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REDOS RAW novel - Chapter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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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
저 여자가 나쁜 게 아니다.
오히려 보통이며, 또한 지금 같은 상황에선 현명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세상에는 자신의 사정이 힘든데도 타인에게 선뜻 도움을 주는 이들이 있다. 이미 세운 계획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세현과 혜진의 처지를 미루어 짐작하며 도와줄지 말지 갈등하는 김인환이 바로 그런 사람이었다.
물론 그들이 무작정 호의를 베풀려는 것은 아닐 것이었다. 그들은 세현이 번듯한 무기로 좀비를 처리하는 것을 목격했으니 분명 도움이 될 거라는 계산을 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선행이 선행이 아니게 되는 것은 아니다.
그래서 세현은 웃으며 검을 슬쩍 치켜들렸다. 햇살 아래 번뜩이는 시퍼런 칼날에 김유린의 가족들이 반사적으로 한 걸음 물러설 때였다.
“캬아아악-!”
그들의 옆에서부터 어디서 나타났는지 모를 좀비 한 마리가 달려들었다.
“헉!”
김인환이 퍼뜩 놀라며 알루미늄 배트를 고쳐잡고 신속히 앞으로 나섰다.
당황하지 않고 자세를 잡는 모습이 검도라도 배운 듯하다. 좀비를 상대해본 경험도 있는 모양이다. 세현의 검을 보며 눈을 빛낸 것에는 다 이유가 있었다.
바로 그때 섬광이 번쩍였다.
스컥!
좀비는 달려들던 기세 그대로 어깨부터 쪼개지며 쓰러졌다. 한껏 각오를 다지며 자세를 잡았던 김인환은 얼빠진 소리와 함께 엉거주춤 자세를 풀었다.
“뭐, 뭐, 뭐야?”
김유린의 시선이 자신도 모르게 세현에게 향했다.
그가 든 청월에서 자색빛 아지랑이가 은은하게 타오르는 중이었다. 방금 전의 일이 누구의 소행인지를 명백하게 증명해주는 모습이다.
“마트부터 갈 겁니다.”
그렇게 운을 띄운 세현은 이어 말했다.
“같이 갈래요?”
“……네. 가, 같이 가죠. 아니, 같이 가도 되겠습니까?”
“얼마든지.”
세현은 웃으며 말했다.
얼이 빠진 김유린과 그 모친과는 달리 김인환은 정신없이 고개를 끄덕이며 감사를 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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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거, 혹시 초능력이야?”
어디선가 나와 달려드는 여섯 번째 좀비를 처리하고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을 때, 뒤에 선 김유린이 조심히 물어왔다. 세현은 그녀를 힐끗 쳐다보며 대수롭지 않게 답했다.
“비슷해.”
“원래 초능력자였어?”
“그런 셈이지.”
“그럼 그…… 얼마나 강해? 어떻게 하는 거야? 혹시 다른 사람도 배울 수 있어?”
“흐음.”
세현이 잠깐 걸음을 멈췄다.
“알려줄까?”
“그래도 돼? 다른 사람도 배울 수 있는 거야?”
눈을 동그랗게 뜨는 김유린은 꽤 귀여웠다. 여자의 아름다움을 굳이 분류해보자면 귀여움과 청초함 쪽이다.
대부분의 남자가 그렇듯 세현은 예쁜 여자를 좋아한다. 물론 그가 김유린의 미모에 홀렸다는 뜻은 아니다. 단지 눈이 즐거우니 기분도 살짝 좋아졌다는 뜻이다.
“알려줄 수 있어. 아무한테는 아니지만.”
그는 세 명을 번갈아 쳐다봤다. 김유린과 김인환, 그리고 방금 전 이름을 알게 된 김유린의 모친 이예슬.
“내게 충성하면 알려줄게.”
“뭐?”
세현은 일부로 ‘충성’이라는 단어를 골라 사용했다.
“앞으로 나를 전적으로 믿고 따르라고. 그게 조건이야.”
“……”
“아니, 지금 이런 상황에서 뭔……!”
가만히 듣고 있던 뒤쪽의 이예슬이 벌컥 앞으로 나섰다.
“여보!”
“엄마!”
그리고 짜기라도 한 듯 김인환과 김유린이 동시에 그녀를 제지했다.
이예슬은 가족들의 그런 반응에 흠칫하며 입을 다물었다. 김인환은 재차 그런 이예슬에게 눈짓을 주며 앞으로 나섰다. 그리고 은근하게 물어왔다.
“배울 수 있고, 다른 부작용은 없는 겁니까?”
“그런 건 없지만 내 조건을 가볍게 생각하면 후회할 겁니다.”
세현은 부드럽게 웃었다. 하지만 그것에서 느껴지는 알 수 없는 서늘함에 김인환은 무의식적으로 침을 삼켰다.
“쉽게 얻은 기회라고 쉽게 생각한다면…… 그냥 없던 걸로 하죠. 그게 서로에게 좋을 테니까. 나중엔 되돌릴 수 없습니다.”
“배우겠습니다.”
“나도 배울게. 이제부터 네가 리더를 맡겠다는 거지?”
김인환도, 김유린도 열의가 대단했다.
물론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반응이다.
좀비는 물론 각종 다른 괴물들까지 출몰하는 세상이다. 그런 세상에서 직접적인 전투를 벌일 필요도 없이, 그저 멀리서 검이나 손가락을 가리키는 것만으로도 보이는 좀비를 픽픽 쓰러트리는 초능력은 그 가치가 어떨지 측정하는 것조차 불가능하다.
세현은 일단 이들을 좀 더 부려볼 생각이었다. 본격적으로 키워서 부려보고, 괜찮다면 이후에 그가 만들 조직의 간부로 삼을 생각이었다.
걸출한 인재라는 건 쉽게 나타나지 않는다. 어차피 조직을 만들 생각이라면 미리부터 물색해야 하고, 또한 가능하다면 직접 만들어내는 것도 나쁘지 않다.
“어떻게 하실래요?”
세현이 이예슬을 쳐다보며 묻자 김인환이 다시 나섰다.
“제가 집사람하고 얘기 좀 하고 와도 될까요?”
“그러시죠.”
허락 후 멀리 떨어진 김인환이 이예슬을 설득하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세게 나왔던 이예슬은 의외로 쉽게 김인환의 설득에 동의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표정은 그리 좋지 않았지만 사정을 모두 이해한 모습이다.
이예슬도 바보는 아닐 것이다.
그녀는 세현이 가진 초능력 같은 힘의 대단함을 몰라서 나섰던 게 아니다. 그저, 아직 변해버린 세상과 앞으로 변해갈 세상에 제대로 적응하지 못했을 뿐이다.
충분히 그럴 수 있다.
세상이 변해버린지 아직 며칠도 되지 않았다. 하지만 되도록 빨리 적응해야 할 거다. 이제는 기존의 법, 도덕, 예절, 그런 건 아무 의미도 없을 테니까. 김인환이 하는 설득의 골자도 바로 그런 것이었다.
생각보다 짧은 시간에 설득을 마친 김인환과 그의 아내 이예슬이 돌아왔다. 그녀는 이전과 달리 윗사람을 대하는 공손한 태도로 세현에게 말했다.
“가능하다면 저도 배우고 싶어요.”
“억지로는 안 배우셔도 됩니다. 여기 두 사람의 가족으로 남으셔도 괜찮습니다.”
“아니요. 꼭 배우고 싶습니다.”
이예슬은 다시금 정중히 고개를 숙였다. 너무 정중해서 그게 절대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게 아니라는 걸 누구라도 알 수 있을 정도로.
잠시 그런 이예슬을 바라보던 세현이 속으로 고소를 머금었다.
무림에선 그에게 한 수라도 배울 수 있다면 전재산을 들고 찾아올 자들이 산더미만큼 있었다. 이 어리석은 여자는 제가 얻은 기회가 얼마나 귀중한지 절대 모를 것이다.
그래서 참아줄 수 있다. 여기는 무림이 아니니까.
한 번 정도 더 기회를 주지 않을 이유가 없다.
“그럼……”
그는 잠깐 반말과 존댓말 중 고민했다. 그러다 그냥 존대를 유지하기로 결정했다. 당분간은.
말투 따위에 없던 권위가 생겨나진 않는다. 뭘 해도 어색하지 않을 상황이 되기 전까진 그냥 하던 대로 하는 게 나을 것이다.
“일단 예정대로 마트에 가고, 그 다음 각성을 하죠.”
“각성? 그게 뭔가요?”
“곧 알게 될 겁니다.”
이미 마력감지로 살펴본 바, 셋 중 아무도 마력을 갖고 있지 않았다. 혜진의 경우처럼 스스로 좀비를 잡게 만들어주면 각성할 수 있을 듯하다.
일행은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다. 이전과는 판이하게 달라진 분위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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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트 주변은 예상과 달리 꽤 조용한 편이었다. 사람들이 보이긴 했지만 그렇게 많은 수는 아니다. 그들은 서둘러 마트를 떠나고 있거나 혹은 주변을 잔뜩 경계하며 안쪽으로 들어서고 있었다.
평범한 사람이라도 느낄 수 있는 모종의 불길함이 마트 주변을 감돌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세현은 보다 똑똑히 느낄 수 있었다. 저 마트 내부에는 확실히 뭔가가 있었다.
“같이 움직이죠.”
“왜인지 불길함이 느껴지는데……”
혜진은 소름이 돋아난 피부를 문지르며 말했다. 물론 세현은 아랑곳하지 않았다.
“괜찮으니 가자.”
“위험하진 않은 거지? 아니면 우리는 여기서 기다릴까?”
“말도 안 되는 소리 마. 남아있는 게 더 위험해.”
세현이 그렇게 말하며 주변을 가리켰다.
곳곳에 무너진 건물과 시설의 잔해들 및 망가진 차량들, 그리고 골목 사이사이에 드리워진 질척이는 그늘들.
“어디서 뭐가 튀어나올지 알고?”
결국 일행 모두는 세현의 말을 따르는 수밖에 없었다.
이곳은 CZV영화관까지 있는 커다란 대형마트였다. 사실 이 정도면 마트라기엔 너무 크니 백화점이라고 불러야 하겠지만, 이 건물의 이름 자체가 B마트다.
그런 B마트의 1층 정문 입구는 평소의 모습을 완전히 잃고 망가진 채였다. 이 정도 건물이면 안쪽에는 햇빛을 피해 숨은 좀비들이 있을 법도 한데, 어째서인지 소란은 감지되지 않고 있었다.
의문을 일단 접으며 안에 들어서자, 불이 들어오지 않아 온통 어두컴컴한 실내가 드러났다. 세현은 허리춤의 아공간 주머니에서 손전등을 꺼내 혜진에게 들려줬다. 그러면서 뒤쪽에 물었다.
“손전등 있죠?”
“네, 있습니다.”
김인환 일행도 등에 맨 배낭에서 주섬주섬 뭔가를 꺼내들었다. 크기를 보니 LED라이트다. 세현은 내심 여기서 같은 걸 몇 개 챙겨야겠다고 생각하며 걸음을 옮겼다. 그에겐 별다른 빛이 없어도 내부가 대낮처럼 보였다.
어디를 먼저 갈까.
고민하던 그는 아래에서 느껴지는 묵직한 기척에 슬며시 웃었다. 이곳을 통째로 차지한 정체불명의 괴물이 지하에 있다. 다른 곳부터 들러도 되겠지만 그는 생각하는 바가 있었다.
세현을 선두로 일행은 지하로 향했다.
망가진 에스컬레이터를 통해 아래로 내려가자, 온통 난장판이 된 식료품 코너가 보이기 시작한다. 입구 부근에 전시된 과일들에선 이미 맛이 간 듯한 냄새가 풍기는 중이었다.
또한 이곳은 꽤 인기척이 많았다.
사람들이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며 음식을 챙기고 있었다. 각자 무기가 될 만한 것들을 들고, 주변의 사람들을 잔뜩 경계하며 대화 한 마디 없이 카트를 밀며 조용히 돌아다니는 모습이다.
새로 나타난 세현 일행에게 시선이 잠시 모였지만 곧 흩어졌다. 그러나 모두가 그런 건 아니었다.
세현의 일행은 총 다섯인데 그 중 여자가 셋이다. 어떤 이들에겐 정말로 만만한 먹잇감처럼 보이는 구성이다.
“어이, 거기.”
“너네 말이야.”
입구 근처에서 서성이던 지저분한 남자들 다섯이 목소리를 냈다. 자연스레 세현의 시선이 남자들을 향했다.
흡사 노숙자처럼 보이는 이들이다. 고생을 많이 한 건지 원래 노숙자였던 건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별로 좋은 의도를 가진 것처럼 보이진 않는다.
“잠깐 이리 와봐라.”
“……거지들이 시비 거는 것도 오랜만인데.”
세현은 잠깐 피식했다.
남자 다섯은 애초부터 순순히 올 거라 생각치 않았는지 먼저 성큼성큼 다가왔다. 손에 든 횟집에서나 볼 법한 날붙이가 어둠 속에서 LED의 빛을 반사해 섬뜩하게 빛난다.
“어른이 말을 하는데 대답이 없네, 뒤지고 싶어? 응?”
선두에 선 남자에게서 진한 살기가 느껴졌다. 그리고 세현만이 맡을 수 있는 피냄새 역시.
놈은 사람을 죽인지 얼마 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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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디 재밌게 읽으셨길 바라며, 추천 한 번 부탁드립니다. (_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