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ntertainment Bureau Crazy PD is back RAW novel - Chapter 93
93화 – 찾았다!
여의도, 두루치기 셰익스피어.
김민혜는 쇼핑백 두 개를 들고 식당으로 들어갔다.
늘 그렇듯 황 사장이 있을 줄 알았다.
그런데 카운터엔 황진호가 아니고 그의 부인 강정혜였다.
“어머, 민혜씨 오랜만이네요.”
“안녕하세요. 정혜 언니!”
강정혜는 그녀의 고종사촌인 차은수의 지인이다.
차은수와 함께 KBC 인턴 작가를 했고, 숙모의 번역 회사에서도 일한 적이 있다.
그리고 지금은 드라마 작가로 활약 중이다.
아침 드라마를 주로 쓴다.
강정혜는 웃으며 물었다.
“미국에 갔다더니, 언제 한국에 왔어요?”
“오늘이요. 진호 오빠는 오늘 쉬나 봐요?”
“장사 준비만 하고 퇴근했어요. 동창회 때문에요.”
“아···!”
“민혜씨는 임 작가 만나러 왔어요?”
“아뇨. 다른 분하고 만나기로 했어요.”
“혹시 남자···?”
민혜는 어색하게 웃으며 답하지 않았다.
강정혜도 눈치는 있는지라 더 묻지는 않았다.
“차 작가는 잘 지내죠?”
“네, 요즘은 작품보다 사업 쪽에 신경을 쓰는 거 같지만···.”
“후후, 그러다가 예전처럼 갑자기 몇 편씩 드라마 찍어내는 거 아니에요.”
“아하하, 그럴지도 모르죠.”
“민혜씨는 요즘 어때요? 전에 예능 입봉한다는 소리를 들었는데···.”
“아하하, 잘 안 풀려서 쉬고 있어요.”
“저런···. 너무 심려치 말아요. 잘 될 거예요. 열심히 노력하면 반드시!”
민혜는 밝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네! 좋은 말씀 고마워요.”
“아녜요. 아이참, 내 정신 좀 봐. 손님을 이렇게 세워두고···. 편한 자리에 앉아요!”
“네! 아, 맞다! 이거요! 여행 선물이요. 아기 옷이랑 장난감인데···.”
“어머나! 고마워요! 안 챙겨줘도 되는데···. 어머, 어머 귀여워라~! 오늘은 제가 서비스 팍팍 줄게요!”
“아하하, 고맙습니다.”
그녀는 창가 테이블로 자리를 잡았다.
시간을 확인하니 아직 삼십 분이나 남았다.
‘너무 빨리 왔나.’
하지만 기다림이 지루하진 않았다.
오히려 그를 기다리는 시간이 즐겁게 느껴졌다.
-딸랑
종소리가 들릴 때마다 시선이 문으로 향했다.
약간 심장이 콩닥거리는 기분···.
‘뭐니, 왜 이래?’
그녀는 배시시 웃었다.
그때 재차 종소리가 들렸고, 동수가 들어왔다.
김민혜는 자리에서 일어나며 손을 흔들었다.
“강 PD님, 여기!”
“아이고, 기다리게 해서 죄송합니다.”
“아녜요. 제가 일찍 온 거예요.”
동수는 손에 든 쇼핑백을 내밀었다.
“이건 약소하지만···. 에이비 씨를 캐스팅할 때 도움을 주신 답례로···.”
“아! 아니에요! 그건 오늘 밥을 사주시는 걸로···.”
“아닙니다. 제가 거하게 쏜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괜찮은데···.”
“하하, 정말 별거 아닙니다. 마음에 드셨으면 좋겠네요.”
“고맙습니다. 아! 이건 제가 드리는 거예요. 여행 기념 선물인데···.”
“아, 감사합니다. 이렇게 챙겨주셔서···.”
“아니에요. 저야말로 정말 별거 아닌데···.”
그렇게 선물을 교환하고 음식을 주문했다.
동수는 웃으며,
“더 좋은 곳에서 대접해야 하는데···.”
“후후, 여기도 좋은걸요! 미국에 오래 있다보니 두루치기 생각이 간절해서요!”
“아! 그럴 수도 있겠네요!”
음식이 나오고 동수가 물었다.
“술은 어떻게 할까요?”
“조금만 마실게요.”
“네! 사장님! 여기 ‘참맛’ 소주 하나 주세요!”
“두꺼비 안 드시네요?”
그는 빙긋 웃으며,
“네, 참맛 소주가 맛이 괜찮더라고요.”
-뾰로롱!
그때 요정 가온이 나타나더니 말했다.
[그게 아니고 한설희가 광고하는 소주여서겠지.]‘시끄러워.’
[그보다 당신 기회가 되면 김민혜 대가리 해킹을 해라.]김민혜는 지금까지 해킹에 실패한 유일한 사람이다.
가온은 그녀의 정신 방어 체계가 보통 사람과는 다르기 때문이라며, 데이터를 가지고 싶다고 했었다.
동수는 물을 마시며 생각했다.
‘기회는 무슨···. 대가리 해킹이 쉬운 줄 아나!’
[막내한테는 잘만···.]가온은 갑자기 뒷말을 흐리더니, 민혜를 쳐다봤다.
그녀는 가온 쪽을 보며 눈을 깜박이고 있었다.
[······.]“······.”
-파앗!
요정 가온이 모습을 감췄다.
동수는 물었다.
‘뭐야? 왜 갑자기 사라져?’
[저 여자···. 날 본 거 같다.]‘무슨 소리야? 너는 나 말고는 못 본다며.’
[확실한 건 아니다. 일단 내색하지 마라.]‘···알겠어.’
이때 김민혜는 생각했다.
‘뭔가 떠다니는 거 같았는데···.’
그러나 그 느낌은 순식간에 사라졌다.
그녀는 고개를 갸웃하며,
‘착각인가?’
때마침 소주가 나왔다.
동수는 호탕하게 웃으며,
“자! 한 잔 받으세요!”
“아! 네!”
술 덕분에 살짝 어색한 분위기가 풀렸다.
그리고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다가 자연스럽게 ‘멍멍이와 산다!’ 연말 특집 이야기가 시작됐다.
김민혜는 살포시 웃으며 말했다.
“연말 특집 재밌게 보고 있어요.”
“아하하, 감사합니다.”
“저도 늘 주인 할머니가 걱정이었는데···. 누렁이랑 만나고 조금 기력을 찾으신 거 같아 보여서 다행이에요.”
동수는 고개를 갸웃했다.
강남희 할머니를 언급하는 민혜의 말투가 왠지 모르게 친근했기 때문이다.
‘착각인가?’
김민혜는 동수의 안색이 변한 걸 눈치채고 물었다.
“왜 그러세요?”
“아, 그게···. 김 작가님이···.”
“아, 맞다! 저번부터 말씀드리려고 했는데, 그냥 편하게 말씀하세요. 그냥···. 이름으로 부르셔도···.”
“네? 하지만···.”
“혜숙 언니한테는 말을 놓는데, 저한테 존칭을 쓰시니까 조금···.”
동수는 확실히 그녀가 불편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고개를 끄덕이며,
“알겠어. 편하게 말할게. 김 작가!”
“이름으로 부르셔도 돼요!”
“그건 차차···.”
“네! 오빠!”
“······?”
김민혜는 배시시 웃으며,
“왜요, 오빠?”
“아니···.”
갑자기 오빠라는 소리를 들으니 무척 어색했다.
하지만 기분 나쁜 건 아니다.
사실 나이로 따지면 오빠인 것도 맞고···.
‘에라, 알아서 부르라지!’
신경 쓰지 않기로 했다.
그때 그녀가 재차 물었다.
“오빠, 그런데 아까 무슨 생각하신 거예요? 제가 주인 할머니 얘기 꺼내니까···.”
“아, 그게···. 김 작가가 강남희 할머니를 주인 할머니라고 부르는 게 굉장히 자연스럽달까···. 친근하게 느껴져서.”
마치 윤 작가가 강남희 할머니를 부르는 거 같았다.
그러자 민혜가 웃으며 말했다.
“아~, 저 예전에 주인 할머니네 반지하 방에 살았어요! 되~게 오래 살았어요. 으음, 그러니까 한 5, 6년쯤···?”
동수는 눈을 휘둥그레 뜨며,
“정말?”
“네!”
“오···. 신기하네. 그러면 우리 윤 작가랑도 전부터 아는···.”
“아뇨, 윤하얀 작가님은 제가 반지하 방에서 나가고 나서 입주하셨어요.”
“그래? 어라? 그런데 그걸 어떻게 그렇게 자세히 아는 거야?”
김민혜는 방긋 웃으며,
“윤하얀 작가랑 고종사촌 오빠가 친분이 있어요.”
“아···.”
“저는 실제로 뵌 적은 없고···.”
동수는 참 묘한 인연이라고 생각했다.
“다음번에 윤 작가도 불러서 셋이 함께 보자!”
“좋아요!”
그때 동수는 기발한 생각이 떠올랐다.
‘야, 가온! 김 작가 앙상블 점수 확인해봐!’
[100점이었지 않나?]‘스태프 점수 말고! 출연진 점수 말이야.’
[알겠다.]그리고 잠시 후, 앙상블 점수표가 나타났다.
-띠링
『‘멍멍이와 산다!’ 출연진 앙상블 점수표』
【김민혜(31세/O형/여) : 100점(S등급)】
가온은 담담히 말했다.
[또. S등급이라니. 역시 김민혜는 수상하다.]‘수상하긴 뭐가 수상해! 땡큐지!’
동수는 씨익 웃으며,
“김 작가, 혹시 멍멍산 연말 특집 출연해볼래?”
“네? 제가요?”
“응! 사실 이번에 ‘특별한 손님들’이라는 걸 하는데, 할머니의 지인들을 초대하는 건데···.”
그러자 김민혜의 안색이 몹시 어두워지더니,
“죄송해요. 방송 출연은 조금···.”
동수는 그녀가 너무 풀이 죽은 모습을 하자 움찔하며 말했다.
“아냐. 아냐. 부담 갖지 마! 그냥 한 번 얘기해본 거니까!”
“···죄송해요. 지난번에도 이번에도···. 멍멍산을 도와달라고 하셨는데···.”
“괜찮아! 이미 충분히 많이 도와줬는데···.”
‘방송 출연이 뭐라고···.’
그녀는 아랫입술을 질끈 깨물더니, 용기를 냈다.
“오빠···. 저 출연해···.”
그 순간 악몽 같던 기억이 떠올랐다.
[주연은 오채린한테 넘겨. 너는 단역을 맡아.] [제작사 사장한테 접대 자리가 있다. 네가 나가.] [네년 엄마 뒈지는 꼴을 봐야 정신 차리지?] [생각 따위 하지 마! 그냥 닥치고 시키는 대로 해!]동시에 어떤 남자의 환영이 보였다.
[네가 뒈지면 차 회장 얼굴이 아주 볼만 하겠지?]“······!”
그녀는 말을 잇지 못하고 입술을 파르르 떨다가 식은땀을 주르륵 흘렸다.
동수는 당황하며 그녀에게 물었다.
“김 작가, 왜 그래? 괜찮아?”
“아, 네···. 저 잠깐 화장실 좀···.”
“어, 어. 그래.”
민혜가 화장실 쪽으로 향하자 동수는 걱정스레 쳐다봤다.
-뾰로롱!
그때 요정 가온이 나타나더니 말했다.
[열이라도 있냐고 하면서 대가리 해킹을 해봐라.]‘인마, 그런 걸 어떻게 해?’
[김민혜의 데이터를 갖고 싶어. 그녀는 보통 사람과는 다르다. 뭔가 있어.]동수도 김민혜가 뭔가 특별하다는 건 느꼈다.
외모도 그랬다.
단순히 예쁘고 아름다운 게 아니고 뭔가 신비롭고 고귀한···.
묘한 분위기를 풍겼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킹을 하는 건 아니지.’
[막내 대가리는 잘만 비벼댔으면서.]‘말이 그렇다. 비비긴 뭘 비벼!’
[내 말이 틀렸나?]“어? 김 작가 좀 어때?”
-팟!
동수의 말에 가온은 재빨리 모습을 감췄다.
그러자 김민혜는 아직 화장실에서 돌아오지 않았다.
가온은 불만 가득한 목소리로···.
[당신 날 속이다니. 너무하다.]‘쏘리, 쏘리! 흐흐, 그런데 김 작가한테 들키는 게 그렇게 싫어?’
[당신도 들켜봐야 좋을 게 없다.]‘응? 그게···.’
[김 작가가 이상하게 여기고 누군가에게 내 존재를 얘기하고, 그 말이 흘러 흘러 어느 미치광이 과학자 귀에 들어가면···. 당신은 포말린이 가득 담긴 유리관에 갇혀 실험체로···.]“···잔인한 얘기 좀 하지 마.”
[조심하라는 소리다.]“알겠어. 알겠다고.”
동수는 화장실 쪽을 보며 걱정스러운 표정을 했다.
‘김 작가, 괜찮나? 안색이 많이 안 좋던데···.’
.
.
.
김민혜는 화장실 세면대에서 세수한 뒤 거울을 멍하니 쳐다봤다.
“······.”
거울 너머로 그날의 기억이 보였다.
정체불명의 사내들에게 납치돼서 어느 폐건물에 끌려간 뒤···.
-짜아아아악!
[김미래, 이 빌어먹을 X! 오랜만이다!]그녀의 뺨을 후려지는 오태호.
그는 그녀를 밧줄로 묶고 악마처럼 웃으며 말했다.
[네가 뒈지면 차 회장 얼굴이 아주 볼만 하겠지?] [난 악마다! 너 때문에 모든 걸 잃은 악마! 아내도! 명예도! 돈도! 전부!]김민혜는 거울을 노려보며 중얼거렸다.
“전부 잃은 건 나야. 내 꿈도···. 가족도···. 너는 모든 걸 망쳐놨어.”
거울 속의 오태호는 김미래에게 휘발유를 붓기 시작했다.
그는 악마처럼 웃으며 말했다.
오태호는 라이터를 꺼냈다.
김민혜는 이를 갈며 말했다.
“···하지 마. 오태호···. 그만둬.”
화장실에 있던 다른 손님은 민혜를 이상한 사람 보듯 하다가 후다닥 나갔다.
김민혜는 그런 사실도 모른 채 거울 속에 보이는 오태호의 환영에만 집중했다.
오태호는 말했다.
[입 다물고 기도나 하라고! 제발, 지옥에 떨어지게 해달라고 말이야! 흐하하핫!]김민혜는 바들바들 떨었다.
이미 다 지난 일인데···.
아직도 그날의 악몽이 그녀를 고통스럽게 한다.
‘제길···.’
눈을 질끈 감았다.
‘누가 도와줘요···.’
그때 화장실 밖에서 동수의 목소리가 들렸다.
“김 작가! 괜찮아?”
김민혜는 흠칫 정신을 차리고 입을 열었다.
“아, 괜찮···.”
그 순간, 거울 속 환영에 한 남자가 등장했다.
검은 모자를 눌러쓴 남자였다.
그는 씨익 웃으며,
[이거 혹시 드라마 촬영입니까?]김민혜는 눈을 깜박였다.
‘이 남자는···.’
[그런데···. 카메라가 없네요? 음···. 혹시 몰카입니까? 아! 이거 예능 촬영이구나!] [하하, 저는 KBC PD입니다!]본인을 PD라고 소개한 정체불명의 남자.
그는 뒤늦게 상황 파악을 하더니,
갑자기 휘발유를 사방에 뿌리고는,
[다 같이 타 죽기 싫으며 가까이 오지 마!] [당신! 저 여자분 빨리 데리고 나가요!]그녀는 박희철(차은수 친구)의 부축을 받으며 남자 PD를 지나치며 이렇게 말했다.
“고마워요···.”
남자는 무척 위험한 상황에서 경쾌하게 웃으며···.
[웰컴, 웰컴. 하하.]라고 대답했다.
얼마 후 도착한 경찰이 폐건물에 올라가니 오태호 일당은 전부 쓰러져 있었고, 남자 PD는 종적을 감춘 뒤였다.
김민혜는 남자 PD에게 감사를 표하고 싶어서 수소문했지만···.
[이번 KBC 신입 PD 중에 남자는 없다던데?]결국 그녀의 목숨을 구해준 PD는 찾지 못했다.
하지만 언젠가 그 PD를 다시 만나 은혜를 갚을 수 있길···.
구성 작가가 된 것도 어쩌면 그 PD와 만날 수 있을지 모른다고 생각해서였다.
‘그러고 보니 처음 봤을 때부터 낯이 익었어. 목소리도 어디선가 들어본 거 같고···. 설마···. 설마···.’
김민혜는 천천히 화장실 밖으로 나갔다.
그러자 문 앞에 있던 동수가 걱정스레 물었다.
“괜찮아? 안색이 많이 안 좋은데···. 혹시 병원이라도···.”
“아녜요. 괜찮아요.”
“오늘은 이만 들어가자! 내가 택시 잡아줄게!”
“아니에요. 오빠랑 더 얘기하고 싶어요.”
“응? 어, 그래···.”
그녀는 그를 빤히 보다가 말했다.
“···걱정해줘서 고마워요.”
그러자 동수는 눈을 깜박이다가 하얀 이를 드러내고 웃으며,
“웰컴, 웰컴. 하하!”
그 순간, 김민혜는 눈을 반짝이며,
‘···찾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