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REDOS RAW novel - Chapter 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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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신
거리에 때 아닌 긴장감이 감돌았다. 이백이 넘는 풍신 길드원들이 사방으로 눈을 부라리며 건물을 수색하기 시작한 탓이다.
생존자들의 거처도 예외는 아니었다. 흉흉한 기세의 풍신 길드원들은 거침없이 행동하며 아무곳이나 제멋대로 뒤져댔다.
그들을 막을 만한 생존자들은 이곳에 아무도 없었다. 막기는 커녕 행여나 화를 입을까 일찌감치 자리를 피했고, 그 덕에 풍신은 아무런 제지도 받지 않고 건물 하나하나를 샅샅이 살필 수 있었다.
인원이 이백이나 되다보니 수색작업은 빠르게 진행되었다. 그들 모두가 한곳에 뭉쳐 다닐 이유는 없다. 거미줄처럼 일정 간격을 두고 사방으로 퍼져 수색을 진행하니 속도가 빠를 수밖에 없었다.
“씨팔 놈들.”
“에이.”
멀찍이 자리를 피했던 생존자들이 들리지 않게끔 욕설을 중얼거렸다.
모든 생존자들이 자리를 피한 것은 아니었다. 그들은 행여나 화를 입을까 들이닥치는 풍신 길드원들과 눈도 마주치지 않고 구석에서 가만히 있었다.
그런 생존자들을 향해 사방에서 날카로운 시선이 쏟아졌다. 쓸데없는 전투를 피하라는 카즈오의 엄명만 아니었다면 분명 시비가 벌어졌을 것이다. 경계조가 누구에게 당했는지 모르는 상황이니, 아군이 아니라면 일단 적대적으로 보게 되는 것은 당연했다.
그렇게 풍신 길드가 성 근처를 크게 돌며 수색에 열중할 때였다.
그 모습을 멀리서 지켜보는 눈길이 있었다. 바로 김유린이다.
그녀의 직업은 사냥꾼, 여태껏 창을 주무기로 사용하긴 했으나 총과 같은 원거리 무기를 사용하지 못하는 것이 아니다. 그리고 지금 그녀의 손에 들린 무기는 고작 총 따위가 아니었다.
마치 전봇대 일부를 뚝 떼어 놓은 듯한 짧고 두꺼운 몸체에 얼굴 전부를 가릴 만한 크기의 특수 조준용 기계가 달린, 전차나 헬기 등을 사냥하기 위해 만들어진 대전차 미사일 발사기였다.
“어디 보자……”
나직한 혼잣말과 함께 그녀가 목표물을 조준했다. 손바닥만한 화면에서는 풍신 길드원들이 다른 것들보다 좀 더 진한 검은색으로 표시되고 있었다.
먹잇감으로 삼기 딱 좋을 정도로 모여 있는 적들을 보니 절로 웃음이 나왔다. 여태까진 뿔뿔이 흩어져 있다가 당했으니, 이번엔 뭉쳐보자는 생각이 그리 어리석은 것은 아니다.
그냥, 약간 불쌍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설마 그녀가 쓰려는 이런 무기를 고려하진 않았을 테니까. 일반적이라면 고려하지 못하는 게 당연하다. 이런 경우까지 일일이 대비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삐비빅-
그녀가 조준하던 화면에서 나직한 전자음이 들렸다. 약 50초에 걸친 시간 끝에 마침내 조준이 끝났다는 뜻이다.
조준이 끝났으니 쏠 차례다.
방아쇠로 다가가는 그녀의 손가락이 미약하게 떨렸다.
지금 발사하려는 물건은 한 발에 8만 달러, 한화로 약 9600만 원이나 하는 미사일이다. 가격도 가격이지만 국방과학연구소에서도 4발 밖에 획득하지 못한 아주 귀한 물건이다.
게다가 지금 장전한 것은 류한의 마법공학자와 연금술사들의 개조를 거친 이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무려 에레도스 시스템에서 희귀함 등급의 아이템으로 구분되는 물건이었다.
아깝긴 하지만, 그만큼 효과 하나는 확실하리라. 어차피 이럴 때 써먹으려고 만든 물건이다. 결심을 내린 그녀가 굳센 마음을 먹고 천천히 방아쇠를 당겼다.
펑!
한순간, 그녀의 후방으로 사출되는 가스와 함께 미사일 하나가 튀어나왔다. 그것은 몇 미터 쏘아지다 말고 스스로 불꽃을 내뿜으며 급격히 허공으로 치솟았다.
푸쉬이이아아아악-!
날카로운 소리와 함께 약간의 연기를 남기고 급격하게 치솟는 미사일, 당연하게도 그 소리는 작지 않았다. 상당히 멀리 떨어져 있던 풍신 길드원들에게도 확실하게 들릴 정도였다.
“뭐야?”
그들은 소리가 난 방향으로 고개를 돌리며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상황이 상황인 만큼 경계심 어린 표정으로 소리의 근원지를 찾는 이들이 대부분이었다.
“보호막!”
그러다 어느 순간 한 길드원이 경기하듯 소리친다.
“빨리! 보호막! 빨리!!”
길드장도 간부도 아닌 일개 평범한 길드원의 외침, 허나 워낙에 다급하고 절박한 어조라 신성술사들이 서둘러 스킬을 시전했다. 짧은 주문이 끝나고 길드원들의 위로 투명한 보호막이 씌여진다.
“대체 무슨 일이야?!”
카즈오가 그렇게 외쳐 묻는 사이, 멀어지는 듯했던 기성이 급속도로 가까워졌다. 사방에 반사되어 울리는 듯한 그 소리에 모든 이들이 방향을 특정하지 못하고 우왕좌왕하는 순간, 하늘에서 무언가 벼락처럼 내리꽂혔다.
섬광이 번쩍이고 어마어마한 폭음이 터진다.
땅이 우르릉 흔들리고 열기를 품은 돌풍이 거세게 몰아쳤다.
새빨간 화염과 시커먼 뭉게구름이 그들의 중앙에 있던 사람들 전부를 집어삼키며 포효했다.
그 충격적이고 비현실적인 상황에 다들 비명을 지르며 바닥에 엎드리기 바빴다.
“산개!!”
카즈오의 외침과 동시에, 그리 멀지 않은 곳 건물에서부터 또 다른 굉음이 터지기 시작했다.
공기를 찢는 소리를 동반하며 날아든 유탄들이 아무 엄폐물 없이 노출된 풍신 길드원들에게 틀어박혀 연신 폭발을 일으켰다.
그야말로 혼돈의 카오스였다. 제정신을 유지하는 것이 이상할 정도였다.
그나마 카즈오를 비롯한 다른 간부들이 가장 멀쩡한 판단력을 유지하고 있었다. 허나 그들이 목에 핏대를 세우고 아무리 고함쳐도 통제가 먹히질 않았다. 힘껏 외친 고함은 끊이지 않는 폭음과 진동이 만들어낸 혼란에 아무런 반향도 남기지 못하고 그대로 먹혀버렸다.
“안 돼!! 이건 말도 안 돼!!”
이렇게 허망하게 죽을 인재들이 아니다. 어떻게 모집하고 키운 길드원들인데!
분노한 그가 길드원들을 통제하는 것을 포기하고 땅을 박찼다. 근처의 상가 건물 3층 창문에서 연신 불꽃이 터지는 것이 보였다. 틀림없이 저곳에서 공격을 가하는 것이다.
“죽여버리겠다!!”
눈이 뒤집힌 그가 검을 뽑아들고 내달렸다. 고풍스런 금색의 폼멜과 연한 녹색빛이 감도는 검신에서 희끗한 바람이 감돌았다.
순식간에 계속해서 총성이 발생하는 건물에 도착한 그가 강철로 된 문짝을 걷어차며 안으로 들어섰다. 문은 잠겨 있었지만 레벨이 30대를 넘는 그의 발차기를 견딜 정도로 튼튼하진 못했다.
분노한 채 전력으로 계단을 오르던 그는, 2층을 지나 꽤나 넓은 공간으로 이뤄진 3층에 오르기 무섭게 자신의 길드원들을 학살하는 흉수를 확인할 수 있었다.
덩치 큰 근육질의 여자가 단단히 고정된 고속유탄발사기를 붙잡고 계속해서 방아쇠를 누르고 있었다. 그가 올라왔음에도 신경조차 쓰지 않는 모습이다.
하지만 카즈오는 단번에 그녀에게 달려들지 못했다. 목표물과 그 사이에 자리한 한 여자가 조용히 검을 뽑아들었기 때문이다.
“비켜라! 계집!”
분노한 그가 단번에 거리를 줄이며 검을 휘둘렀다. 머릿속은 용암과 같은 분노에 물든 상태였으나 몸은 그가 평생 수련했던 검술을 완벽하게 펼쳐냈다.
일본에서도 인정받는 경유시마 일도류의 수제자인 그가 펼치는 검술은 결코 허접하지 않다. 물론 어디까지나 일반인의 기준에서 보았을 때다.
박수진은 아무런 동요도 없이 암항표를 밟으며 검을 베었다.
시작은 이십사수매화검이다. 그녀의 검에 서린 자색빛 은은한 검기가 허공에 매화와 비슷한 형상을 어슴푸레 남기며 쇄도했다.
단번에 상대를 베어버릴 생각으로 달려들던 카즈오는 그 화려하면서 날카로운 반격에 대경실색해 황급히 방어에 들어섰다.
검과 검이 부딪히고 마력이 충돌하는 자잘한 폭음이 연신 터진다. 전사 직업을 가진 카즈오는 상대와 검을 맞부딪칠 때마다 손아귀가 찢어지는 듯한 통증을 느끼며 간신히 신음을 삼켰다.
박수진의 직업은 검귀다. 서로의 레벨과 능력치는 비슷했으나 직업 스킬 칼날곡예의 위력이 엄청났다.
“이 무슨…!!”
까앙!
건물 내부를 쩌렁쩌렁 울리는 금속음과 함께 그가 몇 걸음이나 물러선다. 그런 상대를 귀신처럼 쫓는 박수진의 검이 재차 허공을 가르며 자색 잔생을 남겼다.
정신없이 뒤로 몰리던 카즈오가 이를 악물음과 동시에 스킬을 사용했다. 급속도로 가속한 그의 검이 전방의 박수진을 노리고 대여섯 번이나 빠르게 휘둘러진다.
[하아!!] 푸화아악!그리고 내지른 전투의 함성에 돌풍이 일어나며 보이지 않는 기파가 그를 중심으로 사방을 때렸다. 박수진은 그 무형적인 공격을 막는 것을 포기하고 뒤로 몸을 피했다.
간신히 밀리던 형세에서 벗어났다. 상대의 실력이 경악스러울 정도로 놀랍긴 하지만 그는 아직 모든 수를 내보이지 않은 상태였다. 재차 달려드는 박수진을 노리고 그의 검이 허공을 찔렀다.
알 수 없는 위기감에 몸을 튼 그녀의 옆을 희끗한 바람의 칼날이 찌르고 지나쳤다. 보고 피하려 했으면 불가능했을 빠른 속도.
“감히 내게 도전해!?”
검술로 밀렸다는 자존심의 상처를 입은 그가 작정하고 아이템의 능력을 발휘했다. 검을 휘두르는 궤적을 따라 연속해서 아지랑이처럼 희끗한 바람의 칼날들이 가공할 속도로 날아든다.
박수진의 표정이 미미하게 찌푸려졌다.
그래도 길드장이라고 제법이다. 어지간하면 멀쩡하게 제압해서 데려가려 했지만, 아무래도 사지 중 하나를 잘라야 제압이 가능할 듯했다.
끊임없이 날아드는 바람의 칼날들을 피하고 막아내던 그녀의 움직임이 변했다.
화산에서도 장로급만 익힐 수 있는 칠절매화검(七絶梅花劒)이 펼쳐진다.
이십사수매화검과는 확연히 다른 날카롭고 살기어린 검이 날아들던 바람의 칼날들을 무자비하게 절단냈다. 그 틈새를 귀신처럼 암항표로 파고든 그녀의 검이 한순간 사방을 점한다.
칠절매화 제 삼 초식, 향이 온 천지를 매운다(香滿天地).
한순간에 전면을 뒤덮으며 날아드는 검격에 눈앞이 새하얘진 카즈오가 무작정 뒤로 몸을 피했다. 허나 뒷걸음질보다 달려드는 속도가 빠른 것은 당연한 법, 게다가 박수진은 그가 상상도 못하는 보법까지 펼치는 중이다.
대체 어디를 어떻게 막아야 할지도 모르는 무자비한 공격이 카즈오의 움직이다 만 것 같은 어설픈 방어를 뚫어내고 그의 어깨를 베어냈다.
굳게 검을 쥔 오른팔이 잘려 허공을 난다. 뿜어지는 피와 함께 비명을 내지른 카즈오가 반사적으로 왼주먹을 뻗으며 몸을 피했다. 물론 그런 본능적인 공격에 당해줄 박수진이 아니다.
검 대신 뻗어진 왼손에서 점의십팔질(點衣十八秩)이 펼쳐지며 날아드는 주먹을 흘려내고 어깨를 밀친다. 동시에 내뻗어진 발은 카즈오의 다리를 강하게 걷어찼다.
허공에 붕 떠버린 카즈오가 바닥에 떨어져 정신없이 몇 바퀴를 굴렀다. 그것을 그림자처럼 따라붙은 박수진은 그가 멈추기 무섭게 가슴팍을 짓밟으며 재빨리 혈도를 점했다.
내공이 부족하기에 완전한 점혈은 아니다. 허나 카즈오는 한순간 전기에 감전된 듯한 감각을 느끼며 움직임이 반쯤 굳었다.
“아아…아아아악!!”
고통과 분노에 찬 고함을 내뱉는 그를 여전히 짓밟은 채 제압한 그녀가 허리춤의 아공간 주머니에서 포션 하나를 꺼내들었다. 연한 분홍빛이 도는 하급 치유의 포션.
그것을 피가 철철 나는 그의 상처에 대고 그대로 쏟아부었다.
치지직거리는 소리와 함께 하얀 증기가 뿜어졌다. 팔이 잘렸을 때보다 더한 엄청난 고통에 찢어지는 비명을 내지르던 카즈오는 그만 눈을 까뒤집으며 기절해버렸다. 쇼크로 사망하지 않은 것이 용했다.
약간 거칠어진 숨을 고르며 그녀가 반지를 통해 진동을 보냈다. 총 네 번의 진동, 혹시나 중요 인물을 생포했을 때 보내는 신호였다.
그때쯤 계속해서 터지던 굉음이 잠잠해졌다. 더 이상 길가에 보이는 살아 있는 풍신 길드원들은 없었다. 전부 죽인 것은 아니지만, 대부분이 길바닥에서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폭사당했다.
처음 날아와 꽂힌 개조된 대전차 미사일의 덕이 컸다. 그 폭발로 죽은 자는 십분지일도 되지 않았으나 그들 전부를 혼란의 도가니로 밀어넣기엔 차고 넘쳤다.
어딘지도 모를 곳에서 날아온 미사일이 엄청난 폭발을 일으킨 상황이다.
순간적으로 눈과 귀가 멀고 거센 돌풍과 함께 땅이 흔들려 중심을 잃을 정도의 위력이었다. 미리 알고 대비하고 있지 않았다면 누구라도 공포에 질려 제대로 된 판단력을 잃어버릴 상황이다.
덕분에 신소진은 몇 번 방해도 받지 않고 이리 뛰고 저리 뛰는 무력한 사냥감들을 무자비하게 폭사시킬 수 있었다.
이제 남은 것은 건물 안으로 피했거나 사정거리를 벗어나 도망친 놈들을 정리하는 것이다. 제대로 통제도 받지 못하고 뿔뿔이 흩어진 놈들을 사냥하는 것쯤은 그녀들에게 결코 어려운 일이 아니다.
신소진은 잔뜩 열이 받아 뜨거운 고속유탄발사기를 그대로 아공간 주머니에 수납했다. 박수진은 기절한 카즈오를 튼튼한 가죽끈으로 단단히 구속해 들쳐업었다.
국방과학연구소에서 등장했던 초록색 등급의 중간 보스 가죽으로 만든 물건이다. 행여나 구속이 풀릴 염려는 없다.
먼 곳에서 자리잡고 있던 김유린은 일찌감치 장비들을 챙기고 이곳으로 움직이고 있을 터였다. 그녀들은 사전에 약속했던 장소를 향해 느리지도 빠르지도 않은 속도로 걸음을 옮겼다.
더 이상 완벽할 수 없는 일방적 승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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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신 파트 완입니다.
부디 재밌게 읽으셨길 바라며, 추천 꾹!! 부탁드립니다. (_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