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REDOS RAW novel - Chapter 1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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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문자
서울에서 오크들의 공격을 성공적으로 막아냈다는 소문이 퍼졌다. 세현이 공식적인 무전을 받고 얼마 지나지도 않았는데, 벌써 용인에서는 그에 대한 이야기가 자자했다.
서울 북쪽을 점거하고 있던 위협적인 괴물들의 대규모 침공을 최소한의 피해로 완벽하게 막아냈다는, 특히 그 와중 류한의 활약이 정말 대단했다는 이야기. 마냥 뜬소문이 아니라 어떤 면에선 세현이 무전으로 받은 내용보다 정확한 것도 있었다.
“누가 작정하고 퍼뜨리는 거 아냐?”
세현과 만나 일적인 이야기를 하던 혜진이 문득 소문에 대한 화제를 꺼내며 그렇게 물어왔다.
잠시 침묵하던 세현이 고개를 끄덕였다. 최근 아엘라의 임신과 수련에 정신이 팔린 탓에 소문을 듣고서도 깊게 생각지 않고 쉬이 넘겼다. 그런데 혜진의 말을 들으니 확실히 이상한 점이 없지 않다.
“그럴지도?”
“한 번 알아볼까?”
“누나가 조사해 줘.”
세현이 놓친 미심쩍은 부분을 짚어낸 혜진이 한 건 했다는 듯한 뿌듯한 표정으로 방을 나섰다.
소문을 퍼뜨리는 주체를 파악하는 것은 중요하다. 좋은 쪽이긴 하지만, 누가 퍼뜨린 것인지 알면 진짜 의도를 짐작하고 만약을 대비할 수 있으니까.
서울에 파견된 지원군은 당장 복귀하지 않고 그곳에 남았다. 예상대로 차석원이 서울 북쪽에 대한 탈환 성명을 발표하고 그에 대한 준비에 들어갔기 때문이다. 그 이전에 세현에게 개인적으로 무전을 해오기도 했다. 혹시 류한의 힘을 좀 더 빌려줄 수 없겠느냐고.
당연히 세현은 수락했다.
서울을 당장 흡수할 필요는 없다. 차석원을 조종할 수 있는 이상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지 그의 것이 될 테니까. 그러니 차석원이 업적을 쌓고 서울의 지배자 자리를 공고히 하는 것은 결과적으로 세현에게 이득이다.
그리고 며칠 후, 오랜 시간 성을 떠나있던 신소진이 마침내 임무를 마치고 성으로 복귀했다. 용인과 강원도, 대전, 부산 사이의 길을 완벽하진 않아도 대충은 개척해낸 것이다.
완벽한 안전을 담보할 수는 없으나 근처의 던전이나 괴물 무리를 처리하고 차량이 멈추지 않고 지나다닐 수 있도록 장애물을 치우고 길을 텄다.
“고생했다.”
“할 일을 했을 뿐입니다.”
어렵다기보단 오래 걸리고 번거롭고 지겨운, 그렇다고 아무나 보낼 수는 없는 임무였다. 세현은 그녀에게 당분간 휴식을 주기로 했다.
대전의 성을 맡고 있던 김인환이 서울에 묶인 탓에 그의 일은 고스란히 세현의 몫이 되었다.
대충 기반은 잡아놓았고 시스템을 통해 간편하고 확실하게 처리할 수 있는 부분이 많아 그리 오랜 시간을 잡아먹는 일은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짧게 처리할 수 있을 정도로 적지는 않았다.
슬슬 인재의 부족이 체감되고 있었다.
이것은 앞으로 덩치가 커질수록 더 크게 체감될 것이다. 처음 김인환 가족과 만났을 때, 그들을 한 번 키워볼 생각을 하지 않았다면 상당히 큰 손해를 볼 뻔했다.
에레도스 사태 초기였기에 까다로운 심사를 거치지 않고서도 간부로 키울 생각을 할 수 있었다. 만약 시간이 어느 정도 흐른 후 그들을 만났다면 아마 신경도 쓰지 않았을 터.
어쨌든 더 많은 인재가 필요하다. 안테아와 베이마라, 레야의 합류로 숨통이 트였으나 아직 부족한 부분이 많았다.
해서 그는 여전히 수련에 집중하며 길드의 내실을 다지는 것에 주력했다. 아엘라가 임신 중이였기에 그녀에 대해서도 상당히 많은 시간을 쏟는 중이었다. 결혼까지 언급한 마당에 임신한 아내에게 소홀할 수는 없는 노릇 아닌가.
그러던 어느 날, 정문에서 한차례 소란이 일어났다는 보고가 세현에게까지 올라왔다.
30대 초중반으로 짐작되는 백인 남자가 그를 만나길 원한다며 하루가 넘도록 자리를 뜨지 않았고, 그것을 마땅찮게 여겨 쫓아내려던 정문 근무자와 약간의 시비가 붙었다는 것이다.
놀랍게도 그 백인 남자는 철저한 훈련을 받은 근무자를 가볍게 제압하고 싸우려고 온 것이 아니라는 의사를 밝혔다.
“나를 만나야만 한다?”
“예. 길드장님께 보고도 없이 자신을 쫓아낸다면 반드시 손해를 볼 거라고, 비슷한 말을 계속 돌려서 반복하고 있습니다. 혹시 몰라서 보고를 드렸습니디만…… 쫓아낼까요?”
보고를 하던 30대 남자 길드원이 세현의 눈치를 살핀다. 태도 하나하나에서 그를 어려워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평사원이 거대 그룹의 회장과 독대하는 듯한 모습이다.
그러니 아무나 세현을 만날 수 없다고 생각하는 것이 당연하다. 실제로 어느 정도 맞는 말이기도 하고.
“네가 보기엔 어땠지?”
“예?”
“그냥 어중이떠중이로 보였나? 아니면 그래도 뭔가 실력이나 믿는 구석이 있는 놈처럼 보였나?”
“후자입니다.”
“그럼 데려와. 애초에 류한의 정문 앞에서 그런 식으로 뻗대는 놈이 평범할 리는 없겠지.”
류한은 물렁한 단체가 아니다. 지금까지의 행보로도 보여줬고 일전의 신입 길드원들이 일으킨 문제를 처리하면서도 확실하게 보여줬다.
그런 거대한, 누구도 거스를 수 없는 강력한 집단의 본성 정문에서 뻗대고 있다면 필시 그에 상응하는 이유가 있을 터.
그래서 그 의문의 남자는 세현의 집무실로 안내될 수 있었다. 설령 그가 아무것도 없는 한량에 불과할지라도 만나서 손해볼 것은 약간의 시간을 뺏긴다는 점 뿐이었으니까.
잘 단련된 보통 체격의 몸에 파란 눈과 짧은 금발머리를 가진, 나이는 확실히 30대 중후반으로 보였으나 눈빛이 평범하지 않은 이였다.
무력이나 가진 능력적인 부분에서가 아닌 그 종류가 다르다. 무림에서의 경험에 비추어보면 주로 암살과 정보수집 같은 음지에 속한 이들이 저런 눈빛을 갖고 있었다. 상대를 분석적으로 ‘관찰’하는 시선.
또한 무의식적으로 발걸음 소리를 죽이는 습관을 보인다.
“나를 만나고 싶다 들었는데.”
“류한의 길드장님이십니까?”
“그래.”
“아…… 역시……”
가진 분위기에 어울리지 않게 잠시 머뭇거리던 그가 자신의 정체를 밝혔다.
“저는 안톤 이바노프입니다. 러시아 해외정보국 SVR의 책임 요원으로, 에레도스 사태 이전부터 구 한국을 포함한 북한과 일본에 대한 관리를 위해 이곳 근처로 파견나와 있었습니다.”
“해외정보국? 미국의 CIA 같은 건가?”
“그렇습니다. 개인적으로 CIA보다 저희가 한 수 위라고 생각합니다만, 이렇게 찾아온 이유는 에레도스 사태 이전과 이후를 가리지 않고 저희가 가진 모든 정보를 건네드리기 위함입니다.”
세현이 미약하게 고개를 갸웃했다.
“왜?”
“부디 당신을 섬길 기회를 주십시오.”
그 후, 안톤 이바노프는 천천히 한쪽 무릎을 꿇고 머리를 조아렸다.
흡사 중세시대의 기사가 왕에게 할 법한 정중하고 경의 담긴 태도. 세현의 눈이 흥미로 물들었다.
“분명 실망하지 않으실 겁니다. 정보 제공은 현재 저희가 할 수 있는 최대의 성의 표시입니다.”
“왜?”
“여태까지 류한을 만들고 이끌어오신 모습을 보며 확신을 가졌습니다. 또한 저희는 이미 돌아갈 곳을 잃어 새로 몸을 의탁할 곳이 필요합니다.”
“러시아가 사라졌다고?”
“정부는 존속하나 이전과는 전혀 다릅니다. 하지만 만약 러시아가 멀쩡했더라도 같은 선택을 했을지 모릅니다. 부디 저희를 받아주십시오. 모든 충성을 맹세하겠습니다.”
세현은 의자의 팔걸이를 손가락으로 몇 번 두들겼다.
리오론도 왕가의 서클렛은 반응하지 않는다. 지금까지 그가 한 말 중에 거짓은 없다.
솔직히 기분이 나쁘지 않았다. 안 그래도 사람이 부족한 판에 SVR이라는 국가 정보기관의 책임 요원이라는 자가 제 발로 찾아와 받아달라 하는 상황 아닌가.
“뭘 할 수 있지?”
“류한은 모두가 납득할 수 있을 정의로운 길을 걸어왔습니다. 허나 빛이 있으면 그림자도 있는 법, 저희는 그에 익숙합니다.”
“……총 몇 명이지?”
“저를 포함한 19명입니다. 완전히 믿을 수는 없으나 당장 부릴 수 있는 인원까지 더하면 45명입니다.”
잠시 침묵하던 세현은 안톤 이바노프를 뚫어져라 쳐다보며 조용히 물었다.
“나를 찾아온 것에 다른 의도는 없고?”
“결단코 없습니다. 당신은 새로운 시대의 가장 위대한 군주가 될 것입니다. 저흰 그 영광스러운 길에 동참할 수 있기를 바랄 뿐, 기회를 주신다면 성심을 다해 보필하겠습니다.”
사고방식 자체가 일반인과 약간 다른 것 같기도 하다. 서클렛은 여전히 반응하지 않고 잠잠했다.
절로 새나오는 미소를 굳이 감추지 않은 세현이 말했다.
“네 말을 믿어보지. 길드원으로 받아주마.”
“가, 감사합니다.”
잠시 고개를 들어 눈이 마주친 안톤 이바노프가 미약하게 몸을 떨었다. 진실로 감격에 찬 듯한 모습이다. 또한 어쩐지 그를 두려워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뭘 어디까지 알고 있는지, 세현의 입가에 걸린 미소가 한층 진해진다.
“그림자에 익숙하다고 했지.”
“그렇습니다. 뭐든지 명령만 하시면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고 수행하겠습니다.”
“간단한 것부터 하자고. 감찰단장 박수진에게 가서 최근 류한에 대해 긍정적인 소문을 흘리는 자들이 누군지, 찾는 것을 도와라.”
“그것이라면 이미 알고 있습니다. 전 바다 길드의 부길드장이었던 문하랑과 그녀를 추종하는 27명의 사람들이 류한에 대한 긍정적인 여론을 조성하고 있습니다. 동기는 100% 확신할 수 없으나, 정황상 류한 길드에 입은 은혜를 갚는, 동시에 그에서 발생하는 이득을 취하려는 모습으로 보입니다.”
“허?”
기다렸다는 듯 튀어나온 대답에 세현이 짧게 헛웃음을 흘렸다.
“또한 사람을 고용해 수원과 경기도 성남 근처의 중소규모 신문공장을 확보, 가동하려는 모습을 보이고 있습니다. 다방면으로 소문을 취합하고 사실관계를 캐묻고 다니는 이들을 기자라 생각한다면 일종의 신문사를 꾸릴 계획인 듯합니다. 문하랑이 지금까지 보인 행보를 고려하면 긍정적인 일입니다. 따로 접선해서 의중을 확인하고 그들을 통제할 수 있다면 더 괜찮을 듯합니다.”
문하랑이었나.
자신을 신격화하려는 시도를 보였던 여자. 어쩐지 무슨 생각으로 이런 일을 벌이는지 알 듯하다.
“더 자세한 자료는 여기 있습니다.”
안톤 이바노프가 허리춤의 아공간 주머니에서 무언가를 꺼내들었다. 손바닥에 올려놓고 사용할 수 있을 만한 작고 가벼운 노트북 컴퓨터였다.
그것을 천천히 다가와 두 손으로 세현에게 건네는 태도는 더 이상 그럴 수 없을 정도로 정중하고 조심스러웠다. 정말로 세현을 ‘왕’이라고 생각하는 것처럼.
받아든 노트북 컴퓨터를 조작해 여러 자료를 살피던 세현이 말했다.
“일단 문하랑에 대한 건 모르는 걸로 하지. 감찰단이 얼마만에 알아낼 수 있는지 궁금하거든. 그러니까, 너는 감찰단이 어떤 방식으로 정보를 모으고 확인하는지를 살펴라.”
“알겠습니다.”
“지금 네가 부릴 수 있는 인원 전부를 데려와. 정보부를 창설해 네게 맡기겠다. 당연하지만 임시이고, 어울리는 성과를 보이지 못하면 언제든지 경질될 수 있다는 걸 명심해.”
“실망시켜드리지 않겠습니다.”
“직업이 뭐지?”
에레도스 시스템 상의 직업을 말함이다.
“암살자입니다.”
“다른 이들은?”
“대부분 암살자에 함정 사냥꾼과 환영술사 같은 특수 직업이 몇 있습니다. 저희들에 대한 모든 정보는 그 노트북 컴퓨터에 들어있습니다.”
세현의 시선이 잠깐 손에 든 노트북 컴퓨터로 향했다가 다시 안톤 이바노프를 향했다. 이 러시아 남자는 그와 눈을 마주치는 것조차 조심하고 있었다.
인재가 제발로 찾아오는 것.
무림에서는 몇 번 겪었지만 지구에서는 이자가 처음이다. 그리고 잠깐 살펴본 노트북 컴퓨터 안의 자료들은 꽤 중요한 것들이었다. 이들의 능력을 단편적으로나마 증명할 수 있을 정도로.
아무래도 정말 쓸 만한 인재를 얻은 듯하다. 세현은 더 없이 만족스러운 마음이 되어 안톤 이바노프에게 이만 물러가라 명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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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틀 전 아버지가 퇴원하셨습니다. *-_-*
물론 완쾌하신 건 아니지만 일단 집에 오셨으니 한결 여유가 생겼죠! 슬슬 주간연재가 아닌 이전의 연재 페이스를 회복할 생각입니다.
부디 오늘도 재밌게 읽으셨기를 바라며, 추천 꾸욱! 부탁드립니다. (_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