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REDOS RAW novel - Chapter 1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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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격의 증명
적룡파가 완전히 소탕되고 정확히 11일 후, 세현은 관련 간부들을 회의실에 모아놓고 작전명 쓰레기 청소가 완료되었음을 선언했다.
세 개 조직의 조직원들 총 519명을 죽이고 직접적 관련자 298명을 성 지하에 수감했다. 그리고 344명의 간접적 관련자들에게 벌금형 및 노동형을 선고했다. 영지 밖으로 도주한 놈들이 몇 있으나 모두 조무래기, 추격조를 보냈으니 조만간 붙잡아 처형할 수 있을 것이다.
아주 성공적인 결과였다. 이번 작전으로 용인의 인간 쓰레기들 전부를 털어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물론 이번에 죽은 놈들보다 더 질 나쁜 자들이 아직 숨어있을 테지만, 그들이 실질적인 문제를 일으키지 않는 이상 필요는 없다.
일어나지도 않은 사건을 예방하겠답시고 영지민들 개개인의 사상을 전부 검열하는 건 지극히 비효율적이다. 애초에 불가능한 일이기도 하고.
어쨌든, 아마도 꽤 오랜 시간 동안 사람들은 감히 이곳에서 딴 생각을 품지 못할 것이다. 소문은 달리는 말보다 빠르다. 또한 문하랑이 만든 신세계 신문사에서도 이번 사건을 특집으로 대문짝만하게 보도했다.
모두가 똑똑히 알아들었을 것이었다. 영지민으로서 안전을 보장받고 싶다면 규칙을 지키라는 뜻을.
“권태수는 대전으로 내려가 김인환을 도와라. 거기서도 물 흐리는 놈들이 있는지 한 번 살펴봐. 정보부에서 도울 테니 대략적인 윤곽만 파악해놓으면 된다.”
“알겠습니다.”
대전도 이곳처럼 불순한 놈들이 뿌리를 내리고 있을지 모른다. 일단 권태수와 김인환이 먼저 내려가 대략적인 정보를 파악하면, 천공성을 움직여 이번처럼 싹 쓸어버리면 된다.
특정한 이벤트를 탐지할 수 있는 이상 발생하는 폭력사태를 잡아내 추적하는 건 시간문제에 불과하다. 마음만 먹으면 영지 자체를 그 어떤 무력사용도 불가능한 일종의 성역으로 만들어버릴 수도 있을 거다.
“흠.”
생각해보니 꽤 흥미로운 이야기였다.
이번에야 류한의 뜻을 보여주기 위해 길드장인 그까지 직접 나섰다지만, 앞으로는 분쟁이 발생할 때 천군 병사들을 파견하면 된다. 그게 더 빠르고 확실하다. 즉각적인 개입으로 관련자 전부를 그 자리에서 잡아들일 수 있을 터.
그렇게 일정 기간 계속 반복하면 모두가 깨달을 것이다. 그 어떤 이유에서든 무력을 사용하면 그 순간 병사들에게 체포당한다고.
이건 좀 더 생각을 해봐야겠다. 쏟는 노력과 시간에 비해 얻는 성과가 미미하다면 헛수고밖에 되지 않으니까. 게다가 다양한 부작용이 발생할 수도 있다.
잠깐 딴 길로 새던 생각을 붙잡은 세현은 이바노프에게서 다른 보고를 받았다.
악마가 끌고 내려왔던 대규모 좀비들에 대한 것이었다.
“버티던 평양도 결국 무너졌습니다. 사실상 북한 지역의 모든 집단이 사라진 셈입니다. 좀비들만 처리하면 무주공산입니다.”
“파악된 성의 갯수는?”
“현재까진 둘입니다. 안전을 최우선하라는 명령을 따라 소극적인 정찰만 펼쳤습니다만, 원하시면 보다 정확한 정보를 가져오겠습니다.”
“아니, 됐다. 특별한 경쟁자도 없는 상황에 괜히 서두를 것 없지. 중국에서 내려오면 또 모를까.”
그렇게 말하던 세현이 잠시간 멈칫했다.
“잠깐, 생각해보니 좀비들이 거기서 내려왔던 거잖아?”
“……중국에서 경로를 추적했을지도 모릅니다.”
“그래, 그러면 놈들이 이제 바보가 됐다는 것도 알겠지.”
자연히 그것들만 처리하면 주인 없는 땅을 점령할 수 있을 거라 생각할 법 하다.
“자세히 알아보겠습니다.”
“그래.”
세현은 이번에는 만류하지 않았다. 이건 확실히 알아봐야 할 문제다. 여태껏 한 번도 실망시킨 적 없는 이바노프였으니 이번에도 믿고 맡기면 된다.
그는 이후 좀비들을 어떻게 처리할지에 대한 계획을 점검했다.
서울에 자세한 정보를 알린 후 서로 협력하며 북쪽으로 밀고 올라가는 게 좋겠다. 사실상 천공성의 제대로 된 데뷔전이 될 것이다.
세현은 회의의 종료를 알리며 혜진을 제외한 다른 간부들을 내보냈다. 그리고 문이 닫히는 것을 보며 누이에게 물었다.
“어떻게, 여기로 이주할 거지?”
“그래야지. 여기 너무 좋더라.”
거주에 대한 논의는 한방에 끝났다.
이주하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이곳은 아래 길드성보다 몇 배는 더 안전하고 시설도 좋다. 욕심이 나지 않는다면 거짓말이다.
“다른 길드원들은?”
“일부만 이주시켜야지. 전투원들이야 로테이션으로 돌리면 될 듯하고, 문제는 생산직들인데.”
그는 잠시간 고민에 빠졌다.
이곳의 생산시설은 굉장히 훌륭하다. 놀리는 것은 엄청난 낭비, 무조건 돌려야만 하는데 문제는 누구를 이곳에 올려 돌리느냐 하는 거다.
“……정석대로 실력자들 위주로 선별해야겠지. 일단 누나하고 이예슬하고 잘 조율해서 결정해 봐.”
“그렇게 할까? 고민 좀 해봐야겠네.”
천공성은 용인의 길드성보다 기능적으로 훌륭할 뿐 아니라 외관상으로도 훨씬 아름답다. 누구라도 이곳에 살고 싶어할 것이 분명한 상황, 헌데 누구는 올라오고 누구는 아래에 남게 되면 필시 불만을 품는 사람이 생긴다. 선택에 있어 모두가 납득할 만한 합리적인 이유가 필요했다.
혜진이 생각에 잠긴 표정으로 방을 나가고, 이제 회의실에는 세현과 관리자만이 남았다.
“관리자, 전직소의 시험에 대해 궁금한 게 있는데. 포탈을 넘으면 정확히 어떤 시험을 치르는 거지?”
“정신과 육체의 힘, 그리고 전투기술을 시험합니다.”
“어떤 방식으로?”
“자세한 정보제공은 금지되어 있습니다만, 그리 오래 걸리진 않는다고 알고 있습니다. 간단하지만 명확한 방법이고 통과하면 몇 가지 패시브 스킬과 전직의 기회를 얻을 수 있습니다.”
“전직이 안 되는 직업도 있다던데.”
“흑마력을 다루는 직업은 불가능합니다. 또한 부정한 존재의 경우 시험 자체가 불가능합니다.”
흑마력을 다루는 직업, 대표적으로 흑마법사가 있다. 부정한 존재라 함은 언데드라든가 악마 같은 존재를 말하는 것으로, 세현은 물론 앞으로 전직소를 이용할 모든 이들에게 상관없는 이야기였다.
“지금 치러야겠군.”
그는 자리에서 일어섰다. 이후 회의실을 나서 내성 밖 전직소로 향했다.
도착하는데는 긴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크지 않은 건물 안쪽, 두 엄숙한 태도의 천족 조각상 사이로 황금빛 포탈이 고요하게 물결치는 모습이 보인다.
그럴 리는 없겠지만 만약 시험에서 떨어져도 나중에 다시 도전할 수 있다. 긴장할 이유가 하나도 없었다.
“어디로 통하는 거지?”
허나 세현은 선뜻 들어가는 대신 다시 질문을 던졌다.
“천계입니다.”
“시험 도중 죽을 수도 있나?”
“불행이 겹치면 그럴 수도 있습니다.”
“아이템은 사용할 수 있고?”
“도전하는 사용자의 모든 힘을 온전히 사용할 수 있습니다.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잠시 그 말을 입속에서 굴려본 세현이 피식 웃었다.
돌다리도 두들겨보고 건너는 건 좋은 행동이다. 하지만 이건 에레도스 시스템이 보장하는 ‘전직소’의 포탈이니 믿어도 될 것이다.
“그럼 다녀오지.”
관리자는 별 말 없이 한 걸음 물러섰다. 세현은 가벼운 마음으로 황금빛 포탈을 넘었다.
@
탁-
단단한 돌바닥을 딛는 소리가 회랑에 울린다.
몸이 붕 뜨는 듯한 이질적인 감각을 느끼며 무사히 포탈을 넘은 세현이 가장 먼저 느낀 건, 어쩐지 공기가 무겁다는 것과 사방에서 빛이 흐르는 것처럼 밝다는 것이었다.
그는 고개를 들어 주위를 살폈다. 뒤쪽으로는 방금 전 건너온 황금빛 포탈과 그 뒤를 막아선 벽이 보인다. 포탈을 제외하면 사방이 막힌 막다른 장소였다. 전면으로는 오직 하나의 길이 주욱 뻗어 있다.
하지만 좁다는 느낌은 전혀 들지 않았다. 그도 그럴 것이, 회랑의 폭이 백 미터는 넘을 것처럼 넓고 천장은 제대로 보이지 않을 정도로 높다. 규모만으로도 사람을 압도시키는 장소였다.
그게 끝이 아니다. 바닥과 마찬가지로 성스러운 힘을 품은 새하얀 대리석 재질의 양쪽 벽에는 반쯤 튀어나온 형태로 수많은 천족들의 조각이 길을 따라 끝도 없이 늘어져 있었다.
대규모 전투를 묘사한 듯도 하고 거대한 예식의 한 장면을 보는 것도 같다. 그 정교함과 아름다움, 그리고 규모는 지구에서 절대 볼 수 없는 수준이었다. 실제로 이것을 흉내내려면 백 년이 걸려도 불가능하지 않을까.
또한 고대 신전처럼 양 옆에서 죽 늘어선 기둥들도 대단했다. 성스러운 대리석으로 이뤄졌고 그 표면에 순금으로 간결하면서 고아한 패턴이 새겨졌다. 일정 간격으로 세공되어 박힌 집채만한 크기의 선명한 보석들은 화려함을 더하며 장엄한 느낌까지 만들어내고 있다.
이건 아무리 세현이라 해도 감탄할 수밖에 없었다.
명백히 지구보다 훨씬 더 상위의 문명이 제대로 힘을 주고 만든 회랑이다. 잠깐만 방심하면 감탄을 넘어 경외심까지 느낄 정도.
그는 시간 가는 줄 모르고 회랑을 구경했다.
포탈 근처를 벗어나 기둥에 다가서서 그 거대함을 느끼고 표면의 감촉을 느껴봤으며, 황금으로 된 아름다운 패턴과 위쪽에 박힌 다양하고 거대한 보석들의 광채를 구경했다.
조각이 새겨진 벽으로 향해 그 세밀함에 다시 한 번 크게 감탄했고, 가장 뒤쪽으로 이동해서 처음부터 천천히 걸으며 무엇을 묘사한 내용인지 파악하려고 애썼다.
세현의 행동을 강제하는 그 어떤 요소도 없었다. 도대체 무슨 시험인지, 여기서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아무것도 몰랐으나 그는 일단 이 회랑을 감상하는 것에 집중했다.
그냥 넘어가기엔 너무나 훌륭하다. 감상하지 않는 것이 죄악으로 느껴질 만큼.
“대단해.”
무려 한 시간이 넘도록 회랑을 감상한 세현은 몇 번째일지 모를 감탄사를 내뱉었다. 그가 가장 감명깊었던 부분은 당연하게도 벽에 새겨진 엄청난 규모의 조각이었다.
바로 그때, 세현이 충분한 감상을 마칠 시간을 주었다는 듯 낯선 목소리가 사방을 울렸다.
– 인간 도전자 한세현, 직업은 검귀, 레벨은 87. 이제부터 자격을 증명하기 위한 시험을 시작하겠다. –
드디어 시작인가.
세현은 원래 자리로 이동해 이제 이 멋진 장소에서 어떤 일이 벌어질지를 기대했다.
– 길을 따라 걸으라. 끝에 도달할 수 있다면 합당한 보상을 얻으리니. –
그리고 목소리는 더 이상 울리지 않았다.
“……”
그냥 걸으라니.
걷는 게 대체 어떻게 정신과 육체의 힘 그리고 전투기술을 시험할 수 있단 말인가. 일정 구간을 이동할 때마다 적대적인 존재가 등장하기라도 한다는 걸까?
세현은 망설임 없이 길을 걷기 시작했다.
신비하게도 그가 발을 딛는 곳마다 바닥의 새하얀 대리석에 푸른빛 물결이 파문처럼 번지며 흔적을 남겼다. 아름다운 효과였다. 시험이 시작하기 전에는 없었던 효과이기도 하다.
그렇게 계속해서 걸었다.
십 분, 이십 분, 삼십 분을 넘어 한 시간이 지나도록 계속해서 걷기만 했다.
“흐음.”
설마 이렇게 엄청난 시간을 걸으라는 것은 아니겠지. 관리자는 분명 오래 걸리지 않는다 했는데, 아직 복도의 끝도 보이질 않는다.
이대로는 안 되겠다 싶었던 세현이 걷는 속도를 단숨에 올렸다.
한 발 내딛을 때마다 십여 미터 이상을 미끄러지며 순식간에 몸이 움직인다. 그가 밟은 자리에 퍼지는 푸른빛 파문의 간격이 크게 벌어졌다.
바람을 가르며 어지간한 자동차보다 빠르게 움직이던 세현은, 마침내 보이기 시작한 회랑의 끝을 보며 미묘한 표정을 지어냈다. 희미하게 제단 비슷한 구조물이 보이고 그 앞을 지키는 무언가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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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파트 시작입니다.
부디 재밌게 읽으셨길 바라며 추천 꾹! 부탁드립니다. (__)