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ntertainment Bureau Crazy PD is back RAW novel - Chapter 120
120화 – 물론이죠!
금요일, 동수는 민성아와 함께 왕십리에 있는 ‘행복한 돈까스’라는 경양식 식당에 왔다.
동수는 낡고 허름한 식당 내부를 살펴보며 물었다.
“성아야, 박재섭이 정말 여기서 만나자고 했어?”
“네, 단무지 말로는 박재섭이 제일 좋아하는 식당이래요.”
“으음···. 검소한 사람인 건 알았지만···.”
그녀는 한쪽 벽에 붙은 박재섭과 식당 사장이 어깨동무하고 찍은 사진을 보며 말했다.
“박재섭이 신인 때, 여기 위층에 있는 고시원에 살았대요. 밥 사 먹을 여유도 없을 때였는데, 여기 사장님이 박재섭 씨한테 공짜 밥을 줬다나 봐요.”
“그래?”
“‘로드 히어로즈’ 추억의 식당 편에서 나오는데···. 심의부에 있었다면서 이것도 몰라요?”
“하하, 그게···.”
동수는 뒷말을 흐렸다.
심의부 PD들은 방영 중인 프로그램을 전부 봐야 한다.
더러 PD 중에는 다 볼 수 없으면, 가족이 대신 보고 얘기를 해주기도 한다.
하지만 그 시절 동수는 방송보다 술을 달고 살았다.
그래서 ‘로드 히어로즈’의 내용도 잘 모른다.
민성아는 그가 민망해하자 움찔했다.
‘너무 나쁘게 말했나?’
더 대화를 나누고 싶은데 무슨 말을 꺼내야 할지 어색하기만 했다.
그녀가 어색한 표정으로 물컵을 잡자, 동수가 피식 웃으며 말했다.
“사실, 심의부 때 내가 월급 루팡이었거든.”
“네···?”
“억울한 누명을 쓰고 심의부로 좌천되고 나니까, SBC 등골이나 빼먹고 편하게 살아보자! 라고 생각했거든.”
“······.”
“하하, 한심한 얘기지?”
“뭐···. 그냥···.”
민성아는 뭐라고 해줄 말이 떠오르지 않았다.
이럴 때 다른 사람들은 위로해주곤 할 텐데···.
그녀는 그런 말이 입 밖으로 나오지 않았다.
문득 예전에 방송 작가 교육원에서 그녀를 가르쳤던 박동혁 작가의 조언이 떠올랐다.
‘성아 씨는 다른 사람과 함께 일하는 데 익숙해졌으면 좋겠네요. 방송은 혼자서는 할 수 없는···.’
그녀는 주먹을 꼬옥 쥐더니, 어색한 목소리로 말했다.
“예, 예전이 뭐가 중요해요. 지금 잘하고 있잖아요. 그럼 됐지···.”
동수는 그녀의 위로에 눈을 동그랗게 뜨다가 곧 씨익 웃으며,
“땡큐, 성아야!”
“흥···.”
그때 식당 문이 열리고 모자를 눌러 쓴 남자가 들어왔다.
안경을 쓴 평범한 인상···. 국민 MC 박재섭이다.
동수와 성아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며 그에게 다가갔다.
“박재섭 선배님, 처음 뵙겠습니다. 강동수 PD입니다!”
“안녕하세요, 선배님. 민성아입니다.”
공손하게 인사하는 두 사람을 보며 박재섭은 사람 좋은 미소를 지으며,
“하하, 기다리게 해서 죄송합니다. 박재섭이라고 합니다.”
동수는 자연스럽게 그와 악수를 나눴다.
[데이터 해킹 시작···. 1%···. 2%···.]해킹 속도는 보통이었다.
해킹 부스터 팩이 있지만, 쓸 필요는 못느꼈다.
해킹률이 4%가 됐을 때 악수는 끝났다.
-띠링!
『앙상블 점수가 변경됐습니다.』
동수는 흠칫했다.
예전에 FD 면접 때, 지원자들 앙상블 점수가 엉망진창이 됐던 악몽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침을 꿀꺽 삼키며 알림창을 확인했다.
『변경 전 박재섭 앙상블 점수: A등급(85점)』
『변경 후 박재섭 앙상블 점수: A등급(89점)』
‘오!’
무려 4점이나 올랐다.
동수는 잘 됐다고 생각했다.
가온도 축하해줬다.
[잘됐군. 이제 다른 MC만 정하면 완벽하군.]‘그렇네. 김시환 선생님 행방은 아직이야?’
[기다려 봐라.]‘알겠어.’
이때 박재섭은 성아와 악수를 하고 있었다.
“반가워요, 민 작가.”
“반갑습니다.”
“단무지랑 다른 후배들한테 얘기 많이 들었습니다. 많은 도움을 주신다고···.”
“아닙니다. 오히려 제가 도움을 받고 있어요.”
“하하, 상부상조 관계군요. 좋네요.”
동수는 밝은 목소리로 박재섭에게 말했다.
“박재섭 선배님, 저쪽에 자리를 잡아놨습니다. 식당 사장님께서 저기가 선배님 지정석이라고···.”
“알겠습니다. 우선 식사부터 하죠. 여기는 돈까스도 맛있고, 함박스테이크도 맛있어요.”
“하하, 그렇지 않아도 음식 냄새가 아주 좋던데···.”
세 사람은 박재섭의 지정석으로 와서 앉았다.
가게에서 가장 구석진 자리였다.
누구의 눈에도 띄지 않는···.
박재섭은 테이블을 만지며 물었다.
“이 자리가 왜 제 지정석 된 줄 아시나요?”
동수는 이리저리 살펴보고 대답했다.
“눈에 띄지 않는 자리이기 때문이 아닌가요? 사람들이 알아보면 장사에도 피해를 줄 수 있고···. 선배님도 식사에 방해를 받을 수 있어서···.”
“하하, 요즘은 그런 이유도 있죠. 그런데···. 아, 민 작가 생각은 어때요?”
그녀는 생각했다.
‘박재섭이 이 식당의 단골이 된 건 무명 개그맨 때야. 그러면 다른 사람이 알아봐서 이런 구석에 앉았다기보다는···.’
“혹시 다른 사람들 눈을 피하려고 앉은 건가요?”
박재섭은 빙긋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대학 개그제를 통해 개그맨이 됐지만, 존재감은 거의 없을 때였어요. 심지어 개그제에서 가장 낮은 상을 받고 시건방져서 선배들한테도 찍혀서···.”
박재섭에게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아는 얘기다.
겸양의 대명사인 그가 신인 때 시건방졌다는···.
그래서 고생을 많이 하고···. 현실을 깨닫고 각고의 노력 끝에 지금의 국민 MC가 된 거다.
“이 자리에 앉아 공짜 밥을 얻어먹으면서 이런 내 모습을 누가 볼까 창피해하고···. 돈까스 하나 사 먹기도 힘든 처지를 비관하고···. 꿈이고 나발이고 다 포기해버릴까···. 그런 생각을 많이 했죠.”
동수와 성아는 박재섭이 출연했던 토크쇼들을 봤기 때문에 익히 알고 있는 얘기다.
하지만 이렇게 그의 입을 통해 직접 들으니 감회가 새로웠다.
그때 박재섭은 빙긋 웃으며,
“힘들 때면 종종 여기 와서 식사하곤 합니다. 그러면서 지금 힘든 건 아무것도 아니다. 더 노력하자···. 이러곤 하는데···. 하하. 이거 참, 처음 뵙는 두 분을 앞에 두고 제 얘기만 했네요.”
“괜찮습니다.”
“자자, 그럼 주문부터 하죠. 어떤 걸로···?”
박재섭과 성아는 돈까스를 골랐다.
동수도 돈까스를 주문하고 싶었지만···.
-뾰로롱!
요정 가온이 나타나더니 말했다.
[함박스테이크 먹고 싶어.]‘···난 돈까스가 좋아.’
[진실 탐지기 이용권 1장 줄게. 함박스테이크로 주문해.]‘······.’
처음엔 몰랐는데 진실 탐지기는 참 유용한 기능이다.
현재 이용권은 2개 있지만···.
‘많으면 많을수록 좋겠지.’
[옳은 말씀. 함박스테이크 위에 올라가는 달걀 후라이는 반숙으로 부탁한다.]‘요구사항도 많네···.’
그렇게 주문하고 동수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선배님, 혹시 ‘그 노래? 그 가수!’는 출연은···.”
“대답하기 전에 세 가지만 물어도 될까요?”
“네, 말씀하세요.”
“저를 이 프로그램 메인 MC로 캐스팅하려는 이유가 뭔가요?”
“그건 민 작가가 대답하는 게 좋을 거 같습니다. 우리 민 작가가 선배님을 꼭 캐스팅하고 싶다고 했거든요.”
박재섭이 성아를 쳐다보자, 그녀가 대답했다.
“선배님께서 MBS ‘무식한 도전’ 해변 가요제에서 가수들하고 하는 티키타카가 무척 재밌었어요. 그리고 장난스러운 모습 속에 음악에 대한 열정과 실력을···.”
조곤조곤 본인의 의견을 말하는 성아.
박재섭은 조금 민망해하며,
“아이고, 이렇게 금칠을 해주다니···.”
“사실을 말한 거뿐이에요.”
“민 작가님 아주 단호하네요. 단무지에게 듣긴 했는데···. 하하.”
그러자 동수가 호탕하게 웃으며 말했다.
“우리 민 작가가 아주 프로페셔널하죠?”
“강 CP님 이상한 소리 좀 하지 말아요···.”
“하하, 사실을 말한 건데!”
박재섭은 생각했다.
‘PD랑 작가 사이는 좋은 것 같네. 둘 다 별명이 미친개여서 개판이지 않을까 했는데···.’
오래된 친구를 만난 것 같아서 무척 편하게 느껴졌다.
그는 동수를 보며 물었다.
“그럼, 다음 질문을 할게요. 기획안을 보니까 메인 MC를 두 명으로 생각하고 있던데···.”
“네, MC 두 명이 노래와 관련된 명소를 찾아가서 사람들과 토크를 진행하고···. 마지막에 추억의 가수를 만나는 겁니다.”
“그러면 제 파트너가 될 MC는 누군가요?”
동수는 손가락 네 개를 펴며 말했다.
“일단 네 명의 후보를 정해뒀습니다. 첫 번째는 현재 라디오 DJ로 활약 중인 윤승아 씨입니다.”
“플루토의 윤승아 말이죠?”
“네, 음악에 대한 조예도 깊고, 진행도 차분하게 잘할 거 같아서···.”
박재섭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럴 거 같네요. 그럼, 다른 셋은···.”
“다음은 신인 가수인데···. 사이다 커피라고···.”
“아, 그 사이다 커피요? 재밌는 친구죠. 흠, 확실히 재치가 있는 친구니까 잘할 거 같네요. 다음은···.”
“세 번째는 김시환 작곡가입니다.”
“김시환? 설마, 대학 가요제의···.”
“네, ‘비 오는 날의 노래’를 작사 작곡한···.”
박재섭은 손으로 턱을 쓰다듬더니,
“음, 그분은 MC가 아니라 추억의 가수로 초대해야 하는 거 아닙니까? 심지어 행방이 묘연한 걸로 아는데···.”
동수는 고개를 끄덕이며,
“하하, 그것도 검토해보고 있습니다. MC로 모시면 파격적이긴 할 거 같지만···.”
“그렇긴 할 거 같군요. 그건 두 분이 결정하시면 될 거 같고···. 마지막 MC 후보는 누군가요?”
동수는 어색하게 웃으며,
“···미친개 밴드입니다.”
“미친개 밴드? 그건 뮤직 대전 때···. 아! 하하핫!”
시원하게 웃던 박재섭은 엄지 척을 했다.
“MC 후보들이 모두 좋군요!”
“감사합니다. 선배님은 네 후보 중에서 누구랑 호흡을 맞춰보고 싶으신가요?”
“흠, 글쎄요···.”
그는 잠시 고민하는 거 같더니, 부드러운 목소리로,
“어느 분이든 좋습니다. 두 분이 원하는 MC를 섭외해주세요.”
“알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배려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박재섭은 장난스레 말했다.
“하하, 저 아직 한다고 말한 건 아닌데~. 자, 그러면 마지막 질문입니다. 강 CP, 이 프로그램···. 어디서 방영할 건가요?”
어떻게 보면 가장 중요한 질문이다.
동수는 빙긋 웃더니,
“핫플렉스에서 독점 방영할 겁니다.”
.
.
.
밴 뒷좌석에 탄 박재섭은 동수랑 성아를 떠올리며 빙긋 웃었다.
‘재밌는 사람들이야. 함께 프로그램 제작할 맛이 나겠어.’
그때 조수석에 앉아 있던 임대훈이 물었다.
“형님, ‘그 노래? 그 가수!’는 하기로 하신 겁니까?”
“그래. 강 CP가 제작사를 설립하는 대로 촬영에 들어갈 것 같은데···. 아마 너한테 민 작가가 연락할 거야.”
“네···.”
임대훈의 표정이 무척 어두워졌다.
박재섭은 고개를 갸웃하며 물었다.
“왜 그래? 무슨 일 있어?”
“···그냥 오늘 컨디션이 조금···.”
“그럼, 무리하지 말고 쉬어. 오늘은 로드매니저만 있어도 괜찮으니까.”
“아닙니다.”
임대훈은 몸이 아파서 이러는 게 아니다.
그는 지금 송민지 PD 때문에 이러는 거다.
‘민지의 기획안···. ‘그 노래? 그 가수!’랑 거의 똑같았어.’
알아본 바에 의하면, ‘그 노래? 그 가수!’는 민성아 가 작년부터 SBC에서 편성을 받으려고 안간힘을 썼던 프로그램이라고 했다.
심지어 ‘멍멍이와 산다!’ 후속작으로 촬영을 앞두고 있었다고···.
‘그렇다면 민지가 민 작가의 기획안을···.’
그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럴 리가 없어. 내 여자 친구를 내가 믿어야지. 그래, 우연일 거야. 우연···.’
그러나 임대훈의 표정은 여전히 복잡했다.
그는 뒷좌석에 앉은 박재섭을 살피더니 조심스럽게 폰을 꺼내서 송민지한테 톡을 보냈다.
└임대훈: 민지야. 오늘 저녁에 볼 수 있을까?
답장은 바로 왔다.
└민지: 물론이지! 어디서 볼까?
그는 송민지와 약속을 잡고, 마음속으로 기도했다.
‘부디, 기획안이 똑같은 게 우연이길···.’
= = = = = = =
동수와 성아는 박재섭과 미팅을 끝내고, SBC 방송국으로 왔다.
성아는 ‘도토리’ 회의 때문에 갔고, 동수는 ‘멍멍이와 산다!’ 회의실에서 레나 포스터(핫플렉스 부사장)에게 연락했다.
“박재섭을 캐스팅했어요.”
[어머, 아주 좋은 소식이네요. 박재섭이 MC면 아시아 시장은 걱정 안 해도 되겠어요.]“유럽이나 미국은요?”
[음, 아무래도 서방권은 대한민국 추억의 가수에는 관심이 적으니까···.]그 말에 동수는 성아와 했던 회의 내용 중 하나를 미끼로 던졌다.
“저희가 대한민국 추억의 가수뿐만 아니고, 글로벌 가수들을 찾아가서 토크를 하면요?”
[네? 그 말씀은···.]“핫플렉스에서 도와주면 재밌는 글로벌 예능을 만들 수 있을 거 같은데···. 어떠세요?”
[···자세한 얘기를 들어봐야겠네요. 지금 뵐 수 있을까요?]동수는 하얀 이를 드러내고 웃으며,
“물론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