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REDOS RAW novel - Chapter 1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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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신(劍神)
그그그긍-
무거운 전차가 숲을 짓뭉개며 앞으로 나아간다. 그 뒤를 또 다른 전차들 수십 대가, 그 뒤를 수백의 병력들이 뒤따르며 행군하고 있었다.
그들의 목적은 한반도와 일본을 잇는 새로운 대지, 현재로선 간편하게 ‘다리’라고 부르는 지형을 점령하는 것이었다. 이곳을 확실하게 확보한 후 자신들의 영토로 선포할 것이다.
샬란들이 사는 다르바드로 통하는 입구가 이곳에 있다. 다른 곳에 또 다른 입구가 있을지도 모르지만, 일단 이곳을 점령하면 다르바드와 접촉하는 통로를 분명하게 확보하는 셈이다. 지금처럼 류한의 눈치를 보며 소극적으로 접근할 필요가 없었다.
그렇게 한 다음은 류한을 압박하여 샬란들과의 거래를 따낸다. 그러면 모든 것이 완벽하다.
사절단이 모아온 정보에 의하면 샬란들이 만들어내는 각종 장비들은 최소가 희귀함 등급의 아주 귀하고 훌륭한 것들이었다. 그 광물과 기술력을 여태까지 류한이 독식하도록 놔두었다는 것이 몹시 배가 아플 정도로.
이대로 시간이 흐르면 류한은 나날이 강해진다. 상대와 더 이상 싸움을 할 수 없을 정도로 격차가 벌어지기 전에, 또한 현재 류한이 서울의 괴물들에게 전력이 묶인 사이 결판을 낼 필요가 있었다.
지금이 바로 타이밍이다. 적어도 길드장 타츠미 켄자부로의 판단으로는 그랬다.
행군하는 병력들 중 하나는 바로 이리키 시노부였다.
그의 직업은 전사, 일본도를 사용하는 공격에 특화된 전열이다. 그래서 그의 행군 위치는 전체 병력의 선두 부분이었다.
다른 이들이 행군하는 와중에도 간간이 대화를 나누는 것에 비해 시노부는 아무런 말도 없이 묵묵하게 걷기만 했다. 말을 거는 이는 아무도 없었고 그 역시 다른 이들에게 말을 걸 생각이 없었다.
그는 길드장의 눈밖에 나서 강등당한 상태다. 앞으로도 원래 지위로 복귀될 예정은 없다.
이전에는 더 없이 친절하던 다른 길드원들은 시노부가 끈 떨어진 연 신세가 되자 하루아침에 태도를 바꿨다.
대놓고 괴롭히거나 비아냥거리는 이들은 없었다. 그래도 혹시 모르기 때문이다. 능력만 보자면 그는 계속해서 평길드원으로 남을 사람이 아니다. 어지간한 이들보다 무력도 강했거니와 머리를 쓰는 일에도 나름 능숙했으니까.
하지만 그렇다고 이전처럼 친밀하게 구는 이도 없었다. 자칫 그와 어울리다가 함께 길드장의 눈밖에 나기라도 하면 큰일이니까.
그렇게 조용히 행군하는 시노부의 머릿속은 여러 생각과 감정이 뒤섞여 복잡한 상태였다.
그는 한때 대일 길드를 최고로 키울 꿈을 꿨다. 자신이 주도적으로 그것을 이룰 수는 없을지라도, 수십 년 후 거대해진 세력의 한쪽 기둥을 자신이 세웠다고 당당하게 말할 수 있기를 바랐다.
길드장 타츠미 켄자부로는 외부인인 그를 꽤나 우대해줬고, 기회가 닿아 몇 번 능력을 펼쳐보이자 곧바로 중용하여 특수부단장이라는 가볍지 않은 직책을 맡겼다. 그때까진 모든 것이 생각대로 잘 되고 있었다.
한세현.
그자를 만나고 모든 것이 꼬였다.
다르바드를 들킨 것까진 괜찮았다. 그 정도 실책이야 얼마든지 커버할 수 있는 정도다. 사전에 무려 전설 아이템을 양보하기도 했고 다르바드 유적을 발동시키는 결정적인 정보를 그들이 제공한 상황이었으니까.
충분히 권리를 주장하며 샬란들과의 거래 권리를 가져올 수 있었다. 협상이란 복잡하면서도 어떤 면으로는 단순해서, 이쪽이 원하는 무언가를 요구할 명분만 있으면 반은 일이 성사된 것과 마찬가지다. 바로 그 명분을 그들이 쥐고 있었다.
그런데 모든 것이 틀어졌다. 이유는 단순하게도 압도적인 힘의 차이 때문.
명분을 들먹이며 뭔가를 요구할 때는 최소한 상대와 비등한 힘을 갖고 있어야 한다. 그게 뒷받침해주지 못하는 주장은 덧없는 메아리에 불과하다.
상대는 다르바드를 통치하는 샬란의 강력한 세 가문 중 하나를 혼자서 쓸어버렸다. 게다가 싸움이 끝날 때까지 상처 하나 없었다.
지금까지 그가 본 그 어떤 괴물도 그보다 강하지는 못했다.
지금 행군하는 대일 길드의 병력은 결코 약하지 않다. 제대로 무력시위를 하기 위함인지, 동원할 수 있는 모든 중장비와 정예 전투원들이 여기 있었다. 계획대로라면 부산의 턱밑까지 진출해 위협을 가하며 유리한 고지에서 협상을 시도할 것이다.
이곳 다리의 권리를 확보하고 샬란들과의 거래까지 강탈하는 협상을.
상황에 따라 부산을 공격할 계획 역시 갖고 있었다.
하지만 둘 중 어느 계획도 성공하지 못할 것이다.
여기 있는 병력은 확실히 약하지 않다. 허나 혼자서 샬란 가문 하나를 쓸어버린 한세현을 감당할 수 있을 것이란 생각은 들지 않았다.
시노부의 머릿속에 다시금 세현의 목소리가 울렸다.
‘기대하마.’
무엇을 기대한단 말인가.
고작 말 한 마디에 이렇게 흔들린다는 것이, 그가 대일을 등지고 투항할 생각을 갖게 만들었다는 것이 좀처럼 믿겨지지 않았다.
자신이 어떤 상황에 처하게 될지, 샬란들과의 거래를 빼앗긴 대일이 앞으로 어떤 움직임을 보일지, 전부 내다보고서 그 말을 던진 것인가.
만약 그렇다면…… 지금의 이 공격 역시 한세현의 계획 안에 포함된 작은 사건에 불과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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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림에는 기인이사가 바닷가의 모래알처럼 많다는 말이 있다.
각종 별호를 가진 알려진 무인들이 있는 반면, 강한 힘을 가지고서도 전혀 알려지지 않은 이들이 있다. 걔중에는 이미 죽었다고 알려졌거나 은퇴를 선언하고 무림의 뒤편으로 숨어든 노괴들이 존재한다.
몇 사람들은 말하곤 했다. 세상이 아무리 삼신오존(三神五尊)이니 뭐니 떠들어대도, 은자(隱者)들을 모두 고려해 따진다면 그들은 더 이상 최고로 남을 수 없을 것이라고.
당시에 세현은 그 말에 동의하지 못했다. 스스로의 무공에 대한 자부심이 하늘을 찌를 시절이었으니 당연하다. 애초에 그런 자신감이 없었다면 화산의 장문인이 되지도 못했다.
허나 이제는 아니다.
무림에는 당시의 그보다 강한 존재가 분명 있었을 것이다. 하늘 위의 하늘이 있다는 것을 몸소 체험하고 나서야 이해할 수 있었다. 그런 소리를 떠들어대던 자들이 그걸 알고 말한 것은 아니겠지만, 어쨌든 사실일 것이다.
그렇다면 그 대단한 힘을 가지고서도 어째서 은인자중 하는가? 제 수명이 다할 때까지 역사에 이름 한 줄 남기지 않고 숨어 산단 말인가? 욕심도 없는가?
이제는 이해할 수 있다.
너무 대단한 힘을 갖고 있으면 다른 모든 인간들의 행사가 우습게 보일 수도 있다는 것을. 나서기만 하면 한 손으로 흩어버릴 수 있는 것들에 대체 무슨 의미를 갖는단 말인가.
게다가 만약 그렇게 나섰을 때, 어딘가에 숨어 있을 또 다른 비슷한 존재가 앞을 가로막을 수도 있다고 생각하면 함부로 움직일 수 없었을 것이다.
요컨대 이런 거다.
인간의 일은 인간들에게.
그 밖에 자리한 존재가 개입하면 또 다른 비슷한 존재가 끼어들 수 있다. 아무리 인간인지 의심스러운 거대한 힘을 가졌어도 결국은 인간이니, 인연이 이어진 자가 하계에 존재한다면 그를 지키기 위해서라도 끼어들 수 있는 일이니까. 자연스레 세상은 개판이 될 것이다.
화산을 비롯한 다른 구대문파의 진정한 저력은 그런 존재들이었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그렇다면 세현 자신은 어떤가?
그 역시 다른 이들의 사건을 하계의 것이라 치부하며 같잖게 여기는가?
전혀 아니었다.
깨달음을 얻을 당시에는 그에 대한 충격으로 지금껏 해온 모든 일이 부질없는 것처럼 느끼기도 했지만, 이제는 아니다.
그는 여전히 인간이다. 그것을 스스로 잘 알고 있었다. 인간을 움직이는 가장 큰 원동력은 바로 욕망이다.
에레도스를 이용해 역사상 전무후무한 제국을 세울 것이다. 그곳의 초대 황제로서 세상이 끝날 때까지 길이길이 이름을 남길 것이다. 자신과 혜진, 아엘라와 딸 유르미아를 포함한 모든 가까운 이들에게 부귀영화를 누리게 만들어줄 것이다.
세상의 섭리? 또 다른 강자의 존재?
막을 테면 막아봐라. 방해하면 부수고 다시 나아간다. 그렇게 할 수 있는 데까지 뻗어나갈 것이다.
거대한 힘을 얻었는데도 쓰지 않는다면 그게 대체 무슨 소용이란 말인가?
너무 자신의 힘만을 휘둘러 모든 일을 처리하는 것만 지양하면 된다. 세현 스스로가 아무리 강해져도 개인으로서는 할 수 없는 일을 집단은 해낼 수 있으니, 그가 지금보다 더 강해져도 류한을 키우는 일의 중요성이 낮아지진 않는다.
어쨌든 그런 이유로 세현은 순간이동 게이트를 통해 부산 길드성으로 향했다. 대일 길드의 병력이 부산 가까이 접근했다는 보고를 들은 후였다.
반나절 전 미리 부산 길드성으로 향했던 이바노프가 바다 길드의 길드장 박상영과 함께 그를 마중하며 좀 더 자세한 보고를 이었다.
“현재 행군을 멈추고 마법과 정령술을 통해 진지를 구축하고 있습니다. 사절단이 출발했으니 한 시간 후면 도착할 겁니다.”
“기다리지. 뭐라고 하는지 들어보고 싶군.”
도대체 무슨 말을 할지 궁금했다. 물론 내용에 관계없이 그들은 선전포고를 하게 될 것이다. 세현이 그렇게 만들 테니까.
잠시 후, 이바노프가 예견한 시간에 정확하게 사절단이 도착했다. 그들은 곧바로 세현이 자리한 부산 길드성의 1층 홀로 안내됐다.
사절단의 대표는 처음 보는 인물이었다. 저번에 얼굴을 마주했던 카즈나오보단 격이 떨어지는 듯하다.
속내가 짐작이 갔다. 적당한 지위는 갖췄으나 죽어도 크게 타격이 없는 인물을 보냈음이 분명했다.
“류한 길드장님을 뵙습니다. 저는 타츠미 마사모토라고……”
“됐고, 용건이나 말해라. 우리 영토 코앞까지 군대를 끌고 온 이유가 뭐지? 전쟁을 하고 싶나?”
사절단의 대표, 마사모토의 표정이 굳었다. 명백히 기분 나쁘다는 티를 팍팍 내는 모습이다.
“우리 대일 길드는 정당한 영토의 소유권을 주장하러 왔습니다.”
“어디 영토?”
“한반도와 일본을 잇는, 현재로선 간단하게 다리라고 부르고 있는 지형입니다.”
“거기가 왜 너희 거야?”
“먼저 발견했으니까요. 지금은 사라진 풍신 길드와 우리 대일 길드는 일종의 협약을 맺고 있었습니다. 그들의 발견은 우리의 발견과 같습니다.”
그때 세현의 옆에 있던 이바노프가 으하하하 웃음을 터뜨렸다.
그것을 시작으로 홀에 있던 바다 길드원들 간부진 대부분이 박장대소하기 시작했다.
순식간에 조롱거리 비슷하게 된 대일 길드의 사절단이 당황하며 주위를 살폈다. 이런 반응은 예상치 못했을 거다.
단순히 웃는 것이 아니었다.
풍신에 의해 점령당해 갖은 모독을 당했던 바다 길드원들, 그리고 대일에 끌려가 그곳에서도 고초를 겪었던 이들의 눈에서 살기가 뿜어졌다. 입과 소리는 웃고 있는데 눈빛만은 적의로 번들거리는 것이 일종의 광기처럼 보이기도 한다.
아마 그들만큼 지금 이 순간이 기꺼운 사람들은 없을 것이다.
세현 역시 피식거리는 웃음을 흘리며 말했다.
“내가 할 말은 하나 뿐이야. 개소리 지껄이지 말고 꺼져라.”
“……그렇게 딱딱하게 나오실 처지가 아닌 걸로 압니다만. 우리의 행사가 실체 없는 위협이라 생각하시면 크게 곤란하실 겁니다.”
“아, 그래. 그건 선전포고인가?”
마사모토는 다시금 당혹스런 기색을 감추지 못했다.
정보에 의하면 상대는 싸움을 피해야 마땅하다. 전력의 대부분이 서울에 묶인 상태이니, 현재 대일의 행동이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어야 정상이다.
헌데 지금 모습을 보니 흡사 선전포고 당하는 것을 기다린 것처럼 느껴진다.
허세인가?
생각만으로는 진실을 알 수 없다. 마츠모토가 믿을 것은 자신이 가진 정보와 받은 임무 뿐이다.
전쟁은 제 1의 목적이 아니다.
그러나 상대가 전혀 굽힐 기색이 없으면 뜨거운 맛을 보여주는 것 정도는 필요하다. 그가 할 행동은 정해져 있었다.
“후회하실 겁니다.”
그는 그 말을 한 후 물러가려고 했다. 세현은 그것을 굳이 막지 않았다. 사절단이 무사히 돌아가든 말든 아무 상관없다.
어차피 전부 죽을 테니까.
그런데 몸 돌려 성을 나서려던 그들 중 한 명이 이상행동을 보였다.
제 일행과 함께 움직이지 않고 오히려 세현 쪽으로 한 걸음 나선 것이다.
세현은 그가 누구인지 단번에 알아봤다. 성을 나서던 타츠미 마사모토가 이상을 눈치채고 몸을 돌렸을 때, 그는 이미 세현을 향해 더 없이 정중히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오랜만에 뵙습니다.”
“그래. 보낸 선물은 잘 받았다. 내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더군.”
얼마 전 사절단에 포함되어 왔던 소조는 결국 이바노프 밑의 정보원에게 자신이 가진 자료를 넘겼다. 창문 커튼을 빼놓는 신호를 통해 비밀리에.
“……이리키 시노부! 지금 뭐 하는 짓이지?!”
뒤 늦게 상황을 파악한 마사모토의 조용한 일갈에 시노부가 그를 힐끗 쳐다봤다.
“뭐 하는 짓이긴. 곧 끊어질 썩은 동아줄에서 탈출하는 중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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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부디 잼있게 읽으셨길 바랍니다. 추천 꾹! 부탁드립니다. (_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