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REDOS RAW novel - Chapter 1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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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문자
세현은 자신의 방에 돌아오기 무섭게 이바노프를 호출했다. 그는 미리 대기하고 있었던 듯 얼마 지나지 않아 곧장 문을 열고 방으로 들어섰다.
“준비는 끝났나?”
“모두 끝났습니다.”
“네가 호언장담해서 준비한 계획이야. 설령 잘못되어도 크게 탓할 생각은 없다만, 기대했던 대로 일이 진행됐으면 좋겠다.”
“걱정하지 마십시오. 반드시 성공시키겠습니다.”
이바노프는 더 없이 진중한 태도로 허리를 숙였다.
이 남자의 행동과 말투 하나하나는 세현이 무림에서 군림하던 시간을 떠올리게 만들었다. 경이에 찬, 그러면서도 감히 말조차 걸기 힘든 대단하고 위협적인 존재를 바라보는 시선들로 주위가 가득했던 그때.
“소조에 대한 건?”
“지금 요원 한 명이 접촉 중일 겁니다. 그자가 예상처럼 다른 뜻을 품고 있다면 분명 반응하겠지요.”
세현이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 역시 유능한 수하는 이래서 필요하다. 그가 어떤 작업을 하나하나 일일이 처리할 필요가 없어지니까.
이런 것이 모이고 모이면 그 누구도 감히 경시할 수 없는 거대한 철옹성, 그만의 왕국이 만들어질 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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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즈나오를 포함한 대일의 사절단은 길드성 외부에 자리한 숙소로 안내됐다.
근처에 자리한 건물들 중 크고 멀쩡한 것들은 진즉부터 류한이 맡아 관리하고 있었다. 잘 만들어진 건물이란 언제가 되었든 상당히 유용하게 사용할 수 있으니까. 그 건물들 중 하나에서 사절단은 제각각 나눠져 각 층에 자리한 방들로 안내됐다.
그 중 소조는 자신에게 배정된 방에 들어서자마자 낯선 남자와 마주하게 됐다. 류한의 길드복이 아닌, 길가의 평범한 생존자로 보이는 장비와 차림새를 갖춘 갈색머리 파란눈의 백인이었다.
살짝 놀랐던 그가 은근하게 전투태세를 취하며 물었다.
“누구요?”
“반갑습니다. 쇼후쿠테이 소조 씨 맞습니까?”
“그렇소만……”
“류한에서 나왔습니다. 우리에게 전할 말이 있을 텐데요.”
소조의 경계심 가득하던 표정이 순간 흐트러졌다. 허나 그는 곧바로 상대를 의심스럽다는 듯 눈으로 샅샅이 살폈다.
그럴 만도 하다. 상대가 류한 길드의 사람이라는 걸 어떻게 확신하는가. 하지만 이어지는 말에 그는 의심을 거둘 수밖에 없었다.
“길드장님께서 다르바드 참사를 기억해라, 라고 하시더군요. 멜그소라는 단어와 함께 말입니다.”
“정말로 류한 사람인가?”
“맞습니다.”
“……그래. 하지만 내가 지금 전하려는 건 아주 중요한 이야기요. 당신이 설령 류한의 사람이어도 함부로 털어놓을 수는 없을 만한.”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저희가 그런 쪽 일을 전담하고 있으니까. 앞으로는 이 표식을 보고 기억하시면 됩니다.”
그러면서 사내가 팔을 걷었다.
드러난 안쪽 팔목엔 꽤 최근에 새긴 듯한 문신이 있었다. 두 자루 검이 교차되며 아래로 날카롭게 뻗은 간결한 문양, 허나 조잡해보이긴 커녕 사소한 디테일에서 세련됨이 느껴진다.
“그게 뭐요?”
“감찰단을 나타내는 문양입니다. 추가로 우리 요원들 역시 같은 문양을 쓰고 있습니다만…… 이에 대해선 함부로 발설하지 않으실 거라 믿습니다. 언제 어느때 상상도 못할 방법으로 사라지고 싶지 않다면요.”
동시에 사내가 소조의 뒤를 가리켰다. 반사적으로 그곳을 돌아본 소조가 흠칫 놀라며 몇 걸음 물러섰다.
그가 들어선 문의 바로 뒤쪽으로, 언제 새겨졌는지 모를 사다리꼴 마법진 하나가 희미한 빛과 함께 사라지고 있었다.
“별 건 아니고 간단한 폭발 함정입니다. 이건 사담인데, 저희 같은 사람들에겐 참 편하게 바뀐 세상입니다. 일을 하는데 신경 써야 할 부분이 많이 사라졌거든요.”
“……정체가 뭐요?”
“말했잖습니까. 류한의 요원이라고. 이제 잡담은 그만하고 본론으로 돌아가죠.”
사내는 여유롭게 방 한쪽의 의자를 끌어와 앉았다. 그러면서 제 방이라도 되는 것 양 침대를 가리키며 소조에게 앉으라 한다.
소조는 침대 가장자리에 엉덩이를 걸치고 앉으며 상대를 다시금 구석구석 살폈다. 언사를 보면 평범한 자가 아닌데 겉모습과 분위기는 딱히 특별하지가 않다. 백인이라는 점이 특징이긴 하나 당장 길가에서 백인을 찾아보기가 그리 어려운 것도 아니다.
한반도의 생존자들 다수는 안정된 삶을 영위할 수 있는 류한의 영지로 몰려들었고, 그 중 백인과 흑인의 수는 적지 않다.
잡생각을 떨친 소조가 자신을 지긋이 쳐다보는 상대에게 말했다.
“정보를 갖고 있소.”
“어떤 겁니까?”
“……우리 대일 길드에 대한 것.”
“주십시오.”
남자가 손을 뻗었다.
“지금 당신에게 다 말해달라는 건가?”
“농담하지 마십시오. 설마 그 모든 내용을 그냥 머릿속에 담아왔다는 겁니까? 그걸 언제 다 설명해주시려고? 지금 이렇게 우리가 만나고 있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당신의 위험 역시 올라가는 겁니다. 만약 정말 그렇다면 전 그냥 돌아가겠습니다.”
다 알고 있다는 듯, 웃는 것처럼 약간 휘어진 눈매가 그를 향했다. 뻗어진 손은 재촉하듯 까닥 움직인다.
“그러니 어서 주십시오.”
“……중요한 거요. 신원을 확신할 수 없는 자에게 건넬 수는 없지.”
소조는 고집을 꺾지 않았다.
그럴 만도 하다. 자신의 목숨줄을 일면식도 없는 자에게 선뜻 건네줄 수 있는 사람이 세상 어디에 있겠는가. 저자에게 건네준 정보가 길드장인 한세현에게 온전히 전달될지 확신할 수 없다.
“길드장님이라도 직접 뵈어야 건네줄 겁니까?”
“그렇다면 최선이겠지만, 적어도 류한의 사람이라는 걸 확신할 수 있는 정도는 되어야지.”
“그럼 그렇게 하십시오. 다만 그런 분들과 접촉해 정보를 넘기는 위험은 스스로 감당하시고.”
의외로 사내는 별 미련을 보이지 않고 곧장 자리에서 일어섰다.
“태도가 확고하시니 그를 위한 방법 역시 알아서 준비했으리라 믿겠습니다. 참고로 사절단은 길어야 하루 이틀 정도밖에 머물지 못할 겁니다.”
그리고 그 시간 동안 그들은 철저한 감시 하에 놓일 것이다. 본인들이 느끼지 못할 정도로 은밀하고 철저하게.
“만약 정 방법이 없는 것 같다면 창문 밖에 아무 천쪼가리 하나를 걸어두십시오. 눈에 잘 띄게 해놓을 필요는 없습니다. 커텐을 조금 빼놓는 것도 괜찮겠군요.”
이후 남자는 곧바로 방문을 열고 나갔다.
몇 초 정도 고민하던 소조가 빠르게 몸을 일으켜 따라나섰으나, 기다란 복도에는 누구의 모습도 보이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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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즈나오는 숙소에 안내된 후, 류한 길드원들이 사라지기 무섭게 자신의 믿음직한 수하들 다섯 명을 불렀다. 거기엔 소조가 포함되어 있지 않았다.
소조는 한때 시노부의 심복이었으나 이젠 아니다. 게다가 그의 무력은 대일 길드 내에서도 꽤나 높은 수준이니, 제대로 등용해 써먹지 않는다면 손해다. 적어도 카즈나오의 생각은 그랬다.
허나 그것이 그를 전적으로 신뢰할 수 있다는 뜻은 아니었다. 또한 신뢰 문제를 둘째 치고서라도, 소조는 이미 류한 길드와 얽힌 적이 있어 이번 임무에 부적절했다.
“흩어져서 내일 아침까지 정보를 수집해라. 당연하지만 일본인이라는 티는 내지 말고, 되도록 말을 많이 하지도 말고. 알겠나?”
에레도스 시스템에 의해 통역되는 사람의 언어는 괴물의 언어가 통역되는 것과는 확연히 다르다.
훨씬 더 자연스럽고 익숙하게 들리는데, 아무리 그래도 처음부터 주의를 기울이거나 오래 대화를 나누면 미묘한 억양과 입모양의 부조화 등으로 외국인이라는 것을 들키게 된다.
그들은 지금부터 류한의 본성이 있는 이곳에서 류한에 대한 각종 정보를 수집할 생각이었다. 교류 및 협상을 위해 온 자신들이 뒷조사 비슷한 것을 하고 다녔다는 소문이 퍼져 좋을 것 없다.
약간의 준비를 한 후, 대일 길드원 다섯은 혹시 모를 이목을 주의하며 조심스레 건물을 나섰다.
그들은 이곳으로 안내되며 딱히 외출을 자제하라는 것 따위의 말을 듣지 못했다. 실로 대범한 조치지만 다른 생각을 품은 카즈나오에겐 절호의 기회로 느껴졌다.
그들은 샬란과의 교류에 대한 것을 협상하러 온 것 외에, 가능하다면 류한의 진정한 전력과 현 상태에 대한 정보 등을 수집하려는 목적도 갖고 있었다.
현재 대일 길드는 혼슈 지방 남쪽을 꽉 잡고 있는 상태로, 동시에 더 이상 진출해 세를 불릴 곳 없이 막힌 상황이기도 하다. 만약 어딘가를 공격하게 된다면 그것은 같은 일본인들이 아닌, 류한이 될 확률이 높다. 계산적으로 따져도 류한을 굴복시켰을 경우에 얻을 수 있는 부산물이 훨씬 많으니까.
그러니 류한을 잠재적 적이라 생각한다면 정보는 많을수록 좋았다.
첩보활동을 위해 건물을 나선 다섯 명의 대일 길드원들은 각자 사방으로 뿔뿔이 흩어지며 혹시 있을지 모를 감시의 눈길을 따돌리려 시도했다.
그들 중 하나, 시바키타 쇼지는 몇 번이나 골목을 돌아 움직인 후에야 슬그머니 대로로 나섰다.
자신이 첩보영화의 주인공이 된 것 같은 느낌으로 움직이던 그는, 대로로 나선 이후 제법 자연스럽게 주변으로 녹아들었다. 별로 어려운 일은 아니었다. 옷차림이야 이미 별 특색 없이 입은 상태이니 달리 튀는 행동만 하지 않으면 된다.
그러다 잠시 후, 두 사람이 두런두런 대화를 나누며 그의 바로 앞을 지나쳤다.
“…해서 어수선하니까. 안 돼.”
“역시 그런가? 이쯤되면 거의 전쟁 수준인데, 괜히 끼어든 거 아냐?”
은밀히 걸음을 늦춘 시바키타 쇼지는 적당한 거리를 두고 두 남자의 뒤를 쫓기 시작했다. 그들이 향한 곳은 류한 직영으로 운영되는 꽤 커다란 규모의 술집이었다.
내부 인테리어는 꽤 단촐했다. 허나 사람의 수가 결코 적지 않았다.
술이란 생존에 전혀 불필요하나 이것을 찾지 않고는 견디지 못하는 이들이 수두룩하다.
대부분이 흔한 소주와 함께 과자류 안주를 시켜놓고 시끌벅적 떠들어대고 있었다. 제 무기 손잡이를 어루만지며 홀로 자작하는 이의 수도 적지 않았다. 중세와 근현대, 현대와 세기말 풍경을 적절히 뒤섞어 놓은 듯한 기묘한 분위기다.
시바키타 쇼지는 잠시간 제 임무도 잊고 촌놈처럼 주위를 돌아보기 바빴다.
설마 영지에 술집까지 있으리라곤 상상도 못했다. 도착한 류한 성의 모습부터 범상치 않더니, 영지의 발전도 역시 그들 대일보다 훨씬 앞서는 듯하다.
몇 초 후, 정신을 차린 그는 자신이 쫓아온 남자들과 적당히 떨어진 자리에 앉았다. 혼자 자작하는 사람들이 많아 다행이라는 생각과 함께, 도통 다가올 생각을 않는 종업원을 집요하게 쳐다보던 그는 시선이 마주칠 때 손을 드는 것으로 주문을 했다.
간단한 유니폼을 차려입은 종업원은 그에게 다가와 메뉴판부터 내밀었다.
“소주 한 병.”
“안주는요?”
쇼지는 고개를 저었다. 종업원은 아무 말 않고 매장 한쪽의 냉장고에서 소주를 꺼내 잔과 함께 그에게 갖다줬다.
그렇게 혼자 자작을 하며, 그는 자신이 따라온 두 남자와 주변의 대화에 온 정신을 집중했다. 대부분 쓸모없는 이야기들이었으나 그가 주의깊게 들었던 ‘전쟁’에 대한 이야기도 드문드문 들렸다.
그는 한참이나 집중해서 그 이야기들을 주워담았다. 그리고 몇 가지 키워드를 조합해 몇 가지 사실을 유추해내는 것에 성공했다.
서울 북쪽에 오크들이란 괴물이 있다.
놈들을 막기 위해 류한의 지원군이 파견나갔다.
꽤 오래 되었고, 아마 상황이 마냥 좋지 않은 듯하다.
지원군의 규모에 대한 것이나 그 이상의 자세한 정보는 캐낼 수 없었으나, 전체적인 사람들의 분위기를 감지하는 것 정도는 가능했다. 조금 더 있으면 그 이상의, 혹은 다른 중요한 정보를 얻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마침 잘 됐다.
쇼지는 다시 한 번 느릿하게 주위를 둘러보며 술집 내부를 확인했다. 이곳만큼 사람들이 입을 가벼이 놀리는 장소는 없다. 심지어 자신이 딱히 의심스럽게 보일 리도 없다.
그는 계속 여기 죽치고 있기로 했다.
종업원이 뒤늦게 갖다주는 계산서를 힐끗 쳐다보며, 컵에 따른 소주를 한 모금 들이킨 그가 미약하게 인상을 찡그렸다.
한국놈들의 술은 역시 맛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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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디 재밌게 읽으셨길 바랍니다. (__) 추천 꾸욱! 부탁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