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REDOS RAW novel - Chapter 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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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크
기다렸다는 듯 몸 돌려 공격하는 문신 오크, 허나 헤르난데스 역시 방금의 적극적인 움직임이 거짓말이었다는 것처럼 곧장 방향을 바꿔 뒤로 몸을 빼냈다. 발동하던 스킬은 어느새 흔적도 없이 취소된 후다.
제대로 맞붙는 것도, 그렇다고 완전히 도망치는 것도 아니면서 귀찮게 구는 상대에게 머리 끝까지 분노한 문신 오크가 포효를 내지르며 마구잡이로 대검을 휘둘렀다.
쾅! 콰광!
걸리는 것은 아스팔트 덩어리든 버려진 차량이든 거의 부서지듯 조각내버리는 검격, 절대로 정면에서 막아낼 수는 없다. 막을 수 없는 공격이란 현실적으로나 심리적으로나 아주 까다로울 수밖에 없다.
허나 경갑옷을 착용하는 검투사 직업에 민첩성 능력치를 주로 올린 그는 꽤 아슬아슬한 상황을 연출하면서도 끝끝내 공격을 허용하지 않을 수 있었다. 강력한 적과 싸우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집중력이 상승하고 신체에 활력이 도는 직업 패시브 스킬도 큰 도움이 되는 중이었다.
게다가 믿는 구석도 있어 정신적으로 궁지에 몰릴 일이 없었다. 실질적으로 제대로 된 타격조차 주지 못하고 있는 그가 초록색 등급을 일대일로 ‘어느 정도’ 맞상대 가능하다고 판단하게 하는 물건, 바로 손에 들고 있는 청백색의 고풍스런 검이다.
천둥벼락의 분노, 아이템 등급 유일함.
절대 손상되지 않는 것은 물론 내장된 스킬들 세 가지 중 하나를 골라 하루에 두 번 까지 사용할 수 있다. 그 중 공격용 스킬을 제대로 적중시키기만 한다면 제 아무리 초록색 등급의 괴물이라 해도 치명적인 타격을 입힐 수 있었다. 이미 몇 번의 실전을 거치며 증명된 사실이다.
허나 횟수에 제한이 있어 아무렇게나 낭비할 수는 없었다. 그가 직접적인 공격 대신 다 같이 공격하는 상황을 만들어 확실한 기회를 잡으려고 시간을 끄는 이유이기도 했다.
그리고 그 작전은 마침내 결실을 맺었다. 수십에 달하던 괴물들은 물론, 끝까지 버티던 노란색 등급의 괴물 두 마리까지 다른 군인들의 집중포화를 견디지 못하고 쓰러진 것이다.
칠십에 달하는 인원들의 공격이 곧장 홀로 남은 문신 오크에게로 향했다. 제 아무리 질긴 피부를 가졌어도 이리 집중적으로 쏟아지는 공격 속에서 멀쩡할 수는 없는 노릇, 불길이 뿜어질 것 같은 눈으로 헤르난데스를 노려보던 놈이 돌연 몸 돌려 도주를 감행했다.
“죽여! 놓치지 마라!”
여기서 저놈을 놓치면 필시 지원병력을 이끌고 다시 공격을 가할 것이다.
다른 이들의 공격이 쏟아지는 가운데 땅을 박차고 점프한 헤르난데스가 빠르게 멀어지는 덩치 큰 문신 오크를 노리고 검을 뻗었다.
한순간 그의 머리와 눈이 청백색으로 물들며 빛난다. 검에서 일어난 스파크가 빠지직 거리는 위협적인 소리를 토함과 동시에, 도망치던 문신 오크가 위협적인 기세를 느끼고 고개를 돌려 허공에 뜬 그를 쳐다봤다.
콰과광-!!
폭음이 터졌다. 충격파를 터뜨리며 쏘아진 청백색 뇌전의 창이 급하게 마주 휘둘러진 문신 오크의 거무튀튀한 대검을 부수고 왼쪽 다리 허벅지를 절반이나 날려버렸다.
거멓게 타버린 상처에서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른다. 쓰러져 고통에 울부짖는 문신 오크는 더 이상의 도주가 불가능해 보였다.
놈이 눈치 빠르게 방어를 시도한 탓에 목표했던 것처럼 단번에 죽이진 못했지만, 일단 기동력을 상실시켰으니 다음 공격으로 순조롭게 죽일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 예상은 깨졌다. 울부짖던 오크의 몸에 새겨진 문신이 용광로 안의 쇳물처럼 시뻘겋게 달아오르더니, 그 열기가 번지기라도 하듯 초록색 피부 전체를 휘감아 감싸며 불타오르기 시작한 것이다.
[크아아아아아아악!]고통 때문인지 분노 때문인지 알 수 없는 포효를 터뜨리며, 전신이 용광로처럼 달아오른 문신 오크가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 그들을 향해 뚜벅뚜벅 움직였다.
놀랍게도, 놈을 노리고 쏘아지던 탄환과 마법들이 채 닿기도 전에 불타오르며 사라져버리고 있었다. 벌겋게 달아오른 피부 사이로 살기 가득찬 초록빛 눈동자가 보인다.
– 죽여버릴 테다…… 이 비루하고 하찮은 놈들아! –
최초로 알아들을 수 있는 말을 한 오크가 다친 다리를 이끌며 그들을 향해 움직였다. 내딛는 아스팔트 바닥이 녹아내리며 불길이 치솟는다. 근처에 있던 차량들의 유리창이 저절로 깨져 나가고 금속 차체는 달궈져 허연 김을 뿜어냈다.
헤르난데스는 망설이지 않고 다시 스킬을 발동했다.
상대의 능력이 뭔지는 몰라도 기동력은 더 떨어진 듯한 모양새, 망설임 없이 뻗어진 검 끝에서 재차 스파크가 튀고 빛이 번쩍였다.
폭음과 함께 청백색 뇌전이 쏘아진다. 그가 오늘 사용할 수 있는 마지막 최강의 공격이 느릿하게 움직이며 손을 뻗는 문신 오크와 충돌했다.
섬광과 폭음, 이어지는 비명과 진동.
놀랍게도 문신 오크는 죽지 않았다. 뻗었던 오른팔이 통째로 날아가고 가슴팍에 머리통만한 구멍이 뚫린 상태로도, 그들을 향해 지옥의 악귀처럼 다가오고 있었다.
“후퇴!”
[크아아아아아악-!]
헤르난데스의 외침과 함께 고함을 내지른 오크가 근처의 승합차 한 대를 왼손만으로 번쩍 치켜든다. 달궈진 놈의 몸에서 마법처럼 빠르게 번진 열기가 승합차를 붉게 물들이며 어마어마한 열기를 뿜어냈다.
곧이어 예상보다 빠른 타이밍으로 차량이 집어던져졌다. 목표는 헤르난데스, 그 위협적인 질량과 열기를 품은 공격에 본능적으로 몸을 피한 그가 아차 하며 뒤를 돌아봤다.
해리슨 워렌 소위를 중심에 둔 다른 네 명의 근접 직업군들이 이를 악물고 특수제작 방패를 들어올리는 모습이 보인다. 그들마저 피하면 방음벽 때문에 미처 산개하지 못한 사격수들과 캐스터들이 휩쓸릴 판이었다.
막을 수 없다고, 피하라고 소리칠 시간도 없었다.
붉게 달궈진 커다란 승합차가 용감하게 나섰던 넷을 그대로 깔아뭉개며 땅에 충돌해 구른다. 뒤쪽의 다른 이들까지 무자비하게 덮친 그것은 곧이어 방음벽과 충돌하며 커다란 폭발을 일으켰다.
마법으로 발생하는 폭발과는 확연히 다르다. 시커먼 뭉게구름 사이로 악마의 혓바닥처럼 느껴지는 새빨간 화염이 넘실거렸다. 그 아수라장과 충격을 배경으로 승합차를 집어던졌던 오크가 다시금 포효를 내질렀다.
놈의 몸에서 더 밝은 빛의 화염이 치솟았다. 그러다 어느 순간 연료를 다한 것처럼 픽 꺼져버렸다. 그곳엔 시체가 아닌 거멓게 타버린 잿더미가 형체를 유지하지 못하고 무너져내리는 모습만이 있었다.
그 잿더미에 검을 겨눈 자세로 경직되어있던 헤르난데스가 이를 악물었다.
“……빌어먹을!”
어차피 막을 수 없는 공격이었다. 던져진 차량이 그만큼 빠르고 무거웠다. 심지어 근처만 가도 불이 붙어버릴 만한 열기까지 품고 있었다.
차량을 던진 후 스스로 불타 죽어버린 것을 보면 제 생명을 불태워 일시적으로 더 강한 파워를 발휘한 것이 분명하다. 검의 스킬이 남아있었다면 모를까, 그가 아무리 S등급 헌터라도 그 차량을 어떻게 막아보려 했다간 죽었을 게 뻔했다.
하지만 그럼에도 이 무리를 이끄는 사람으로서 책임을 통감하지 않을 수 없었다.
놈이 차량을 들어올린 순간 위치를 바꿨다면 결과가 달라졌을까.
조금 더 냉철한 정신을 유지하고 있었다면, 애초부터 등 뒤쪽에 아군을 놓는 멍청한 짓을 하진 않았을지도.
두 번째 공격으로 확실하게 죽일 수 있을 것이라 판단했다. 하지만 놈은 팔이 날아가고 가슴팍에 커다란 구멍이 뚫리고도 죽지 않았다.
“심장은 약점이 맞았습니다.”
뒤쪽에서 들린 소리에 고개를 돌리자 굳은 표정의 카스트로 소위가 보였다. 그의 직업은 사냥꾼, 필시 틀린 말이 아닐 것이다.
“하지만 죽지 않았어.”
“아마 마법이겠죠. 앞으로 문신이 새겨진 놈을 특히 조심해야 될 듯합니다.”
“……사상자 파악하고 시신들을 챙기지. 전사한 해리슨 소위 대신 자네가 남은 인원을 통솔하게. 정리를 마치면 하루 정도 숨어서 머물 장소를 찾을 거다.”
그의 검은 막강한 스킬을 사용할 수 있는 대신 쿨타임이 길다. 이미 두 번의 기회를 모두 소모했으니 여기서 더 움직이는 건 위험했다. 오크 놈들은 그들이 올 것을 알고 매복하고 있었다.
카스트로 소위가 뒤쪽의 병사들에게 다가가 상황을 수습하기 시작했다. 헤르난데스는 머릿속으로 이미 지나쳐온 길들을 되짚으며 은신처로 삼을 만한 곳이 있는지를 물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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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한의 지원군이 출발했다.
이미 서울과의 길은 철저하게 정리해놓은 상태로, 다수의 험비를 타고 이동하는 그들의 발길을 붙잡을 만한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차량의 소음을 듣고 간간이 멀리서 등장하는 좀비들은 사격수들의 좋은 심심풀이에 불과했다.
달리는 차량에서 이리저리 몸을 흔들며 달려오는 좀비의 어깨를 정확하게 꿰뚫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허나 류한의 사격수들은 그것을 손쉽게 해냈다. 한 명 정도는 실수로 빗맞출 법도 한데 아무도 그렇지 않았다.
빠르게 변칙적으로 움직이는 환상을 상대로 매일 같이 사격술을 연마하는 그들에게 이 정도 악조건은 아무것도 아니다.
캐스터들 역시 놀고 있지 않았다.
모르는 사람이 보면 이상하게 볼 만한 행동을 하고 있었는데, 마력을 실타래처럼 형상화해 다섯 손가락 사이로 번갈아 왕복시키고 있었다. 집중력과 마력의 컨트롤 숙련도를 올려주는 훈련법으로, 다름 아닌 샬란의 마법사들이 알려준 것이다.
서두르지 않았기에 그들은 근 한 시간 후에나 서울의 초입에 도착했다.
기름이 아닌 마력으로 움직이는 엔진으로 교체한 험비들은 빠르게 달릴수록 수명이 급격하게 줄어든다는 치명적인 단점이 있다. 개량되기 전까진 정말 긴급한 상황이 아니고선 시속 60km 이상 밟을 수가 없었다.
철저한 경계가 이뤄지는 삼 중 검문소를 통과해 서울에 들어선 그들은 한 차량의 유도를 받으며 안쪽으로 이동했다. 그들을 향해 주위 서울 시민들의 선망에 가득 찬 시선이 날아들었다.
류한 길드에 대한 소문은 이곳에서 퍼질만큼 퍼졌다. 비단 이곳 뿐만이 아닌 어딜 가나 그랬다. 사람들이 움직이며 교류가 일어나는 모든 장소에서 류한을 모르는 이들은 없다.
그 어떤 곳과도 비교를 거부하는 최고 최강의 길드.
이미 두 개의 다른 길드를 산하에 거느리고 서울을 제외한 한반도 전부를 지배한다 해도 과언이 아닌, 단순한 길드라 부르는 것이 이상하게 느껴질 정도의 대단한 집단.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미 류한을 길드가 아닌 하나의 국가와 같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류한이 지배하는 영토에 한 번이라도 방문해서 시스템을 통해 영지민이 된 자들은 특히 그랬다.
그들에게 한세현이란 이 망해가는 세상에서 희망을 보여준 구원자나 다름없었다.
이런 종류의 시선에 익숙한 고참 길드원들도 있는 반면 아직 어색하고 낯선 신입들도 있었다. 그들은 괜히 목과 어깨에 힘이 들어가는 것을 막지 못했는데, 그 뻣뻣한 모습을 보는 고참들은 피식 새어나오는 웃음을 막을 수 없었다.
십여 분 정도 더 이동해 도착한 곳은 원래 모텔로 사용되던 제법 커다란 건물이었다. 입구에는 소장 한 명과 대령 둘을 비롯한 다양한 인사들이 그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자연히 차량에서 내린 김인환이 권태수와 함께 그들에게 다가갔다.
“김승현 소장입니다.”
“김인환입니다.”
“권태수입니다.”
간단한 인사 이후 브리핑이 이어진다. 딱히 자리를 옮길 필요도 없을 정도로 간단한 내용으로, 이곳에 오기 전에 들었던 것과 별 달라진 점은 없었다.
류한이 이곳에서 할 일은 오크 놈들이 침략해올 때까지 대기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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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디 오늘도 재밌게 읽으셨으면 좋겠습니다. (__) 추천도 꾹! 부탁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