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REDOS RAW novel - Chapter 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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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저의 다르바드
파트릭의 필사적인 중재로 멜그소와 뷰리앙은 일단 자신들의 거처로 돌아갔다.
뽑혀진 손목을 치료받은 멜그소는 끝까지 세현을 죽일 것처럼 노려보며 떠나갔고, 뷰리앙은 잠시간 더 남아 파트릭과 이야기한 후 돌아갔다.
– 나는 이번 일에서 일단 빠지도록 하지. –
세현을 적대하지도, 그렇다고 도와주지도 않겠다는 이야기다. 하지만 뭔가 잘못됐다는 생각이 들면 당장 세현과 적대할 것이라는 의미 역시 있었다.
그렇게 일이 처리되는 동안, 세현은 원래 자리에 앉아 시간을 죽이는 중이었다.
그러다 창백한 표정의 시노부를 쳐다보게 됐다. 그는 세현과 눈이 마주치자마자 침을 꿀꺽 삼켰다.
“얼마나 강하신 겁니까?”
말투가 미약하게 떨리는 것이 그대로 느껴진다.
충분히 놀랄 만도 했다. 그들 대일 길드는 파란색 눈동자의 괴물을 상대해본 적 있다. 동원할 수 있는 모든 화력을 쏟아붓고서야, 그러고도 상당한 피해를 입은 채 간신히 처리할 수 있었던 것이 바로 파란색 등급이다.
그런데 지금, 그런 파란색 등급 이종족을 상대로 단번에 손목을 뽑아버린 존재가 있다. 앞서 보여준 보라색 룬만 해도 기겁할 일이거늘, 멜그소를 상대로 보여준 모습은 더 경악스러웠다.
솔직히 보라색 룬을 보며 속임수 아닌가 하는 생각을 했다.
물론 지금도 안 믿겨지긴 하지만, 적어도 파란색 눈동자를 가진 존재를 순식간에 죽여버릴 능력이 있다는 것만큼은 확인했다. 그러니 앞서 보여준 보라색 룬도 자꾸 진짜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든다.
그는 멜그소의 공격을 보지도 못했다. 그냥 눈 한두 번 깜빡일 사이에 회색 무언가가 허공을 갈랐고, 세현은 그것을 피하는 것으로도 모자라 코앞까지 접근해 손목을 뽑아버렸다.
“내가 얼마나 강하냐고?”
“예.”
“마음만 먹으면 너희 대일 길드를 무너트릴 정도는 되지.”
“하면……”
어째서 그런 힘을 갖고도 그들 대일 길드의 협상에 응했는가. 만약 자신이 그런 힘을 가졌다면 모조리 차지하려 들었을 텐데.
“시마네 현은 당장 소화하기엔 너무 멀어. 그리고 이 땅에 대해선 조사를 허락해줬을 뿐이지, 너희에게 다른 권리를 줄 생각은 없다. 부산물을 조금 나누는 것 정도는 모르겠지만…… 이해했나?”
시노부의 속내를 읽은 세현은 묻지도 않은 질문에 대답하며 느긋하게 의자에 몸을 묻었다.
“나는 욕심이 적은 게 아니야. 그저 시간이 좀 걸리더라도, 그래서 약간 돌아가더라도 확실히 하고 싶은 거지. 뭐든지 성급하게 먹으면 체하는 법, 결과적으론 이 편이 더 빠르고 쉽다는 것을 알 뿐이다”
“……그러면, 나중엔 어떻게 되는 겁니까?”
“글쎄. 우리가 그런 것에 확답해줄 수 있는 친한 사이던가?”
시노부는 침을 삼켰다.
눈앞에 느긋하게 의자에 앉은 상대가 더 없이 위험한 존재처럼 보였다. 그것이 그 스스로의 착각인지, 아니면 실제로 무언가 기세에 눌린 것인지 알 수 없다.
하지만 한 가지는 확실했다.
적대하면 안 될 존재라는 것. 다른 모든 것을 제쳐두고 지금 보여준 개인으로서의 힘만 따져도 그렇다.
“저희는 류한을 적대할 의사가 없습니다.”
“들었던 말 같군.”
“이곳을 감추려 했던 것 죄송합니다.”
“했던 사과를 다시 하다니, 일본인은 예의가 바르다던데 그게 사실인 모양이야.”
다 알면서도 피식 웃으며 응대하던 세현이 손을 내저었다.
“말은 됐다. 앞으로 두고 보면 알겠지.”
시노부는 절로 나오려는 침음성을 삼켰다.
이곳의 존재를 숨기려 한 대가를 아무래도 톡톡히 치뤄야 할 것 같다. 차라리 처음부터 공개했으면 정당하게 일정 몫이나 나눠주라 주장할 수 있었을 텐데.
안 그래도 심기를 거슬러선 안 되는 상대에게 차마 이곳에서의 이득을 나누잔 말을 꺼낼 수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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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노부와의 대화가 마무리 되어갈 무렵, 뷰리앙을 배웅나갔다온 파트릭이 돌아왔다.
– 일이 골치아프게 됐어. –
“나를 탓하려는 건 아니겠지?”
– 그럴 리가. 내 불찰이니라. 멜그소가 그렇게 신중하지 못할 줄이야…… 오히려 그 정도로 끝내주어 고맙다고 해야겠지. –
역시 말이 통한다. 세현이 고개를 끄덕이자 그가 한숨과 함께 다시 말을 꺼냈다.
– 문제는, 멜그소가 이후 어떻게 행동할지 나도 예상을 못하겠군. –
“가기 전까지 모습만 보면 나를 죽이려 들 것 같은데.”
– …… –
파트릭은 대답이 없었다. 아마 본인도 그럴 확률이 높다고 생각하는 듯하다. 그녀가 이곳을 퇴장하며 내보이던 살기는 진짜였다.
” 내가 그녀를 죽이려 들면, 막을 텐가?”
고뇌하던 파트릭이 고개를 저었다.
–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은 이것을 종족간의 문제로 확대시키지 않는 것 뿐이다. –
“그 정도면 충분해. 나를 죽이려는 자들이니 내가 알아서 처리하지.”
세현은 짐짓 오만하게 들릴지도 모르는 대답을 하며 화제를 돌렸다.
“협력관계가 되면 어떤 지원을 해줄 수 있나? 우리가 해줘야 할 것은 뭐가 있고?”
– 흠…… 받아야 할 것은 당장 생각나는 게 없다. 우리를 적대하지 않고 동맹이 되는 것이 일차적인 목표였으니. 다만, 우리가 지원할 수 있는 건 장비 정도가 있겠군. 다른 인간들을 보니 입고 있는 장비가 그리 좋지 못하던데. –
“그리 좋지 못하다고? 조사단 전부 말인가?”
– 한쪽은 그럭저럭 좋았지만, 그래도 부족하지 않나? –
세현과 파트릭 양쪽 전부가 의아한 표정을 지어낸다.
대일 길드야 그렇다 쳐도, 세현의 류한 길드원들은 전부 크로나드 세트를 착용하고 있다. 경갑옷을 사용하는 직업군들은 리오론도 왕국의 정예 레인저 방어구를 착용 중이다.
모두 희귀함 등급의 물건들이었다. 어디서 ‘그리 좋지 못한’ 장비라는 소릴 들을 물건들이 아니다. 다른 길에서는 길드장이나 사용할 법한 것들인데.
혹시 눈으로만 봐서 그런 건가.
세현이 곧장 무한의 주머니에서 크로나드 성기사단 중갑옷 한 세트를 꺼내들었다. 허공에서 물건이 튀어나오는 모습에 파트릭이 놀라든 말든, 그것을 내밀며 묻는다.
“내 길드원들이 착용한 갑옷이다. 이게 부족하다고?”
[크로나드 성기사단 중갑옷(희귀함): 착용자에게 하급 마법 저항력을 부여한다. 방수와 더러움 방지, 온도조절과 경령화 마법이 걸려있다. 손상이 심하지 않을 경우 착용자의 마력을 흡수해 스스로 복구된다.*하급 마법 저항력: 마법적 상태이상과 피해 효과를 경감시킨다.]
– 희귀함 등급인가. 옵션은 나쁘지 않군. –
“헌데 왜?”
– 딱 봐도 일반 금속이 아닌가. 내가 강도를 시험해봐도 되겠나? –
“물론. 완전히 부수는 게 아니면 복구는 가능하니까.”
– 그렇다면 잠시 있게. –
파트릭이 허리의 벨트에서 완드를 꺼내들어 갑옷을 겨눴다.
[칵스.] 콰드득!짧은 주문과 함께 뿜어진 회색빛 기운이 갑옷의 일부를 쥐어짜듯 비틀어버린다. 잠깐 저항하던 갑옷은 이내 버티지 못하고 형태가 틀어졌다. 만약 사람이 입고 있었다면 내부의 몸통이 뒤틀려 치명상을 입었을 것이다.
– 역시 약해. –
“……그것보다 더 단단한 갑옷을 만들 수 있다고?”
– 물론이다. 이건 옵션에 비해 너무 무르군. 나름 잘 만들긴 했지만. –
“혹시 옵션도 더 좋게 할 수도 있나?”
– 누가 입을 것인지에 따라 다르지. 소수 중요인물들이 입을 물건이라면, 꽤 많은 재료가 들어가겠지만 가능하노라. 허나 휘하 인물들에게 고루 나눠줄 생각이라면 이것 이상은 부담이 크다. –
세현의 눈동자에서 한차례 빛이 감돌았다.
“사실 나는 이곳의 광물들만 염두에 두고 있었는데.”
– 역시 그런가? 허나 우리 샬란 장인들이 아니고선 다루기 까다로운 것들 뿐이지. –
“그럼 우리 길드의 생산직들을 연수 보내면 되겠군. 혹시 아나? 이쪽 장인들도 뭔가 배울 기술이 있을지.”
– 연수? –
연수라는 단어가 파트릭에게 어떤 단어로 번역되었을지 잘 모르겠다. 허나 흥미로워하는 표정을 보니 뜻은 제대로 전달된 모양이다.
– 나쁘지 않군. 아주 새로운 개념이다. 물론 이쪽이 일방적으로 기술을 가르쳐주게 될 테지만. –
“대가로 뭘 주면 좋겠나?”
– 그건 차차 생각해보도록 하지. 우리는 거래가 아닌 협력을 이야기하는 중이니…… –
그 말이 맞다.
설령 어느 한쪽이 상대에게 더 많은 무언가를 베풀게 될지라도, 계속 협력관계를 이어가는 한 그것은 결코 손해가 아니다. 종족은 달라도 서로의 목적이 같은 이상 충분히 같은 길을 걸어갈 수 있다.
딱히 파트릭을 믿어서 그리 생각하는 것은 아니었다.
세현은 지금의 상황을 믿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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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반드시 죽여버릴 테다!! –
자신의 거처로 돌아온 멜그소는 주저없이 기사단 전체를 끌어모았다.
법사와 환영술사들은 물론, 비상시가 아니라면 절대 부르지 않을 베브아냐 가문의 장로들과 기사대장들까지 호출했다. 거기에 지하에 동면시켜놓은 키메라들까지 일깨웠다.
– 가주, 상대가 얼마나 강하기에 이리 모든 전력을 끌어모으는 겐가? –
– 나를 단번에 제압할 정도! –
장로 다섯이 일제히 놀란 표정을 짓는다.
그들 역시 멜그소와 같은 파란색 눈동자를 갖고 있다. 그렇기에 단번에 제압했다는 것에 놀라는 것이다.
– 남색 등급인가? –
– 그래! 파트릭이 보라색 룬을 봤다고도 했어. 남색은 되겠지. –
순 사기꾼은 아니다. 하지만 정말로 보라색 등급을 혼자서 잡았을 리는 없다.
그녀는 보라색 등급 몹을 직접 겪은 장본인이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개인이 그 정도 무력을 소유할 수 있을 리 없었다.
아주 실력이 없는 놈은 아니다. 적어도 그녀보단 강하지만, 그 무력을 바탕으로 사기를 치고 있는 놈이었다.
아마 파트릭이 바보처럼 그냥 속아넘어가진 않았을 것이다. 적절한 무력시위와 함께 보라색 룬을, 혹은 그 비슷한 물건을 보여줬다면……
어째서 그를 속여야만 했을까. 결코 그들 종족에게 좋은 목적은 아닐 것이다. 애초에 속임수를 쓴다는 것부터가 믿어선 안 될 존재라는 방증이 아닌가.
설령 그게 진짜 보라색 룬이고, 그놈의 세력이 보라색 등급 괴물을 처리할 수 있는 힘을 갖고 있다 해도, 지금 이곳에 있는 것은 고작 50명 뿐이다.
– 적은 다 합쳐서 50명 뿐, 하지만 그 수장 놈이 굉장히 강하니 방심은 금물이다! –
멜그소가 워낙에 광분하는 탓에 휘하의 전력들이 빠릿빠릿하게 모여들었다. 호출을 한 지 30분만에 준비를 마친 전부가 건물 앞에 집합했다.
근처의 샬란 주민들이 무슨 일인가 싶어 그들을 힐끗거리는 게 느껴진다. 허나 그딴 것에 신경 쓸 틈은 없다.
아직도 뜯겨졌던 손목에서 올라오는 고통이 생생했다. 게다가 그 순간에 느꼈던 무력감과 공포가 고고하던 자존심에 깊은 상처를 냈다. 놈을 죽이지 않고서는 절대 치유할 수 없는 상처다.
그래서 멜그소는 도열을 마친 병력들 앞의 단상에 섰다.
– 파트릭의 저택에 남색 등급으로 추정되는 인간 하나, 그리고 노란색 등급으로 추정되는 인간 병사들 49명이 있다! 목적은 불명, 허나 나는 놈이 우리 샬란들에게 결코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라 확신한다. –
천에 가까운 정예 병력들이 미동조차 하지 않고 그녀의 말을 경청했다. 모두가 최소 노란색에 준하는 이들이다. 뒤쪽에서 흑마법사들의 통제를 받는 기괴한 몰골의 키메라들조차 아무런 움직임 없었다.
– 놈들의 수장이 나를 공격했다. 감히 우리 영토에 들어와 나 멜그소를 공격하다니…! 이를 묵과하면 종족과 가문의 명예가 땅에 떨어질 것은 자명한 바! 놈이 아무리 남색 등급의 무력을 소유했다 해도 우리는 놈을 처단해야만 한다! 이길 수 있다, 반드시 이긴다! –
멜그소가 손을 번쩍 치켜들었다.
그러자 기다렸다는 듯 900에 가까운 병력이 함성을 내질렀다. 지저 전체를 울릴 듯한 거대한 고함이었다.
– 베브아냐의 진정한 힘을 보여줄 시간이다! 우리를 가로막는 자가 있다면, 설령 그것이 파트릭의 병력이라 해도 용서치 말고 찢어죽여라!! –
병사들의 함성을 집어삼킬 정도로 증폭된 분노에 찬 고함이 사방을 쩌렁쩌렁 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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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는가.”
워낙에 큰 소리라 한참이나 떨어진 파트릭의 저택에서도 모두 들렸다. 이곳이 지저라는 특성 덕분이기도 했다.
파트릭의 저택 꼭대기에 서서 지긋이 눈을 감은 채, 그 소리를 음미하던 세현의 입가가 비뚜름하게 올라간다.
멜그소가 그에게 공격을 가한 순간부터 이 상황은 예정된 일이었다. 어차피 쓸어버릴 것들이라면 한 번에 모아서 처리하는 게 더 편하기에 놓아줬을 뿐이다.
전신의 참격 스킬도 준비된 상태고, 이번에 새로 얻은 모래시계 아이템도 있다. 준비는 만전이었다.
불러낼 존재는 이미 정해두었다. 대규모 적을 상대로 확실하게 시선을 끌어줄 수 있는 존재로.
세이라크는 단단하긴 하나, 멜그소 역시 파란색 눈동자고 그 비슷한 존재가 더 없으리란 법이 없다. 덩치만 큰 그 녀석은 허무하게 죽을 수도 있다.
국방과학연구소에서 만난 악마의 경우 2% 부족하다. 놈이 할 수 있는 일은 세현이 더 잘 해낼 수 있으니, 굳이 지금 불러낼 필요가 없다.
이아노소그는 죽은 것이 아니라 불러낼 수가 없다. 놈은 봉인되었을 뿐이다.
여왕은 충분히 강력하나 남색 등급이라는 점이 조금 걸린다. 가능하면 더 긴 시간을 활동할 수 있는 존재가 좋다.
크로나드는 죽는 순간까지 시스템에 속하지 않았던 존재라 소환이 불가능하다.
“소환하면 이름은 들을 수 있으려나.”
언제까지 왕자라고만 부를 수는 없지 않은가. 앞으로 자주 부려먹게 될지도 모르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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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늦기 전에 제가 왔씁니다!!
오늘도 부디 잼있게 읽으셨으면 좋겠습니다. (__) 추천도 꾹! 부탁드립니다.
p.s. 쪽지에서 우다다 도망가신 당신…… 의성어가 귀여워서 혼났습니다.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