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REDOS RAW novel - Chapter 1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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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신(劍神)
세현은 땅에서 송곳 같은 가시들을 솟게 만들어 폭발시키는 것을 제외하고도 몇 번 더 마법과 같은 공격을 가했다.
공기를 폭발시키며 화염의 힘을 더해 불의 폭풍을 만들어냈다. 하늘에서 낙뢰를 떨어트려 대규모로 감전사 시키고, 물을 뿌리고 적들을 얼린 후 산산이 부쉈다. 대지의 장벽을 소환하거나 구덩이를 파는 것으로 지형지물을 조종해 피해를 입혔다.
손을 들어 전차를 가리키자, 무형의 힘에 의해 육중한 그것이 허공으로 떠오른다. 보이지 않는 거인이 집어든 것처럼 흔들리던 전차는 이내 엄청난 속도로 던져지며 전장의 중앙을 관통했다. 충격을 이기지 못하고 폭발하는 전차의 주변에 있던 자들은 모두 파편에 찢기고 불길에 휩싸여 비명을 질렀다.
그는 자신이 얻은 힘을 제대로 테스트해보고 있었다. 잔혹한 일이었으나, 어차피 이것은 전쟁이다. 죽느나 죽이느냐의 선택지 뿐인 전장에서 어떤 식으로 적을 죽이든 달라질 것은 없다. 이곳에 윤리나 도덕 같은 것이 끼어들 자리는 없다.
마치 대마법사가 활약하는 듯한 모습이었다. 그러나 세현은 그런 방식의 힘을 사용하면 할수록 자신에게 맞지 않는 옷을 입은 듯한 감각을 느꼈다.
효율의 문제였다.
그는 검의 길을 걸어 정상에 섰다. 이곳을 정상이라 할 수 있을지 모르겠으나 어쨌든 그 비스무리한 곳에 도달했고, 덕분에 마법과 똑같은 일을 행할 수 있게 되었지만 그것이 썩 편하고 효율적이진 못했다.
“역시 나는 검이 맞아.”
그 말 후 세현은 공격 방식을 바꿨다.
그를 중심으로 자색의 빛무리가 폭발하듯 치솟는다. 이후 제각각 칼날처럼 날카롭게 떨어져 수백 수천으로 분리되어 쏘아졌다. 그것이 일회에 그치지 않고 두 번 세 번 연속으로 펼쳐졌다.
흡사 자색빛으로 된 검의 폭우가 쏟아지는 듯한 모습이었다. 지금까지 보여준 모습도 압도적이었으나 단언코 지금 쏟아내는 공격만큼 엄청나진 못했다.
많고 빠르고 강하다. 단순하지만 그렇기에 막을 수 없는 대규모 폭격이었다. 이대로 몇 분만 더 흐르면 대일의 병력들이 전부 증발할 것은 자명했다.
가장 선두에 있었으나 포탄의 폭발 속에서도, 뒤이어 날아든 검륜과 폭발하는 대지의 파편들 사이에서도, 자연재해 같은 마법적 현상과 쏟아지는 빛의 검들 사이에서도 우연인지 필연인지 멀쩡했던 켄자부로는, 치켜든 검을 채 내리지도 못한 채 눈을 부릅뜨고 정신없이 주위를 살피고 있었다.
눈앞에서 벌어지는 상황을 좀처럼 믿을 수가 없었다. 머릿속이 하얗게 물들며 무엇을 해야할지 모르겠다. 예전에 들었던 시노부의 보고가 떠오르는 것은 당연했다.
단신으로 샬란 군대를.
하지만 이건 보고보다 더 하지 않은가?
자색빛이 번쩍이며 폭발이 일어나고 날아드는 마법들을 피하고 베어났다는 말은 들었어도, 손짓 하나로 검을 뭉쳐 조종하며 학살을 일으키고 마법까지 사용하며 이처럼 빛의 검으로 된 폭우를 쏟아낸다는 말은 없었다.
이게 인간이 할 수 있는 일인가?
“환상…… 그래, 환상이군.”
반쯤은 논리적인, 그러나 현실을 인정하고 싶지 않은 마음이 만들어낸 왜곡된 결론.
그것을 굳게 믿은 켄자부로가 다시 정면의 세현을 쳐다봤다.
그를 중심으로 푸른빛 마력이 태풍처럼 요동치고 있었다. 어쩌면 아이템의 힘일지도 모른다. 소모성 전설 아이템이라면 얼마간 이 정도의 지독한 환상을 보여주는 게 가능할지도.
“으아아아아아!!”
그래서 켄자부로는 달렸다.
상대가 자신보다 강할지도 모르겠지만 그래도 길드장으로서 이 전황을 역전시킬 발판을 마련해야 할 책임이 있었다. 주위에 있는 아군은 전부 죽어버린 상태, 아니, 적어도 그렇게 보이는 상태이니 도움을 청할 수는 없다.
그렇게 단신으로 용감하게 돌진을 시작하는 그를 발견한 세현이 헛웃음을 흘렸다. 그리고 켄자부로가 근처에 다가올 때까지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그의 돌진 속도는 과연 길드장답게 느리지 않았다. 순식간에 적정 거리까지 접근했을 때, 세현이 말했다.
“꿇어.”
쿵!
세상이 켄자부로를 짓누른다.
자신도 모르게 검까지 떨구며 바닥에 처박히듯 두 무릎을 꿇은 켄자부로가 고함을 내질렀다.
“으아아아아아아아-!!”
기백으로 극복하려는 듯 목에 핏대를 세우며 안간힘을 쓴다. 어떻게든 다시 일어서서 달려들려는 모양, 그러나 그는 움찔거리기만 할 뿐 제대로 일어나지 못했다. 심지어 고개를 드는 것만으로도 전력을 다해야만 했다.
그렇게 말 한 마디로 간단히 켄자부로를 제압한 세현이 마저 공격을 이었다.
어찌된 일인지 상대편 정령사들 대부분이 무력화됐고 다른 이들도 공포에 질려 도망치는 이들이 태반이었다. 이미 진형은 붕괴되었고 전의는 완전히 사라졌다. 전의는 커녕 살고 싶다는 원초적 욕망에 휘둘려 피아식별조차 못하는 이들이 태반이었다.
그들은 더 이상 군대가 아닌 단순히 모여있는 군중일 뿐이다. 그것도 제 정신줄 붙잡기도 힘겨워할 정도의 극심한 혼란에 빠진.
아직 남은 수가 많지만 이 정도면 바다 길드원들이 충분히 압도적으로 이길 만했다.
“박상영, 마무리는 양보하마.”
“알겠습니다.”
약간 뒤늦게 대답한 그가 세현에게 경외감 어린 태도로 고개를 숙인 후 뒤돌아 섰다.
“우리의 복수를 할 때가 왔다! 전원 공격하라!!”
더 이상의 연설은 필요 없다.
쩌렁쩌렁한 함성과 함께 더 이상 사기가 높을 수 없는 바다 길드원들이 일사불란하게 돌격했다.
기마병보다 더 빠른 속도로 돌진한 바다 길드의 선봉대가 혼란에 빠져 제대로 된 대처도 못 하는 대일 길드의 잔당들과 충돌했다.
전장의 가운데에 금속끼리 부딪치는 소리가 천둥처럼 울리며 사람이 탁구공처럼 이리저리 튕겨나간다. 물론 그렇게 튕겨나가는 이들 대부분은 시체가 된 상태였다.
구백 명 정도로 이뤄진 바다 길드의 군세가 대일 길드의 중앙을 완전하게 관통했다. 캐스터와 사격수를 포함한, 비교적 신체능력이 떨어지는 근접 전투직이 아닌 이들조차 그 돌진에서 뒤쳐지지 않으며 자신들이 지나는 사방을 향해 전력으로 공격을 쏟았다.
간혹 살기 위해 다시 뭉치려는 대일 길드원들의 움직임이 보이면 그곳에는 어김없이 검륜이 날아들어 그들을 분쇄해버렸다. 대일 쪽 이들 중 그 누구도 상황을 통제하거나 어떻게든 뭉쳐 발악하려는 움직임을 보이지 못했다.
이곳을 지배하는 것은 세현이었다. 바다 길드는 마무리를 하고 있을 뿐이다. 애초에 그것을 위해 데려온 병력이기도 했다.
“켄자부로.”
세현이 그를 부르며 시선을 던졌다. 그는 더 이상 일어나려고 발악하지도 않고 있었다. 단지 약간 미친 사람처럼 계속해서 중얼거리고 있었다.
“이건 환상이야. 환상…… 진짜일 리가 없지. 그럴 리 없어. 어떻게 벗어나지? 정신 차리자. 내가 무너지면 모든 게 끝이다. 방법이 있을 거야…… 방법이……”
“그런 건 없는데.”
“휘말리지 말자. 휘말리지 말아라. 이건 환상이다.”
그는 세현을 철저하게 무시하며 눈까지 질끈 감고 정신을 집중했다. 물론 그런다고 달라질 것은 없다. 잠시 그 애처롭기까지 한 발악을 쳐다보던 세현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잡아서 며칠 가둬두면 알아서 현실을 직시할 것이다. 물론 그러지 못하고 미쳐버릴 수도 있는 일이지만, 어쨌든 이곳에서 당장 처리할 필요가 없다면 어떻게든 다른 방식으로 써먹는 것도 방법이었다.
그 중 하나는 공개적으로 처형하는 것이다. 모든 이들에게 대일 길드가 먼저 침략의 야욕을 드러냈다는 사실을, 이번 전쟁의 당위성을 다시 한 번 알리는 쇼로는 제격이 아닐 수 없다.
더불어 시노부가 건넨 정보들 중 쓸 만한 것들에 대한 검증을 거칠 수도 있을 것이다. 서영환이 일본에 가서 잔당 세력을 흡수하고 새로운 세력을 세울 때 필요하다.
세현이 켄자부로에게서 시선을 떼고 전장 쪽을 향해 손을 움직이자, 마지막까지 제 역할을 다하던 스무 자루의 장검들이 쏜살같이 날아와 그 앞에서 천천히 멈춰 섰다.
그것들은 엄청난 학살을 일으켰음에도 피 한 방울 묻어있지 않았다. 보이지 않았을 뿐이지 의형기로 조종되던 것들이다. 처음 상태 그대로인 것은 당연했다.
무한의 주머니에 그 검들을 차례차례 수납한 세현은 완전히 전쟁이 마무리 되는 모습을 그 자리에서 끝까지 지켜봤다.
짧지만 굵은 싸움이었다.
이것은 앞으로 류한이 일본으로 진출하게 되는 시발점이다. 먼 훗날에도 역사의 한 페이지를 당당하게 장식할 중요한 전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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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받으세요.”
지하 훈련장에서 한창 수련에 매진하던 서영환은 찾아온 이바노프가 내미는 작은 태블릿 PC를 받아들었다.
“이게 뭡니까?”
“서영환 씨가 일본으로 넘어갈 시기가 다가왔습니다. 조사한 정보를 바탕으로 어떻게 세력을 규합하고 키워야 할지 대략적인 계획을 세워봤습니다.”
“오…… 이런 도움까지 주실 줄은 생각 못했는데요.”
안 그래도 일본으로 넘어가 세력을 일궈야 한다는 것에 약간의 부담을 느끼고 있던 그였다. 서영환은 이바노프의 손짓에 따라 태블릿 PC를 켜고 안의 내용물을 살폈다.
그에게 필요한 주옥같은 정보들이 각 항목별로 일목요연하게 정리되어 있었다. 하이라이트는 단연코 이바노프가 언급했던 세력 규합에 대한 계획이다.
물론 아주 철저하고 세밀한 계획은 아니었다. 제 아무리 이바노프가 뛰어나도 모든 변수까지 고려해서 완벽한 계획을 세울 수는 없다.
그러나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방향을 정할 수 있을 정도만 되면 충분했다.
서영환은 경험이 없을 뿐이지 바보가 아니다. 이것만 있다면 약간의 고난이 있을지언정 반드시 일본에서 그의 세력을 일굴 수 있을 터였다.
“고맙습니다. 엄청난 도움이 될 겁니다.”
“다행이군요. 그것 말고도 현지 요원들을 통해 계속 도움을 드릴 겁니다.”
현지 요원이란 당연히 아직 류한 소속이 아닌, 그저 옛 SVR 소속의 요원들을 말하는 것이다.
이바노프의 생각대로 된다면 그들은 얼마 지나지 않아 세현에게 충성을 맹세하고 적극적으로 돕기 시작할 것이다.
부산에서 벌어졌던 대일 길드의 전쟁을 영상으로 저장했다. 그것을 약간의 편집을 거쳐 일본에 퍼진 SVR 요원들에게 전달했다.
이미 세현의 무력에 대해 얼추 알고 있던 이바노프조차 전율을 금치 못했던 엄청난 내용의 자료였다. 머리가 있는 자라면 떨어질 떡고물을 위해서라도 충성을 맹세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
또한 SVR 요원들은 다들 평범한 삶을 살지 못한 이들이다. 각자 개인차가 있을 테지만, 대부분은 이바노프처럼 충성할 대상 없이는 목적의식을 갖지 못하고 방황할 이들이란 뜻이다.
그들에게 세현의 존재는 새로운 삶의 이유이자 목적이 될 수 있었다.
그러기에 충분히 차고 넘친다. 살아있는 전쟁의 신, 검의 신(劍神)을 모시는 일에 어찌 열광하지 않을 수 있을까.
“떠나기 전까지 제가 약간의 교육을 해드릴 겁니다.”
이바노프는 곧 생각을 돌리며 서영환에게 필요한 말을 하기 시작했다.
그를 제대로 교육시켜 유용하게 만드는 것은 군주인 세현의 계획을 위해 꼭 필요한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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