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ntertainment Bureau Crazy PD is back RAW novel - Chapter 89
89화 – 이건 새로운 계약서입니다.
혼자 레스토랑에 남은 레나 포스터는 찢어진 계약서를 차가운 눈빛으로 바라봤다.
‘분명 계약 내용을 보고 흔들렸어. 그런데 왜 갑자기 마음이 변한 거지?’
그녀는 동수와 나눴던 대화를 차근차근 되짚어봤다.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실수는 안 한 거 같다.
표정 또한 완벽했다.
괜히 그녀가 협상의 여왕으로 불리는 게 아니다.
힐끗 부숴진 테이블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그냥 미친개라서 이러는 건 아닐 거야.’
그때 동수가 했던 말이 떠올랐다.
[저는 말입니다. 앞뒤가 다른 사람 딱 질색입니다.]‘앞뒤가 다른 사람···.’
그때 그녀의 비서가 다가왔다.
“모셔다드리겠다는데, 그냥 택시를 타고 갔습니다.”
“그래?”
그녀가 고민하는 표정을 짓자, 비서가 조심스레 말을 이어갔다.
“그리고 계속 알아봤지만, 강동수와 브루스 리 회장은 아무런 접점이 없습니다. 그러니 스카웃은 포기하고 지금이라도 SBC 측과 협력해서 프로그램을 제작하는 걸로 하는 게···.”
레나도 이성적으로는 비서의 의견이 타당하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녀의 감이 말하고 있다.
‘강동수는 곁에 두는 게 좋아.’
인재를 등용할 때 그녀는 8할을 감에 의지한다.
이렇게 했을 때 늘 좋은 성과를 얻었다.
그녀는 고민하더니,
“계약서를 새로 준비해. 지금보다 나은 조건으로. 지금 당장.”
“부사장님.”
“그리고 강동수에 대해 조사를 더 해와.”
비서는 조금 당황하며,
“브루스 리 회장과는···.”
“브루스 회장과의 접점을 찾으라는 게 아니야.”
“네? 그럼···.”
레나는 찢어진 계약서를 구기며 날카로운 눈빛을 하더니,
“이틀 줄게. 강동수의 가족 관계, 친구 관계, 연인 관계, 직장생활···. 모든 걸 조사해와.”
“······.”
비서는 속으로 한숨을 쉬며 레나 포스터의 나쁜 버릇이 나왔다고 생각했다.
‘마음에 드는 인재가 있으면 어떻게든 손에 넣으려고 하는···.’
하지만 이런 집착에 가까운 인재 욕구가 그녀를 젊은 나이에 협상의 여왕으로 만들었다.
비서는 살짝 고개를 숙이며,
“알겠습니다.”
“수고해.”
그는 물러나려다가 “아!”하더니 레나에게 재차 말했다.
“윤민철이라는 자가 부사장님을 뵙고 싶어 합니다. 부사장님과 같은 사교클럽 출신인 올리브 씨를 통해서 연락이···.”
“윤민철? 그게 누군데?”
“아이리스 그룹 자제입니다.”
“아이리스? 아···. 김복자 회장의···.”
“맞습니다.”
“그런데 그 사람이 날 왜 보고 싶어 하는 거지?”
“동문과 친분을 쌓을 겸···.”
레나는 더 들을 필요 없다는 듯 잘라 말했다.
“예의에 어긋나지 않게 적당히 바쁘다고 하고 강동수한테 집중해. 지금은 브루스 리 회장의 투자 철회를 막는 게 무엇보다 중요하니까.”
“알겠습니다.”
비서가 물러가고 그녀는 동수와의 대화를 다시 떠올리다가, 작게 중얼거렸다.
“설마···. 내가 강 PD의 능력을 보고 스카웃하는 게 아니란 걸 알고···.”
그러나 그녀는 고개를 저었다.
‘뭔가 오해가 있었던 게 분명해. 아니면, 계약서에 걸리는 부분이 있었던지···.’
레나는 동수와 오해를 풀기로 했다.
제일 좋은 건···.
└레나 포스터: 강 PD님, 내일 SBC 방송국으로 찾아뵙겠습니다. 몇 시쯤 출근하시나요?
단도직입적으로 말하는 거다.
= = = = = = =
택시를 타고 가며 멍하니 창밖을 바라보는 동수에게 가온이 말했다.
[당신은 진정한 미친개다.]‘······.’
[이십억을 찢어버리다니.]‘······.’
[아니지. 매년 최소 수억 원을 벌 수 있는 계약서인데···. 따지고 보면···.]‘계약서 얘기 그만···.’
동수는 손으로 얼굴을 가리며,
‘더 들으면 아까워서 눈물이 흐를 거 같아.’
-뾰로롱!
요정 가온이 나타나더니 고사리 같은 손으로 그의 등을 토닥이며 말했다.
[당신 너무 상심하지 마라. 돈은 벌면 된다. 지금처럼만 하면 대충 십팔 년 후면 대출도 다 갚고 계약금의 반 정도는 모을 수 있을지도···.]“십팔 년? 젠장···!”
동수가 소리치자, 택시 기사가 움찔했다.
사나운 눈매와 큰 덩치의 동수가 욕을 하자 두려웠기 때문이다.
‘택시비 안 주는 건 아니겠지? 호, 혹시 모르니까 경찰에 미리 신고를···.’
그런 택시 기사의 속내도 모르고 동수는 연신 십팔 년이라는 단어를 중얼거리며 계약서를 찢은 걸 못내 아쉬워했다.
그러자 가온이 말했다.
[지금이라도 가서 레나와 다시 얘기해보는 건 어떤가?]‘아쉬워도 날 속이려는 사람과 함께할 생각은 없어. 진실 탐지기 결과 봤잖아? 진실 0%라고. 0%! 무엇보다 박채연이 떠올라서 싫어!’
[너무 예민하게 반응한 거 같다.]‘뭐?’
[계약 제의할 때 밑천을 다 드러내는 사람이 어디 있나? 그리고 감언이설과 미사여구로 상대를 유혹하는 것도 당연하고. 어쩌면 기업 비밀이어서 숨기는 걸지도···. 물론 이게 좋은 태도는 아니지만···.]듣고 보니 설득력 있는 말이다.
가온의 말대로 박채연이 떠올라서 너무 예민하게 반응한 거 같았다.
가온은 재차 말했다.
[어쨌든 당신은 그때 테이블을 부숴버리고 뛰쳐나오는 게 아니고, 왜 속였는지를 물어보는 게 나은 선택이었다.]시끄럽다고 하고 싶었지만, 틀린 말은 아니었기 때문에 입을 꾹 다물었다.
[박채연 작가한테 당한 거 때문에 트라우마 있는 건 알지만, 너무 과민반응 하진 마라. 이런 말도 있지 않나? 가슴은 뜨겁게···.]‘대가리는 차갑게···.’
[머리다. 머리.]‘대가리나 머리나.’
[···그건 그렇군.]‘됐고, 뭔 말인지 알겠어. 하지만···!’
동수는 지금 당장은 다른 방송사나 제작사로 갈 생각이 없다.
SBC에서 이제 막 CP가 됐다.
‘멍멍이와 산다!’, ‘인기 뮤직’ 그리고 성아와 약속한 ‘그 노래? 그 가수!’까지···.
‘할 게 많다고.’
[알아서 해라. 당신이 어떤 선택을 하든, 난 당신이 최고의 PD가 되는 걸 돕겠다.]‘땡큐, 땡큐!’
동수는 생각했다.
딱, 오늘까지만 계약서에 대해 아쉬워하고 내일은 다 털어버리자고.
‘그런 미친 짓을 했으니, 레나 씨도 더는 계약하자고 하지 않겠지.’
차라리 잘됐다고 생각했다.
‘미련 없이 다시 꿈을 향해 미친 듯이···.’
-톡!
그때 메시지가 왔다.
동수가 확인하기도 전에 가온이 말했다.
[레나 포스터가 보낸 메시지다.]‘······.’
읽씹은 성미에 맞지 않아서 바로 읽었다.
└레나 포스터: 강 PD님, 내일 SBC 방송국으로 찾아뵙겠습니다. 몇 시쯤 출근하시나요?
동수는 생각했다.
‘테이블을 부숴버렸는데 무섭지도 않나?’
[어쩔 건가?]‘뭐, 피할 이유는 없지.’
└강동수: 8시에 출근합니다.
= = = = = = =
다음날, 아침.
동수는 출근길에 윤하얀과 만났다.
“강 CP님! 굿모닝!”
“오! 좋은 아침!”
“어제 레나 씨는 잘 만났어요?”
“아, 그게···.”
그가 뒷말을 흐리자 윤하얀은 눈을 가늘게 뜨더니,
“설마, 무례한 행동을 한 건 아니죠? 레나 씨는 이번 연말 특집에 중요한 히든카드라고요.”
“······.”
“그것뿐만 아니고 그분은 어린 딸을 끔찍한 사건으로 잃은 가여운 분이에요.”
동수는 어색하게 웃었다.
아마 솔직하게 말하면 윤하얀이 몹시 화낼 거 같았지만···. 그녀를 속이고 싶지는 않았다.
“저한테 핫플렉스로 오라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싫다고 테이블을 부숴버리고 나왔습니다.”
“······.”
“······.”
“···장난이죠?”
“윤 작가한테 거짓말 안 합니다.”
윤하얀은 동수의 말에 좋아해야 할지, 눈물을 흘려야 할지 감이 안 잡혔다.
그녀는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꼭 그래야만 했나요···? 레나씨 섭외는 어떻게 하고···. 촬영은···. 아니, 연락하는 거 자체가 어렵게 됐잖아요!”
“아! 그건 걱정하지 마십쇼!”
“네? 왜요?”
윤하얀은 동수의 자신감 넘치는 모습이 무척 불안하게 느껴졌다.
그때 동수가 호탕하게 웃더니,
“저한테 미련이 남았는지 제 출근 시간에 맞춰서 회의실에 오겠다고 하더군요!”
“···경찰을 대동하고 오는 거 아닐까요?”
“에이, 설마요.”
“······.”
“······겨, 경찰이 오면 어쩌죠?”
윤하얀은 한숨을 푸욱 내쉬었다.
동수와 함께한 뒤로는 바람 잘 날이 없는 그녀였다.
‘오지 탐험하는 게 더 평화로웠던 거 같아···.’
그녀는 동수와 프랑스 바게트로 가서 딸기 케이크와 마카롱 세트를 샀다.
그리고 다시 방송국으로 향하며,
“손이 발이 되게 빌어요. 저도 같이 사과할게요.”
“···혼자 왔을 수도 있잖아요.”
“그래도 무례한 행동을 했잖아요.”
“하지만···.”
“하지만 뭐요?”
“···온전히 저만 잘못한 건 아닙니다.”
윤하얀은 동수를 빤히 보더니,
“그래도 폭력적인 행동은 나빠요. 저는 강 PD님의 시원한 성격은 좋은데요. 폭력적인 행동은 안 했으면 좋겠어요.”
동수는 머쓱한 표정으로 뒷머리를 긁적였다.
마치 어릴 때 엄마한테 혼나는 거 같았다.
‘그러고 보면 윤 작가가 엄마랑 성격이 비슷하지. 평소에는 장난기 가득하다가 무슨 일 생기면···. 물론 미모는 윤 작가가···.’
그때 가온이 말했다.
[이래서 딸자식 키워봐야 소용없다는 말이 생긴 거군. 데이터 저장···.]‘···시끄러워.’
윤하얀이 동수 볼을 검지로 살짝 찌르더니,
“알겠어요? 강동수 CP님!”
“···노력해보도록 하죠.”
“네! 그럼 사과는 손이 발이 되게! OK?”
“알겠어요. 알겠어.”
그녀는 배시시 웃으며 폰을 꺼냈다.
“일단 박 PD한테 정찰해보라고 해야겠어요.”
“오! 좋은 생각입니다. 막내라면 일찍 출근하니까.”
그 순간, ‘멍멍이와 산다!’ 단톡방에 박지혜가 톡을 보냈다.
└막내: 선배님, 큰일 났어요!
동수와 윤하얀 모두 고개를 갸웃했다.
큰일···?
= = = = = = =
막내가 말한 큰일은 큰일이 맞았다.
왜냐면 ‘멍멍이와 산다!’ 회의실 책상 위에 선물 상자가 수북하게 쌓여 있었기 때문이다.
동수는 황당한 표정을 지으며 의자에 앉아 있는 레나 포스터에게 물었다.
“···이게 다 뭡니까?”
“사과의 표시이자, 화해의 선물이에요.”
“······.”
“······.”
동수는 물론, 사정을 알고 있는 윤하얀도 황당한 표정을 지었다.
윤 작가는 동수에게 속삭였다.
‘테이블 부쉈다고 하지 않았어요?’
‘네···. 확실히 부쉈는데···.’
‘그런데 왜 저쪽에서 사과하는 건데요?’
‘저야 모르죠.’
그때 레나가 웃으며 말했다.
“제가 아무래도 강 PD님의 심기를 불편하게 해드린 거 같아서요. 어떻게든 용서를 받고 싶어서 준비한 거랍니다.”
-띠링
『91% 진실입니다.』
동수는 알림창을 보며 묘한 표정을 지었다.
‘대체 왜···.’
그때 그녀가 서류 봉투를 내밀더니,
“이건 새로운 계약서입니다.”
“······.”
“읽어보시고 마음에 안 드시면 말해주세요. 강 PD님이 원하는 조건은 전부 맞춰드리겠습니다.”
-띠링
『100% 진실입니다.』
“······.”
동수는 물었다.
“왜 이렇게 저를 스카우트 못해서 안달입니까?”
“그건 어제 말씀드렸다시피···.”
“입에 발린 말 말고요. 솔직한 이유를 듣고 싶습니다.”
“······.”
레나는 잠시 고민하더니, 살짝 한숨을 내쉬었다.
“···알겠습니다. 솔직히 말씀드리죠.”
“······.”
“강 PD님을 스카우트하려는 건 제 욕심도 있지만···. 우리 핫플렉스의 앞날이 달려 있기 때문입니다.”
동수는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이번에도 분명 거짓말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띠링
『100% 진실입니다.』
동수는 할 말을 잃었다.
‘이거 고장났냐?’
[진실 탐지기는 정상 작동 중이다. 레나 포스터의 말은 한점 거짓 없는 진실이다.]‘······.’
그때 레나가 허리를 살짝 숙이며,
“강동수 PD님, 저희 핫플렉스와 함께 해주세요. 부탁드립니다.”
“······.”
이쯤 되니···.
동수 마음도 흔들렸다.
어제 봤던 계약서 내용도 떠올랐다.
제작팀을 원하는 대로 구성하게 해준다는 조항···.
‘까짓거 막내랑 윤 작가, 성아, 수빈이 전부 데리고 핫플렉스로 갈까? 국장 눈치 볼 필요도 없이 내 마음대로 제작하고···.’
물론 그곳에도 거치적거리는 놈은 있을 거다.
하지만 레나 부사장이 뒤를 봐주는데 여기보다는 편하지 않을까?
‘아, 여긴 지니 회장님이 있지.’
하지만 느낌은 다르다.
레나는 온전히 그를 도와주는 조력자라면, 지니 회장은 그를 골탕 먹일 것만 같았다.
“음···.”
윤하얀과 막내는 동수의 눈치를 봤다.
그가 어떤 선택을 하느냐에 따라 두 사람의 처지도 달라질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때 조롱 섞인 여자 목소리가 들렸다.
“양키들은 상도덕을 엿이랑 바꿔먹었나?”
회의실 안의 사람들이 놀라서 돌아보자, 문 쪽에 갈색 웨이브펌 헤어의 여자가 팔짱을 끼고 서 있었다.
그녀는 싱긋 웃으며 모두를 향해 손을 흔들었다.
“굿모닝. 아! 대가리 색깔 나랑 똑같은 상도덕 모르는 양키X은 빼고! 넌 이거나 먹어!”
중지를 곧게 피는 여자.
레나의 표정은 딱딱하게 굳었다.
동수는 재빨리 앞으로 나서며 물었다.
“누구십니까? 여긴 관계자 외에는···.”
그때 변우민 국장이 황급히 달려오더니 여자 앞에 고개를 꾸벅 숙이며 말했다.
“담윤지 본부장님, 처음 뵙겠습니다. 저는 예능국 국장 변우민이라고 합니다.”
그 말에 동수는 눈을 크게 떴다.
‘본부장이라고···!?’
담윤지는 고개를 끄덕이며,
“반가워요, 변 국장.”
“저야말로 반갑습니다. 혹시 불편하신 거나 지시할 게 있으시면 언제라도 부르십쇼.”
변우민은 담 회장에게 밉보인 걸 만회할 기회라고 생각하며 담윤지에게 잘 보이려고 안간힘을 썼다.
그러자 그녀가 싱긋 웃더니,
“마침 시킬 일이 있었는데, 잘됐네.”
“네? 아, 네···. 무슨 일입니까?”
담윤지는 레나를 가리키며,
“저 도둑고양이 내쫓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