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REDOS RAW novel - Chapter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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떠날 준비
그리 넓지 않은 복도의 창문으로 들어온 달빛에 청월의 검날이 시퍼렇게 빛난다. 야구배트를 든 남자가 저도 모르게 침을 꿀꺽 삼켰다.
“식량을 모으든 말든, 남들이 다 합의했든 말든, 그게 지금 이 상황이랑 무슨 상관인데?”
“이, 일단 그 무기부터 치우고, 그 다음에 이야기합시다.”
장도리 든 남자가 말투까지 바꿔가며 말했다. 허나 세현은 코웃음도 치지 않았다. 그저 싸늘한 눈으로 이것들을 어떻게 할까 고민했다.
무림이었다면 말할 필요도 없이 보자마자 죽였을 것이다. 하지만 이곳은 무림이 아니다. 그가 사람을 아무 거리낌 없이 죽일 수 있는 냉혈한이라는 사실을 혜진이 알게 만들기 싫었다. 그렇다고 이것들을 무사히 돌려보내고 싶지도 않다.
세현이 그 이중적인 감상과 싸우는 사이, 자신들의 목숨이 풍전등화처럼 위험하다는 것도 모르는 한 남자가 시비조로 말을 꺼냈다.
“그거, 가검 아니야?”
“……뭐?”
이걸 보고 가검(假劍)이라는 말을 꺼내다니, 눈깔이 썩기라도 했단 말인가?
황당해진 세현이 말을 잊었다. 헌데 남자들은 그의 침묵을 어떻게 해석한 건지 슬금슬금 움츠렸던 몸을 펴기 시작했다.
콰르릉-!
비라도 오려는 듯, 한차례 창밖에서 빛이 번쩍 하더니 우렁찬 천둥 소리가 들렸다. 남자들 중 식칼을 들고 있던 자가 슬그머니 칼끝을 들어 세현을 겨눴다.
“좋게 말할 때 그 장난감 내려놓고 순순히 협조해라.”
“……하나만 묻자.”
그것을 본 세현은 고민을 접고 결정을 내렸다. 그리고 질문을 던졌다.
“왜 이렇게 우리집에 집착하는데?”
“네 집에 식량이 많을 테니까.”
각종 공구로 도어락을 해제하려던 남자가 대답했다. 세현이 그에게 시선을 주며 슬쩍 눈을 가늘게 뜬다. 그러고 보니, 어디서 본 듯한 얼굴이다. 그것도 최근에.
“그때, 엘리베이터에 같이 탔던 게 너였던가?”
세현이 편의점에서 산, 커다란 종량제 봉투 4개에 가득 채운 음식을 들고 집에 들어섰을 때를 말함이다. 남자는 짐작이 맞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아, 그랬군.”
종량제 봉투 4개. 그렇게 많은 양은 아니다.
하지만 이런 위기 상황에서라면 다르다. 저 남자는 그걸 욕심냈던 거다.
다른 집들의 식량도 공유라는 명목하게 손에 넣으면서 겸사겸사, 아니면 순서를 바꿔, 다른 집들의 식량을 털어 공유하자는 소수의 의견이 나온 참에 세현이 가진 음식이 떠올랐을지도 모른다.
어쨌든 다른 이들도 아는 눈치인 걸 보아하니 저 남자가 정보를 제공해서 이 사태를 초래한 건 확실한 듯했다.
“이제 상황파악 끝난 모양인데, 다치기 싫으면 당장……!”
야구배트를 든 남자가 호기롭게 목소리를 높이며 한 발 앞으로 나섰다. 세현의 검이 가짜라고 확신한 자세다.
물론 그건 자살행위였다. 청월은 가검이 아니고, 설혹 그게 없더라도 세현은 이들을 손가락 하나로 모조리 죽일 수 있으니까.
쩌억!
보이지도 않는 속도로 휘둘러진 검집이 야구배트를 든 남자의 얼굴 옆면을 가격했다. 고개가 등까지 돌아간 남자는 비명조차 지르지 못하고 그대로 쓰러져 경련했다.
식칼 든 남자가 놀라서 반사적으로 세현에게 무기를 휘두른다. 기다렸다는 듯 청월이 움직이고 검광이 번쩍인다. 식칼 든 손이 통째로 잘려나가며 피분수가 솟구쳤다.
“그르르륵…”
손과 함께 목까지 반쯤 잘린 남자가 무너지듯 쓰러졌다. 그때까지 멍청히 서있던 장도리 든 남자는 자신의 얼굴에 튄 피를 떨리는 손으로 만져보더니, 다리에 힘이 풀려 그대로 주저앉았다.
“사, 살려줘.”
“내가 왜?”
세현이 헛웃음을 흘렸다. 복도와 벽이 온통 피로 흥건한데, 기괴하게도 그에겐 한 방울의 피도 튀지 않았다.
“두 번이나 남의 집에 무기를 들고 얼쩡거렸으면, 역으로 당할 각오도 했어야지. 그 정도도 모르나?”
“다, 다시는 안 그러겠습니다! 제가 잠깐 미쳤나 봅니다! 제발, 그, 그러니까 용서를…!”
콰직!
검집에 머리통이 가격당한 남자의 눈이 풀렸다. 정수리에서부터 시작된 핏줄기가 이마를 타고 턱까지 떨어지고, 그는 목숨을 구걸하던 자세 그대로 뒤로 넘어갔다. 잠시 침묵하던 세현이 천천히 입을 열었다.
“이럴 때마다 난 신기해. 이제 겨우 하루 지났어. 근데 벌써부터 이렇게 변한다니까? 상황이 멀쩡했으면 마주쳐도 웃으면서 인사했을 텐데, 안 그래?”
혼자 남은 공구 남자는 구석에 처박힌 채 대답도 못하고 전신을 사시나무처럼 떨어댔다.
“멍청한 것 같으면서도 똑똑하고, 둔한 것 같으면서도 재빨라. 제 안위가 달린 일에선 특히나. 그래서 난 성악설을 믿어. 경험상 인간은 원래 사악하더라고. 고난이 닥치면 일단 주변부터 털어먹으려 들지.”
그리고 세현이 다시 웃었다. 그건 어떻게 보면 비웃음처럼 보이기도 했다.
“당장 나만해도 그랬으니까. 난 내가 그렇게 악랄해질 수 있을 거라고는 상상도 못했었거든. 원래는 법 없이도 살 수 있는 착한 시민이었는데.”
“제, 제발, 사, 살려, 살려주세……”
푹!
검날이 단단한 이마를 두부처럼 뚫고 들어갔다. 비명도 못 지르고 절명한 남자의 몸이 축 늘어지며 들고 있던 십자 드라이버를 떨궜다.
콰르릉!
창 밖에서 다시금 번개와 함께 천둥소리가 울렸다.
그리고 갑작스레 엄청난 폭우가 쏫아지기 시작했다. 비 휘몰아치는 소리가 방금 울린 천둥하고 맞먹을 정도였다.
시체들이 쏟아내는 피로 난장판이 된 현관 앞 복도를 보던 그가 창문 바깥으로 시선을 던졌다. 그리고 고개를 갸웃했다.
“한겨울에 천둥번개와 장대비라……”
이상한 날씨다. 아마 오늘 밤, 이것보다 더 큰 이상한 사건이 일어날지도 모르겠다.
세현은 피 한 방울 묻지 않은 청월을 갈무리하며 집 안으로 들어섰다. 문이 닫히고 여느 때처럼 전자도어락의 나직한 소리가 복도에 울렸다.
으아아아아-!
그리고, 계단을 타고 아래층에서부터 찢어지는 비명이 올라왔다.
@
철푸덕!
하늘에서 빗줄기와 함께 떨어진 무언가가 한차례 크게 꿈틀거렸다. 이윽고 그것이 서서히 몸을 일으킨다.
쿠르륵-
의미 없는 소리를 내며 주위를 둘러보는 반투명한 그건, 마치 오랑우탄의 몸에 두꺼비의 머리를 물로 빚어 만들어놓은 듯했다. 물컹거리는 투명한 몸 안쪽에서 선명한 분홍빛 내장들이 적나라하게 드러나 혐오스런 느낌을 준다.
“키아…?”
주변을 서성거리던 좀비들이 그 괴생명체를 보고 괴성을 내지르려다 멈칫했다. 그리고 즉시 몸 돌려 도망치기 시작했다. 유리로 만들어진 듯 반투명한 붉은색 눈동자를 뒤룩뒤룩 굴리던 괴물의 입이 벌어쳤다.
쫘아악!
공기를 찢는 소리와 함께 번개처럼 튀어나온 선홍빛 혀가 좀비 한 마리를 낚아챈다. 뻗어나간 속도만큼이나 빠른 속도로 끌려오는 좀비를 삼키기 위해 그 괴물의 입이 몇 배나 크게 찢어졌다.
콰드득!
“캭!”
단말마의 비명을 남기며 좀비의 육신이 투명한 괴물 내부에서 짖뭉개진다. 하지만 곧 괴물은 씹던 좀비를 퉤 소리나도록 길가에 내뱉었다. 형편없이 뭉개진 좀비의 육신이 버둥거리든 말든, 물로 이뤄진 그 괴물이 다시 주위를 살피더니 한 곳으로 이동하기 시작했다.
목적지는 인간의 냄새가 나는 아파트 입구. 망가진 현관을 지나쳐 잠시 멈춰 선 놈이 승강기와 굳게 닫힌 비상계단 강철문을 번갈아 쳐다봤다.
곧 괴물의 육신이 무너졌다. 하지만 결코 통제력을 잃지 않은 그것의 몸체가 강철로 된 비상구 문의 틈새로 파고들더니 몇 초 후, 잠겨있던 문이 열렸다.
제 몸을 원상복구시킨 괴물은 아무 제지도 받지 않고 안으로 들어섰다. 1층과 2층 사이에 한 남자가 의자를 갖다놓고 경계를 서고 있었지만, 안타깝게도 의자에 앉아 꾸벅꾸벅 졸고 있는 상태였다.
긴장한 채 너무 오랜 시간 경계를 섰기 때문일까, 아니면 좀비들이 비상계단의 문을 뚫지 못한다는 확신을 가졌던 걸까. 완전히 무방비한 상태다.
쿠르륵!
싱싱한 먹이를 발견한 물 괴물의 입이 벌어진다. 동시에 예의 분홍빛 혀가 번개처럼 날아들어 졸고 있던 남자를 낚아챘다.
깨어나 비명을 지를 틈 따위는 없었다. 성인 남성의 몸이 눈 깜짝할 사이에 괴물의 몸 속으로 빨려들어가고, 으적으적 움직이는 형체없는 이빨에 의해 순식간에 마구 짓뭉개지고 분해됐다.
괴물의 몸 전체에 일순간 시뻘건 핏물이 번졌다. 잠시 후 그 핏물들은 모조리 선홍빛 내장 같은 기관으로 빨려들어가고, 한 방울의 피도 남지 않은 뭉개진 시체덩어리가 퉤 하고 뱉어졌다.
쿠륵! 쿠륵!
피맛을 본 괴물이 흥분하며 빠르게 계단을 오르기 시작했다. 일정한 형체를 이룬 물덩어리가 연신 철벅거리는 소리를 내며 계단을 오르는 건 꽤 시끄러웠다.
“뭐야?”
또 다른 경계자가 아래층에서 올라오는 소리를 듣고 고개를 내밀었다. 그리고 물로 이뤄진 괴생명체와 눈이 마주치고 잠시 굳었다.
“으, 으아아아아-!”
목이 터져라 비명을 내지른 남자가 미친듯이 위층으로 도망치기 시작했다. 괴물 역시 남자를 추격하기 위해 계단을 오르는 속도를 더했다. 단단한 바닥과 물이 부딪히는 소리가 계단을 시끄럽게 울린다.
“괴물이야! 괴물이 안으로 들어왔다!!”
남자는 찢어져라 고함을 내지르며 계속해서 위층으로 도망쳤다. 남들에게 괴물의 존재를 경고한다기 보단 누군가 와서 자신을 도와주기를, 혹은 자기 대신 괴물의 이목을 끌어 도망칠 시간을 벌어주기를 원하는 외침이다.
쿠르르륵!
좀처럼 속도를 내지 못하는 괴물이 불만스러운 듯 거북한 소리를 냈다. 계단의 구조 때문에 위에서 도망치는 남자에게 혀가 닿지 않았다.
결국, 괴물은 위에서 도망치는 남자를 포기했다. 그리고 곧바로 계단을 벗어나 집으로 통하는 현관문이 있는 복도로 들어섰다.
한 층에 있는 가구는 두 집, 현관문도 두 개다. 그 중 인간의 냄새가 보다 진하게 나는 왼쪽을 선택한 괴물의 몸이 다시 한 번 무너졌다.
쏟아진 액체가 문의 아래쪽 틈을 거침없이 파고든다. 그렇게 몇 초가 지나자 철컥, 하는 소리와 함께 내부에서 문이 열렸다.
덜컹!
하지만 걸쇠가 중간에 방해했다. 원래의 형태로 돌아온 괴물은 잠시 고개를 갸웃하더니, 손을 휘둘러 걸쇠를 거침없이 박살냈다. 마침내 자유롭게 안에 들어선 괴물은 냄새를 따라 가장 안쪽의 방으로 향했다.
쾅!
불도저처럼 문을 부수며 들어서자 침대와 책상 등의 가구들이 보인다. 투명한 코를 씰룩거리던 괴물이 곧 방 한쪽의 붙박이 옷장 문짝을 열었다.
“꺄아아악!”
오들오들 떨며 숨어있던 젊은 여자가 비명을 내질렀다. 동시에 뻗어진 혀가 여자의 몸통을 휘감고 괴물의 입으로 끌어당겼다.
콰드득! 콰득! 콰드득!
섬뜩한 소리와 함께 산 사람의 몸이 마구잡이로 뭉개진다. 시뻘건 핏물이 괴물의 몸체 전체에 확 퍼졌다가 이내 선홍빛 내장 기관으로 빨려들어갔다.
퉤!
도저히 사람으로 보이지 않는, 이제는 핏물 한 방울 보이지 않는 짓뭉개진 살점들과 하얀 뼈, 찢겨진 옷가지 덩어리를 뱉어낸 괴물은 다시 집 밖으로 나왔다. 이 건물은 놈에게 만찬의 장이다. 아직 밤은 길고 시간은 많았다.
쿠르륵쿠르륵!
괴물의 몸에서 연신 의미를 알 수 없는 소리가 흘러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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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 두꺼비…… 제 꿈에서 나온 적 있는 괴물입니다. ㅋㅋ 혓바닥 피하기가 여간 힘든게 아니었죠.
부디 재밌게 읽으셨길 바랍니다. 추천도 꾹! 부탁드립니다. (_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