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REDOS RAW novel - Chapter 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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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신
쾅!
“대체 이게 무슨 일이야!!”
상황실에서 커다란 고함이 터졌다.
몇 번을 들어도 달라지지 않는 보고 내용에 처음에는 황당함이, 다음으로는 혹시 이것들이 자신을 짜고 속이나 싶은 의심이, 그리고 마지막으로 분노가 치솟는다. 카즈오는 시뻘개진 얼굴로 다시금 고함쳤다.
“48명이 다 죽을 동안 대체 뭘 하고 있었어!! 누군가 공격한 거면 최소한 한 개 조에서라도 보고가 있었을 거 아냐?!”
“그것이, 말씀드렸다시피 아무런 보고도……”
“이런 제기랄! 그게 말이 된다고 생각해!”
쾅!
다시금 테이블을 내리친 카즈오가 제 분을 이기지 못하고 씩씩거렸다. 체면을 중시하는 그가 이토록 분노하는 모습을 보일 정도로 충격적인 일이었다.
하지만 추태는 여기까지다. 필사적으로 감정을 추스른 카즈오가 눈을 꾹 감으며 물었다.
“경계조가 죄다 죽을 때까지 아무 보고도 없었고, 범인이 누구인지, 몇 명인지도 모른다는 거지.”
“예. 상대가 사람인지도 확실치 않은 상황입니다.”
“……차라리 괴물의 소행이라면 다행이겠군.”
그러면 조금 위협적인 놈이 출현했구나, 하고 방비를 단단히 하면 된다.
하지만 그게 아니라 사람이라면, 부산의 생존자들이 단체로 힘을 합쳐 기습을 가했거나 다른 지역에서 온 세력이 선수를 친 것이라면.
“류한이라고 했던가.”
“예.”
타메모토가 곧장 대답했다.
“그놈들의 소행일 가능성은?”
“단서가 별로 없어 아무것도 확신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현재 저희가 취할 수 있는 행동은 세 가지 정도뿐입니다.”
“뭔가?”
“먼저 성문을 닫고 웅크리는 겁니다. 괴물의 소행이라면 우리 풍신 뿐만이 아닌 부산의 다른 생존자들도 피해를 입기 시작할 터, 그를 조사하면 상대가 어떤 존재인지 감을 잡을 수 있을 겁니다. 그 후 어떻게 대처할지 판단하면 됩니다.”
“그래, 상대가 괴물이라면 그게 현명하겠지. 그들에게서 피해가 발생하지 않는다면 인간의 짓이라는 것도 알 수 있을 테고. 괴물이 사람을 가리면서 해치진 않을 테니.”
“바로 그렇습니다.”
부산의 생존자들과 정체불명의 괴물들이 협력관계 비슷한 것을 맺었다? 말도 안 된다. 그런 허무맹랑한 가정까지 모두 계산에 넣는다면 아무것도 못하게 된다.
“하지만 이렇게 했을 경우 이목이 멀게 되는 것과 같습니다. 이곳의 생존자들과 저희의 관계가 썩 좋지 않으니까요.”
“……상대가 사람이라는 것은 알게 되겠지만, 누군가 우리 코앞에서 수작을 부려도 모를 것이란 소리지.”
“바다 길드를 기습으로 굴복시킨 것처럼, 이번엔 우리가 당할 수도 있습니다.”
정보라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풍신이 바다 길드를 무난하게 이길 수 있었던 것은 전적으로 아무것도 모르고 있던 상대를 깜짝 기습했기 때문이다. 미지의 존재를 두려워하여 경계조를 모두 철수시키고 웅크린다면 이번엔 그들이 당해버릴 수도 있었다.
물론 상대의 존재를 알긴 하니 마냥 무력하게 당하진 않겠지만, 그래도 적이 코앞에 들이닥쳐서야 알게 되는 것은 아무리 생각해도 위험하다.
“다른 선택지는 뭔가?”
“경계조의 인원을 늘리는 겁니다. 최소한 무엇에게 습격당했는지 보고할 수 있는 정도는 되어야 할 테니, 기존의 세 배는 되어야 합니다.”
“……”
경계조 하나에 12명은 넣어야 된다는 뜻이다.
전체 경계조 수를 감시망에 구멍이 뚫리지 않는 최소 혀용치인 여덟으로 줄인다 해도, 무려 96명이 필요하다. 기존의 두 배나 되는 숫자다. 교대까지 생각하면 거진 300명에 가까운 인원이 경계 임무로 묶여버린다는 뜻이기도 했다.
“마지막 선택지는?”
“철수하는 겁니다.”
“뭐라고?”
카즈오의 눈썹이 한차례 꿈틀거렸다. 허나 타메모토는 여전히 침착했다.
“인원수가 늘어난 경계조마저 보고도 못하고 당해버릴 경우를 생각해야 됩니다. 이번처럼 모든 경계조가 당하기라도 하면, 그건 정말 엄청난 타격입니다. 길드원들의 사기도 바닥에 떨어질 겁니다.”
“그래서, 정체도 모르는 놈들 때문에 천운이 따라 점령한 이곳을 그냥 버리자고? 다음엔 이곳을 먹기가 얼마나 어려워질 줄 알고? 또 대일 길드와의 관계는?”
잠깐 말을 끊은 카즈오가 위협하듯 으르렁거리며 선언했다.
“철수는 절대 안 돼!”
“……알겠습니다. 그러면 경계조 인원을 늘리는 수밖에 없군요.”
“열둘에서 여덟으로 줄이고, 경계 위치를 수정하도록 하지. 감시망 반경을 조금 줄이더라도 구멍이 뚫리지 않도록.”
“알겠습니다.”
대답을 들은 카즈오는 간부 두셋을 추가로 지목하며 인원배분과 경계시간표를 편성하도록 지시했다. 그 모습을 보던 타메모토는 은근하게 치솟는 알 수 없는 불안감을 애써 내리눌렀다.
그의 직업은 음양사, 점을 통해 미래에 대한 길함과 불길함을 미리 알 수 있다.
이 회의를 열기 전 쳐본 점에서는 대흉(大凶)이 나왔다. 그가 음양사 직업을 얻고 한 번도 본 적 없는 점괘였다.
하지만 타메모토는 그에 대해선 아무것도 말하지 않았다. 말해봤자 달라질 게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괜히 불안감만 심어주는 것보다는 그냥 모르는 채 최선을 다하는 게 낫다.
카즈오의 판단은 틀리지 않았다. 그들 풍신이 이곳 부산을 점령한 건 반 이상 하늘이 도운 덕분이다. 지금 여기서 물러난다면, 나중엔 도대체 얼마만한 전력을 동원해야 다시 이곳을 점령할 수 있을지 아무도 장담할 수 없었다.
그러니 어떤 난관이 닥쳐온다 해도 버텨야 한다. 이 고비만 넘기면 풍신은 한차례 크게 도약할 수 있을 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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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이다.
문하랑은 미친듯이 뛰는 심장소리가 행여나 상대에게 들릴까, 조마조마한 심정으로 힘껏 몸을 웅크렸다. 다행스럽게도 카즈오는 방 구석에 웅크린 그녀에게 아무런 관심도 없었다.
요즘 그는 문하랑을 괴롭히지도 못하고 있었다. 며칠 동안 경계를 나갔던 풍신 길드원들이 무더기로 쓸려나갔다는 모양이다. 그 중 제대로 무전을 성공시킨 이들조차 없다고 하니, 성 전체가 거의 초비상인 것도 당연했다.
허나 그렇게 다들 불안해하는 것과 달리 포로들, 특히 문하랑은 그에 대한 소식을 들을 때마다 터질 것처럼 뛰는 심장을 좀처럼 진정시킬 수가 없었다.
그다.
자신에게 힘을 약속했던 그 존재가 한 일일 것이다.
아직까지 그가 악마인지 신인지 아리송하긴 하지만, 어쨌든 그의 작품임이 틀림없었다. 그리고 마침내, 오늘이 바로 그가 말했던 때였다.
얼마 전 그녀는 몰래 방을 나섰다. 그리고 간부들이 회의를 하는 상황실 문짝 앞에서 대화를 엿들었다. 이전이라면 두려움 때문에 감히 엄두를 내지 못했을 행동이지만, 지금의 그녀에겐 두려움 따위는 존재하지 않았다.
돌파구가 생겼기 때문이다. 목적과 희망이 있다면 두려움 정도는 얼마든지 억누를 수 있다.
쾅!
거칠게 닫히는 문소리에 그녀의 몸이 한차례 움찔거렸다. 준비를 마친 카즈오가 방을 나간 것이다.
멀어져가는 발소리를 들으며 계속 웅크려 있던 그녀는, 대략 20분 정도 시간이 흐른 후에야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 자신이 누워있던 방석 밑을 손으로 뒤적였다. 이윽고 잡혀 나온 것은 납작하게 눌린 아공간 주머니다. 잠시 그것을 물끄러미 바라보던 그녀가 안의 내용물을 꺼내기 시작했다.
가장 먼저 나온 것은 총이었다. KFD12라는 이름을 가진 기관단총으로, 반동이 매우 적어 대충 겨누고 방아쇠를 당기기만 하면 제 몫을 할 수 있을 정도로 뛰어난 성능의 무기다. 물론 그녀는 그런 것까진 알 수 없었지만, 어쨌든 총이라는 것만은 알아봤다.
다음으로 나온 것은 류한의 정식 길드원에게나 지급될 만한 방어구, 그리고 몇 가지 일회용 보호마법이 내장된 장신구들이었다.
문하랑은 미약하게 떨리는 손으로 그것들을 차근차근 착용했다.
시선을 맞출 때마다 언뜻언뜻 떠오르는 은빛 글자들이 그녀가 착용하는 물건들이 얼마나 대단한지 보여준다. 길드장이나 착용할 법한 물건들을 전신에 걸치자 완전히 사라졌다고 생각한 자신감이 절로 샘솟았다.
마지막으로 형형색색의 액체가 든 유리병들을 확인한 그녀는, 자신의 무장을 마지막으로 점검한 후 방을 나섰다.
심장이 터질 것 같다.
두려움과 흥분이 공존하며 그녀의 정신을 끝없이 고양시켰다. 마약이라도 한 듯한 기분이다.
그녀는 부길드장의 방을 먼저 확인했다. 안으로 들어서서 욕실 등의 문을 열며 사람이 있는지 확인할 때마다 전신이 오싹오싹했다. 스스로도 대체 왜 이러는지 모를 정도로.
그 기묘하고 강렬한 자극은 상황실의 문을 열어 사람의 존재를 확인했을 때 급격히 증폭됐다. 안에는 그녀도 익히 아는 얼굴이 있었다.
타메모토는 뜬금없이 문을 열고 들어서는 낯선 차람의 여자를 보고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뭐냐?”
그렇게 물었다가 얼굴이 전혀 낯익지 않다는 것을 깨닫고 놀라 손을 뻗는다. 허나 그보다 문하랑의 공격이 더 빨랐다.
투두두두두두둑!
소음기가 장착된 기관단총이 연속으로 불을 뿜었다. 스킬을 사용하려던 타메모토의 전신에서 피가 터지며 마치 춤을 추는 것처럼 들썩거렸다. 그는 그대로 뒤로 넘어가버렸다.
“하아아으으……”
짐승의 것과 같은 신음성을 흘리며, 문하랑이 쓰러진 타메모토에게 다가갔다. 테이블 너머에서 쓰러진 놈은 바닥에 커다란 피웅덩이를 만들고 있었다.
문하랑을 쳐다보는 눈동자에서 급속도로 빠져나가는 생기가 느껴진다. 무언가 말을 하려는 듯, 입을 벌렸으나 쿨럭 하고 치솟는 건 약간의 핏물 뿐이다.
“좋았지? 여태까진?”
소름이 끼칠 정도로 크게 미소지은 문하랑이 묻는다.
“이 찢어죽일 쪽바리 새끼들 같으니…!”
콰직!
가볍지만 튼튼한 부츠를 신은 발로 쓰러진 타메모토의 손가락을 짓밟는다. 그리고 전신의 체중을 싫어 힘껏 비틀어 문대자, 곧이어 우두둑 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죽여버릴 거야… 죽여버릴 거라고. 다 죽여버릴 거야…!”
미친 사람처럼 중얼거리며 계속해서 죽어가는 타메모토를 짓밟아 망가트린다. 어느새 그의 숨은 끊어졌지만, 그것을 깨닫지 못한 문하랑은 계속해서 시체를 훼손하며 저주의 말을 퍼부었다.
길드장의 오른팔을 자처하던 이인자의 허망한 죽음이었다. 설마 심장부라 할 수 있는 이곳에서 난데없이 총을 든 적이 나타날 것이라곤 상상도 못했을 것이다.
그녀가 정신을 차린 것은 아래층에서 터진 폭음과 비명, 그리고 고함 소리를 들었을 때였다.
각종 무기와 연금술 포션이 담긴 주머니는 그녀에게만 주어진 것이 아니다. 다른 이들에게도 충분히 주어졌다.
완전히 넝마처럼 변해버린 타메모토의 시체에 침을 뱉은 그녀가 이전보다 확연히 거칠어진 움직임으로 방을 나섰다. 그리고 곧바로 계단을 통해 2층으로 내려갔다.
내려가기 무섭게 그녀의 눈에 풍신 길드원들의 뒤통수가 보였다. 놈들은 건너편의 무장한 포로들과 대치하며 전투를 벌이는 중이었다.
“막아!”
“젠장, 이 춍 새끼들이 대체 어디에 저런 걸 숨기고 있었던 거야!?”
악을 지르면서도 어떻게든 스킬과 방어구를 통해 공격을 막아내는 모습이 과연 만만치 않다. 하지만 설마 그들의 뒤쪽층에서 적이 내려올 것이라곤 상상도 못했을 것이다.
그녀는 황색빛 액체가 가득 든 유리병 하나를 꺼내들고 떠오르는 은빛 글자를 읽었다. 언뜻 읽긴 했지만 다시 확인할 필요성이 있다.
화염의 물약, 공기와 맞닿는 즉시 폭발하므로 취급에 주의를 요함.
그녀는 확인을 마치기 무섭게 그것을 내던졌다.
그림처럼 허공을 난 물약이 풍신 길드원들의 바로 뒤 바닥에 떨어지며 부서진다. 파삭 하는 유리 깨지는 소리와 함께 작은 불꽃이 일어난다 싶은 순간, 강렬한 빛과 함께 폭음이 터졌다. 물약을 던진 문하랑에게도 화끈한 열기가 훅 하고 끼쳤다.
“끄아아아악!”
“아아아아아아악!”
폭발은 물리적 충격보단 불꽃과 열기를 뿜어낸 것이 치명적이었다.
한순간에 전신에 불길을 휘감게 된 풍신 길드원들이 고통에 발버둥치며 절규와 함께 땅을 굴렀다. 어떻게든 불을 끄려는 본능적인 움직임이다. 한 여성 풍신 길드원은 주저앉아 제 얼굴을 긁어내리며 찢어지는 비명을 내지르고 있었다.
사람이 느낄 수 있는 고통 중 가장 강력한 것은 바로 작열통이다. 총을 겨누고 방아쇠를 당기려던 문하랑은 그 끔찍한 참상을 보고 행동을 멈췄다.
저절로 입가가 푸들거린다. 그러다 마침내 참지 못한 웃음소리가 흘러나왔다.
“흐흐…… 흐흐흐……”
문득, 그렇게 웃음을 흘리던 그녀의 눈이 반대편에서 똑같은 표정을 짓고 있는 사람들과 마주쳤다. 포로라 불리며 온갖 모진 고초를 겪었던 동지들.
마침내 참지 못한 그녀에게서 폭소가 터져나왔다. 반대편에서도 마찬가지였다.
불에 타들어가는 이들의 처절한 비명과 그녀들이 터뜨리는 웃음소리가 뒤섞인다. 치솟는 불길 사이로 광기와 희열에 가득 찬 문하랑의 눈동자가 번들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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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로드가 넘나 늦었습니다. 지송합니다. ㅠㅠ
부디 재밌게 읽으셨으면 좋겠습니다. 더불어 추천!! 부탁드립니다. (_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