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REDOS RAW novel - Chapter 1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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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전
그 적자를 감당할 수 있는 능력이 갖춰지고 나서야 만들어진 것은 당연한 일이다.
학교는 반드시 만들어야만 하는 시설이다. 인류의 미래를 위해서라는 거창한 목적이 아니고서도 당장 류한 길드에 필요한 인재들을 길러낼 수 있으니까.
또한 제대로 된 마법을 가르쳐야 한다는 점에서 더더욱 그러하다.
지구의 인류는 마법에 익숙하지 못하다.
에레도스 시스템이 나타나며 마법사와 사제 소환사 정령사 등의 각종 캐스터들이 나타나긴 했으나, 그들이 마법을 안다고 말하긴 어렵다. 시스템상의 직업 이름이 마법사일 뿐이지 실제로 마법사라 부르기엔 자격 미달이다.
그들은 그저 스킬을 사용할 뿐이다. 다른 세상의 마법사들처럼 스스로의 힘만으로 마력을 운용해 각종 초자연적인 현상을 만들어내지 못한다.
마법이란 세현이 무림에서 익힌 무공과 같은 것이다. 단순히 몸을 사용해 움직이고 공격하는 것을 넘어선 무언가, 결코 단시간에 만들어낼 수 없는 고난이도의 기술.
그것은 또한 어떤 면에서 학문과도 같다.
인간이 단번에 자연현상을 과학적으로 증명해낼 수 없듯 무공도 마법도 마찬가지, 오랜 세월을 들여 수많은 가정을 세우고 셀 수 없는 시행착오를 겪으면서 발전시켜야 하는 진보의 결과물이다.
하지만 다행스럽게도, 류한은 처음부터 마법에 대해 탐구할 필요가 없었다. 이미 그쪽에서 일가를 이룬 자들이 있으니까.
베이마라 샤크스, 그리고 안테아 세실 테미도스아.
더 없이 뛰어난 마법사인 둘은 학교에서 마법을 가르치는 일에 적극 협조하기로 했다. 베이마라는 용인족이고 안테아는 하체가 거미인 데뷰미아르 종족이나 그들의 마법은 사람도 충분히 사용할 수 있다.
또한 전생이 수호룡이라 고룡 다섯의 마법적 지식을 갖고 있는 레야는 더 뛰어난 마법체계를 만드는 연구를 진행하고 있었다.
세현이 시스템 상점에서 구입한 크로나드 세상의 마법서와 다르바드 샬란들의 각종 마법적 지식 및 이론 증명들은 굉장히 소중하고 훌륭한 자료다.
학교에서 마법의 기본을 가르치는 사이, 레야가 새롭고 더 뛰어난 마법체계를 정립해내면 그것을 도입해 차근차근 가르친다.
그렇게 10년만 지나면 충분히 다른 이들을 가르칠 수 있을 만한, 인류의 커다란 힘이자 자산이 될 진짜 마법사들이 탄생할 것이다.
학교에서 가르치는 것들 중 과학의 중요성 역시 빼놓을 수 없다.
원론적으로 따지면 그 어떤 학문이 중요하지 않겠느냐만, 과학만큼 실생활 및 생존과 밀접하게 연관되는 것이 없다. 동시에 과학은 마법과 통하는 부분이 많고 서로 시너지를 발휘했을 때의 기대치가 굉장해 더 중요했다.
스스로 독학하기 어려운 학문이니 학교 같은 본격적인 기관을 통해 인재를 육성하는 것은 필수였다.
세현은 한동안 입학 희망자를 심사하는 모든 과정에 참가해 바쁜 나날을 보냈다. 세현 뿐만이 아닌 순수 전투원을 제외한 류한 길드원 거의 전부가 그 일로 매우 바빴다.
원래 모든 일은 처음이 어렵다.
아직 매끄러운 행정체계가 정립되지 않았음은 물론 실무를 행하는 이들 역시 익숙지 않으니 당연하다면 당연한 일, 두 번째 입학 희망자를 받는 내년에는 이보다 덜하기를 바랄 뿐이다.
그런 중요한 일이 대충 마무리 되어갈 무렵, 레야가 베이마라와 함께 세현의 방에 찾아왔다.
– 폴바르, 에너지 저장체 연구를 끝냈다. –
“아, 다행이군. 수고 많았어.”
안 그래도 발전소에 잦은 문제가 발생하며 전력공급이 불안정해지는 상황이었다. 조만간 더 큰 문제가 발생할 것이 분명했는데, 레야가 이 모든 골칫거리를 단번에 해결해준 셈이다.
“정확히 어떤 식으로 작동하지?”
– 적당한 위치에 설치만 하면 된다. 저장체도 수신체도 재료는 충분하니 생산에 문제는 없고, 어디에 설치하고 어떻게 관리할지만 계획하면 될 듯한데. –
이어지는 보다 자세한 설명을 들으며 세현은 머릿속으로 그림을 그렸다.
레야가 개발해낸 에너지 저장체는 원본인 샬란들의 것처럼 각 건물에 설치하는 게 아닌, 설치한 지역을 중심으로 일정 반경에 사용할 수 있는 가공된 에너지를 흩뿌리는 방식이다. 멀티탭 콘센트를 닮은 형태의 수신체는 그렇게 뿌려진 에너지를 흡수해 당장 사용할 수 있는 전기로 변환한다.
지구의 문명은 전기 문명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바, 가공된 마력을 받아들여 전기로 변화하는 수신체의 존재는 필수적이다.
그것을 개발하는 것에 큰 도움을 준 것이 바로 베이마라였다. 레야가 관련 보고를 위해 그를 데려온 이유이기도 하다.
– 이전 세상에서 제가 연구하던 것을 조금 활용했을 뿐입니다. –
깍듯한 존대와 함께 그가 겸양을 보였다.
이 늙은 용인족은 말투와 행동이 모두 진중해 신뢰가 간다. 전투능력에 비례하는 마법적 지식과 그 활용능력은 여태까지 길드의 각종 발전과 개발에 큰 도움이 되고 있었다. 사실 그쪽이 베이마라의 진가라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 이제 학교장으로서의 일에 집중할 수 있겠군요. –
“부탁한다.”
– 적성에 맞는 일입니다. 진즉 죽어 사라졌을 운명의 이가 누군가를 가르쳐 영향을 주고 성장시킬 수 있다니, 되려 감사할 일이지요. –
그렇게 말하는 베이마라에게선 조금의 가식도 느껴지지 않았다. 연륜에 어울리는 성품과 능력을 갖췄고 적성 또한 맞으니 그에게 학교를 맡기지 않을 이유가 없다.
이후 셋은 에너지 저장체를 어디에 설치할지 대략적인 방향을 정하는 의논을 했다.
그 후 둘을 돌려보낸 세현은 방을 나서 지하 훈련장으로 향했다.
오늘은 새로운 무공을 창안하기 위해서가 아니다.
근래들어 벽에 막힌 박수진의 수련을 도와주기로 약속이 되어있었다.
대련장에 들어서자, 이미 도착한 박수진이 막 검을 뽑아들고 개인수련을 시작하려는 모습이 보였다.
“오래 기다렸나?”
“아닙니다. 저도 방금 왔습니다.”
대답과 함께 인사하는 박수진에게 가볍게 손을 들어 응답한 세현이 적당한 거리를 두고 멈춰 섰다.
“일단 대련부터 시작하자.”
“네.”
“참고로 난 조공을 사용할 거다. 준비되면 바로 시작하자고.”
“알겠습니다. 그럼……”
박수진이 이미 뽑아들었던 검을 들고 자세를 갖췄다.
스승을 향한 공경이 담겨있던 눈동자에 결의에 찬 서늘한 기운이 감돌고, 그녀가 든 검에서 자색빛이 일렁이며 은은하게 타오르기 시작했다.
세현은 그녀가 아무리 사력을 다하고 발버둥쳐도 옷자락도 건들 수 없는 어마어마한 실력자다. 비록 대련이지만 힘을 아낄 이유가 없다. 그녀의 전부를 내보이기 위한 대련이기도 하고.
가용한 스킬까지 모두 발동시킨 박수진이 마침내 땅을 박차고 돌진했다.
암향표를 통해 빠르게 접근한 그녀의 검이 화산의 절기 칠절매화검을 펼쳐낸다. 은백색 예리한 칼날이 사방 허공을 점하며 세현의 전신요혈을 노리고 번개처럼 쏘아졌다.
세현 역시 손에 자하기를 끌어올리며 그 공세를 맞이했다.
단번에 걷어낼 수 있지만 그러면 대련을 하는 이유가 없다. 그녀의 실력을 자세히 살피는 것이 목적인 만큼 그냥 피해버리는 것 역시 부적절한 대응, 최근 개발 중인 조공을 시험할 겸 힘과 속도를 딱 맞춰 어울려주는 것이다.
한순간에 검날과 손이 수십 번 넘도록 충돌하며 시끄러운 소리가 연신 대련장을 울렸다. 정신없이 몰아치는 공세를 수비적으로 맞이하던 세현은 속으로 고개를 끄덕이며 만족해했다.
박수진의 검술은 더 없이 훌륭했다.
완벽한 것은 아니나 그녀 수준에선 더 이상 가다듬을 수 없을 정도로 극한까지 숙련된 상태, 화산의 장로들도 익히기 힘들어하는 칠절매화검을 이토록 능숙하게 펼치는 것부터가 대단한 일이다.
쾅!
빠르고 부드럽지만 동시에 강한 힘을 담고 날아드는 검과 세현의 손톱이 부딪치며 폭발이 일어났다. 박수진은 공격을 하지 않는, 그러나 적절히 방어하며 어울려주는 세현을 상대로 모든 기술을 거침없이 풀어냈다.
“훌륭하다.”
쾅! 콰광!
폭음 사이로 세현의 칭찬이 들려왔다.
박수진은 대답하는 대신 정신을 집중해 공세를 이었다. 그것이 그녀의 스승이 바라는 일일 테니까.
세현은 백 초가 넘도록 방어에 집중하며 박수진의 검술 숙련도를 살폈다. 그리고 마침내 확신이 들었을 때, 그가 공격을 시작했다.
“헛..!”
갑작스레 공세를 뚫고 들어오는 세현의 손을 본 박수진이 황급히 몸을 물렸다. 당황한 와중에도 완숙하게 펼쳐진 암항표가 후퇴시 필연적으로 발생하는 빈틈을 최소화하며 언제든지 반격을 날릴 여지를 마련한다.
허나 딱 그녀와 같은 수준의 속도를 보여주는 세현을 따돌릴 수는 없었다.
집요하게 따라붙어 휘두르는 손은 그녀가 펼쳐낸 칠절매화검의 방어식을 아무런 저항도 없이 유령처럼 뚫어내며 날아든다. 그 상상하지도 못한 상황에 그녀는 크게 당황하며 연신 물러나기 바빴다.
칠절매화검이 통하지 않자 그보다 하위 검술인 이십사수매화검으로 공세를 전환했지만, 그것 역시 몇 초식 후에는 전혀 통하지 않게 되어버렸다.
마치 귀신을 상대하는 기분이었다. 모든 공격은 덧없이 막혀버리고 방어는 마치 없는 것처럼 뚫려버린다. 상대가 자신보다 더 강해서 발생하는 현상과는 근본부터 달랐다. 도저히 넘을 수 없는 벽을 마주한 기분이다.
그때, 세현이 입을 열었다.
“모든 무공에는 약점이 있다.”
그는 박수진이 딱 패배하지 않을 정도로만 몰아붙이며 천천히 말을 이었다.
“세상에 완벽한 것은 없듯이 무공도 마찬가지, 내가 있던 무림에선 특정 무공만을 상대하기 위한 파훼식이란 것이 있었지.”
무림에선 누군가의 수련을 훔쳐보는 일은 금기 중의 금기다. 무공의 형을 이루는 초식이 노출될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전에서야 각종 변초와 허초를 섞고 상황에 따라 초식의 순서를 뒤섞어 사용하기도 하니 큰 상관이 없지만, 자신의 무공을 가다듬고 성장시키기 위한 수련에서도 그런 식으로 무공을 펼치는 이는 없다.
초식의 노출을 꺼리는 것은 단순히 무공의 유출을 염려해서가 아니다.
힘이 전부인 세상에서 그 힘을 기르고 펼치는 수단인 무공이 어찌 중요하지 않겠느냐만, 초식이 유출된다고 해당 무공 자체가 유출되는 것은 아니다. 그 초식을 뒷받침하는 심법을 알지 못하는 이상 반쪽짜리에 불과하니까.
허나 바꿔 말하면 반쪽이나 되는 것이다. 그것을 갖고 뛰어난 실력의 누군가가 연구를 하면, 해당 무공의 약점만을 공략하는 파훼식을 만들어낼 수 있다.
실제로 그런 식으로 초식이 유출되어 파훼식이 만들어져 망해버린 문파는 수도 없이 많았다.
“지금 내가 펼치는 게 바로 그 파훼식이다. 공격은 전부 막히고 방어는 소용이 없지. 지금의 내가 딱히 너보다 더 강하거나 빠르게 움직이는 게 아닌데도.”
박수진은 이번에도 대답하지 않았다. 정확히는 그럴 여유가 없었다.
“정해진 틀에 갇혀서는 그 틀 자체를 부수기 위한 공격에 마주했을 때 대응할 수가 없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쉬아악!
매섭게 휘둘러진 손이 허공을 찢으며 박수진의 코앞을 스치듯 지나간다. 그야말로 아슬아슬한 회피, 세현이 딱 그녀와 똑같은 속도로 움직이지 않았다면 피할 수 없었을 공격이다.
“칠절매화검은 분명 훌륭한 검술이지만 그것에 갇혀서는 더 발전할 수가 없어.”
그 말과 함께 세현이 공세를 멈췄다. 덕분에 숨 돌릴 틈을 얻은 박수진이 거칠게 숨을 몰아쉬며 흐트러진 균형을 회복했다.
“어떻게 벗어나야 합니까?”
“형(形)을 버려라.”
그건 여태까지의 가르침과는 전혀 반대되는 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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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신히 약속대로 연참할 수 있게 되어 기쁩니다. 조금 많이 늦었지요. ㅠㅠ 마음에 안 차는 부분을 통째로 들어내고 욕심대로 가다듬다보니 이렇게 되어버렸습니다…… 봐주세용.
부디 재밌게 읽으셨길 바라며 추천! 꾹! 부탁드립니다. (_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