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REDOS RAW novel - Chapter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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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롤로그
거대한 우주에서 봤을 때 지구는 한낱 먼지와 같다.
그곳에 사는 인간들이 아무리 날고 기어도, 이대로 시간이 무한정 지나 우주를 자유롭게 오갈만한 기술력을 가져도, 그들이 전체와 비교하면 차마 표현하기 힘들 정도로 작다는 것은 불변의 사실.
그리고 바로 지금, 그 작디 작은 세상에 광활한 우주를 하나의 질서로 통일하려는 거대한 의지가 닿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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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명의 밤은 결코 어둡지 않다. 그리고 조용하지도 않다. 수많은 사람들이 각자의 사정을 안고 밤길을 나서고, 그렇게 모이고 모여 인파를 형성한다.
밤은 이제 결코 잠드는 시간이 아니다.
오히려 어떤 의미로는 낮보다 더 소란스럽기도 하다. 바로 지금 처럼.
“좀 놔라 이 쒸벌럼아!”
“쒸벌럼? 이 미친 새끼가 완전히 돌았네!”
일단의 무리가 길 한가운데서 길을 막고 있다.
원형으로 둘러싼 구경꾼들 때문에 안쪽의 모습은 제대로 보이진 않았지만, 딱 봐도 술을 먹고 싸움이 난 형세였다.
별로 넓지도 않은 길에 이렇게 사람들이 몰리니 지나가기 애매하다.
한 청년 역시 마찬가지였다.
“음……”
계속해서 들려오는 욕설을 보니 빨리 해결되긴 글렀다. 그는 짧게 혀를 차며 옆쪽의 골목으로 발길을 돌렸다. 조금 돌아가긴 하지만 저 인파를 뚫고 가는 것보단 훨씬 편할 것이다.
골목길에 들어서고 몇 걸음 옮기기 무섭게 소리들이 멀어졌다. 더불어 빛도 점점 줄어들며 어둑어둑 해졌다.
흔히 어른들이 말하는 ‘위험한 뒷골목’의 전형적인 풍경.
허나 그는 개의치 않았다. 대한민국은 치안이 좋기로 수위를 다투는 나라, 이 도시 역시 범죄와는 거리가 먼 청정구역이다.
그 정도 되는 나이의 신체건강한 남자가 골목길에 들어섰다고 겁을 먹는 게 더 이상하다.
그렇게 청년이 계속 걸어 마침내 가로등 불빛마저 들지 않는 어두운 곳에 도착했을 때였다.
우드득… 우직… 우직……
이상한 소리에 절로 걸음이 멎는다. 그는 전방을 조용히 주시했다. 어두운 곳에서 희끄무레한 윤곽이 계속 움직이고 있었다. 마치 엎드린 상태로 뭔가를 먹는 듯한 모습이다.
으드득! 으드득!
갑작스레 소리가 커졌다. 정체 모를 형체의 움직임도 격해졌다. 단단한 것을 이로 물어뜯는 듯한 소리도 들렸다.
여러 모로 기괴한 분위기였다. 보통 사람이라면 아무리 겁이 없어도 불길함을 감지하고 슬그머니 자리를 피했을 정도로.
허나 청년은 반대로 행동했다. 잠깐 손으로 턱을 매만지더니 오히려 한 걸음 다가선 것이다.
그때였다.
“크으으으…… 크으으으!”
의문의 형체가 몸을 일으켰다. 동시에 바닥에 있던 것의 정체가 눈에 확 들어온다. 사람이었다. 바닥에 천천히 흘러 퍼지고 있는 것은 분명한 붉은색의 피.
그가 착각한 게 아니다. 아까부터 비릿하게 퍼지고 있던 냄새는, 분명 질리도록 맡아본 적 있는 피냄새였다.
“식인종도 이런 식으로 사람을 뜯어먹진 않는데.”
“크으으으…!”
중얼거림과 동시에 짐승이 으르렁거리는 듯한 소리가 골목을 울렸다. 시체를 뜯어먹던 남자의 고개가 뚜둑 거리는 기괴한 소리를 동반하며 청년을 향했다.
창백한 피부, 죽은 생선과 같은 회백색 눈, 온 몸에서 비정상적으로 돋아난 검푸른 핏줄.
딱 봐도 정상적인 인간의 모습이 아니었다.
남들은 상상도 하지 못하는 경험들, 산전수전에 공중전까지 질리도록 겪었다고 자부하는 청년조차 본 적 없는 몰골이다.
아니, 비슷한 걸 본 적이 있긴 있었다.
실제가 아닌 미디어에서.
“좀비?”
“캬아아아!”
그 질문에 호응하듯 먹잇감을 발견한 남자가 청년을 향해 맹렬한 돌진을 시작했다.
팔다리를 아무렇게나 휘두르며 달려드는 그 모습은 끔찍했다. 누구라도 비명과 함께 주저앉아도 전혀 이상하지 않을 공포스러운 상황, 물론 청년은 조금도 당황하지 않았다.
그저 습관처럼 허리춤을 만지작거린 후 다른 한 손을 들어 빠르게 내리그었을 뿐이다.
자색 섬광이 번쩍인다. 동시에 달려들던 남자가 정수리에서부터 사타구니까지 대나무처럼 쪼개졌다.
소리도 없이 두 조각 난 남자는 달리던 기세 그대로 바닥을 나뒹굴며 사방으로 피와 내장을 흩뿌렸다. 순식간에 진득한 피냄새가 골목길을 자욱하게 매운다.
쓰러진 시체는 놀랍게도 죽지 않았다. 몸통이 두 쪽 나 내장이 모조리 쏟아졌는데도, 한 쪽은 살아 버둥거리며 청년을 향해 움직였다.
질기기는 강시공보다 더하다는, 그런 생각과 함께 청년이 슬쩍 뒤로 물러섰다. 그러면서 손을 재차 휘둘렀다.
눈으로 포착할 수 없을 만큼 빠른 속도, 한순간에 뿜어진 얇은 실 같은 빛줄기들이 버둥거리던 시체를 찰나지간 수십 조각냈다.
얼마간 더 꿈틀거리던 시체는 잠시 후 모든 움직임을 멈췄다. 그를 가만 지켜보던 청년은 뭔가를 발견하고 그 끔찍한 잔해들을 향해 성큼성큼 움직였다.
찌이익-
거북한 소리가 들린다. 조각난 고깃조각과 피바다 가운데서 뭔가가 꿈틀거리고 있었다. 거머리를 닮은 징그러운 생김새의 괴생명체, 크기는 대략 주먹만하다.
보기만 해도 소름이 돋는 그 끔찍한 벌레를 가만히 지켜보던 청년이 천천히 쭈그려 앉았다. 그리고 손가락으로 그걸 툭 건드렸다.
거머리 비슷한 생명체가 화들짝 놀라듯 급격히 움츠러든다.
팍!
그리고 별안간, 용수철처럼 엄청난 속도로 청년의 얼굴을 향해 튀어올랐다. 깜짝 놀란 청년이 벌레를 피했다. 허공을 가른 벌레는 뒤편 바닥으로 툭 떨어졌다.
평범한 사람이었다면 피하기 힘들었을 거다. 저 벌레가 얼굴에 닿아서 무슨 짓을 했을지 상상하기도 싫었다.
“……깜짝이야.”
그 역시 평범한 심미관을 가진 인간, 징그러운 벌레가 얼굴을 향해 정면으로 튀어오르면 그게 위협적이든 아니든 일단 놀라게 된다.
은근히 치솟는 짜증과 함께 청년은 뒤편에 떨어졌던 벌레를 손으로 덥석 낚아챘다. 강하게 붙들린 그 징그러운 생명체가 몸통을 부르르 떠는 것이 여지없이 느껴진다.
아무리 봐도 혐오스럽다. 대체 뭐하는 생물일까?
“방사능 오염 기생충? 운석에서 떨어져 나온 외계 생명체? 연구소에서 도망친 유전자 조작 벌레?”
청년이 손아귀에 들린 벌레를 요리조리 살피며 말을 걸었다.
“정체가 뭐냐? 혹시 말 할 수 있나? 아니면 사람의 생각을 읽는다든가? 텔레파시는?”
꿈틀- 꿈틀-
물론 입도 없는 그것이 대답할 수 있을 리 없다. 그때, 청년의 시선이 골목 안쪽을 향했다.
좀비에게 파먹힌 시체가 눈을 떴다. 이어 고개가 두두둑 돌아가며 청년을 향했다. 눈은 방금 그가 조각내버린 좀비처럼 회백색, 목덜미부터 시작된 푸른 핏줄기가 막 얼굴까지 돋아나는 중이다.
“크으……!”
시체가 손을 허공으로 치켜들며 허우적거렸다. 가만히 놔두면 일어서서 그를 노리고 달려들 것이다.
“어깨였던가.”
청년이 막 몸을 일으키던 시체를 향해 벌레를 든 반대편 손을 뻗었다.
곧게 겨눈 손가락 끝에서 섬광이 번쩍이고, 한 줄기 선이 일어서던 시체의 오른쪽 어깨를 꿰뚫었다.
총탄에 맞은 것처럼 뒤쪽으로 피가 튄다. 시체는 언제 움직였냐는 듯 줄 끊어진 인형처럼 널브러졌다. 첫 시체와는 달리 그것은 두 번 다시 움직이지 않았다.
청년은 다시 손아귀에서 버둥거리는 징그러운 벌레를 보며 생각에 잠겼다.
일종의 기생충 같다.
자리하는 위치는 오른쪽 어깨 근처, 정확히는 쇄골 밑 부근. 숙주를 통해 시체를 뜯어먹어 에너지를 보충하고 동시에 번식까지 하는 듯하다. 알을 깐다거나, 아니면 자가분열을 한다거나, 그도 아니면 순식간에 성장하는 유체를 쏟아넣거나.
짐작이 사실이라면 영화에서나 나오던 좀비 사태가 실제로 일어나지 말란 법 없었다. 물론 그런 영화들처럼 인류가 깡그리 쓸려나가진 않겠지만, 아주 경악스러운 사건이 될 것임은 분명하다.
문득, 그의 뇌리에 요즘 인터넷에서 떠돌던 괴담이 떠올랐다. 좀비를 목격했다는 다양한 괴담들.
주류 매스컴에서 한사코 조작일 뿐이라 주장하던 것들이다. 가끔 뜨는 동영상 속에서는 사람이 사람을 공격해 뜯어먹는 모습이라든가, 엄청난 속도로 달려들어 차 유리창을 부수고 안에 있던 운전자를 공격하던 모습 등……
한국에서만 떠돌던 괴담이 아니다. 전 세계적으로 꽤 시끄러운 이슈였다. 당시 그는 그런 동영상들을 보며 참 정교하게 잘 만들었구나, 어쩌면 새로 발표하려는 영화의 마케팅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했었지만.
“루머가 아니었나.”
그건 진짜였다.
청년이 벌떡 일어섰다. 그리고 손에 든 괴생명체를 마지막으로 쳐다보며 힘을 줬다.
화르르륵!
별안간 자색의 불꽃이 벌레를 휘감는다. 놈은 격렬하게 꿈틀거렸지만 몇 초 버티지 못하고 깨끗이 불타 사라졌다.
작은 얼룩조차 남지 않은 손을 탁탁 털어낸 청년은 원래 왔던 길을 되돌아 움직였다.
얼마 걸리지 않아 다시 대로로 나온 그는 아직도 싸움을 구경하는 인파를 거칠게 파고들어 길을 텄다. 밀쳐진 누군가가 욕설을 내뱉었지만, 슬쩍 고개를 돌린 청년과 눈이 마주치자 저도 모르게 시선을 피하며 꼬리를 내렸다.
그렇게 순식간에 길을 뚫고 나온 청년이 향한 곳은 근처의 편의점이었다.
잠시 후.
물건을 고르고 계산까지 마친 그가 편의점을 나섰다. 손에 든 건 종량제 봉투 4개에 가득 찬 음식들이다. 혹시 모르니 당분간 먹을 수 있는 정도로 넉넉히 샀다.
여전히 밖은 평화로웠다. 적어도 지금은 그렇게 보였다.
그 기생충 같은 벌레들은 어디서 발생한 걸까?
국가는 알고 있을까?
음지에서라도 제대로 대처하고 있는 건가?
일반적인 사람이라면 불안해하는 것이 마땅한 상황, 허나 그는 오히려 흥분하고 있었다. 스스로 그것을 인지하고 고개를 저었지만, 그래도 입가의 미소까지 떨칠 수는 없었다.
이유 모를 동질감과 안도감이 그를 감싼다.
그랬다.
이 세상에서 그 혼자만 특별하고 이상한 게 아니었다. 사람을 조종하고 시체를 파먹어 번식하는 기생충이라니, 자신이 겪었던 일만큼이나 이상한 사건이 아닌가!
원래 이랬던 거다.
세상은 평범한 이들이 알 수 없는 기묘한 사건들과 생명체들이 존재하고 있었다.
그것이 안도감과 비슷한 이해할 수 없는 감정을 선사했다. 그는 한동안 부드럽고 말랑한 감정을 느끼며 시끌시끌한 밤의 길거리를 감상했다.
이름 한세현, 24살의 휴학 중인 평범한 대학생이었지만, 동시에 전혀 평범하지 못한 청년의 감상이었다.
============================ 작품 후기 ============================
프롤로그 느낌이 괜찮았나요? 부디 취향에 맞으셨길 바랍니다.
앞으로도 잘 부탁드립니다. 그리고 추천 꾹! 부탁드립니다. (_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