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nemy of the Greatest Psychic Ever RAW novel - Chapter 7
007 – [2회차] 부족했던 것( )
햇볕이 내리쬐는 정오 무렵.
수업도 빼먹은 채 개인실에 틀어박혀서 숨만 쉬었다.
‘난… 도대체 뭘 했었던 거지?’
편지의 내용은 아직까지도 잊지 못했다.
아마도 평생 잊지 못하리라.
내 생애 처음으로 맞이하는 이별편지였으니까.
***
-To. 도령이에게.
이 편지를 보고 있을 때면 새 분기가 시작됐겠지?
도령이는 울고 있을까, 화내고 있을까?
음… 솔직히 알고 싶지 않아.
상상만 해도 마음이 아픈 걸.
이런 내가 비겁하다고 욕해도 좋아.
그래도 미리 말할 순 없었어.
도령이는 날 너~무 너무 좋아하니까.
놓아주지 않을 걸 알았으니까.
그래서 혼자 자퇴했어.
아카데미 측에서도 날 찾지는 못할 거야.
그러니까 찾으려고 노력해도 소용없어.
왜 이렇게까지 해야 했냐고,
왜 이래야만 했냐고,
넌 분명 괴로워하겠지. 그러니까 알려줄게.
나도 도령이가 좋았어.
나한테만 착하고, 강하고, 믿음직스럽고, 날 위해서 대신 화를 내주고, 가끔씩 순한 미소를 짓고, 눈을 마
주치면 쑥스러워하고, 공부도 가르쳐주고…
그래. 도령이 넌 완벽했어.
나 같은 여자 때문에 발목이 잡히면 안 될 정도로.
알고 있어?
우리 같은 전액장학생은 C반 밑으로 졸업하면 거액의 빚을 짊어지게 된다는 거.
오성아카데미는 사람들이 아는 것보다 독하고, 우리가 아는 것보다 무서운 곳이야.
그러니까… 언제까지고 밑바닥에 있으면 안 돼.
나 솔직히 멍청하잖아.
아무리 가르쳐줘도… 분명 언젠간 낙제하고 말았겠지.
그때가 되거든, 착한 도령이는 같이 자퇴했겠지?
빚을 짊어져도 좋다고 그저 웃으면서.
그게 너무 싫었어.
넌 이 정도로 꺾여도 좋을 남자가 아니야.
좀 더 강해지고, 똑똑해질 수 있어.
더 높은 곳으로, 더 멋진 삶으로 나아갈 수 있는걸!
그러니까 더 이상 날 비참하게 만들지 말아줘.
날 소중히 여긴다면 그만큼 내 뜻도 존중해줘.
졸업하는 그날까지,
승승장구하며 성공하는 그 날까지,
다시는 날 찾지 말아줘.
내 몫까지 잘난 명문가 자제들한테,
거들먹거리는 자산가 자제들한테 보여주는 거야.
우리 같은 사람들도 할 수 있다고.
너희보다 더 대단해질 수 있다고!
십 년이 지나면 도령이는 TV에도 나오겠지?
분명 멋진 남자가 될 거야.
만일 그때에도 날 잊지 않았다면…
응, 그때라면 만날 수 있을 거야.
꼭 다시 만나자!
반드시 연락할 테니까… 약속이야?
From. 이민지
2021년 12월 어느 눈 내리는 밤에…
***
구겨진 편지를 다시금 구겼다.
“바보 자식이…”
빚이고 나발이고.
그딴 건 아무래도 상관없었다.
멋진 남자 같은 건 바라지도 않았다.
그냥 둘이서 행복하게 살고 싶었는데.
전에는, 1회차에는 할 수 없었던 것들을.
이번에는 둘이서 행복하게 다시 하고 싶었는데.
그저 그것뿐인 바램을.
다른 누구도 아닌 바로 그녀에게 부정당했다.
“이 바보 자식이…….”
꼴사납게 눈물을 흘렸다.
내리친 주먹에 바닥이 움푹 파였다.
‘뭐가 그렇게 무서웠는데. 뭐가 그렇게 자신이 없어서 도망쳐야 했냐고!’
똑같이 보잘 것 없는 초능력을 지닌 자신이었다.
그런 자신도 여기까지 강해질 수 있었다.
앞으로는 더욱, 더더욱 강해질 수 있는 길을 알았다.
분명 그녀에게도 있었을 것이다.
어쩌면 초능력을 깨워줬더라면.
설령 아카데미에서 자퇴하는 한이 있더라도.
그녀와 함께 할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가보지 못한 길이, 선택하지 못한 분기가 마구 떠올랐다.
‘전부 늦었어.’
지나간 길은 돌아오지 않는다.
돌이킬 방법은 있지만…
그건 정말로 마지막에나 할 수 있는 선택.
‘3회차는… 안 돼.’
이 세계에는 아직 친구가 남아있다.
10년 뒤.
언젠가 멋진 남자가 될 나와의 재회를 약속한 그녀가.
‘그렇게라도 다시 만날 수 있다면.’
잿더미처럼 하얗게 타버린 마음 속에서.
‘만나야만 한다면.’
새로운 불씨가 일었다.
‘되어주겠어. 누구라도 인정할 만큼 당당하게 성공한 삶을 살아주겠어! 두 번 다시 내 앞에서, 다른 무언
가를 두려워하며 도망치지 않아도 될 정도로!!’
너는 도망쳤지만, 나는 도망치지 않겠다.
반드시 10년 안에 성공하겠다.
결의를 다지며, 며칠간의 폐인생활 끝에 기숙사를 나섰다.
“한도령…”
“늦어서 죄송합니다.”
“됐다. 사정은 알고 있으니. 자리에 앉아라.”
쓸데없이 어른스러운 E반 담임선생은 개인사정이라는 명목 하에 나의 장기부재를 설명했다. 학도들도
그러려니 생각하고 마는 눈치였다.
간간히 이동수업이나 합동수업을 하면서 나나 친구를 알고 있던 F반 생도들은 움찔거렸지만.
“도령이 너 여친..”
“그만.”
나는 단호하게 선을 그었다.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마.”
“…….”
F반 생도들은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어떤 수업에도, 어느 누구도 내게 말을 붙이지 못했다.
내가 원치 않았다.
그저 노력, 그리고 또 노력.
둘이었던 시간은 철저하게 혼자가 되었다.
내 하루는 더 이상 설렘도, 기대도, 즐거움도 없었다.
누군가를 향한 걱정도, 근심도, 우려도 없었다.
조용히 타오르는 분노와 악에 받친 근성만이 남았다.
“월반시험을 치르겠습니다.”
“진심이냐? 보통 힘든 게 아닌데.”
“부탁드립니다.”
E반 담임선생은 생도를 돈줄처럼 여기던 F반 담임선생보다는 그럴싸한 선생이었다. 귀찮은 일을 요청한
다며 투덜거리긴 해도 결국 월반시험 준비를 도와주었다.
어렵긴 해도 불가능한 도전은 아니었다. 애초에 나는 아카데미에서 4년차까지 교육과정을 이수했다. 그
것도 매년, 매 분기마다 비각성자 페널티를 감수하면서.
‘더 이상 낙제 직전까지 내몰린 열등생은 없다.’
4년간의 열등생 시절은 1회차의 기억 속으로 가라앉았다.
한 분기에 걸친 철저한 노력.
수면시간마저 줄여가며 매 순간 공부와 시험 준비를 했다.
마침내 월반시험 당일.
기존의 분기별 시험과는 격을 달리하는 문제가 이어졌다. B반 담임선생은 아예 죽일 듯이 나를 노려보았
다.
감히 열등한 하위반의 비각성자 장학생 따위가 자신의 반에, 엘리트들의 영역에 도전하는 행위 자체를 용
납하지 못한다는 표정이었다.
“포기해라. 너 따위가 감당할 수 있는 시험이 아니다.”
“준비는 마쳤습니다. 이제 제 노력을 겨룰 뿐입니다.”
“당돌하군. 그 자신감이 오만이 아니길 기원해주지.”
필기시험이 끝난 뒤.
어렴풋이 직감할 수 있었다.
‘나쁘지 않다.’
허나 완벽하지도 않다.
시험은 필기만이 전부가 아니다.
실전이야말로 더욱 까다롭다.
“월반시험 희망자는 해당 반으로 즉시 편입되어도 무방한 실력을 갖추었다고 상정될 때에나 도전을 받아
들인다. 하위 반의 선생들은 네게서 그만한 재능을 본 모양이지만.”
B반 담임선생이 냉혹한 눈으로 나를 내려다보았다.
“그 재능, 이 눈으로 직접 보기 전에는 인정할 수 없다. 충분한 지식을 갖추었을지라도, 실력이 부족하다
면 결코 납득할 수 없다.”
“무엇으로 증명하면 되겠습니까?”
월반시험의 실기시험 방식은 해당 반의 담임선생이 직접 선정한다. 당연히 높은 반일수록, 년차와 분기
가 쌓일수록 시험수준은 가혹해진다.
아무리 힘든 시험이라도 지금 통과하지 않으면 안 된다. 지금 할 수 없다면, 분명 영원히 통과할 수 없다.
“대련.”
“누구와 겨루면 됩니까?”
“전 분기 석차 2, 30위권 B반생도 셋.”
가혹할 정도의 기준이다.
“네게 현역 B반 생도와 겨뤄도 부족함이 없다는 증거를 보여라. 세 번의 대련 중에서 두 번을 승리하면 네
진급을 인정하겠다.”
초능력도 깨우치지 못한 비각성자에게 현역 B반 생도와의 대련은 불가능이나 마찬가지다.
능력치부터 압도적이고, 당연히 각성은 끝마친 생도들이 모인 곳이 바로 B반. 대한민국에서 손꼽히는 명
문 아카데미의, 그 중에서도 손꼽히는 정예생도들의 반이다.
그러나 그런 반의 일원이 되겠노라 자처했다면, 나 또한 그에 걸맞은 자격을 증명해야 한다.
“도전하겠습니다.”
저 냉혹한 선생이 생각하는 것처럼, 세상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페널티를 입은 예지계열 비각성 초능
력자라면 불가능했겠지만, 내 능력은 그것이 아니다.
선택장애가 선택을 하게 하는 초능력. 망설임을 모르는, 결정적인 국면에서 결코 물러서지 않는, 스스로
정예를 자처함에 부족함이 없는 능력이다.
“그럼 지금부터 월반을 목표로 한 대련시험을 진행하겠다. 감독관은 나, B반 담당교사 신진수가 맡는
다.”
“…….”
“통과조건은 3전 2승. 시험도중 전투 지속능력을 상실하면 즉시 실격 처리된다.”
“……!”
“또한 각 전투가 끝날 때마다 휴식시간은 주어지지 않으며 모든 전투는 연속으로 진행된다.”
아무리 그래도 정도라는 게 있는 법이다.
이 조건은 이미 B반의 평범한 생도도 통과할 수 없다.
“모든 전투는 연속으로 진행되며 전투장소는 바로 이곳, 임시 배틀필드에서 진행된다.”
“그렇게까지 제 월반이 못마땅했습니까?”
“이 정도 시험조차 통과할 수 없다면 월반은 결코 불가능하다. 이 세상 어느 누구도 널 인정하지 않을 것
이다.”
그를 인정할 수 없다는.
나아가 그를 인정하지 않겠다는 당돌한 선언.
그 인식을 뿌리부터 뒤엎으려면 힘의 증명 외에 다른 방법은 없다.
“번복은 하지 않습니다.”
“그 말만을 기다렸다. 코드 N0X2VV50 발령. 현 위치에 를 생성하라!”
감독관 신진수의 선언이 끝나기가 무섭게 드넓은 대지에 무수한 수풀과 나무가 솟아오르기 시작했다. 순
식간에 완성된 열대림을 향해서 출입문이 열렸다.
“첫 번째 대결이다. 제한시간은 30분. A 게이트 정도준, B 게이트 한도령. 동시 입장!”
상대의 얼굴조차 보지 못했다.
어떤 무기를 지녔는지조차 듣지 못했다.
허나 시험은 시작되었다.
‘정보의 불균형. 편파적인 감독관이라…’
민아의 자퇴 건으로 충격 받아 은둔했던 내 행동이 아카데미 상부에 어지간히도 단단히 찍혔나보다. 이건
감독관 신진수의 개인적인 적의만으로 이루어질 수 없는 결정이다.
말하자면 아카데미 이사진 수준에서 결정된, 가히 징벌이나 다름없는 시련.
‘난이도가 얼마나 더 오르든 관계없다. 결국 승리조건은 변치 않으니.’
실력으로 정면에서 처부순다.
게이트에 진입하자마자 후끈한 열기가 덮쳐들었다.
쏴아아아아.
인공바람에 갈대가 흔들리며 소음이 일었다.
이 필드 어딘가, 보이지 않는 곳에 상대가 있다.
‘착실하게 간격을 확보하고, 적의 접근을 감지하며, 제한시간 내에 상대를 처리한다…’
지극히 어렵다.
냉정하게 생각하니 상황이 더 나빴다.
무엇보다도 이 대결에는 무승부가 용납되지 않는다.
존재하는 것은 [승리]와 [승리가 아닌 것].
두 번 승리하지 못하면 무조건 탈락이 기다린다.
즉, 제한시간이 경과되면 불리한 건 나밖에 없다.
상대는 무승부만 해도 된다.
‘내가 찾아나서야 해.’
B반에 들 정도의 정예생도라면 이 정도 사실은 이미 눈치채고 있을 것이 틀림없다. 높다란 갈대 사이에서
숨죽이며 내 접근만을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얼마나 되는지도 알 수 없는 간격에 진입하는 순간, 미지의 공격수단으로 단번에 기습을 가한다.
“…….”
확실히 어렵다.
평범한 ‘아카데미 생도’에게는 그렇다.
.
.
.
허나, 전직 ‘S급 빌런’이라면.
그때에도 이 시험은 불공평하며, 지극히 어려운가?
‘그렇지 않다.’
나는 단단히 숨을 들이쉬었다.
그리고는 소리쳤다.
“덤벼라아아아아아아!!!”
필드 전체가 쩌렁쩌렁 울릴 정도의 성량.
이걸 듣지 못한다면 귀머거리일 수밖에 없다.
“네놈의 실력은!!!!”
만일 듣는다면.
그때는 결코 피할 수 없다.
“정면승부로는 이길 수 없는 하찮은 것인가!!!”
스스로 호흡을 소모하고 위치를 노출하는 어리석은 행동. 허나 그 기반에 상대에 대한 이해가 따른다면.
건방진 월반도전자를 깔아뭉개기 위해 감독관 신진수가 직접 선택한, 손속이 독하고 오만한 성정을 지녔
을 미지의 상대에 대한 추측이 뒷받침된다면.
“E반의 애송이 따위가.”
이 도전을.
“요행도 뭣도 아닌 정면승부로 승부를 보겠다…”
절대로.
“그렇게 지껄였단 말이냐!”
피할 리가 없다.
“지껄임은 끝났냐?”
“흐흐. 흐하하! 좋다. 길게 갈 것도 없겠지.”
상대의 신장은 185cm.
무기는 태도.
팔 길이도, 무기의 길이도 모두 인식했다.
“초전부터 전투속행불능으로 리타이어 시켜주마!”
그 전부를,
정면에서 처부순다!
넘 노답인듯;
[2회차] 부족했던 것
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