A급 초능력자조차도 없다.
전원이 S급 이상인 미친 스펙의 공격대다.
“강씨세가 소가주인 내가 추천하겠다는데 누가 뭐라고 해? 내 안목으로 본 너라면 충분히 S급도 될 수 있
다. 가문의 지원을 받으면 훨씬 더 빠르게 성장할 수도 있겠지.”
“……!”
“물론 빚으로 귀찮게 구는 아카데미도 바로 떨쳐낼 수 있다. 위약금? 그 까짓것 다 갚아줘도 내 용돈 선에
서 끝이야.”
강진혁은 힘세고 재수 없는 녀석이었지만, 지금만큼은 내가 아닌 오성아카데미에게 재수 없는 녀석이었
다.
“도령아, 뭐해! 얼른 도움 받지 않고!”
“잠깐만, 잠깐만 기다려봐.”
“뭐야. 김다연이 신경 쓰이냐?”
내가 강진혁의 손을 잡고 그 대신 K&L 공격대에 들어가면 다연이는, 나만 믿고 졸업할 날까지 F반에서
버티고 있을 친구는 어쩐단 말인가.
이건 나 혼자만의 선택이 아니다. 함께 하기로 결정한, 책임지고 싶은 사람들의 미래와도 연결된 중요한
분기점이다.
“역시 안 되겠어.”
“멍청한 놈.”
“미안하다.”
강진혁은 시큰둥하게 대답했다.
“뭐, 너라면 그럴 거라고 생각했다. 진짜 꼴통 같은 새끼. 그래도 목숨 값은 갚아야지. 등록금에 재학비,
위약금, 그밖에 자질구레한 돈은 내가 다 내줄 테니 그렇게 알아라.”
“…고맙다.”
“짜식. 나 안 버리고 같이 튀어준 게 고맙지. 한동훈 뒤진 거 생각하면 아직도 오싹하더라.”
나는 기회를 걷어찼다.
그래도 그 선택을 후회하지는 않았다.
“왜 그랬어?”
“나 혼자 가버리면 너는 어쩌려고?”
“바보야. 나한테도 돌아갈 가문은 있다고. 누가 입학금이나 경비를 대주고 있다고 생각하는 거야.”
“넌 돌아가기 싫잖아.”
“그, 그걸 어떻게…”
“그냥. 왠지 모르게.”
2회차의 삶만 돌아보더라도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 김다연은 자신의 가문과 사이가 좋지 않았다. 그러니
폐광산의 사건 이후에도 가문에 돌아가지 않고 나와의 동거를 택했다.
“칫… 바보. 그럼 이제부터는 어쩔 건데.”
“일단은… 히어로협회에 이름을 올려야겠어.”
“협회 소속 히어로가 될 거야?”
죽은 생도들은 히어로의 편에서 많은 활약을 했다. 전부는 무리지만 그중 일부라면 나라도 빈자리를 대신
할 수 있다.
‘이번 대참사는 내 개입으로 인해서 원작과 달리 무언가가 단단히 틀어져 발생한 나비효과야.’
책임을 진다면 내가 짊어져야 한다.
그러니 이번 생은 히어로가 되겠다.
이것만이 내 안의 죄책감을 덜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었다.
[3회차] 히어로 특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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