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nemy of the Greatest Psychic Ever RAW novel - Chapter 87
086 – [3회차] 생도시절의 인연( )
아까까지만 해도 나를 설득하려던 동료들이 이번에는 내 눈치를 보며 슬금슬금 도망가려고 했다.
“일 하나만 같이 하자니깐 어딜 가려고?”
“아니, 싫다는 놈이 갑자기 변하니까 무섭잖아.”
“아준아. 남자로 태어났으면 큰일 한 번은 하고 가자.”
제일 소심한 김아준에게 그리 말을 건네며 겁을 주자 김철괴와 장명훈이 죽을상을 지었다.
“뭘 하고 싶은데?”
그나마 평정을 유지하는 김일식이 내게 물었다.
나는 별 거 아니라는 투로 대답했다.
“마법협회 가서 사람 한 명 설득하는 일 좀 도와라.”
“누굴 설득하려고?”
“A반 같이 다니던 동기. 있어, 하정아라고.”
김일식의 표정이 와락 구겨졌다.
“네가 말하는 하정아가 하씨가문의 그 소공녀 하정아를 말하는 게 아니면 좋겠는데.”
“정확하다. 그 하정아 맞아.”
“십대세가의 자제를, 그것도 육대세가로 줄어든 이 시국에 만나겠다고? 이건 미친 짓이야.”
나도 모르게 헛웃음이 나왔다.
“그래, 마법협회라는 말 같잖은 이익집단을 세운 놈들과 만나는 게 고깝게 느껴질 수도 있지. 메인빌런
머리 쪼개러 가는 일보다도 더 위험하니까. 걔들은 슈퍼메인빌런 쯤 되잖아?”
“빈정거리지 마라, 한도령. 마법협회에 속한 세가들은 같은 십대세가에게 칼을 겨눈 작자들이다. 자신들
의 이익에 반하거나 심기를 거스르면 우리 같은 놈들은 가뿐히 죽이고도 남아.”
“김일식. 이거 아주 웃기는 친구였군. 왜 그 두려움을 빌런들에게는 품지 못하지?”
김일식이 입을 꾹 다물었다.
스스로의 모순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빌런보다 명문가문들을 두려워하는 이 현상이 자연스럽다고 생각하나? 절대로 아니야. 이건 잘못되었
어. 욕심 많은 놈들이기는 해도 적어도 그놈들이 빌런은 아니라고.”
“하정아와의 교분은?”
“말 한 마디 섞어본 정도?”
“하, 그거 참 대단한 교분이군. 정분도 나서 헤벌레 반하는 사이였으면 좋았을 텐데.”
“걱정 마라. 너희들의 목적과 내 목적은 일치하니까. 동번 시에 거주하는 시민들을 지키고 도시 하나라도
평화를 가져오고 싶은 마음 아니냐?”
김일식은 묵묵히 고개를 끄덕였다.
“나 역시 다르지 않다.”
“내 눈엔 그렇게 보이지 않는다만?”
“단지 도시 하나가 아닌 나라 하나라는 차이가 있지.”
경계심어린 김일식의 시선에 커다란 혼란이 생겨났다.
그는 충격을 금치 못하며 내게 물었다.
“진심으로 하는 말이냐?”
“난 김철괴보다도 농담을 할 줄 모른다.”
“이 자식, 완전 진지하잖아…….”
듣던 김철괴만 뜬금없이 미간을 구기며 장명훈한테 저게 무슨 소리냐고 물었지만, 장명훈은 애매한 미소
를 지으며 그냥저냥 둘러대었다.
똑같은 평화를 바라더라도 목적지는 더욱 머니, 김일식으로서는 고민할 수밖에 없다.
“메인빌런을 상대하는 일보다 더 어려울 거다.”
“당연히 알고 있지.”
“네 실력, 아무리 봐도 C급이나 잘 쳐봤자 B급인데.”
“A급 암살자 셋에게서 살아남은 B급이지.”
“기가 막히는 녀석. 도무지 알 수가 없군. 그 정도면 그냥 너 한 몸 건사해서 편하게 사는 게 낫지 않냐?”
혼자만 알아서 잘 살고 싶다면 충분히 그럴 힘이 존재한다.
산골이든 어디든 처박히면 빌런이고 뭐고 알 게 뭔가.
지켜야 할 사람이 있고, 그들이 살아가는 터전이 있다.
그걸 버려버리면 두 번 다시 히어로를 자청할 자격은 없다.
[인명구조]의 업을 이룰 기회마저 사라진다.
사실상 강반검의 가르침을 무시하고 반하는 행위다.
“그럼 너희는 왜 동번 시에서 도망치지 않았지?”
“그야…….”
“나 역시 다르지 않다.”
김일식은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였고, 다른 동료들도 나를 따라 마법협회에 갈 것을 약속했다. 나는 이 넷
을 포함해서 새로운 5인조 팀을 이끌게 되었다.
마법협회는 사대세가의 공동영역인 관악구 신림동에 자리했다. 집값도 비싼 곳을 싹 밀어버리고 명문가
들이 입맛대로 뜯어고쳤으니 지금은 외국 대도시 뺨칠 정도로 지가가 폭등했다.
“이런 곳에 집 한 채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꿈 깨라, 아준아. 우리 장비 사야 돼.”
“아니 상상은 할 수 있잖아. 왜 기를 죽이고 그래?”
장명훈의 말대로 헛꿈이기는 하다. 현역 초능력자들은 절대로 땅이나 건물 같은 거 못 산다.
장비 값이니 수리비니 정보료니 소모아이템 보급이니 돈 나갈 구석이 한 둘이 아니다. 다 두르면 집 한 채
를 온 몸에 칭칭 휘어 감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애초에 군대도 어찌하지 못하는 몬스터나 빌런을 사람이 해결하고 있는데 그 정도 투자는 해야 당연했다.
‘B급 초능력자만 해도 잘하면 순간적으로 자주포 연사를 웃도는 위력을 보이는데 요즘 자주포 가격이 60
억이지.’
대 몬스터 전쟁에서 그럭저럭 사용하곤 하는 K-55자주포가 전쟁특수로 값이 올라 60억이고, 포신수명이
다하기까지 5000발의 155mm구형폭약을 사용하는데 단가가 31만원이다.
최근 시세대로라면 자주포 하나를 끝까지 우려먹으려면 75억 5천만원이 드는 셈이다.
근데 이건 덩치도 커서 몬스터나 빌런들의 눈에 띄면 최우선적으로 공격당하고, 대게는 그대로 개 박살난
다. 잡은 몬스터의 가치를 고려하면 이익이긴 해도 병기가 남아나질 않는다.
‘그래서 초능력자들이 경제적 측면에서 부각받기 시작했지.’
초능력자는 사비로 장비를 구한다. 그 장비는 칠대기업 중 한 곳에서 판매한다.
초능력자들이 어그로를 끌거나 병기를 지키면서 군의 작전비용이나 손실이 크게 줄어드는데 막상 초능
력자들을 고용하는 지출도 그리 크지 않다.
심지어 병기를 운용하지 않고도 지들끼리 알아서 종횡무진 전장을 휩쓸거나 몸 성히 돌아오기도 한다.
‘돈 되는 일이지. 실력 있는 초능력자나 대기업한테는.’
기업에 족쇄가 차인 초능력자는 출동비용과 고등급 몬스터 요격보너스를 받는데, 막대한 백업 덕분에 죽
을 가능성도 낮고 이득은 쏠쏠하다.
업계에 퍼진 소문에 따르면 B급도 월 평균 5억 가량을 받는다고 하니 초능력자들의 돈벌이가 쏠쏠함을
알 수 있다.
허나 그들은 기업의 조력 덕분에 편하게 대량사냥을 해서 수익을 얻고 있다. 다른 초능력자들은 그렇게까
지 수월하게 돈벌이를 해내지 못한다.
“너네 그동안 얼마 벌었냐?”
마법협회로 가는 동안에 물어보니 장명훈이 굉장히 뿌듯해하면서 대답했다.
“넷이 합쳐서 4억 벌었어. 어때, 굉장하지?”
“열심히 했네.”
“훗. 진짜 힘들었다고.”
아카데미 나오고 두 달 남짓 일해서 명당 1억. 월로 따지자면 5,000만원의 소득을 얻었다.
명색이 국가 최고의 아카데미를 3년차까지 다니다가 자퇴한 B~A반을 오가는 생도들이 저 정도에 불과하
다. 유사 몬스터웨이브라는 사냥특수를 맞이하고도 말이다.
헌데 몸에 걸친 장비 값만 다 합쳐도 2억 5천은 무슨 10억을 넘겨버린다.
“장비는 비싸 보이는데?”
“아, 이거? 어차피 나중에 살 거 그냥 미리 대출받았지.”
“비율은?”
“초능력자들은 언제 죽을지 몰라서 이율이 높더라? 20%.”
“고생 좀 하겠네.”
월 5천으로 원금상환 하기까지도 20개월이 걸린다.
1년 8개월이다.
근데 빚은 연 20%씩 늘어난다.
10억의 20%면 2억이다.
1년간 6억 갚으면 빚 2억이 또 생기는 꼴이다.
사실상 2년 수익을 고스란히 꼴아 박아야 빚이 사라진다.
근데 사람이 어떻게 빚만 갚고 살 수 있겠는가?
백수가 아닌 이상에야 살면서 돈 나갈 구석이 수두룩하다.
세금은 세금대로 빠지고 이래저래 시간이 오래 걸린다.
‘게다가 몬스터들의 습격이 갑자기 중단되기라도 하면… 그땐 위험천만한 던전에 직접 들어가거나 던전
을 노리는 다른 초능력자들과 경합도 해야 하지.’
던전에서 생긴 시체는 몬스터밥이 되어 사라지니 살인멸구를 노리고 사람을 습격하기도 한다. 몸에 걸친
장비판 다 뜯어내도 빚은 가뿐히 갚기 때문이다.
그러니 본의로든 타의로든 강력한 초능력자 파티와 혈투를 벌이기도 한다.
이 모든 생고생과 위험을 감안하고, 다시 자주포 뺨치는 화력을 지닌 초능력자들이 벌어들이는 월 소득이
오천만원이라는 사실을 돌아보자.
“불쌍한 녀석들.”
정말이지 이 말이 안 나올 수가 없다.
“도령이 넌 한참 활동할 때 얼마나 벌었어?”
“글쎄. 아마 월 10억 벌었던가.”
“뭐!? 그렇게나 많이!?”
그야 그럴 수밖에 없었다. 나는 원작에서 이진태가 찾아낸 돈 되는 일들만 고스란히 쫓아가서 털어먹었
다.
폭력조직이나 하위 빌런조직들의 금품창고를 습격하고, 폭력성과 잔인함 때문에 현상금이 고평가된 허
접한 고액 현상금수배자들을 생포해서 현상금을 타냈다.
들인 노력에 비하면 극한의 가성비를 뽑아냈다는 뜻이다.
‘경험에 실력, 요령까지 다 앞서기도 하고.’
근데 이것도 후려치기 당한 감이 없잖아 있다.
전리품을 매입하는 칠대기업이 장난질을 치기 때문이다.
1억의 가치가 있는 소재도 천만 원에 팔아야 한다.
싫어도 거기다 갖다 팔 수 밖에 없다.
쟤들 아니면 사주는 사람이 없다.
원래는 있었는데 칠대기업이 다 없어지게 만든 탓이다.
독과점 시장은 기업의 뜻대로 끌려 다닐 수밖에 없다.
같은 이유로 1억의 가치가 있는 장비는 2억에 사야한다.
한국의 초능력자들이 유독 국가와 기업에 끌려 다니는 이유 중 하나였다.
‘후. 진짜 마음 같아선 미국으로 이민이라도 가고 싶은데.’
한국이 무너지면 다음은 전 세계가 도미노처럼 무너진다.
몬스터들은 핵무기도 안 통한다.
당장 눈에 보이는 걸 죽였다고 좋아할 수도 없다.
다음 웨이브부터는 방사능으로 강화된 놈들이 나온다.
몬스터와의 전쟁은 백 년 이상 이어질 걸 각오해야 한다.
세계를 구하려면 한국을 구해야 한다.
한국을 구하려면 우선 흑막을 막아야 한다.
‘흑막을 막을 방법은 칠대기업을 저지하는 것.’
‘그것이 가능할만한 조직은 이제 히어로협회와 마법협회밖에 없어.’
‘물론 히어로협회는 더 이상 믿을 수 없지.’
원래는 히어로협회를 뒷배로 삼으려고 했지만 강반검의 폭로로 인해 협회장의 치부가 세상에 드러났다.
나 역시 더는 그들을 믿을 수 없다.
택시를 탄 덕분에 금방 마법협회 본부에 도착했다.
신축건물이라더니 건축계 초능력자까지 동원했는지 며칠 만에 번듯한 건물이 올라섰다. 건물 안팎으로
오가는 마법계열 초능력자들의 수가 심상치 않았다.
“저 사람 TV에도 나왔던 히어로협회 소속 히어로 아니야?”
“국내 마법계열 초능력자 랭킹 20위권 실력자도 있잖아.”
“이거 장난 아니네. 우리같은 놈들이 와도 되는 거야?”
장명훈과 김일식, 김아준이 주변의 눈치를 보다가 주눅이 들었는지 고개를 숙였다. 시선을 바닥에 깔고
따라오는 모습이 퍽 처량하게 보였다.
김철괴만이 꿋꿋이 고개를 치켜들며 눈을 마주치는 마법계열 초능력자한테 시비를 걸었다.
“너 뭐야 이 새끼야. 왜 기분 나쁘게 사람을 노려봐?”
당연히 시비가 걸렸다.
그리고 김철괴는 성격이 나만큼 이상한 또라이였다.
“니 새끼가 먼저 노려봤잖아. 어따 대고 눈을 부라려?”
“뭐? 니 새끼? 부라려? 마법협회 정문에서 마법계열 초능력자한테 시비를 건다고? 같은 마법계열도 아닌
무투계열 초능력자 새끼가? 너 돌았냐?”
“아, 그래. 똥개도 제 앞마당에선 가오 좀 부린다지? 본실력이 허접한 쓰레기답게 남의 권위를 업는 솜씨
가 대단한데?”
심지어 그새 입담을 갈고닦기까지 했는지 도발실력이 몰라보도록 일취월장했다.
장담컨대 김철괴 일행이 동번 시에서 죽어라 빌런이나 몬스터와 싸우게 된 계기가 김철괴의 절제할 수 없
는 폭언에 90% 이상 영향을 받았다고 본다.
“이, 이 건방진 쓰레기 자식이!”
마법계열 초능력자가 마나덩어리를 뭉쳐서 냅다 김철괴의 면상에 집어던졌다.
철퍽!
무슨 속성을 부여했는지는 몰라도 끈적하고 흘러내리는 마나덩어리가 보기만 해도 기분이 더러웠다.
“아, 이런.”
나는 좀 더 빨리 말리지 않은 것을 후회했다.
뒤늦은 후회였다.
김철괴는 미간에 십자가를 새기며 살벌하게 이를 드러냈다.
“샌님 치고는 한 성격 하는데? 좋아. 그렇게까지 자신만만하다면 기꺼이 대결에 응해주지.”
즉석에서 길거리 대결이 시작되었다. 마법계열 초능력자가 두 손을 펼치며 다섯 개의 녹색구체를 생성해
내었다.
“머드 밤!!”
우렁찬 외침과 함께 녹색구체들이 김철괴를 향해 날아들었다.
맞으면 기분 잡치는 정도로 끝날 공격이 아니다.
김철괴는 바닥에 발을 내리쳐 보도블록을 위로 띄워 올렸다.
떠오른 파편을 주먹으로 연달아 가격해 날렸다.
놀랍게도 파편 하나하나에 김철괴의 기가 실려 있었다.
퍼펑!
파편에 맞은 녹색구체들이 허공에서 터져버렸다.
“크아악!”
구체 사이로 날아간 파편 몇 개가 상대에게 적중했다.
팔과 몸통에서 피를 흘리며 비틀거리기도 잠시.
놀라운 집중력으로 등에 짊어진 지팡이를 꺼내쥐더니…
빠악!
냅다 달려든 김철괴의 발차기에 맞아 바닥을 나뒹굴었다.
가늘게 경련하더니 그대로 쓰러졌다.
대결은 김철괴의 승리였다.
“별 것도 아닌 자식이 까불고 있어. 퉤.”
“…….”
기세등등하게 우리를 돌아본 김철괴가 멈칫했다.
그제야 분위기를 파악한 것이다.
지나다니던 마법계열 초능력자들이 죄다 걸음을 멈췄다.
적게 잡아도 이십여 명.
개중에는 아까 본 마법계열 랭킹 20위권 실력자도 있다.
그들 전부가 우리들을, 정확히는 김철괴를 노려봤다.
김철괴가 슬그머니 시선들을 피해서는 날 돌아보았다.
뜬금없이 손을 들더니 어색하게 말을 걸었다.
“봤어? 시키는 대로 잘 했다고.”
“누구세요.”
“진짜 이러기냐?”
“누구세요.”
“아 진짜. 도와줘. 이건 좀… 너무 많다고.”
니 입에서 ‘제발 도와주세요, 한도령님’ 소리 나오기 전까진 손가락 하나 까닥하지 않을 거다, 이 얼간아.
[작품후기] [오늘의 인명사전] *김철괴 : 메인탱커. 도발실력 매우 높음. 영입비용이 무료이고 영입난이도 또한 낮은 대신, 가끔씩 중립관계의 인물에게도 시원하게 폭언과 선빵을 갈김. 성능은 좋지만 다른 메인탱커를 구하면 즉시 갖다버릴
것.
[3회차] 마법협회
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